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봄이는 유치원 가방을 등에 멘 채 현관 앞에서 태주를 세웠다.“아빠, 오늘은 늦게 열어 봐야 돼.”봄이가 가방 앞주머니를 두 손으로 가렸다. 종이 끝이 비뚤게 튀어나와 있었지만 태주는 못 본 척 무릎을 굽혔다.“몇 시부터 열 수 있는데?”“저녁 먹고. 이모도 있을 때.”서연은 봄이의 노란 물병을 건네다가 멈췄다.“이모가 꼭 있어야 해?”“이모가 테이프 잘 붙이잖아.”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서연이 웃자 봄이도 따라 웃었다. 태주는 아이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서며 오늘 하원은 자기가 한다고 다시 말했다. 어린이날 뒤 현장이 잠잠해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소담살림 사무실에는 어버이날 선물 문의가 오전 내내 쌓였다. 리본 색을 바꿔 달라는 요청, 오늘 발송하면 주말 전에 도착하느냐는 질문, 문구를 잘못 적었다는 전화가 이어졌다. 서연은 점심도 책상에서 김밥으로 때웠다.오후 3시쯤 휴대전화에 사진이 도착했다. 태주가 보낸 것이었다. 유치원 신발장 앞에 선 봄이가 품 안 가득 빨간 종이를 안고 있었다.‘숨기는 중.’서연은 답장 대신 입을 다문 얼굴 표시 하나를 보냈다. 예전 같으면 준비물이며 간식이며 더 물었을 텐데, 이제는 태주가 알아서 묻고 챙긴다는 걸 알았다.저녁에는 태주가 소고기뭇국을 데우고 서연이 달걀말이를 했다. 봄이는 밥을 평소보다 빨리 먹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이제 열어도 돼.”가방에서 나온 것은 종이 카네이션 세 송이와 손바닥만 한 봉투들이었다. 꽃잎은 여러 번 접혀 두툼했고, 초록색 빨대가 줄기처럼 붙어 있었다. 봄이는 가장 큰 꽃을 태주에게 내밀었다.“아빠 거. 아빠는 아빠니까.”태주가 꽃을 받으며 목을 가다듬었다.“고맙습니다, 강봄 어린이.”“그리고 이건 할머니 거야. 두 개.”빨간 봉투에는 ‘할머니’, 분홍 봉투에는 ‘외할머니’라고 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봄이는 누구에게 어느 꽃을 줄지 헷갈리지 않으려고 뒷면에 명자와 정숙의 성까지 적어 두었다.서
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