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는 봄이가 입던 작은 셔츠를 침대 위에 펼쳐 놓았다.804호 장롱 아래에 남아 있던 옷이었다. 목둘레가 늘어났고 소매에는 색연필 자국이 배어 있었다. 보관할 만한 기념일 옷은 아니었다. 그날 입고 벗어 놓았는데 다음 날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버릴 날짜까지 놓친 옷이었다.서연이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 서희는 그 옷 옆에 최근 학교 사진을 놓고 있었다.“와 줬네.”“언니가 불렀잖아.”서희는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서연은 침대가 아닌 옆 의자에 앉았다. 부부방 냄새는 세제를 바꿔도 같았다. 오래된 나무 장롱과 햇빛에 마른 면 이불 냄새였다.“봄이가 너를 엄마라고도 부른다며.”“집에서 가끔. 내가 시킨 적 없어.”“알아. 걔가 시킨다고 할 애니.”서희는 사진을 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처음 불렀을 때 좋았어?”서연은 언니를 보았다. 괜찮다고 해 줄 대답은 없었다.“응.”“울었고?”“봄이 없는 데서.”서희가 고개를 돌렸다. 서연이 좋지 않았다고 하면 화가 날 것 같았는데, 좋았다고 하니 견딜 수 없었다.“언니.”“잠깐만.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부른 건지 나도 모르겠어.”서희는 손을 무릎에 눌렀다. 천천히라도 손가락을 펴라는 병원의 말을 따라 했다. 손바닥을 펴는 데는 방법이 있었고, 눈앞의 동생을 덜 아프게 보는 방법은 없었다.“네가 봄이랑 지낸 시간, 없던 일이라고 안 할게. 태주랑 사랑한 것도 거짓말이라고 안 할 거야.”서연은 대답하지 못했다.“그런데 나도 내 남편이랑 딸 되찾고 싶어.”서희는 작은 셔츠를 무릎에 올렸다.“나한테는 그게 어제였거든. 아침에 물병 씻고, 빨래 널고, 출장 다녀오면 냉장고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우리 집이 그래.”서연은 언니의 손끝을 봤다.“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도 알아. 봄이한테 무슨 일 있었을까 봐, 너 없었으면 어땠을까 봐 겁도 나.”서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갈라졌다.“그런데 네가 태주랑 웃던 사진 보면 싫어. 그걸 보고 있는 내가 또 싫
Last Updated : 2026-10-2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