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 퇴근길이었다.유진희는 하이팰리스 로비로 들어서다 발을 멈췄다.자신의 동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야 깨달았다. 46층 버튼을 누르려던 손끝이 허공에 멎었다. 형의 집이 있는 동이 맞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말 형을 보러 이곳에 온 것인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사흘 전이었다. 지하 주차장, 사이드미러에 담겼던 잔상이 여전히 머릿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박성웅의 손이 미래의 허리를 감싸 안던 모습. 귀 옆으로 흘러내린 잔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손길. 그리고 찰나의 순간 굳어지던 미래의 얼굴.그날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유진희는 생각했다.인정하기로 하자고.그러나 막상 인정하고 나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료실에서, 점심을 먹다가, 혹은 잠들기 직전의 어둠 속에서 그 장면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멱살을 잡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유부녀였고, 자신은 그 남편의 다정한 손길을 제 눈으로 목격했으니까.결국 인정한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무력한 선언과 같았다.그래서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기가 싫었다.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띵―.46층. 형수 김수연이 현관문을 열었다.“어머, 삼촌 왔어?”형수는 유진희보다 서너 살 위였다. 대학 선배이기도 했다. 덕분에 이 집에서 유진희는 늘 형의 동생이기 전에 편안한 후배가 되곤 했다.“규리 있어요?”“규리? 없는데.”유진희가 멈칫했다.“학교 끝나고 숲체험 갔다가 수학 과외하고, 지금은 인라인 배우러 갔어. 왜, 규리 보러 온 거야?”“겸사겸사요.”형수가 유진희를 위아래로 넌지시 살피더니 몸을 비켜섰다.“들어와.”거실 소파에는 형 유진수가 노트북을 켠 채 앉아 있었다.“왔냐.”“형.”“규리 보러 왔다고?”유진수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초등학교 1학년이 얼마나 바쁜지 알아? 숲체험에 수학 과외에, 지금은 인라인이야. 이 시간까지 우리보다 훨씬 잘나가.”부엌에 있던
Last Updated : 2026-09-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