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Chapter 181 - Chapter 190

211 Chapters

182. 집안 내력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콧방귀를 뀌며 매몰차게 말을 받았다."얘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박 서방이 그동안 십몇 년을 너한테 차갑게 굴다가, 요새 갑자기 잘해준다며? 혹시 그거, 박 서방이 밖에서 딴짓하다가 이제 돌아온 거 아니야?""몰라…… 하지만 성웅 씨는 그런 사람 아닐 거야. 왜 갑자기 잘해주는지는 나도 몰라. 근데 엄마, 잘해줘도, 잘 안 해줘도…… 난 편하지가 않아. 너무 숨 막히고, 항상 긴장하게 돼."미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엄마…… 나, 그 사람이랑 편하게…… 나답게 살면 안 되는 거지?"엄마가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찼다."너 애들은 어떻게 하고 그래? 정신 차려, 이 미련한 년아!""모르겠어……."미래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서러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침실 문밖에서 그 울음소리를 들은 정례는, 들고 있던 찻잔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 채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발걸음을 돌려 거실로 나갔다."엄마……."미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엄마가 차갑게 그 말을 잘랐다."엄마 닮으려면 똑바로 닮아. 내가 왜 네 새아버지 밑에서 버틴 줄 알아? 엄마가 참고 버텨서 너 미국으로 유학도 보냈고, 그래서 박 서방 같은 남자가 너 좋다고 한 거야. 우리 둘이 형편 어렵게 살았어 봐. 그렇게 잘난 남자는 만나지도 못했지만, 만났다 해도 뻔했겠지."엄마의 쌀쌀맞은 목소리가 예리하게 미래를 파고들었다."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다 내가 참고 버틴 데서부터 시작된 거야. 계속 그렇게 살려면 너도 참아야 하는 게 있는 거고. 그딴 놈이 잠깐 잠자리에서 잘해줘서 네가 좋아 죽는 거, 엄마도 여자로서 이해 못 하는 거 아니야. 근데 너, 그놈이 어떤 놈인 줄 알고 일을 쳐? 그놈이 네 돈 보고 딱 달라붙은 놈이면 어떡할 거고? 그런 놈이 그냥 입 다물고 재미만 보는 놈이면 그나마 양반인 거야. 너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다른 여자들은 박 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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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소나기

엄마는 다시 한번, 못을 박듯 단호하게 경고했다."그러니까 너, 그딴 놈이랑은 당장 끝내. 울고불고 떼쓰지 말고 엄마 말대로 해. 알았어?"뚝, 통화가 끊어졌다. 핸드폰 액정 위로 차가운 여운만이 덩그러니 남았다.미래는 전화를 끊고도 오랫동안 화면을 응시했다. 어쩌면 엄마의 그 모진 입에서 나오는 현실적인 경고들을, 스스로를 옭아매는 그 가혹한 말들을 다시 한번 확인받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단단한 벽을 다시 마주하고 나니, 숨통을 조여오는 고통은 배가 되어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문자가 떠올랐다. 진희였다.[미래 씨, 통화 돼요?]미래는 떨리는 손으로 그 문자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핸드폰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채 집을 나섰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숨이 막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방향도 없이 향한 곳은 양재천이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을 털어내려, 미래는 달리기 시작했다. 악에 받친 듯, 혹은 스스로를 벌주듯 양재천의 길을 빠르게 내달렸다.달릴수록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은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와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진희를 처음 마주쳤던 그 순간. 양재천 산책로에서 넘어져 다쳤을 때, 무심한 듯 다정하게 상처를 처치해 주던 진희의 손길. 갑작스러운 비를 피해 둘이서 함께 비를 맞으며 달렸던 기억. 물살을 가르며 나란히 수영하던 호흡. 그리고 뜨겁게 얽히며 서로를 탐했던 그 모든 시간들까지…….순서와 장면들은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의 온기와 감정만큼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자꾸만 아스라이 흩어져 갔다. 정말 꿈이었던 걸까. 자신이 누려온 안전한 삶과, 가슴을 뒤흔든 그 뜨거운 감정 사이에서, 미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달리고 또 달렸다.바로 그때, 하늘이 순식간에 구름을 모으더니, 예고도 없이 거센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하늘에서 내리는 비인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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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여름 감기

빗속을 헤매다 겨우 집에 돌아온 미래는 곧장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지만, 차가워진 몸에는 금세 걷잡을 수 없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된통 몸살이 난 것이었다.미래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정례는, 이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발걸음을 옮겼다. 방으로 들어선 정례는 끙끙 앓는 미래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가슴이 저려왔다.정례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생강차를 협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사모님…… 이거 마셔요. 어렸을 때부터 아플 때마다 이거 마시면 좀 나았잖아요."조심스럽게 미래의 이마를 짚어본 정례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아이고…… 불덩이네! 안 되겠다,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빨리 들어오시라고 할게요."정례가 급하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 하자,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있던 미래가 힘없는 손으로 정례의 옷자락을 꾹 잡았다."이모……."그 한마디에 모든 서러움과 억눌린 감정이 묻어났다. 정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자신의 품으로 와락 안겨드는 미래를 받아 안았다.미래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마음이 이토록 무너져 내렸는지, 정례는 이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혹은 모든 것을 덮어주겠다는 듯이, 정례는 두 팔을 벌려 미래를 깊고 단단하게 끌어안았다.결국 터져 나온 감정을 이기지 못한 미래는 정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정례는 떨리는 미래의 등과 어깨를 천천히, 다독이듯 쓸어내렸다."사모님…… 괜찮아요. 곧 다 나을 거야……."겉으로는 독한 몸살을 앓는 사람을 다독이는 말이었지만, 그 위로는 단순히 몸의 열병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래가 앓고 있는 그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사랑, 그 걷잡을 수 없는 열병과 죄책감의 정체를 짐작하기에 건네는, 깊은 안타까움이자 진심 어린 다독임이었다.정례는 상비약을 찾으려 서랍을 뒤졌지만, 그 흔한 해열제 한 알조차 보이지 않았다."아이참, 해열제가 없네!"발을 동동 구르던 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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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진실

진희는 급하게 집으로 뛰어 들어가 서랍을 뒤졌다. 지난번 자신이 앓았을 때 처방받아 남겨두었던 수액 세트와 상비 해열제를 챙겨 들고는, 다시 현관 밖으로 날듯이 뛰어나왔다.머릿속은 온통 미래 생각뿐이었다.'숨을 몰아쉬며 미래네 동 로비로 들어선 진희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마침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그 안에, 진수가 타고 있었다."진희야."진수의 낮은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채웠다. 진희는 고개를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형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한 채, 진희는 시선을 피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진수는 당연히 진희가 자기 집이 있는 45층으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희의 손가락이 누른 버튼은, 엉뚱하게도 꼭대기 층인 65층이었다.찰나의 순간, 진수의 눈빛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진수가 불쑥 손을 뻗어 진희의 손목을 꽉 잡았다."진희야……."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입술을 꾹 다문 채, 서늘한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엘리베이터가 속도를 줄이며 45층에 다다랐다. 문이 스르륵 열리자, 진수는 잡았던 손을 천천히 풀며 무언가 물으려 했다. 그 순간, 진희의 입에서 먼저 참아왔던 말이 터져 나왔다."……지금 아프대. 이모님을 우연히 로비에서 만났는데, 문 연 약국 찾는다고 다급하게 뛰어다니시더라고."진희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과 걱정이 묻어났다. 그 진심 어린 다급함을 느낀 것일까. 진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진희를 바라보았다.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이 깜빡였다.진수는 천천히 발을 옮겨 열린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비록 진희가 지금 향하는 곳이 남의 아내의 집일지라도, 두 사람의 마음이 세상에 떳떳하지 못한 것일지라도, 진수는 동생이 아무런 이성도 없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아닐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놓지 않았다.아무런 추궁도, 만류도 없었다. 진수는 말없이 내려섰고, 엘리베이터 문은 다시 굳게 닫히며 65층을 향해 맹렬히 올라가기 시작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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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성벽

달그락―!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례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두 사람이 마주치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공포가 온몸을 조여왔다.정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음대야를 다시 움켜쥐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두 사람 사이의 애절한 공기를 툭 끊어버렸다."원장님, 얼음수건 여기요!"정례가 침실로 쑥 들어서자, 진희는 바르르 떨리는 눈빛을 거두며 미래의 손에서 제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의료 가방을 열어 수액 라인을 정리하며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바로 그때, 현관 쪽에서 아이들의 투덜거림과 함께 성웅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아, 진짜! 비 때문에 야구 취소된 거 너무해!""어쩔 수 없잖아, 진원아. 다음에 또 가면 되지."정례의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쿵쾅거렸다. 그녀는 급하게 침실 밖으로 걸어 나와 거실로 향했다. 성웅과 아이들이 마침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참이었다.정례는 핏기가 가신 얼굴을 억지로 감추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냈다."아이고, 사장님! 벌써 들어오셨네요……! 저기, 사모님이 갑자기 몸살이 심하게 나서 열이 펄펄 끓길래, 제가 다급하게 약국 찾으러 나갔거든요? 근데 아파트 로비에서 마침 우리 유 원장님을 우연히 뵙지 뭐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 다급한 마음에 원장님 붙잡고 집에 좀 와달라고 사정사정했어요! 주말 저녁이라 문 연 병원이랑 약국이 없을 것 같아서요."진희가 먼저 오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정사정해서 불러들인 것이라고. 정례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거짓말로 다급하게 현장을 수습하려 애썼다.성웅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구두를 벗은 성웅은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 침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턱을 넘어선 성웅의 시선 끝에, 낯선 풍경이 박혔다. 제 아내가 누워 있는 바로 그 침실, 그 사적인 공간에 다른 남자가 서서 주사를 놓고 있었다.아내의 침실에 외간 남자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한 불쾌감을 자극했지만, 성웅은 사회적인 가면을 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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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결투

수액이 잘 들어가자, 정례의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하루빨리 진희를 이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정례는 슬며시 다가와 안절부절못하며 눈짓을 보냈다."원장님, 주사 다 놓으셨으면 이제 그만 가보셔요. 이래저래 고생이 많으시네요……."하지만 그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웅이 불쑥 나서며 가로막았다."아, 이모님. 잠깐만요."성웅은 서늘하고도 차분한 눈빛으로 진희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유 원장님, 이 시간에 우리 미래 때문에 발걸음 하셨는데, 차 한잔 정도는 나누고 가시죠."단순한 예우가 아니었다. 아내를 바라보던 진희의 눈빛에서 스치듯 지나간 그 묘한 온기가, 성웅의 날카로운 직감에 걸렸던 것이다.진희는 순간 멈칫했으나, 이내 평정을 가장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러죠."성웅이 거실 소파로 자리를 권하자, 정례는 피가 바짝 마르는 심정으로 주방으로 뛰어갔다.'아이고, 미치겠네! 저 양반이 왜 저러는 거야……!'정례는 손을 덜덜 떨며 얼음을 꺼내 허겁지겁 시원한 녹차를 타서 거실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차…… 시원한 녹차예요. 드세요, 원장님."성웅은 잔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부드럽지만 속을 파고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우리 아내 아프다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평소에도 미래가 원장님 병원 다니면서 도움 많이 받는 것 같던데, 이렇게 사석에서까지 신세를 지네요."말로는 감사를 표하고 있었지만, 성공한 50대 사업가 특유의 관록 있는 눈매는 진희의 얼굴을 낱낱이 훑고 있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숨기고 있는지 꿰뚫어 보려는, 무서울 만큼 집요한 시선이었다.마주 앉은 진희의 입가에 옅고 서늘한 미소가 스쳤다.차를 마시고 가라는 그 짧은 권유는, 겉보기엔 호의적인 예우였으나 진희에게는 분명한 선전포고로 다가왔다. 내 울타리 안에 함부로 발을 들인 남자가 누구인지 똑똑히 확인해 주마, 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다.하지만 진희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속으로 서늘한 흥미를 느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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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주사 자국

해열제를 삼키고 수액을 맞은 덕분에, 펄펄 끓던 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미래는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며 눈을 떴다.팔 안쪽에 남아 있는 주사 바늘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아…….'몽롱한 열병 속에서 제 손을 꽉 잡고 이마를 쓸어내리던 그 손길은, 꿈이 아니었다. 정말로 진희가 이곳에 왔던 것이다. 이 차가운 성벽 같은 펜트하우스 안까지 찾아와, 앓고 있는 자신을 돌봐주었던 거였다.미래는 팔에 붙어 있던 반창고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침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거실의 커다란 소파 쪽에서 영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웅과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성웅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시선을 TV 화면에 고정한 채로 무심하게 툭 던졌다."미래야, 어떠니? 좀 괜찮니?"말뿐인 안부였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 순간, 아이들이 엄마의 기척을 알아채고 와르르 달려왔다."엄마! 많이 아팠어?"진원이 쪼르르 달려와 미래의 품에 왈칵 안겼다. 그러고는 익숙하다는 듯 작은 손을 미래의 이마에 척 얹었다."아빠! 엄마 머리 이제 안 뜨거워! 다 나았나 봐!"미래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허리를 숙여 겨우 목소리를 냈다."응, 진원아. 엄마 이제 괜찮아."그리고 소파 쪽을 향해 덧붙였다."네…… 훨씬 좀 낫네요."그때, 주방 쪽에서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정례가 부랴부랴 다가왔다. 성웅을 의식한 듯, 정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아이고, 사모님! 아까 열이 펄펄 끓어서 제가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몰라요! 다행히 아파트 로비에서 우리 유 원장님을 우연히 만나 가지고, 제가 사정사정해서 부탁드렸더니 이렇게 직접 오셔서 주사까지 놔주고 가셨지 뭐예요."성웅의 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꽂힌 채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정례는 그 굳은 등이 신경 쓰여, 진희가 '자신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온 것'임을 자꾸만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미래의 심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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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퍼즐 조각

성웅이 나간 뒤 조용해진 방 안, 그 정적을 깨듯 미래의 핸드폰 화면이 짧게 빛났다. 조심스럽게 울린 알림창에는 진희가 보낸 문장이 떠 있었다.[몸은 좀 어때요? 열은 내렸어요? 같이 있고 싶은데…… 비겁하게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네요.]그 짧은 문장들 속에는 진희가 꾹꾹 눌러 담은 애타는 마음과, 그 어떤 행동도 쉽게 취할 수 없는 현실의 무력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진희 역시 자신처럼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는 걸 알기에, 미래의 가슴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소리 내어 울면 거실에 있는 성웅이나 아이들에게 들릴까 봐, 미래는 헐떡이는 숨을 삼키며 핸드폰을 꼭 쥐고 욕실로 뛰어들었다.욕실 문을 잠그자마자, 온몸이 덜덜 떨렸다.샤워기를 틀자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가 온몸을 적셨지만, 밀려오는 서글픔과 시린 통증은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 품에 안겨 있었는데…… 오늘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거구나.'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사랑이었기에 끝내는 것이 맞다고 되뇌었지만,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내가 정말 이 사람과 헤어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진희 없는 세상에서 숨을 쉬고,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지금 당장 이 집을 뛰쳐나가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지배했다. 비를 맞아서가 아니라, 보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은 그리움 때문에, 열이 다시 펄펄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뜨거운 물줄기 속에서 미래는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이름조차 마음대로 부를 수 없는 사람을 향해 찢어지는 마음을 삼키며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같은 시각, 대치동 골드스위스 수영장에서는 선수반 아이들의 수영 심사가 한창이었다. 관중석 한쪽에는 6학년 아이들의 심사를 지켜보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대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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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추적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쥔 채, 수진의 온몸으로는 식은땀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월요일 아침이 밝았지만, 미래의 마음에는 여전히 서늘하고 무거운 기류가 가라앉아 있었다. 몸의 열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가슴속에 깊이 패인 열병은 오히려 더 걷잡을 수 없이 곪아들고 있었다.식탁 위에는 팽팽한 침묵이 감돌았다. 성웅은 수저를 들며 미래를 힐끗 바라보았다. 몸은 다 나았다고 하지만, 어딘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컨디션이 말이 아니라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하지만 성웅은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수저를 드는 척, 국을 뜨는 척하면서 미래의 얼굴을 낱낱이 읽고 있었다. 그날 밤 품 안에서 느꼈던 그 낯선 온도. 아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면, 반드시 표정 어딘가에 균열이 날 것이었다.성웅이 무심히 국을 한 술 뜨며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내일 피부과 예약이던데."성웅은 국을 뜨던 수저를 멈추고, 미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그 유 원장한테."미래의 젓가락 끝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네.""그날 고마웠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네. 주말에 일부러 집까지 와줬잖아."성웅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하지만 그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미래는 시선을 밥그릇에 떨군 채, 겨우 대답했다."……저도 같이 예약되어 있어요.""그래? 언제 했어?"짧은 질문이었다. 미래의 목이 바짝 말랐다."……지난번에, 화상 치료 받으러 갔을 때요.""그래."성웅은 그 이상 묻지 않고 다시 국을 떴다. 묻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그때, 식탁 분위기를 깨며 서윤이 반짝이는 눈으로 성웅을 보며 졸랐다."아빠! 나도 제주도 요트 타야 하잖아. 언제 가?"성웅은 딸의 투정에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그래, 아빠가 지금 일정 조율하고 있어. 내일까지 확실하게 알려줄게. 근데 우리 서윤이, 미국 갈 준비는 차근차근 잘하고 있어? 예방접종도 해야해."서윤이 콧잔등을 찡긋하며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하고 있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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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포착

다음 날 아침, 무겁고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은 식탁 위. 성웅이 무심하게 툭 던졌다."오늘 예약 10시였지? 피부과에 영양 주사도 따로 있잖아. 그것도 좀 맞아."미래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말이 없다는 것은 곧 알았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얹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의 표현이기도 했다.성웅은 곧바로 전화를 들어 김 상무에게 간단한 업무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이내 외출 준비를 마친 미래를 재촉해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피부과 VIP 진료실 앞. 성웅은 자연스럽게 미래의 어깨를 감싸듯 이끌며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그곳은 다름 아닌, 유진희의 진료실이었다.미래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멎었다. 성웅과 함께 저 문 안으로 들어가 진희와 마주한다는 것. 그것은 지옥 불길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아 머뭇거렸지만, 어깨를 감싼 성웅의 손에 은근히 힘이 실렸다. 미래는 결국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문 안으로 발을 디뎌야 했다.진료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역류하듯 걷잡을 수 없는 기억들을 미래의 머릿속으로 쏟아부었다.이 하얗고 정제된 공간.처음 이곳에 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진희에게 무릎 소독을 받았던 그 아찔했던 순간.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던 그날, 진료실 커튼 안쪽에서 숨소리마저 죽이며 두근거렸던 기억.진희가 부드럽게 눈을 맞추며 '모범 환자'라고 장난스럽게 건네던, 그 다정한 목소리.그리고 그보다 훨씬 앞서,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의 향기와 숨결만으로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아채고 벼락을 맞은 듯 아찔했던, 그 첫 만남까지.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머릿속을 스치는 모든 장면들이 심장을 바늘로 찌르듯 파고들었다.이토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깃든 공간에서, 이제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그 남자의 아내로 마주 앉아야 한다니. 미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숨을 겨우 삼키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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