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언니, 나 어떡하지 형부가...: Chapter 31 - Chapter 40

140 Chapters

제31화. 돌아온 자리

수요일 아침 6시 30분, 밥솥에서 김이 올랐다.서연은 태주가 손질해 둔 애호박을 볶고 달걀을 풀었다. 봄이는 세수도 하기 전에 식탁으로 와서 휴대전화를 가리켰다.“아빠 일어났어?”“아직 잘 시간이야. 어제 늦게 끝났잖아.”“전화하면 안 돼?”“아빠가 일어나면 먼저 할 거야.”봄이는 입술을 내밀었지만 휴대전화를 만지지는 않았다. 서연은 아이 머리를 낮게 묶었다. 노란 물병과 양말은 전날 태주가 둔 자리에 있었다.등원길에 봄이는 아빠가 없는 집이 이상했다고 말했다.“뭐가 제일 이상했어?”“아빠 방문이 안 열렸어. 근데 밥 냄새는 똑같았어.”“아빠가 재료를 해 놓고 갔으니까.”“이모랑 아빠랑 반씩 했네.”아이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었다.서연이 회사에 도착한 뒤 9시가 넘어 태주에게 전화가 왔다.“잘 잤어요?”“응. 지금 일어났어. 봄이는?”“밥 먹고 유치원 갔어요. 천천히 와요. 졸리면 더 자고.”“점심 전에 출발할게.”“운전하기 전에 밥부터 먹고요.”말을 마친 뒤 서연은 조금 머쓱했다. 물병과 양말은 몇 번씩 챙기던 사람이 제 밥은 대충 넘길 것 같아서였다. 통화를 끊고 나서야 자신도 아침을 얼마나 급히 먹었는지 떠올랐다.태주는 오후 1시쯤 804호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전날 벗어 둔 안전화를 닦고 세탁기를 돌렸다. 늦은 밤 공사를 마친 얼굴은 거칠었지만, 그는 다시 눕는 대신 유치원 알림장을 확인했다.‘오늘 하원은 아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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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두 개의 열쇠

화요일 아침, 서연은 작은 여행가방 대신 평소 출근 가방만 들었다.원룸에는 옷과 세면도구가 그대로 있었다. 하룻밤을 자러 가는데 짐을 싸는 순간부터 우스웠다.봄이는 식탁 달력의 동그라미를 손가락으로 눌렀다.“오늘 진짜 원룸 가?”“응. 내일 회사 갔다가 저녁에 올 거야.”“아침에는?”“아빠랑 먹어.”태주는 팬에서 달걀을 뒤집으며 말했다.“오늘 하원도 아빠, 저녁도 아빠, 내일 등원도 아빠.”“머리도?”“카드에 잘한다고 썼잖아.”봄이는 못 미더운 얼굴로 자기 머리를 만졌다. 그래도 서연에게 남아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출근길에 서연은 두 개의 열쇠가 달린 고리를 만졌다. 작은 은색 열쇠는 원룸, 검은 덮개가 씌워진 비상 열쇠는 804호 현관용이었다. 804호 비밀번호를 알고도 태주는 혹시 배터리가 나갈 때를 대비해 보조키를 맡겼다. 두 열쇠가 부딪칠 때마다 작고 마른 소리가 났다.오후 4시, 서연은 평소와 반대 방향 버스를 탔다. 태주에게서는 ‘봄이를 데리러 감’이라는 메시지가 왔다. 서연은 ‘확인했어요’라고 답하고 창밖을 보았다.원룸 문을 열자 오래 비워 둔 냄새가 아니라 세탁 세제와 마른 이불 냄새가 났다. 지난 토요일 환기하고 정리한 덕분이었다.싱크대에는 언니가 사고 전에 준 반찬통들이 씻겨 포개져 있었다. 서연은 가장 작은 노란 뚜껑 통을 하나 비워 둔 자리를 보았다. 딸기를 담아 804호로 가져갔던 통이었다.그 빈칸을 당장 채우지 않았다.서연은 창문을 열고 바닥부터 닦았다. 우편함에서 가져온 고지서를 날짜순으로 정리하고, 관리비를 이체했다. 냉장고에는 물과 달걀뿐이었다. 동네 반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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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남아 있는 조건

5월의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었다.아침부터 봄이는 식탁 위 종이를 힐끔거렸다. ‘그만 살기’, ‘더 살기’, ‘역할 바꾸기’가 적힌 종이였다. 그 위에 우유를 흘릴까 봐 태주가 투명 파일에 넣어 두었다.“밥 먹고 얘기하는 거지?”“설거지까지 하고.”태주가 대답했다.서연은 된장국을 뜨며 일부러 말을 보태지 않았다. 결론을 이미 정해 놓고 아이에게 허락받는 모양이 되고 싶지 않았다.식사가 끝난 뒤 세 사람은 식탁 한쪽씩 앉았다. 태주가 먼저 봄이에게 물었다.“지금까지 늦은 교실 가 보니까 어땠어?”“소율이 있으면 좋아. 먼저 가면 조금 싫어.”“할머니가 데리러 오는 날은?”“할머니는 택시 타면 무릎 안 아파.”“아빠랑 둘이 있는 날은?”봄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아빠랑 사는데 왜 물어?”태주가 헛기침했고 서연은 웃음을 참았다.“이모가 원룸 가는 날은 어때?”“달력에 쓰면 괜찮아. 안 쓰고 가면 싫어.”봄이는 마지막으로 종이의 첫 번째 칸을 가리켰다.“이모가 이제 안 살면 저녁에만 와?”“그것도 어른들이 정해야 해.”서연이 답했다.“나는 이모가 있으면 좋은데, 이모 집도 이모 집이잖아.”아이의 말은 붙잡는 말도 보내는 말도 아니었다. 서연은 그 점이 고마웠다.봄이가 방으로 들어간 뒤 둘은 지난 두 달의 표를 대충 훑었다. 서연이 맡은 날은 줄었지만 아직 많았다.&l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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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아내분 아니에요

6월 첫째 토요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에어컨 배수관 점검 안내가 왔다.방문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였다. 태주는 현관문에 붙은 안내문을 떼어 냉장고에 붙였다.“내가 있을게.”“저도 오늘 집에 있어요.”서연은 세탁물을 개며 말했다. 새 합의 뒤 첫 주말 개인 일정은 다음 주로 잡아 두었다. 오늘은 원룸에 가져갈 겨울옷을 정리할 생각이었다.“그래도 방문 확인은 내가 할게. 세대주 서명도 해야 하니까.”태주는 안내문 아래 자기 이름을 적었다.10시 30분쯤 초인종이 울렸다. 태주는 베란다 창고에서 실외기 주변 짐을 옮기고 있었다. 서연이 먼저 문을 열자 작업복을 입은 기사와 관리사무소 직원이 서 있었다.“에어컨 배수관 점검 왔습니다. 남편분은 안 계세요?”직원은 방문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서연은 잠깐 말을 놓쳤다. 뒤에서 봄이가 뛰어왔다.“아빠 베란다에 있어요.”“아, 아빠 계시는구나.”직원은 자연스럽게 서연 쪽에 방문표를 내밀었다.“아내분이 여기 연락처랑 서명 좀 해 주세요.”“제가 아내가 아니에요.”그 문장이 현관 타일보다 먼저 차갑게 떨어졌다. 떨어진 문장을 봄이가 듣고 있었다. 듣고 있는 앞에서 더 길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서연이 펜을 받지 않고 말했다.“저는 아이 이모예요. 애 아빠는 안에 있어요. 잠깐만요.”직원의 얼굴이 굳었다.“아이고, 제가 잘못 봤네요. 죄송합니다.”“괜찮습니다.”그때 태주가 베란다에서 나왔다. 그는 대화의 끝을 들은 듯 직원에게서 방문표를 받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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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작은방 문 앞

목요일 오후부터 서연은 자꾸 손끝이 시렸다.사무실 에어컨이 센 줄 알고 얇은 카디건을 입었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목이 따갑고 머리가 무거워졌다. 미경이 서연의 얼굴을 보더니 모니터를 껐다.“오늘은 하원 바꿔 맡기로 했지?”“네. 유치원 갔다가 집에 가면 돼요.”“그 얼굴로 아이 데리고 버스 타겠다고?”미경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태주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서연은 냉장고에 붙인 순서를 떠올렸다. 늦은 돌봄 확인, 태주 일정 조정, 명자 확인.유치원에 전화하자 6시 30분까지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태주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먼저 전화가 왔다.“서연아, 유치원에서 연락 받았어. 오늘 늦은 돌봄 신청했다고.”“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6시 30분 전에는 데리러 갈 수 있어요.”“내가 5시 30분쯤 갈 수 있어. 너는 집으로 가.”“형부 현장은요?”“마감 확인만 넘기면 돼. 이미 얘기했어.”태주의 목소리는 다급하지 않았다. 가능한 일정을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서연은 퇴근길 약국에 들렀다. 약사는 다른 약을 먹는지 묻고, 적힌 복용법대로 먹되 증상이 심해지거나 계속되면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서연은 약과 체온계용 새 건전지를 자기 카드로 계산했다.804호에 도착했을 때 집은 비어 있었다. 서연은 작은방으로 들어가 출근복만 갈아입고 누웠다. 이불이 뜨거웠다가 금세 차가워졌다.현관문 소리에 눈을 뜬 것은 6시가 조금 안 됐을 때였다. 봄이가 평소처럼 이모를 부르려 하자 태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렸다.“이모 아파. 손 씻고 조용히 놀자.”서연은 문을 열고 나갔다.&ldquo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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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여덟 번째 기념일

토요일 오전 9시, 태주의 휴대전화에서 낯선 알림음이 울렸다.태주는 팬에 식빵을 굽다가 화면을 보았다. 손이 그대로 멈췄다.‘우리 결혼 8주년.’몇 년 전 서희가 가족 달력에 넣어 둔 반복 일정이었다. 태주가 알림을 지우지 않았다는 사실도, 오늘 울릴 거라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봄이가 의자에서 몸을 내밀었다.“무슨 날이야?”태주는 화면을 끄지 못한 채 대답했다.“아빠랑 엄마가 결혼한 날.”“생일처럼 케이크 먹는 날?”“어떤 해에는 먹었고, 어떤 해에는 까먹었어.”식빵 한쪽이 검게 탔다. 서연은 말없이 환풍기를 켜고 새 빵을 꺼냈다. 대신 굽겠다고 팬을 빼앗지는 않았다.아침을 먹는 동안 태주는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봄이는 결혼식 사진을 보고 싶다고 했다. 태주는 잠시 망설이다 부부방 장롱 위에서 얇은 앨범을 꺼냈다.사진 속 서희는 어깨가 드러난 흰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었다. 태주는 지금보다 얼굴이 앳됐고, 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아빠 넥타이 이상해.”봄이가 손가락으로 사진을 눌렀다.“엄마가 묶어 줬어.”“엄마도 못했어?”“응. 둘 다 못했어.”서연도 사진을 보았다. 언니가 드레스를 고르던 날 전화로 3시간을 떠들었던 기억은 났지만, 사진 속 비뚤어진 넥타이에 얽힌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저건 몰랐어요.”“서희가 결혼식 끝나고도 자기가 잘 묶었다고 우겼어.”태주의 입가가 잠깐 올라갔다가 금세 내려왔다.봄이는 앨범을 더 넘겼다. 폐백을 마치고 지친 얼굴, 식당 구석에서 김밥을 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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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세 개의 우산

7월 첫째 목요일, 아침부터 비가 길게 내렸다.태주는 현관에서 봄이에게 노란 우비를 입혔다. 지퍼가 턱 밑까지 올라가자 봄이가 답답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여기까지만 올려.”서연이 지퍼를 손가락 한 마디만큼 내렸다.“장화 안에 양말은 잘 신었어?”“응. 아빠가 신겨 줬어.”봄이는 발을 번갈아 들어 보였다. 태주는 자기 검은 우산과 봄이의 투명 우산을 챙겼다.“오늘 하원은 나야.”“알아요. 저는 행사 페이지 마감이라 늦을 수도 있어요.”“끝나면 바로 원룸으로 갈 거야?”“아뇨. 오늘은 여기로 와요. 대신 저녁 재택은 없어요.”각자의 일정은 냉장고에 이미 적혀 있었다.오후 3시가 지나자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소담살림 창문 밖 간판들이 물에 번져 보였다. 서연은 여름 침구 행사 페이지를 고치느라 휴대전화를 뒤집어 두었다.4시 10분, 태주에게서 전화가 왔다.“서연아, 나 현장에서 못 나왔어.”그는 젖은 공구를 정리하는 중인지 뒤에서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유치원에는요?”“방금 늦은 돌봄 신청했어. 6시 30분까지고, 내가 6시 전에는 갈 수 있어.”“명자 어머니는요?”“오늘은 병원 다녀오셔서 쉬는 날. 네가 갈 필요 없어.”태주는 서연이 묻기 전에 대체 순서를 모두 확인했다.“봄이한테도 선생님이 말해 주신대. 네 일 끝내.”“시간 더 늦어지면 바로 연락해요.”“알았어.”서연은 전화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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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여름표

7월 셋째 월요일, 봄이는 유치원 가방에서 접힌 안내문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방학하면 유치원 안 가?”태주가 안내문을 펴 날짜부터 확인했다. 7월 마지막 주 사흘은 정규 수업이 없고, 신청한 원아만 별도 돌봄 교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사흘은 평소 교실이 쉬어. 대신 다른 선생님하고 있을 수 있어.”“이모랑 있으면 안 돼?”봄이의 질문에 서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여름 기획전 촬영이 예정돼 있었다. 월요일과 수요일 하원을 맡는 것과 사흘 종일을 비우는 것은 달랐다.“이모는 수요일 오후에는 같이 있을 수 있어. 월요일, 화요일은 회사 가야 하고.”“그럼 아빠는?”“아빠도 표 보고 정할게.”태주는 달력 앱을 열었다. 쉬겠다는 약속부터 하지 않고 현장 일정을 확인했다. 월요일은 준공 점검, 화요일은 비어 있었고 수요일에는 외부 업체 미팅이 잡혀 있었다.“화요일은 아빠가 쉬는 걸로 신청해 볼 수 있어.”태주는 아직 화요일 칸에 이름을 적지 않았다. 회사에 휴가부터 신청해야 했다.봄이가 식탁 한가운데 공책을 펼쳤다. 봄이는 색연필 통을 쏟더니 월요일 칸에 회색, 화요일 칸에 파란색, 수요일 칸에 남색 선을 그었다.“회색은 다른 선생님, 파란색은 아빠, 남색은 이모.”“회색 싫어?”“조금. 누군지 모르니까.”서연이 안내문 아래쪽을 가리켰다. 돌봄 교실 담당 교사 이름과 사전 적응 시간이 적혀 있었다.“금요일에 얼굴 보고 교실도 먼저 가 볼 수 있대. 보고 나서 정하면 어때?”봄이는 한참 생각하다 회색 선 옆에 작은 노란 동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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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마지막 날짜

8월의 마지막 날, 냉장고 문에는 두 달 동안 쓴 종이가 세 장 붙어 있었다.태주는 저녁을 먹고 식탁 위에 그것들을 차례로 펼쳤다. 늦은 돌봄을 쓴 날, 자신이 일찍 퇴근한 날, 명자가 2시간만 봄이를 데리고 있던 날이 다른 색으로 표시돼 있었다.“일단 두 달 동안 갑자기 빈 날은 없었어.”“형부 현장 때문에 바뀐 날은 네 번이었고요.”“그중 세 번은 늦은 돌봄이나 내가 해결했고, 한 번은 어머니.”서연은 자기 이름이 들어간 칸을 짚었다.“저는 원래 맡기로 한 월요일, 수요일 말고 두 번 더 했네요.”“한 번은 네가 먼저 된다고 한 날. 한 번은 내가 전날 부탁한 날.”둘은 기억으로 말하지 않고 기록으로 확인했다. 서연이 원룸에서 잔 날도 달력에 네 번 표시돼 있었다. 최소 두 번이라는 약속을 두 달 모두 지킨 셈이었다.봄이는 맞은편에 앉아 숫자를 따라 세다가 물었다.“그래서 이모 또 여기 살아?”그 질문 뒤로 식탁이 잠잠해졌다. 태주는 서연을 보지 않고 종이 모서리를 맞췄다.“이번 약속은 오늘까지였어.”“그다음 약속은?”“오늘 정하는 거야.”태주는 아이에게 결론을 떠넘기지 않았다. 서연도 봄이가 울기 전에 괜찮다고 약속하지 않았다.“이모는 다음 일요일에 원룸으로 돌아갈 거야.”봄이의 손가락이 숫자 31 위에서 멈췄다.“왜?”“아빠랑 봄이가 둘이서도 아침 준비하고 유치원 가는 거 잘하잖아. 이모 집도 오래 비워 두면 안 되고.”“그럼 월요일에 안 와?”&ldq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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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돌려준 열쇠

서연이 원룸으로 돌아간 뒤 첫 월요일, 태주는 작은방 문을 닫지 않았다.창가에는 새로 세탁한 요와 이불이 개어져 있었고 붙박이장 한쪽이 비어 있었다. 봄이가 맡긴 인형도 서연의 상자에 실려 갔다. 태주는 방 안을 한 번 둘러본 뒤 출근 가방을 들었다.전날 이사는 2시간 만에 끝났다. 태주가 책 상자를 차에 싣고, 봄이는 무릎 위에 인형을 안았다. 오래 비운 원룸에서는 마른 배수구 냄새가 났다. 서연이 창문을 열고 수도를 틀자 태주는 현관 옆에 상자만 쌓아 주었다.“책장까지 정리해 줄까?”“제가 할게요. 봄이를 데리고 들어가세요.”태주는 고집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바닥에 앉아 자장면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헤어졌다. 봄이가 놓고 간 인형은 서연의 베개 옆에 남았다.그날 밤 서연은 작은 냉장고에 우유와 달걀을 채웠다. 다음 날 입을 옷을 의자에 걸고, 알람도 예전 출근 시간에 맞췄다. 804호보다 버스 정류장은 멀어졌지만 욕실 문을 잠가도 되는 자기 방이었다.생활은 약속한 대로 굴러갔다. 아침에는 태주가 봄이의 머리를 묶었다. 처음 며칠은 좌우 높이가 달랐지만, 봄이는 유치원 화장실 거울 앞에서 스스로 다시 묶는 법을 배웠다. 화요일은 명자가 하원했고 목요일은 태주가 회의를 앞당겼다. 금요일에는 늦은 돌봄을 신청한 날도 있었다.서연은 9월 마지막 수요일까지 월요일과 수요일에 왔다. 마지막 날에는 약속한 안 매운 떡볶이를 만들었다. 봄이는 고추장 대신 케첩이 많이 들어간 소스를 먹고도 맵다며 물을 두 잔 마셨다.“다음 주 수요일도 오면 안 돼?”“다음 주에는 아빠랑 할머니가 정한 대로 해 보고, 이모는 토요일 오후에 올게.”봄이는 섭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 수요일, 태주가 보낸 사진에는 봄이가 명자와 동네 문구점에서 산 지우개를 들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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