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 냉장고에는 세 사람의 일정표가 붙었다.월요일과 수요일 하교 뒤 돌봄교실, 금요일은 명자, 화요일은 태주가 일찍 퇴근하고 목요일은 서연이 재택근무 뒤 저녁을 맡았다. 일정이 바뀌면 빈칸에 포스트잇을 붙였다.“아빠, 이번 주 목요일도 늦어?”“현장 마감이라 8시.”“그럼 이모랑 떡볶이 먹을 거야.”“저녁으로는 안 돼.”“아빠 없는 날인데 왜 아빠가 정해.”“냉동 만두도 먹으면 돼.”서연이 끼어들자 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연 엄마가 된대.”아이는 집 안에서만 가끔 새 호칭을 썼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이모라고 했고, 어떤 날은 잠들기 전 한 번 엄마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횟수를 세지 않았다.입주 한 달 뒤, 태주와 서연은 결혼식 날짜를 정했다. 5월 마지막 토요일, 하객 50명이 들어가는 작은 예식장이었다.“너무 빠른가?”태주가 계약서를 보며 물었다.“우리 벌써 몇 년을 돌았는데.”“준비 기간은 두 달도 안 돼.”“드레스 입고 밥 먹는 데 뭘 1년씩 준비해요.”“내 정장은?”“입던 거.”“봄이가 나만 정장 입는 거 불공평하댔어.”“그러니까 새로 사지 마.”봄이는 꽃을 뿌리되 운동화를 신기로 했다. 흰 원피스도 한복도 싫다며 노란 카디건과 남색 치마를 골랐다.“꽃은 무슨 색?”“엄마가 좋아하던 주황색.”봄이가 말하자 서연은 대답 대신 꽃집 견본에 주황색 동그라미를 쳤다.초대장에는 양가 부모 이름을 넣지 않았다. 한서연과 강태주, 두 사람의 이름만 적었다. 참석하지 않는 사람의 체면을 빌리지도, 아직 아픈 사람에게 축복하는 문장을 대신 쓰게 하지도 않았다.드레스는 민아와 둘이 고르러 갔다. 태주는 봄이를 데리고 운동화를 사러 갔고, 서연은 친구 앞에서 처음으로 흰 드레스를 입었다.“생각보다 얌전한 거 고르네.”민아가 커튼 밖에서 말했다.“내가 언제 요란한 거 입었어.”“네 인생이 요란해서 드레스도 그럴 줄 알았지.”“맞을래?”서연은 웃으며 커튼을 열었다. 거울 속 흰색을 보는 순간 언니 장례식의
Last Updated : 2026-10-2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