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Chapter 191 - Chapter 200

211 Chapters

192. 사냥꾼

성웅은 잠시 숨을 고르며 시술실 안으로 들어와, 차가운 베드 위에 몸을 눕혔다.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진희의 손이 성웅의 피부 위를 스쳤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를 채우고 있는 공기는 시술실의 건조함과는 전혀 달랐다. 성웅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진료실에서 목격했던, 미래와 진희 사이의 그 숨 막히는 눈빛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설마…… 내 아내가, 이 남자와?'그렇게 되뇌어 보았지만, 성웅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진희가 조용히 레이저 기기를 조작하며 입을 열었다."조금 따끔할 수 있습니다. 힘 빼세요, 박 대표님."그 다정하면서도 묘하게 서늘한 목소리를 들으며, 성웅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성웅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의심을 터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위험한 줄타기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눈을 감은 그의 턱 끝이 단단하게 굳었다. 사냥감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서늘하고 예리한 기운이 베드 위를 무겁게 내리눌렀다.진희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숨기려 애쓰는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해 늘 품고 있던 그 뜨겁고 절박한 감정을, 진료실에서부터 이 시술실까지 성웅 앞에서도 그대로 품은 채였다. 의사의 가운 아래, 미래를 향한 마음만큼은 조금도 감추려 들지 않는 그 대담함이, 레이저 팁의 미세한 온도에 실려 성웅의 피부를 정면으로 찔러댔다.의심을 품고 상대를 도려내려는 남자와, 숨길 생각조차 없이 제 감정을 그대로 내보이는 남자. 두 사람의 엇갈린 시선이 시술실 안의 공기를 무겁게 조여들었다.시술을 먼저 마친 성웅은 가볍게 옷매무새를 다듬고, 미래가 주사를 맞고 있는 베드 쪽으로 다가갔다.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지친 기색으로 누워 있는 미래를 잠시 내려다보던 성웅은, 아무 말도 얹지 않고 그대로 시술실을 빠져나왔다. 병원 로비를 나선 그는 대기하고 있던 박 기사의 차에 올라 곧장 회사로 향했다.달리는 차 안에서, 성웅은 미래에게 짧은 문자를 남겼다.[나 시술 끝나서 먼저 가.]주사실 베드에 누워 있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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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안아줘요.

미래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떨리는 입술이 겨우 열렸다."진희 씨, 미안해요……."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진희는 더 이상 미래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슬픈 자책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고 깊게 덮었다.오랫동안 목말라했던 사막 끝에서 비를 만난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그리움을 토해내듯 입술을 얽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도, 서로를 놓을 수 없는 입맞춤이었다.진희의 손끝이 떨리며 미래의 옷 단추를 하나씩 풀어 내렸다. 거침없지만 한없이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미래를 침대 위에 부드럽게 눕힌 진희는, 자신의 셔츠 단추를 마저 풀어내며 그 위로 몸을 겹쳤다. 눈물로 젖은 미래의 얼굴 위로, 진희의 입술이 눈꺼풀과 콧등, 그리고 다시 입술 위로 애틋하게 내려앉았다.진희의 입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미래의 가슴에 닿자, 미래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숨을 참지 못했다."아…… 아……."그런데 그 순간, 미래가 두 손으로 진희의 어깨를 밀어냈다. 눈물로 젖은 눈동자가 처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진희 씨, 안 돼요……"진희는 그대로 멈췄다.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곧바로 몸을 물리고, 흐트러진 이불을 끌어당겨 미래의 몸을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 그리고 떨고 있는 미래를, 이불째로 꼭 끌어안았다."괜찮아요."낮고 다정한 목소리였다."안 해도 돼요. 미안해할 것도 없어요. 그냥…… 이렇게만 있어요."그 말에, 미래는 진희의 품에 얼굴을 묻고 무너지듯 울음을 터뜨렸다.진희를 향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이 사람과 전부를 나누고 싶다는 갈증도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자꾸만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남편의 얼굴이었다. 남편의 침대에서, 아내라는 이름으로 속절없이 이어져 온 그 비참한 일상. 그 모든 굴레를 몸에 두른 채 진희를 마주한다는 것이, 미래에게는 살을 에는 듯한 죄로 다가왔다.진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들썩이는 미래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그녀의 울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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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주인 없는 집

어느새 훌쩍 흘러간 시간이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진희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며,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미래를 향해 다정한 눈빛을 건넸다."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네요. 병원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진희는 미래의 뺨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우리 아가씨, 여기서 조금만 더 편히 쉬다가 가요."그 다정한 말에는 단순한 애칭 이상의 뜻이 담겨 있었다. 미래가 사는 집은 이곳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겠지만, 그곳은 남편의 서늘한 그늘과 숨 막히는 압박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적어도 이 작은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미래가 아무 걱정 없이 숨을 고르다 가기를 바라는 진희의 마음이었다.현관 쪽으로 가려던 진희가, 문득 돌아보며 물었다."아, 뭐 좀 먹어야죠. 가면서 죽 시켜놓을게요. 꼭 다 먹어요."그리고 장난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리고 내 거 중에 몰래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다 봐도 돼요."진희의 농담에, 미래의 입꼬리에 얕고 예쁜 미소가 번졌다. 진희 역시 그 미소를 놓치지 않고 생긋 웃어 보였다. 가슴 시린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온기만큼은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진희가 현관문을 나서고, 홀로 남겨진 집 안에 완벽한 고요가 찾아들었다.미래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거실 한쪽에 놓인 진희의 오디오 전원을 켰다. 버튼이 눌리자마자 공간을 부드럽게 적시며 흘러나온 것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이었다.두 사람이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첫 키스를 나누었던 그날, 그 밤을 채웠던 바로 그 음악.이 집에 홀로 남아, 진희 역시 얼마나 이 음악을 들으며 그리움과 혼란을 달래왔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진희의 고독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미래의 가슴 한구석이 뻐근할 만큼 아려왔다.창가로 걸어간 미래는, 양재천의 푸르른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 귓가를 적시는 선율에 몸을 맡겼다.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대치동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부인이라는 이름표가 자신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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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족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미래와 윤지맘은 나란히 그 안으로 몸을 실었다.좁은 공간 안에서 윤지맘의 머릿속은 온통 방금 전 목격한 광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말 어느 집에서 나온 거지? 설마 평소에 빛도 안 들어오고, 누가 사는 기척조차 없던 그 마지막 집이야?'여자의 예리한 촉으로 감지된 분위기는 너무나 미심쩍었다. 턱 끝까지 질문이 차올라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윤지맘은 간신히 그 궁금증을 꾹 짓누르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로비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평소의 미래였다면 대치동 엄마들의 매서운 눈초리나 이런 우연한 마주침 하나에도 엄청나게 신경을 곤두세웠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미래는 달랐다. 머릿속이 온통 진희의 생각으로 가득 찬 그녀에게, 이제 세상의 시선 같은 건 두렵지 않았다. 세상의 비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오직 하나, 진희를 다시는 못 보게 되는 것뿐이었다.한편, 병원으로 돌아간 진희 역시 오후 진료 내내 미래의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언제나 그랬다. 만나지 못해 그리울 때보다, 오히려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돌아선 직후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온전히 제 품에 안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그 걷잡을 수 없는 갈증이, 진희의 가슴을 짓눌렀다.그 시각, 미래는 대치동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현관에 서자마자 정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가와 물었다."사모님, 점심 아직 안 드셨죠? 뭐 좀 차려드릴까요?""아니요, 이모. 괜찮아요. 밖에서 간단하게 먹고 들어오는 길이에요."미래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정례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정례의 속은 걱정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아이고, 사모님 저러다 정말 사장님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러시나…….'남모를 불안을 삼키며 정례가 물러간 뒤, 미래는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리며 친정엄마의 이름이 떠올랐다.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날카롭고 다그치는 목소리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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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의심

잠시 수화기 너머로, 숨이 턱 막힌 듯한 엄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속물적인 본능이 고스란히 담긴 다그침이 튀어나왔다."야! 정신 차려! 그럼 그딴 놈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박 서방보다 돈이라도 더 많아? 뭐 하는 자식인데 그래!""엄마, 나 그 사람에 대해서 엄마한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엄마가 속물처럼 함부로 무시할 그런 사람 아니고,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야. 엄마가 입에 달고 사는 먹고살 걱정 같은 거 안 시키는 사람이니까, 그만 캐묻고 궁금해하지 마.""뭐? 이것이 진짜 눈이 돌았나. 대답 안 해? 그 남자가 누구냐고!"더 이상의 변명도, 해명도 필요 없었다. 미래는 앙다문 입술로 그대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냉정하게 전화를 끊은 미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듯, 휴대폰을 침대 매트리스 위에 툭 떨어뜨렸다.평생을 순종과 인내로 꾹꾹 눌러 담기만 하며 살았던 그녀였다. 독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성정의 미래가, 수십 년간 가슴 깊은 곳에 묵혀두었던 서러운 감정들을 생애 처음으로 전부 밖으로 쏟아낸 참이었다.에너지가 바닥난 몸이 격한 호흡을 따라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결국 미래는 다리가 풀린 사람처럼 침대 머리맡에 스르륵 주저앉았다.떨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씁쓸함과 지독한 허탈감이 밀려왔지만, 그 속에서도 비로소 족쇄를 조금이나마 깨부쉈다는 묘한 무게감이 온몸을 무겁게 짓눌렀다.삐비빅, 현관문이 열리며 서윤이 학교 가방을 어깨에 툭 메고 들어왔다."엄마, 나 오늘 유학생 예방접종 하러 가야 하는데…… 혼자 다녀올게. 지윤이도 맞아야 한다고 해서 같이 가서 접종하고, 저녁도 먹고 들어올 거야. 둘이 서점도 들르기로 했거든."침대 머리맡에 앉아 겨우 마음을 추스르던 미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녀와. 늦지 않게 조심하고."저녁 무렵,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온 성웅과 서윤이 마침 로비에서 마주쳐 함께 엘리베이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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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의심에서 확신으로

깊은 밤이 내려앉은 안방, 공기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폭풍 전야처럼 팽팽하게 얼어붙어 있었다.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친 채 방으로 들어서는 미래의 뒷모습을, 성웅의 시선이 매섭게 좇았다. 미래가 침대에 들어서자마자, 성웅이 벌떡 몸을 일으켜 거칠게 미래를 덮쳤다."아……!"성웅은 미래의 입술을 거칠게 덮으며, 로브의 끈을 단숨에 풀어 내렸다."성웅 씨, 오늘은…… 좀 쉬고 싶어요……."미래는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두 손을 들어 성웅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성웅에게 그 애원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미래의 두 팔을 낚아채 머리 위로 꾹 짓눌렀다.손목을 짓누르는 힘에, 미래의 온몸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18년을 함께 산 남편의 손이, 처음으로 낯선 사람의 손처럼 무섭게 느껴졌다."성웅 씨,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제발요!"미래가 온몸을 비틀며 발버둥 쳤다. 그것은 단순한 거부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품은 몸으로, 이 남자의 손길을 더 이상 단 일 초도 견딜 수 없다는 생존의 발악이었다.그 순간, 성웅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미래의 눈이었다. 공포와 거부로 가득 찬,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해 본 적 없는 그 눈빛이 성웅을 멈춰 세웠다.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을 밀어낸 적 없던 아내가, 지금 자신을 짐승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성웅은 미래의 손목을 놓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침대 구석으로 밀려난 미래는 흐트러진 가운을 가까스로 끌어모아 몸을 가렸다.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미래는 더 이상 숨길 수도, 숨겨서도 안 된다는 직감에 마침내 떨리는 고개를 들어 성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목에 걸려 있던 가시가, 마침내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왔다."저…… 성웅 씨 강아지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에요.""뭐?""이렇게 성웅 씨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무조건 맞춰줘야 하는 의무 같은 거, 저한테 없어요!"성웅이 기가 막히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며 차갑게 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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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한 마디만 더 해

성웅의 입에서 유진희라는 세 글자가 튀어나오는 순간, 미래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정곡을 찔린 충격과 공포에, 미래는 턱을 파르르 떨며 얼어붙었다."아…… 아니에요. 그런 거……."어설프게 말을 더듬으며 부인하는 미래의 모습은, 오히려 성웅의 확신에 불을 지필 뿐이었다. 성웅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미래를 쏘아보며 코웃음을 쳤다."아니야? 그럼 둘이 진료실에서 주고받던 그 애절하고 미쳐 돌아가는 눈빛은 뭔데?"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미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자신의 파멸이나 안위보다도, 진희에게 이 불똥이 튀게 할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먼저 솟구쳤다. 미래는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오히려 더 강하게 부인했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요? "성웅 씨, 이 정도밖에 안 돼요?"성웅은 그 거센 역공에 기가 막힌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어, 이 정도야. 그럼 너네는 뭔데? 아니라고? 아닌데 왜 한 놈은 아주 눈이 뒤집혀서 훔쳐 가려는 눈빛이고, 또 한 사람은 당장이라도 못 가서 안달 나 죽으려고 해? 어디 감히 내 눈앞에서 그런 눈빛을 주고받아!"성웅의 벼락같은 고함에 미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각오로 눈에 힘을 주었다."절대 아니에요! 성웅 씨, 마음대로 생각해요. 더 이상 할 말 없어요!"미래는 더 이상 성웅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가는 진실을 들킬 것만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쾅, 하고 욕실 문이 닫혔다. 미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진희에게 불똥이 튀지 않게 악을 쓰며 버텨냈지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공포가 온몸을 조여오고 있었다.성웅은 침대 헤드에 놓여 있던 베개를 거칠게 낚아채더니,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박차고 나가 서재로 향했다.두 사람 사이에 놓인 의심의 골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향해 거칠게 치닫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5시. 성웅은 어젯밤의 분노가 거짓말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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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너희들...잤지?

정오가 다 되어 갈 무렵,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던 미래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찍힌 이름은 박 기사였다."사모님, 10분 후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십시오. 모시고 이동하겠습니다."거절도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미래를 태운 차가 멈춰 선 곳은, 삼성동 파크 하얏트 호텔의 로비였다.이미 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지배인이 조용히 다가와 미래를 맞이했다."안미래 사모님 맞으시지요. 박 대표님께서 객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시겠습니다."지배인의 안내로 올라간 고층의 객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미래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초인종을 눌렀다.잠시 후 문이 열렸다. 그곳에, 차가운 기운을 두른 성웅이 서 있었다.말없이 안으로 들어선 미래는 거실 창가의 소파에 성웅과 마주 앉았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성웅은 턱을 괸 채 미래를 응시하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언제부터야."미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라앉히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성웅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정말 아니에요."성웅의 입꼬리가 비틀렸다."아니라고? 거짓말 한 번만 더 해 봐. 그럼 그 자식 끌고 와서 내 눈앞에 무릎 꿇릴 테니까. 다시 묻는다. 언제부터야."피할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미래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최대한 단호하게 맞받아쳤다."언제부터 그런 사이, 아니에요. 병원 말고 양재천 산책하다가 우연히 몇 번 마주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성웅 씨가 상상하는 그런 만남은 없었어요. 양재천 주변에 살고 그 피부과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오가며 마주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성웅 씨가 왜 이런 상상까지 하게 된 건지 그게 더 궁금해요."그 발뺌에, 성웅은 기가 막힌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왜? 하하…… 지금 왜라고 했니? 너도 나만큼 좋아했잖아. 그런데 언제부턴가 계속 몸을 빼고 피하고…….""그건…… 요즘 서윤이 시험 기간이라 신경 쓸 게 많아서…….""그래, 그것도 있었지! 하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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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앞담화

어제 진원 엄마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일로 한껏 흥분해 있던 윤지맘은, 오전 일정을 마치고 동네 크라상 베이커리에 들러 빵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카페테리아 쪽에서, 아이들 수영장 친구 엄마들인 민서맘과 유진맘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어머, 윤지맘! 여기서 만나네. 빵 사러 나왔어?""네, 언니들도요? 반가워요!"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들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대화는 금세 요즘 한창인 수영 이야기로 흘러갔다."근데 민서맘, 민서 이번에 강남구 대표로 수영 대회 나가는 거 맞죠?""아휴, 말도 마세요. 민서는 내년에 아예 미국 얼바인으로 유학 가기로 해서, 떠나기 전까지 끝까지 좀 더 시켜보려고요. 수영도 대치동이 엄청 빡쎄잖아요. 그래서 우리 민서 요즘 매일 떡실신이에요.""아, 맞아요. 수영도, 테니스도, 축구도.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도 대치동이 잘 가르쳐요.""왜, 꼬맹이들 인라인도 줄넘기도 그렇다잖아.""맞아요. 참, 우리 윤지는 이제 6학년 2학기도 앞두고 있고 하니, 수영은 이번을 끝으로 그만두게 하려고요."유진맘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민서맘에게 칭찬을 건넸다."민서는 진짜 미스코리아 출신 엄마 닮아서 기럭지부터가 남달라. 수영 폼이 어쩜 그렇게 예쁜지 몰라.""호호, 감사합니다."화기애애하게 웃음이 오가던 그 순간, 윤지맘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훅 치고 들어왔다."참! 나 어제 진짜 이상한 거 봤잖아요. 진원 엄마를 우리 집 앞 엘리베이터에서 봤다니까요?"민서맘과 유진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시큰둥하게 받았다."그래요? 진원이네야 뭐, 친한 지인들이랑 오갈 수도 있죠."하지만 윤지맘은 혼자서 눈에 불을 켜고, 목소리를 낮추며 흥분했다."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미스터리라니까요? 우리 집 쪽이 꺾여서 그 엘리베이터 라인엔 세대수가 몇 개 안 되는데, 그중에서도 맨 안쪽 집은 진짜 누가 사는 기척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집이에요! 그 집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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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서윤이의 고백

호텔 로비를 빠져나온 미래의 눈앞에는, 기가 막히게도 박 기사의 차가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성웅이 미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박 기사를 붙여둔 것이 분명했다.미래는 차 문을 열어주는 박 기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박 기사님, 저 그냥 택시 타고 갈게요. 그만 들어가 보세요."하지만 박 기사는 난처한 표정 속에서도 칼같이 선을 그었다."아닙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안전하게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타시지요."여기서 더 거부하다가는 박 기사까지 성웅의 눈총을 받게 될 터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미래는, 결국 마지못해 뒷좌석에 올라탔다.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빌딩들을 바라보는 내내, 미래의 머릿속은 온통 진희 생각으로 가득 찼다. 불안과 공포가 짓누르는 그 끔찍한 순간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가슴 한켠에서는 진희의 얼굴과 그 따스한 목소리가 간절하게 떠올랐다.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진희에게서 온 문자였다.[점심 먹었어요? 맛있게 먹고, 내일 나 오프니까 뭐 하고 싶은지 생각해 놔요.]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이 살벌한 파국을 알 리 없는 진희의 다정한 문자에, 미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간신히 휴대폰을 쥐었다.바로 그때, 이번엔 친정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미래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다급하고 앙칼진 목소리가 쏟아졌다."미래야! 엄마 내일 서울 가려고 비행기표 예매했다. 내일 오전 10시 도착이니까, 공항에서 바로 너희 집으로 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엄마…… 그이가…… 다 알았어."엄마의 숨소리가 일순간 뚝 멎었다. 곧이어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뭐? 얘가, 얘가 미쳤어?! 진짜 들켰다고? 이걸 어쩐담……! 아이고, 이게 웬일이야! 딱 잡아떼지 그랬어!""아니라고 하긴 했어…….""뭐? 하긴 했어? 하긴 했다는 건 또 뭐야! 아니라고 하려면 완전히 싹 잡아떼야지, 그걸 만만하게 보여줬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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