All Chapters of 고결한 주인님, 벌을 받으셔야지요: Chapter 31 - Chapter 40

79 Chapters

31화

전음관을 통해 울려 퍼진 다니엘의 보고는 결국 두 사람을 일어나게 만들었다. 세레나는 칼릭스의 품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격정의 여파로 온몸의 관절이 뻐근하게 쑤셔왔으나, 사내를 바라보던 푸른 눈동자에는 어느새 시퍼런 서릿발이 맺혀 있었다.침상 곁에 무릎을 꿇은 칼릭스가 그녀의 땀에 젖은 흑발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직접 나가시겠습니까, 마마.”“그래. 내 뺨을 치며 버러지 보듯 비웃던 계집이다. 어떻게 기어 다니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어.”칼릭스는 칼로 찢긴 갑주를 버리고, 새로운 흑철 갑주를 갖춰 입었다. 갑주를 입고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붉게 물든 붕대를 감추자 그는 다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국의 전쟁 영웅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두운 지하 밀실의 철문이 열리고,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저택의 긴 복도를 비추었다.세레나는 칼릭스가 준비해 둔 최고급 드레스를 걸쳤다.아르젠트 공작가를 상징하는 짙은 감청색 실크 위로 은빛 자수가 고상한 기품을 뿜어냈다.값비싼 드레스 아래 숨겨진 세레나의 피부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격정에 붉게 물든 상처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만하고 고결했던 제국의 유일한 적녀.그녀가 마침내 온전한 주인의 모습으로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그녀의 반 보 뒤편에는, 흑철 갑주를 갖춰 입은 제국의 살귀이자 신흥 백작이 충직한 그림자처럼 뒤따랐다.철컥, 쿵.굳게 닫혀 있던 백작저의 거대한 철제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문밖 차디찬 진흙 바닥 위에는, 한때 사교계에서 화려한 보석을 두르고 세레나를 멸시하던 여인이 엎드려 있었다.카밀라 폰 로렌.사채업자들에게 쫓겨 도망치느라 값비싼 비단 드레스는 흙탕물에 찢겨 걸레짝이 되어 있었고, 단정하던 금발은 진흙 범벅이 된 채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살려주십시오…… 제발 백작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카밀라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진흙탕에 이마를 처박으며 울부짖었다.세레나와 칼릭스는 카밀라의 처참한 몰골을 보면서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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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아아악—!"짓이겨지는 카밀라의 손가락 뼈마디가 부러지는 기괴한 소리가 세레나의 귀에까지 들려왔다.카밀라는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지만 세레나는 제 구두에 체중을 더 실었다.진흙투성이가 된 카밀라의 손등에서 터져 나온 선혈이 푸른 실크 구두 끝을 붉게 더럽혔으나, 세레나의 눈빛에는 한 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묻는 말에만 답해라, 카밀라.”낮게 내려앉은 세레나의 목소리는 서릿발처럼 서늘했다.“에드윈의 비밀 사병 확약서와 횡령한 공작령의 채권 원부. 어디에 숨겨두었지?”“흐윽, 사, 살려줘…… 제발……!”카밀라는 진흙 바닥을 이마로 찧으며 흐느꼈다.그녀의 시선이 세레나의 등 뒤에 버티고 선 거대한 그림자에 닿는 순간, 여자의 숨통이 하얗게 얼어붙었다.흑철 대검을 땅에 짚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칼릭스의 눈동자.언제라도 목을 벨 준비가 된 살귀의 눈빛에 질려, 카밀라는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로, 로렌 별저…… 지하 서재에 있습니다! 서재 안쪽 흑단나무 초상화 액자 뒤에…… 비밀 금고가 있어요……!”세레나가 밟고 있던 카밀라의 손등에서 발을 떼었다.카밀라는 피와 흙탕물로 범벅이 된 손을 덜덜 떨며 제 가슴팍의 찢긴 옷자락을 파헤쳤다.품 깊숙한 곳에서 꺼내 든 것은 붉은 핏자국이 말라붙은 합금 열쇠였다.“그, 그 안에 황자 전하의 친필 서약서와 장부가 전부 들어 있습니다……! 진짜예요, 맹세합니다……!”여자가 울부짖으며 피 묻은 열쇠를 바닥에 바쳤다.그리고는 감히 세레나의 감청색 실크 치맛자락을 붙잡으려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그러나 세레나는 서늘한 눈빛으로 발을 반 걸음 뒤로 물렸다.단 한 치의 자비도, 더러운 손길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차가운 거절이었다.칼릭스가 턱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부관 다니엘과 정예병들이 쇠사슬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이 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사지를 결박하여 감옥에 쳐 넣어라.”사내의 목소리는 한 치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채 위엄있게 가라앉아 있었다.“황실 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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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제국 최고 권력의 상징이자 법과 규율의 성역, 황실 감사원 청사의 육중한 황동 문이 부서질 듯 열려 젖혀졌다.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거친 마찰음과 함께, 피투성이가 된 형체 하나가 홀 한가운데로 사납게 곤두박질쳤다.“히익!”오가던 법관들과 고위 귀족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은 진흙투성이 걸레짝 같았다.분홍빛 실크 드레스는 흙탕물에 더럽혀져 너덜거렸고, 으스러진 손등에서는 붉은 선혈이 붕대를 뚫고 뚝뚝 흘러내려 대리석을 더럽혔다.흐트러진 금발 사이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렌 백작 영애, 카밀라였다.“사, 살려주십시오……! 대역죄인을 고발하러 왔습니다……!”카밀라는 제 손가락이 부러진 고통조차 잊은 듯, 바닥을 두들겨대며 악을 썼다.그녀의 뇌리에는 오직 하나, 백작저 정문에서 제 손등을 짓밟던 세레나의 눈빛과 그 뒤에 버티고 섰던 살귀의 칼날만이 각인되어 있었다.황제 앞에서 자백하지 않으면 일족 전체가 도륙당한다는 엄청난 공포.카밀라는 떨리는 손으로 제 찢겨진 옷섶 안쪽을 헤집었다.피 묻은 품 안에서 와르르 쏟아져 내린 것은, 붉은 밀랍 인장이 선명한 몇 장의 서류 뭉치였다.“제2황자 에드윈 전하께서…… 아르젠트 공작가에 억울한 반역 누명을 씌우셨습니다!”카밀라의 찢어지는 비명이 돔형 천장을 뒤흔들었다.“공작가의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빼앗아 서부 협곡에 비밀 사병 500명을 양성하셨습니다! 황위를 찬탈하려 하신 증거입니다!”홀 안의 공기가 일순 얼어붙었다.바닥에 나뒹구는 서류들 위로 에드윈 황자의 친필 서명과 로렌 백작가의 불법 장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청사 2층 난간에서 내려다보던 감사원장과 황실 고위 감찰관들의 낯빛이 잿빛으로 질려갔다.제국의 근간을 뒤흔들 폭탄이 감사원의 한복판에서 터져버린 순간이었다.감사원 청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로변의 그늘진 골목.두터운 암막 커튼이 쳐진 흑철 마차 안에서, 세레나는 턱을 꼿꼿이 세운 채 창밖의 난장판을 응시하고 있었다.카밀라의 절규와 귀족들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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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단 하루만에 심장을 짓누르던 무게감이 싹 걷히는 통쾌함을 맛 본 세레나와 칼릭스.살기위해 악을 쓰고 몸무림치는 카밀라를 감사원에 두고, 두 사람은 저택으로 돌아왔다.저택 최심부, 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며 바깥세상의 모든 소음과 살기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밀실 안에 일렁이는 촛불의 은은한 온기.세레나의 감청색 드레스를 죄고 있던 코르셋 끈이 풀려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스르륵, 비단 옷감이 발치로 허물어지는 순간 세레나의 어깨가 잘게 떨려왔다.한계까지 당겨져 있던 신경과 육체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나간 탓이었다.“아…….”비틀거리며 허물어지려던 그녀의 허리를, 사내의 거대한 팔이 단단하게 낚아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침상에는 사지를 옥죄던 차가운 철제 결박 고리도, 손목을 파고들던 붉은 비단 끈도 없었다.은밀한 살결을 재고 체벌하던 백옥 자 역시 보이지 않았다.오직 푹신한 침구와, 은은하고 달콤한 제비꽃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칼릭스는 깃털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세레나를 안아 침대 한가운데 눕혔다.사내는 제 몸을 옥죄고 있던 흑철 흉갑의 버클을 풀어 바닥으로 내던졌다.이어 셔츠마저 거칠게 벗어 던지자, 칼자국과 상흔들이 어지럽게 뒤엉킨 단단한 구릿빛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사내의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이 세레나의 가슴을 지나 아랫배와 허벅지 안쪽까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오늘 밤은 마마를 묶지 않습니다.”칼릭스가 세레나의 흐트러진 흑발을 쓸어 넘기며 나직하게 속삭였다.“소인에게서 도망치지 않으실 것을 아니까요.”세레나는 사내를 밀어내지 않았다.오히려 떨리는 두 팔을 뻗어 사내의 두터운 목덜미를 감싸 안으며, 그의 잿빛 머리칼 사이에 손가락을 묻었다.사내의 뜨거운 혀가 목덜미와 쇄골, 가쁘게 들썩이는 가슴골을 집어삼키듯 핥아 내릴 때마다 세레나의 척추를 타고 전율이 치솟았다.카밀라의 손등을 제 비단 구두로 짓밟을 때부터 감사원에 내동댕이치던 순간까지.세레나의 하체는 이미 통쾌한 승리의 쾌감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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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하아…… 윽!” 세레나의 안쪽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물줄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칼릭스 역시 짐승 같은 거친 포효를 토해냈다. 사내의 단단한 기둥이 자궁구 입구를 부서뜨릴 듯 끝까지 밀어붙다. 사정의 격렬한 반동과 함께 쏟아져 나온 뜨겁고 진득한 백탁이 세레나의 여린 내벽을 빈틈없이 채웠다. 살결과 살결이 맞닿은 자리마다 불길 같은 열기가 번져 나갔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장 깊은 곳을 짓누르고 있던 사내의 기둥은 묵직한 맥동을 멈출줄 몰랐다. “하아…… 하…….” 폭풍 같던 정사가 지나가고, 밀실 안에는 헐떡이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엉켜 들었다. 온몸의 진이 빠져 탈진한 세레나의 가녀린 어깨를, 칼릭스는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사내는 땀에 젖어 이마에 들러붙은 흑발을 손가락으로 정성스레 쓸어 넘겨주며, 붉게 물든 그녀의 목덜미와 쇄골에 부드럽게 입술을 내리눌렀다. 전장의 살귀라 불리던 사내의 금빛 눈동자에는 오직 제 유일한 신을 향한 맹목적인 복종만이 고여 있었다. “마마…….” 사내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여린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이제 에드윈의 숨통이 끊어질 차례입니다.” 세레나는 흉터투성이인 사내의 단단한 가슴팍에 이마를 기댄 채, 푸른 눈동자를 서늘하게 빛냈다. 단단하게 요동치는 사내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그녀의 붉은 입술 끝에 단단히 벼른 각오가 서렸다. “그래. 그 추악한 버러지가 제 죗값을 치를 시간이지.” 동이 트기 무섭게, 제국 황궁은 유례없는 거대한 격랑에 휩싸였다. 황실 감사원 청사에 카밀라가 던져놓고 간 수십 장의 비밀 장부와 친필 서약서.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사병을 기르고, 제국 제일의 공작가에 누명을 씌워 도륙 냈다는 명백한 물증. 그것을 마주한 늙은 황제의 분노는 벼락같았다. “감히 아비의 목에 칼을 겨누고 황실의 기강을 능멸해?!” 황제의 노호가 황금 옥좌를 뒤흔들었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옥새를 내리찍으며 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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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수도 중심가에서 가장 호화롭기로 이름난 마담 로젤린의 그랜드 살롱.제국 고위 귀족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그 사치스런 사교의 전당이, 오늘 밤 문을 닫아걸었다.막대한 금화와 황실 공신의 권력으로 하룻밤의 살롱을 통째로 임대한 자는 다름 아닌 칼릭스였다.살롱의 육중한 황금 문이 활짝 열리며, 현악기의 우아한 선율 위로 파티의 주인공이 나타났다.계단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인영을 본 귀족들의 숨이 일제히 멎었다.세레나 폰 아르젠트.가문이 멸문당했을 때 처형대의 피눈물을 상징하던 칠흑빛 실크 드레스.그 깊고 어두운 밤하늘 같은 옷자락 위로 수천 개의 흑진주가 촘촘히 박혀 불빛을 받을 때마다 찬란하면서도 애잔한 빛을 뿜어냈다.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어야 할 대역죄인의 딸은 온데간데없었다.단순히 사교계의 정점에서 제국을 내려다보던 평범한 공녀가 아니었다.지금 세리나는 더없이 눈부신 여왕의 자태로 부활해 있었다.“어머, 세상에…….”“설마 아르젠트의 계집이……?”귀족들이 부채 뒤로 입을 가리며 천박한 수군거림을 피워 올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살롱 외곽, 어둠이 짙게 깔린 테라스 정원의 정적 속.달빛 한 점 들지 않는 회랑 기둥 뒤로 칠흑 같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에드윈이 보낸 암살 길드의 선발 척후였다.척후병은 품속에서 독이 발린 비수를 꺼내 들며 살롱 내부의 동태를 살폈다.아마도 당장의 암살보다는 칼릭스라는 전쟁 영웅과 그의 호위 군사들에 대한 탐색 임무였을 것이다.작은 소리나 움직임도 없이 중앙 홀을 살피던 척후의 뒤통수로, 얼음장보다 차가운 살기가 들이닥쳤다.인기척조차 없었다.텁!거대한 흑철 장갑을 낀 손아귀가 살수의 안면과 입을 통째로 틀어쥐었다.“읍……!”비명조차 비집고 나오지 못했다.사내의 등 뒤에 우뚝 선 거대한 그림자.흑철 제복을 목 끝까지 채워 입은 칼릭스의 눈동자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맹수처럼 번뜩이고 있었다.제 안면을 잡히고 입이 막힌 상황에서도 척후병은 그 막대한 위력에 놀라고 말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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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살롱 중앙 홀을 얼어붙게 만든 세레나의 선전포고는 순식간에 사교계 귀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적셨다.공녀가 비운 붉은 포도주 잔을 칼릭스가 거두어들였고, 두 사람은 오만한 걸음으로 살롱 가장 깊숙한 귀빈 밀실로 향했다.철컥.두꺼운 문이 닫히며 홀의 웅성거림이 완벽히 차단된 방 안.벽난로의 붉은 불꽃만이 일렁이는 어둠 속에서 세레나는 말 없이 앉아 있었다.그때 밀실의 문이 열리며 서너 명의 그림자가 일제히 바닥으로 엎드려 무릎을 꿇었다.“……공녀 마마!”피를 토하듯 짓눌린 울음이 적막을 갈랐다.가문이 멸문당하던 핏빛 밤, 숙청의 칼날을 피해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아르젠트의 구 가신들이었다.과거 가문의 기사단장이었던 백발의 노기사와 상단을 이끌던 충직한 영수들.그들은 흙먼지와 세월의 풍파에 찌든 얼굴로, 흑진주 드레스를 입고 부활한 세레나의 발치에 이마를 찧었다.“살아 계셨군요…… 정녕 무사히 살아 계셨군요, 마마……!”노기사의 메마른 손등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주군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남았다는 지독한 죄책감과,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유일한 적녀를 마주한 벅찬 감격.세레나는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가신들의 앞에 섰다.“고개를 들어라.”맑고 서늘한 음성에 가신들이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세레나는 품에서 크로노스 상단의 황금 인장이 박힌 두툼한 어음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크로노스 상단은 칼릭스가 북부의 생지옥에서 오직 세레나를 되찾기 위해 3년간 피를 쏟아 일궈 바친 제국 최대의 비밀 상단이었다.로렌 백작가를 파멸로 몰아넣었던 이 막대한 자금줄은, 이제 흩어진 아르젠트의 군대를 단숨에 일으켜 세울 무제한의 군자금 파이프라인이었다.공녀의 손끝에 쥐여진 그 종이 몇 장에 제국의 판도를 뒤흔들 천문학적인 권력이 실려 있었다.“눈물은 복수가 끝난 뒤에 흘려도 늦지 않다. 너희가 숨죽여 버텨온 지난 3년의 설움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어음 뭉치 위로 촛불이 번뜩였다.“제국 전역에 흩어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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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살롱을 빠져나온 마차가 짙은 밤안개를 가르며 자갈길을 달렸다.차창 너머로는 마차를 둘러싸고 달리는 호위 기사들의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와 낮게 깔린 바람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밀폐된 흑철 마차 안, 덜컹이는 진동 속에서 칼릭스는 여전히 좌석에 오르지 못한 채 세레나의 발치 아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제국의 전쟁영웅이라 불리던 거대한 맹수.그러나 지금 공녀의 발아래 엎드린 사내는 버림받을까 두려워 안절부절못하는 거대한 사냥개에 지나지 않았다.“질투가 지나치구나, 칼릭스.”세레나는 흑단나무 좌석에 오만하게 등을 기댄 채, 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는 사내의 잿빛 머리칼을 느릿하게 쓸어 넘겼다.손끝에 닿는 사내의 정수리가 잘게 떨려왔다.가문의 군주로서 옛 충신들을 품었을 뿐이건만, 사내는 주인의 시선이 다른 사내들에게 향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핏줄을 바짝 태우고 있었다.“고작 늙은 기사들의 충성을 받아낸 것뿐이다. 그들이 내 칼이 된다 한들, 너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달래듯 턱을 간질이는 여인의 손길은 마치 애완견을 다루는 듯한 손길이었다.하지만 그런 그녀의 손길에도 칼릭스의 목울대가 사납게 요동쳤다.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잿빛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황금빛 눈동자는 붉게 충혈된 채 굶주린 애원을 담고 있었다.“그 눈빛…….”사내의 낮게 긁는 음성이 떨려 나왔다.“그들에게 내어주신 그 자애로운 눈빛은…… 오직 소인만의 것이어야 했습니다.”사내의 커다란 손이 흑진주 드레스 자락을 거칠게 움켜쥐었다.“아무리 천한 노예 출신이라 멸시하셔도 좋습니다. 허나 다른 사내들에게 그토록 눈부신 미소를 흘리시면…… 소인은 미쳐버릴 것만 같습니다, 마마.”애원과 갈증이 뒤엉킨 손길이 감청색 실크 치맛자락을 단숨에 허벅지 위로 걷어 올렸다.서늘한 밤공기가 드러난 살결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 세레나의 푸른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건방지구나.”세레나는 턱을 치켜들며 사내의 뺨을 서늘한 손끝으로 가볍게 밀어냈다.“주인의 허락도 없이 치맛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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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사내의 뺨과 턱을 타고 흐르는 세레나의 투명한 체액이 달빛을 받아 번들거렸다.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칼릭스는 여전히 그녀의 벌어진 무릎 사이에 거대한 몸을 처박은 채, 주인의 온기를 탐닉하듯 헐떡이고 있었다.거친 혀끝으로 제 입술에 묻은 체액을 핥아 올리는 사내의 꼴은, 굶주림 끝에 먹이를 받아먹은 거대한 사냥개 바로 그것이었다.세레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턱을 치켜들었다.아찔했던 절정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자, 흐트러졌던 공녀의 서늘한 오만함이 다시금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서릿발처럼 내려앉았다.“감히…… 주인의 허락도 없이 치맛자락을 들추다니?”낮게 깔린 세레나의 음성이 마차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그녀는 제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사내의 잿빛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어 고개를 강제로 젖히게 했다.사내의 목덜미가 드러나며 굵은 핏줄이 곤두섰다.“3년 전, 아르젠트 저택의 진흙탕 바닥에서 채찍에 맞아 울부짖던 기억을 벌써 잊은 게냐.”세레나의 차가운 손가락이 칼릭스의 젖은 턱관절을 파고들며 짓눌렀다.“전쟁영웅이란 백작 감투를 쓰더니 제 분수를 잊은 모양이지. 이 불경한 개새끼를 다시 채찍으로 다스려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네놈의 살이 채찍으로 뜯겨 나가야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나겠어?”공작가의 엄혹했던 규율과 가혹한 매질.그것은 칼릭스의 몸에 새겨진 무수한 흉터의 시작점이자, 사내를 영원히 옭아맨 사슬의 이름이었다.그러나 능멸에 찬 세레나의 독설에, 칼릭스의 금빛 눈동자는 공포로 질리기는커녕 소름 끼칠 만큼 붉게 달아올랐다.하악, 사내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김이 터져 나왔다.자신을 버러지 보듯 내려다보는 주인의 서슬 퍼런 멸시와 채찍의 위협.그것이 오히려 사내의 밑바닥에 도사린 원초적인 가학심과 복종욕을 동시에 자극하고 있었다.오로지 세레나만을 향한 칼릭스의 진심이었다.“마마께서 내리시는 벌이라면…….”칼릭스는 제 머리채를 틀어쥔 세레나의 손등에 제 뺨을 비비며 헐떡였다.손바닥에 닿는 거친 숨결이 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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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사내의 뜨거운 기둥이 안쪽 가장 깊숙한 곳을 헤집을 때마다, 그녀의 여린 살벽은 사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친 듯이 경련하며 옭아매고 있었다. “닥…… 쳐라, 칼릭스…… 읏! 하읏!” 세레나는 쏟아지는 열락에 흐트러지려는 눈빛을 다잡으며, 사내의 잿빛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밖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기사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이를 악물며, 여인은 군주의 서늘한 위엄을 잃어버린 채 헐떡였다. “하읏! 마차에서 내리는 즉시…… 으읏! 쇠사슬로 네놈의 사지를 묶어둘 것이다.” 세레나의 붉은 입술 사이로 오만한 숨결이 터져 나왔다. “하응! 아아!! 네놈의 피로 바닥을 적실 때까지…… 아주 엄히, 다스려주마. 하으읏!!” 사내의 깊숙한 피스톤질에 들썩이면서도 세레나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범하고 있는 거대한 맹수를 발아래 둔 주인으로서의 절대적인 지배. 그 서슬 퍼런 엄포에, 칼릭스는 황홀경에 빠진 표정으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예, 마마. 제 살을 찢고 뼈를 꺾으십시오.” 칼릭스가 세레나의 목덜미에 뜨거운 숨을 쏟아부으며, 부서질 듯 허리를 쳐올렸다. “소인을 죽이셔도 좋으니…… 지금은 소인의 것으로만 가득 차 주십시오.” 뜨거운 열기를 가득 품은 마차가 백작저 안뜰에 멈춰 섰다. 칼릭스는 단정한 손길로 제복의 매무새를 가다듬었고, 세레나 역시 헝클어진 흑진주 드레스의 주름을 반듯하게 펴 내렸다. 덜컹,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 마차 안을 뒤흔들었던 질척한 살 냄새와 음란한 파열음은 차가운 공기에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사교계를 짓밟고 돌아온 고결한 공녀와, 그 뒤를 묵묵히 호위하는 무패의 전쟁영웅. 완벽한 가면을 쓴 두 사람의 기세에 안뜰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부관 다니엘이 일제히 가슴팍에 주먹을 얹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다녀오셨습니까, 백작님.” “수고했다. 이만 물러가 저택의 경계를 점검해라.” 다니엘과 기사들이 물러서자, 두 사람은 군더더기 없는 걸음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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