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정례가 반갑게 뛰어나왔다. 제시카는 유치원 꼬마로 돌아간 듯 정례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 준비한 용돈 봉투를 쥐여주며 투닥거리는 모습은 여전히 정겨웠고, 정례는 뉴욕으로 돌아갈 제시카를 위해 손수 담근 김치를 싸놓겠다며 주방으로 향했다.이윽고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선 제시카가 뚝 멈춰 섰다.통창 너머로 양재천이 길게 흐르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오후 햇살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야, 안미래. 이게 집이야, 갤러리야?”제시카가 감탄하며 침실과 연결된 드레스룸, 그리고 욕실 문을 차례로 열었다. 욕실 통창으로 내다보이는 양재천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미쳤다. 미래야, 우리 맨해튼 집보다 여기가 훨씬 맨해튼 같아.”미래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킹사이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제시카가 욕실 통창을 눈으로 훑으며 앙큼하게 툭 던졌다.“근데 여기, 비주얼이 장난 아니다? 그냥 샤워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분위기인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미래가 붉어진 얼굴로 베개를 휙 던졌고, 제시카는 그것을 받아내며 깔깔대고 웃었다.정례가 들여다 준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쥔 채, 두 사람은 안방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창밖의 강물처럼 아늑한 평화가 감돌 때쯤, 제시카가 낮게 입을 열었다.“미래야.”“응?”“유진희, 너 확실하게 좋아하더라.”미래는 짐짓 덤덤한 척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왜? 뭘 보고 그렇게 확신해?”“그냥, 여자의 직감이지.”“그냥이 어디 있어.”“야, 우리가 솔직히 남자 경험이 몇십 년째냐. 온갖 국적에 온갖 인종까지 다 겪어봤잖아.”제시카가 컵을 내려놓으며 미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유진희 눈빛 딱 보면 견적 나와. 그 사람, 완전 빠졌어.”미래는 대답 대신 찻잔만 만지작거렸다.“그 사람, 지금 너 때문에 밤잠 꽤나 설치고 있을걸? 백 퍼센트야.”탁 트인 통창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양재천을 바라보며, 미래는 오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제시카는 재촉하지 않고 조
Last Updated : 2026-09-0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