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Chapter 31 - Chapter 40

210 Chapters

31. 질투

세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날카롭게 교차했다.진희가 먼저 멈칫하더니, 이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 출장 가시는 길인가 봅니다.”“아, 유 원장님. 여기 사셨군요.”성웅이 여유롭게 악수를 청했다. 진희와 미래는 오전에 함께 비를 맞고 웃었던 일이 거짓말인 것처럼 어색하게 목례만 나눴다.“저는 다른 동에 살아요. 여기는 형네 집이에요.”망고는 미래를 발견하자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그녀의 다리로 파고들었다.“어…… 망고야.”미래의 목소리가 저절로 다정해졌다. 망고는 앞발까지 들며 몸을 비볐다.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제 사람을 만난 듯한 반가움이었다.성웅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이름이 망고야?”“네.”“잘 어울리네.”성웅은 털 날리는 동물을 싫어했다. 그런데도 허리를 굽혀 망고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망고야, 반가워.”손은 개의 머리에 있었지만 시선은 아내에게 가 있었다.미래가 저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구나.별것 아닌 광경이었다. 그런데 가슴 한구석에 아주 작고 불쾌한 가시가 돋았다. 성웅은 그 감정의 이름을 굳이 찾지 않았다. 다만 망고가 다시 미래의 손에 머리를 비비자, 이유 없이 아내의 허리에 손을 얹고 싶어졌다.진희가 침묵을 깨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형네 강아지인데, 다리가 불편한 것 같아서 잠시 맡아 24시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길입니다.”말을 내뱉고 난 진희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내가 왜 이걸 설명하고 있지?이 남자에게. 안미래의 남편에게. 아무도 묻지 않았고 추궁하지 않았는데, 왜 자꾸 무언가를 해명하고 허락을 구하듯 말이 길어지는 걸까.알고 있었다. 왜 이러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에, 진희는 제 꼴이 사납다고 느꼈다.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 진희는 망고를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차를 출발시키려던 찰나, 그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사이드미러로 향했다.저 멀리 수행 기사가 박성웅의 트렁크에 가방을 싣고 있었다. 미래는 남편의 차 옆에 단정하게 서서 배웅을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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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미래 어때요?

다음 날 오후, 월드베스트스킨 피부과.진희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사이드미러가 떠올랐다. 미래의 허리를 감싸던 손, 귀 뒤로 머리칼을 넘겨주던 손끝.“원장님, 줄기세포 리프팅 예약 환자분 들어가십니다.”문이 열리고 제시카가 들어왔다.“안녕하세요, 원장님. 미래는 라운지에서 기다린대요.”미래가 이 건물 안에 있다는 말 한마디에 진희의 심장이 제멋대로 한 번 크게 뛰었다.“대표원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편하게 누우세요.”제시카는 시술 베드에 누워 눈을 감았다. 진희는 장갑을 끼고 차트대로 시술을 시작했다. 진료실에는 기계음만 낮게 울렸다.한참 뒤, 제시카가 눈을 감은 채 불쑥 물었다.“원장님, 미래 어때요?”진희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네?”“미래요.”진희는 마른침을 삼켰다. 의사의 목소리를 찾는 데 몇 초가 걸렸다.“안미래 님 피부는…… 정말 타고나셨죠. 결도 곱고 탄력도 좋으시고. 관리도 워낙 꼼꼼하게 하시고요.”제시카가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그렇죠? 뉴욕 그 건조한 겨울에도 혼자 멀쩡했어요. 우리는 다 각질 일어나서 난리였는데.”“그러셨군요.”진희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크림을 대충 바르는 미래를 떠올리자 이상하게 귀여웠다.“그리고 걔가 또 웃으면요—”“제시카 님.”진희가 기계를 잠시 내려놓고 부드럽게 말을 끊었다.“자꾸 말씀하시면 얼굴 근육이 움직여서 예쁘게 안 됩니다.”농담처럼 가벼운 목소리였다.제시카가 눈을 감은 채 입꼬리를 올렸다.“네네. 모범 환자 할게요.”진희의 손끝이 멈췄다.모범 환자.그 말은 진료실 커튼 속에서, 유리문 앞에서, 양재천의 비 오기 전 아침에, 그와 미래만 주고받던 말이었다.그런데 이 여자가 알고 있었다.아…….미래가 이 친구에게 내 얘기를 했구나.그것도 이런 작은 말 하나까지.진희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기계를 들었다. 하지만 가슴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친구에게 털어놓을 만큼.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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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누구 좋아하고 있어

목요일 저녁, 퇴근길이었다.유진희는 하이팰리스 로비로 들어서다 발을 멈췄다.자신의 동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야 깨달았다. 46층 버튼을 누르려던 손끝이 허공에 멎었다. 형의 집이 있는 동이 맞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말 형을 보러 이곳에 온 것인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사흘 전이었다. 지하 주차장, 사이드미러에 담겼던 잔상이 여전히 머릿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박성웅의 손이 미래의 허리를 감싸 안던 모습. 귀 옆으로 흘러내린 잔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손길. 그리고 찰나의 순간 굳어지던 미래의 얼굴.그날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유진희는 생각했다.인정하기로 하자고.그러나 막상 인정하고 나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료실에서, 점심을 먹다가, 혹은 잠들기 직전의 어둠 속에서 그 장면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멱살을 잡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유부녀였고, 자신은 그 남편의 다정한 손길을 제 눈으로 목격했으니까.결국 인정한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무력한 선언과 같았다.그래서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기가 싫었다.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띵―.46층. 형수 김수연이 현관문을 열었다.“어머, 삼촌 왔어?”형수는 유진희보다 서너 살 위였다. 대학 선배이기도 했다. 덕분에 이 집에서 유진희는 늘 형의 동생이기 전에 편안한 후배가 되곤 했다.“규리 있어요?”“규리? 없는데.”유진희가 멈칫했다.“학교 끝나고 숲체험 갔다가 수학 과외하고, 지금은 인라인 배우러 갔어. 왜, 규리 보러 온 거야?”“겸사겸사요.”형수가 유진희를 위아래로 넌지시 살피더니 몸을 비켜섰다.“들어와.”거실 소파에는 형 유진수가 노트북을 켠 채 앉아 있었다.“왔냐.”“형.”“규리 보러 왔다고?”유진수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초등학교 1학년이 얼마나 바쁜지 알아? 숲체험에 수학 과외에, 지금은 인라인이야. 이 시간까지 우리보다 훨씬 잘나가.”부엌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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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달 상자

유진수가 다시 노트북을 열어 페이지를 넘겼다. 이 집안에서 형수의 촉을 이겨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유진희는 조용히 물잔을 내려다보았다. 부인하려 했다. 하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정의 말이 가로막힌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가장 솔직한 답이었다.형수는 재촉하지 않고 고요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나직하게 물었다.“예뻐?”유진희는 대답하지 않았다.“착해?”여전히 침묵이었다.형수가 피식,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좋아하네.”그 한마디를 들으며, 유진희는 생애 처음으로 제 안을 들여다보았다.좋아한다는 단어가 이토록 무거운 감정인 줄은 미처 몰랐다.형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과일이라도 좀 먹어. 저녁 안 먹었다며.”“괜찮아요.”“앉아 있어.”이럴 때 형수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유진희는 그것을 잘 알기에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노트북을 보던 형이 넌지시 물었다.“그래서 누구냐.”“형.”“말해봐.”“없다니까요.”유진수는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무심히 읊조렸다.“있는데, 말 못 할 사람인 건 아니지?”유진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단 한 글자도 없었기 때문에.형수가 깎아 온 과일 접시를 들고 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동생의 굳은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더는 캐묻지 않았다. 대신 과일 포크를 건네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말 못 할 사이 아니면, 나중에 데리고 와봐. 우리가 봐줄게.”유진희는 쥐었던 포크를 다시 내려놓았다. 어떤 대답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형수 역시 말을 아꼈다.거실에는 한동안 밀도 높은 침묵이 맴돌았다. 노트북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정갈한 과일 접시, 그리고 창밖으로 천천히 저물어가는 노을.유진희는 서서히 어두워지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알면서 왜 왔어, 여기를.형수의 말이 전부 맞았다. 형의 집도, 조카 규리도 모두 얄팍한 핑계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이 동, 이 건물의 공기 근처에 머물고 싶었을 뿐이었다.이곳에서 거의 20층을 더 거슬러 올라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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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09년 1월

가장 먼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출입증이 눈에 들어왔다.빛바랜 이름표 위로 영문 이름이 선명했다.MOMA STAFF. AHN MIRAE.그 아래 적힌 직함, CURATOR ASSISTANT.당시 치열하게 준비했던 유명 작가들의 전시 초대장도 여러 장 섞여 있었다. 여백마다 영어와 한국어가 어지럽게 뒤섞인 메모가 빼곡했다. 이 거침없고 단단한 글씨체가 정말 자신의 것이 맞는지, 지독하게 낯설었다.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스물넷 혹은 스물다섯의 자신이었다. 전시 오프닝 날, 리넨 재킷을 걸치고 짧은 단발머리를 한 채 기획안을 들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아무런 걸림돌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미래는 그 사진을 아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저 사람이…… 나였구나.저렇게 환하게 웃을 줄 알던 사람이, 원래의 나였구나.언제부터 사그라들었던 걸까. 결혼하고 나서부터였을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였을까.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 일지도 몰랐다.미래는 친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었고, 묻지 않는 것이 그 집안의 유일한 예의였다. 돌 무렵 새아버지가 생겼고, 미래는 당연히 그를 친부라 믿으며 자랐다. 오랜 시간 동안.그러나 사춘기의 문턱을 넘어서며 모든 것이 기이해졌다. 새아버지의 손길이 피부에 닿는 방식이,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 끈적한 시선이.어머니는 방관했다. 대신 도망치듯 미래를 미국으로 등 떠밀었다. 유학이라는 번지르르한 이름표를 붙여서. 어쩌면 그것이 어머니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을지도 모른다.그때부터였다. 제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은.아버지를 잃었다. 친부라 믿었던 환상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던 실체도. 어머니마저 잃었다. 멀리서 간간이 안부는 들려왔지만, 새아버지의 안온한 그늘 아래 머무는 그녀는 이미 미래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뉴욕의 차가운 빌딩 숲에서 혼자 버텼다. 그리고 제법 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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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귀 뒤의 온기

유진희가 산책로 변 벤치에 홀로 앉아 있었다. 흐르는 물결을 묵묵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오후의 활기찬 인파 속에서, 유독 그 남자만이 섬처럼 고립되어 보였다.부를까, 아니면 모른 척 지나칠까.머리가 고민하는 사이 발걸음이 먼저 그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인기척을 느꼈는지 유진희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맞닿았다.“나오셨어요?”유진희가 먼저 고요하게 말을 건넸다. 놀란 기색은 없었다. 마치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미래는 말없이 그 곁에 걸터앉았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강물이 흘러갔고, 마른 바람이 뺨을 스쳤다.그러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전 막혔던 숨통이 기적처럼 트였다. 미래는 제 안에서 차오르는 이 안도감이 어쩐지 조금 두려워졌다.“표정이 안 좋으세요.”유진희가 시선은 물가에 둔 채 나직이 말했다.“그래요?”“네.”미래는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가만히 맞잡았다.“오늘 좀…… 이상한 날이네요.”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말로 바꾸어 꺼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기에. 유진희 역시 파고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곁을 지킬 뿐이었다.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유진희가 나직하게 읊조렸다.“저도요.”미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유진희는 여전히 먼 물결을 보고 있었다. 단정한 옆모습이었다. 침묵이 어울리는 사람의 얼굴.그때, 갑작스러운 강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미래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눈앞을 가렸다. 미래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기려던 찰나였다.유진희의 손길이 한 발 더 빨랐다.그의 손끝이 미래의 귀 옆을 스치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지독하게 고요한 손길이었다.유진희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0.5초가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손을 거두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거둘 수가 없었다.머릿속 어딘가에서 나흘 전의 잔상이 지독하게 겹쳐왔다. 지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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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콩나물국

미래가 거실로 나오자 정례가 부엌에서 뛰어나왔다.“어머, 사장님이 오세요? 오늘 오신다고 왜 미리 말씀을 안 해주셨어요. 큰일 났네. 지금 아이들 먹이려고 불고기밖에 없는데. 사장님 출장 갔다 오시면 꼭 김치에 콩나물국 찾으시는데.”“이모.”“예?”“어제 혹시 몰라서 콩나물 사다 놨어요. 냉장고 아래 칸에 있어요.”정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얼른 냉장고 문을 열었다.“어머나, 진짜네. 사모님이 저보다 낫네요.”“김치는요?”“김치야 항상 있죠.”정례가 앞치마를 고쳐 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얼른 끓여야겠다. 냄비 어디 있더라.”가스 불 켜지는 소리가 났다. 콩나물 씻는 소리. 도마 소리. 정례가 바빠지자 부엌이 금세 살아났다.현관문이 열렸다. 박성웅이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일본 출장 짐 그대로였다. 정례가 얼른 손을 닦으며 나왔다.“어서 오세요, 사장님. 힘드셨죠.”“네.”박성웅이 재킷을 벗으며 소파에 앉았다. 미래가 맞은편에 섰다.“수고하셨어요.”“응.”짧은 대화였다. 박성웅이 캐리어 안쪽 지퍼를 열더니 작은 쇼핑백을 꺼내 미래 쪽으로 내밀었다.반클리프 앤 아펠이었다.미래가 쇼핑백을 받아 열었다. 목걸이와 팔찌였다. 알함브라 라인. 목걸이는 다이아몬드 세팅이었고, 팔찌는 골드에 마더오브펄이 박혀 있었다. 케이스 안에 나란히 놓인 두 개. 가격이 짐작됐다.“예쁘네요. 고마워요.”미래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온했다. 놀란 것도, 특별히 감격한 것도 아니었다. 이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했다. 말 대신 물건으로.그때 정례가 콩나물 씻던 손을 닦으며 고개를 내밀었다.“어머, 사모님 이것 좀 봐요. 너무 예쁘다. 이거 저번에 사모님 생신 때 사드린 거랑 같은 라인 아니에요? 사장님이 사모님 취향을 얼마나 잘 기억하시는지. 세트로 맞추셨네요, 이렇게.”박성웅이 말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미래가 케이스를 닫았다.정례가 분위기를 띄우려는 마음이 보였다.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미래는 이 목걸이가 따뜻하다고 느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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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거울 속의 눈

귀 뒤에 머물던 성웅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목선을 지나, 어깨를 지나, 바디크림을 쥐고 있던 미래의 손등에 닿았다.성웅은 그 크림을 살며시 가져가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다.미래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성웅이 그녀의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거울 속에 두 사람이 나란히 담겼다.그런데 성웅은 미래의 몸이 아니라 눈을 보고 있었다.거울을 통해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순간 미래의 가슴이 철렁했다.언제였을까.이 남자와 이렇게 눈을 맞춘 게.성웅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기 전이었다. 그러니까 거의 십오 년 전.가장 익숙하고 편해야 할 사람인데, 어느 순간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가까운 사람이 되어버린 남편.차라리 몸을 섞는 게 쉬웠다.이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일이 미래에게는 훨씬 어려웠다.결국 미래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그 순간 성웅의 손이 로브의 어깨선에 닿았다.한쪽 어깨에서, 다시 다른 쪽 어깨에서.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로브를 아래로 흘려내렸다.부드러운 천이 팔을 타고 떨어지자 크림을 바른 미래의 뽀얀 속살이 조명 아래 드러났다. 은은한 윤기가 감도는 피부와 풍만하게 차오른 가슴, 잘록하게 이어지는 허리까지.라프레리 캐시미어 바디크림의 그윽한 향이 두 사람 사이로 은은하게 피어올랐다.성웅은 말없이 바라봤다.미래는 그 시선을 거울로 느끼고 있었다.이상했다.벗은 몸을 보여주는 게 새삼스러울 사이도 아니었다. 십칠 년을 함께 산 부부였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성웅의 눈빛 때문이었다.오랫동안 미래가 익숙해져 있던,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아니었다.아주 오래전.연애하던 시절, 미래의 작은 표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었다.성웅의 두 팔이 뒤에서 미래를 감싸 안았다.큰 손이 미래의 가슴을 가득 감싸 쥐었다. 방금 크림을 바른 피부 위로 손바닥이 부드럽게 미끄러졌다.어느새 미래의 유두가 단단하게 피어올랐다.바로 뒤에서 성웅의 호흡이 깊어지는 것이 들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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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몸이 기억하는 사랑

미래가 내려다봤다.성웅도 미래를 올려다봤다.아무도 웃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 시절의 웃음이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욕구밖에 남지 않았던 지난 몇 년의 섹스와 달랐다.눈빛이 있었고, 기억이 있었고, 서로에게 미쳐 있던 시절의 감정이 있었다.그 작은 애무 하나가 십오 년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무너뜨렸다.성웅의 입술은 더 아래로 내려갔다.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미래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고 오래도록 정성스럽게 애무했다.“아…… 성웅 씨…….”미래의 손이 화장대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반응했다. 어느 때보다 뜨겁고 흥건하게 젖어드는 감각에 미래 스스로도 당황할 정도였다.성웅은 그 반응까지 놓치지 않았다.마침내 그가 미래를 안아 들었다.미래가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성웅은 그대로 침대까지 걸어가 미래를 눕혔다.그리고 그녀의 위로 몸을 겹쳤다.삽입하는 순간에도 성웅은 미래의 눈을 보고 있었다.“어때.”낮은 숨이 입술 사이로 흘렀다.“좋아?”그 한마디가 이상하리만큼 미래를 흔들었다.너무 익숙한 말인데 낯설었다.예전에는 이런 말을 수없이 주고받았다. 좋으면 좋다고 말했고, 원하는 게 있으면 말했고, 눈을 마주친 채 웃기도 했다.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린 것들이었다.미래는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성웅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아…… 아…….”미래의 입술 사이로 참지 않은 신음이 흘렀다.성웅은 미래의 두 손을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깊숙이 끼워 깍지를 낀 뒤 단단히 잡았다.움직임이 점점 깊어졌다.미래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 힘 있게 파고들었다.몸이 기억하고 있었다.십오 년이 지나도.“아…… 성웅 씨…….”미래가 깍지 낀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너무 좋아요…….”절정이 너무 빨리 가까워졌다.하지만 미래는 그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몸을 돌려 성웅을 침대에 눕히고 그 위로 올라갔다.성웅의 눈빛이 순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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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완벽하게 돌아온 밤

신혼 때는 그랬다. 침대에서 욕실로, 욕실에서 다시 침대로. 그게 당연했던 밤들이 있었다.이 남자, 오늘 완벽하게 그때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안방 욕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통창 너머로 밤의 양재천이 내려다보였다. 어둠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의 불빛과 멀리 늘어선 도시의 야경이 유리창 위로 반짝였다.말이 필요 없었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로 세찬 물줄기가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뜨거운 물이 온몸을 적시는 가운데, 성웅의 손길이 다시 거침없이 움직였다. 물소리 사이로 미래의 가쁜 신음이 섞여 들었다. 몸이 기억하는 방식 그대로, 미래 역시 성웅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가 이끄는 거친 궤도에 완전히 몸을 맡겼다.그러다 이번에는 미래가 먼저 움직였다.성웅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던 미래가 그의 앞에 몸을 낮췄다.그것 역시 오래전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일이었다.누가 먼저 해달라고 조르거나, 싫다고 밀어내야 했던 적이 없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게 좋았고, 자신으로 인해 상대의 숨이 흐트러지는 순간이 좋았다.무엇보다 미래는 성웅의 신음 소리를 좋아했다.자신의 손길 하나에 평소 그토록 단단하고 냉정한 남자의 호흡이 무너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마흔을 넘긴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건강하고 솔직한 미래 자신의 욕망이기도 했다.따뜻한 물줄기 아래에서 미래의 애무가 이어질수록 성웅의 호흡이 급격하게 흐트러졌다.“아…… 흐…….”성웅의 두 손이 미래의 젖은 머리카락을 감싸듯 어루만졌다.그 소리였다.미래가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소리.연애하던 시절, 자신 때문에 정신없이 무너지던 박성웅의 목소리.십수 년 만에 다시 듣는 그 신음은 이상할 만큼 섹시했다.미래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번졌다.이 사람도 기억하고 있었다.자신도 기억하고 있었다.몸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아…… 미래야…… 아…….”성웅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듯 미래를 불렀다가, 이내 그녀를 일으켜 세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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