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황태자의 신부는 그릇을 굽습니다: Bab 21 - Bab 30

67 Bab

황제는 아들의 독살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라시엘의 목소리가 떨어진 순간, 수천 개의 기억이 떠다니던 어둠이 기묘할 정도로 고요해졌다.엘로디아는 라시엘의 손을 잡은 채 붉은 기억 조각을 바라봤다. 조각 안에는 열네 살의 라시엘이 누워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 식은땀에 젖은 검은 머리,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해 가늘게 오르내리는 가슴. 그리고 침대 곁에는 지금보다 훨씬 젊은 카시엘 황제가 서 있었다.틀릴 수 없었다.라시엘과 같은 검은 머리.황실 특유의 금빛 눈.세월이 흐르며 얼굴에 깊은 선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분명 현 황제 카시엘 폰 아르젠이었다.그리고 그의 손 아래.검은 잔이 있었다.엘로디아는 본능적으로 라시엘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전하.”대답이 없었다.“라시엘.”그제야.라시엘이 그녀를 봤다.조금 전 엘로디아가 기억을 잃었을 때처럼.이번에는 반대였다.엘로디아가 그를 붙잡고 있었다.“끝까지 봐요.”라시엘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봐야 할까.”처음이었다.그가 진실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는 건.르메르 영지에서 자신의 황위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기록을 발견했을 때도.레오넬이 왕좌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라시엘은 진실을 피하지 않았다.그런데.이번에는 아버지였다.자신이 열네 살에 죽을 뻔했던 밤.그 곁에.황제가 있었다.엘로디아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저도 같이 볼게요.”쿵.라시엘의 심장이 뛰었다.“기억은.”엘로디아가 천천히 말했다.“혼자 볼 필요 없잖아요.”라시엘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두 사람은 다시 붉은 조각을 바라봤다.기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이번에도 살아남아라.”젊은 황제가 말했다.침대 위의 라시엘은 듣지 못했다.의식이 없었다.그의 입술은 푸르게 질려 있었고, 손끝에는 검은 반점이 번지고 있었다. 당시 기록으로 보았던 독의 증상과 같았다.황제가 천천히 검은 잔을 들었다.그런데.이상했다.잔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랐다.황제는 라시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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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황태자가 아니라 아들로 왔습니다

황제궁으로 향하는 길은 평소와 완전히 달랐다.검은 불기둥이 황궁 중앙에서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금빛 황실 결계가 몇 번이나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안쪽에서 무언가가 결계를 밀어내고, 황궁 전체가 그것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복도를 가득 메운 시종과 관리들은 기사들의 통제 아래 빠르게 대피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했다.엘로디아는 라시엘과 나란히 달렸다.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쿵.쿵.자신의 심장과 라시엘의 심장이 거의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혼인잔의 감각 연결이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라시엘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황제궁에 있는 사람이 제국의 황제라서가 아니라.아버지라서.“전하.”라시엘이 달리면서 그녀를 봤다.“왜.”“무서워요?”그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예전이었다면 괜찮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응.”라시엘은 짧게 인정했다.“무서워.”엘로디아는 손에 힘을 주었다.“저도요.”라시엘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당신이 왜.”“검은 잔이 무서워서요.”엘로디아는 앞을 바라봤다.“그리고.”검은 불길이 치솟는 황제궁.“전하가 아버지를 잃는 것도 싫어서.”라시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쿵.그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엘로디아는 굳이 그 박동을 지적하지 않았다.지금은 놀릴 때가 아니었다.“라시엘 전하!”앞쪽에서 기사단장이 달려왔다.“황제궁 외곽 인원은 전부 대피시켰습니다.”“폐하는?”“알현실에 계십니다.”“혼자?”기사단장의 얼굴이 굳었다.“그게.”“말해.”“폐하께서 직접 문을 잠그셨습니다.”라시엘의 걸음이 멈췄다.“직접?”“예. 검은 불길이 발생한 직후 모든 사람을 내보내라고 명하셨습니다. 근위기사들도요.”“왜.”“폐하께서…….”기사단장이 말을 망설였다.라시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대로 말해.”“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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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 선발전의 원래 목적

“황제에게 거역할 수 없는 사람을 만드는 의식이야.”검은 항아리 안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알현실을 얼어붙게 했다.엘로디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떨어진 왕관과 카시엘 황제의 몸을 뒤덮었던 검은 마력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이제는 백화궁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황태자비 후보들이 머물던 곳. 차를 마시고, 꽃을 고르고, 황실 예법을 평가받으며 누가 황태자의 배우자로 적합한지 시험받았던 장소.그런데.그 선발전의 뿌리가 신부를 고르는 의식이 아니었다고?“잠깐만요.”엘로디아가 항아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방금 말한 것부터 정확하게 할게요. ‘황제에게 거역할 수 없는 사람을 만드는 의식’이라는 게 지금 황태자비 선발전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항아리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지금의 선발전은 달라.엘로디아의 굳었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역시.천 년 전의 기록과 현재의 제도를 그대로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라시엘도 즉시 물었다.“얼마나 다르지?”많이.“그럼 지금 백화궁에서 진행되는 것도 같은 의식이라고 단정할 수 없겠군.”응.엘로디아는 라시엘을 봤다.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너무 많은 기억을 봤다. 세드릭의 기억 속에서 확인한 것들 가운데 무엇이 실제 과거이고 무엇이 왜곡인지 아직 구분하지 못했다. 검은 잔은 기억을 끊고 옮길 수 있었으며, 누군가는 그 기능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거짓된 기억까지 심어놓았다.그러니.이번에는 서두르지 않는다.“좋아요.”엘로디아가 숨을 골랐다.“그럼 확실한 것만.”손가락을 하나 폈다.“백화궁에서 비정상적인 마력 반응이 일어났다.”둘.“벽에 누군가 글자를 남겼다.”셋.“과거에 지금의 황태자비 선발전과 비슷한 형태의 의식이 존재했지만, 현재 제도와 같은지는 모른다.”검은 항아리가 작게 울렸다.응.“그리고.”엘로디아는 네 번째 손가락을 펴려다가 멈췄다.“세드릭과 그 의식의 관계도 아직 모른다.”응.라시엘의 입꼬리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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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 도공 시험이 왜 황태자비 점수에 들어갑니까

“……상당한 가산점이라고요?”엘로디아가 되물었다.에드윈 로젠베르크 후작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예.”“상당하다는 게 어느 정도인데요?”“현재 르메르 영애의 황태자비 선발전 누적 점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특별 황실 도공 자격을 취득하는 순간 사실상 최상위권에 진입합니다.”엘로디아의 얼굴이 굳었다.옆에서 셀레스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을 참는 게 너무 분명해서 엘로디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웃으셨어요?”“아뇨.”“방금 웃으셨는데.”“기침이에요.”“셀레스트 영애.”“콜록.”이번에는 대놓고 기침까지 했다.엘로디아의 눈이 가늘어졌다.그리고 마지막 희망을 품고 라시엘을 바라봤다.라시엘은.웃고 있었다.아주 조금.정말 조금이라 본인이 아니라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을 만큼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 있었지만, 엘로디아는 이제 저 얼굴을 너무 잘 알았다.“전하.”“응.”“좋으세요?”“당신이 황실 도공이 될 기회를 얻었으니까.”“그것만요?”잠깐의 침묵.“황태자비 점수도 오른다니 나쁘진 않고.”“역시.”엘로디아가 눈을 흘겼다.“감점.”“방금까지 보류 아니었나?”“다시 감점이에요.”“기준이 자주 바뀌는군.”“심사관 마음이에요.”“그건 부당한 심사 아닌가?”“억울하면 이의 신청하세요.”“어디에?”엘로디아가 대답하려다 멈췄다.그러고 보니.왕관 심사관이 자신이라면.이의 신청도 자신에게 해야 하나?셀레스트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두 분 진짜 이러실 거예요?”“뭘요?”“지금 로제 양이 사라졌는데도 황태자비 점수로 싸우고 계시잖아요.”엘로디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맞다.로제.그 이름 하나로.조금 전까지의 가벼운 분위기가 단숨에 현실로 돌아왔다.엘로디아는 손에 들린 메모를 내려다봤다.오늘 오후, 누군가 회수하려 함.로제는 이상함을 알아차렸다.자신에게 지급된 향주머니만 다른 후보들의 것과 흙 냄새가 달랐다는 사실을.그리고 폐기하지 않았다.그걸 누군가 회수하려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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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가렸더니 더 잘 보였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엘로디아는 세 번이나 응시표를 확인했다.황실 도공 특별 자격시험.응시번호 17번.이름은 없었다.가문도 없었다.황태자비 후보라는 표시도, 르메르라는 성도 없었다. 응시자에게 지급되는 회색 작업복에도 숫자 17만 작게 수놓아져 있었다.엘로디아는 그 숫자를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이상했다.고작 이름 하나 없을 뿐인데.마음이 편했다.황궁에 들어온 뒤 그녀의 이름 앞에는 늘 무언가가 붙었다.몰락한 르메르 남작가의 장녀.황태자비 후보.혼인도공의 후예.수호자.황태자와 혼인잔을 빚은 여자.그리고 이제는 왕관을 심사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까지.하지만 오늘은.아무것도 없다.열일곱 번째 도공.그것뿐이었다.“좋네.”엘로디아가 작게 중얼거렸다.“뭐가?”바로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라시엘이었다.정복도 아니고, 황태자 문장이 들어간 망토도 없었다. 짙은 색 셔츠 위에 평범한 외투를 걸친 모습이라 언뜻 보면 황궁 관리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물론 얼굴 때문에 별로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전하.”“응.”“왜 여기 계세요?”“배웅.”“아까 황태자궁에서도 하셨잖아요.”“한 번만 하라는 규정은 없던데.”“일은요?”“테오란이 하고 있어.”“테오란 경은 전하 대신 일하려고 보좌관 된 게 아닐 텐데요.”“본인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절대 아닐 것 같은데.”라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엘로디아는 한숨을 쉬다가 그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께에 달린 응시번호로 향한 것을 알아차렸다.“보지 마세요.”“왜.”“블라인드 시험이에요.”“번호 보는 것도 안 되나?”“전하는 심사에 관여하면 안 되잖아요.”“관여 안 해.”“그런데 왜 번호를 외우세요?”라시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내가 외웠다고 말했나?”“표정이 외웠어요.”잠깐의 침묵.라시엘이 웃었다.“17번.”“봐요!”“이미 봤는데 어떡하지.”“잊으세요.”“어렵겠는데.”“전하.”“대신 심사위원은 만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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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 1위는 탈락할 방법을 찾습니다

엘로디아 르메르가 황실 도공 특별 자격시험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황궁 전체에 퍼졌다.문제는 그다음이었다.황태자비 선발전 종합 1위.황실 도공이라는 네 글자보다 그 뒤에 붙은 소식이 훨씬 빠르게 퍼졌다.아침 식사를 위해 백화궁 식당으로 들어선 엘로디아는 자신을 향해 일제히 돌아오는 열두 쌍의 시선을 받자 문턱에서 그대로 멈췄다. 식당은 평소처럼 우아했다. 햇빛은 높은 창을 통과해 긴 식탁 위로 쏟아졌고, 갓 구운 빵 냄새와 홍차 향이 은은하게 섞였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후보들의 시선만 유독 날카로웠다.엘로디아는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제가 시간을 잘못 알았나 봐요.”“맞게 오셨어요.”셀레스트가 즉시 대답했다.“그런 것 같은데요.”“들어오세요.”“배가 별로 안 고파져서.”“거짓말.”셀레스트는 태연하게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아까 복도에서 배에서 소리 나는 거 들었어요.”“셀레스트 영애.”“빨리요. 황태자비 후보 1위님.”마지막 말이 결정타였다.엘로디아의 얼굴이 구겨졌다.후보들 사이에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어제 백화궁 지하에서 함께 위험을 겪고 난 뒤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이전까지 서로를 경쟁자로만 보던 후보들이 이제는 적어도 누가 진짜 적인지 구분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들을 억지로 복종시키려 했던 의식의 존재가 드러난 뒤였다.황태자비가 되고 싶은 것과.자기 자신을 잃는 것은.전혀 다른 문제였다.엘로디아는 결국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축하해요.”한 후보가 먼저 말했다.“도공 시험이요.”“감사합니다.”이번에는 엘로디아도 기분 좋게 웃었다.“정말 대단했어요. 심사위원들이 신분 공개 전까지 17번이 누구인지 몰랐다면서요?”“네.”“황태자 전하도?”“전하는 제 번호를 알았어요.”후보들의 눈빛이 미묘해졌다.엘로디아가 급하게 덧붙였다.“심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으셨어요.”“그건 알아요.”다른 후보가 웃었다.“황태자 전하께서 시험장 밖에서 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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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 후보에게 개인 작업실을 주시면 오해합니다

엘로디아가 제2황실도요원에 도착한 것은 아침 해가 완전히 뜨기도 전이었다.원래라면 백화궁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연회 준비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예산 담당 후보로서 재무부가 보낸 장부도 검토해야 했고, 기술감사관 자격으로 전날 불량 판정을 내린 식기들의 재검수 계획도 세워야 했다. 거기에 오후에는 남은 황태자비 후보 열 명이 참석하는 서부연합 사절단 환영 연회 예행연습까지 예정되어 있었다.그러니까.지금 이 시간에 도요원으로 달려올 이유는 없었다.적어도 로제가 방문 아래로 밀어 넣은 쪽지를 보기 전까지는.영애, 황실 도요원에서 사람이 왔는데요. 영애 작업실이 생겼대요.그 한 줄을 읽은 순간 엘로디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씻고.머리를 묶고.옷을 입고.백화궁 복도를 지나.거의 뛰다시피 제2도요원으로 왔다.그리고 지금.복도 끝 문 앞에서.멈춰 있었다.황실 도공·기술감사관엘로디아 르메르명패.자신의 이름.엘로디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손을 뻗었다.나무 명패의 표면은 매끄러웠다. 글자는 화려하지 않았다. 황실 문장도, 르메르 가문의 문장도 없었다. 황태자비 후보라는 말은 더더욱 없었다.그저.엘로디아 르메르.“……진짜네.”손끝으로 자기 이름을 천천히 쓸었다.이상하게 가슴이 벅찼다.르메르 영지에도 작업실은 있었다.할머니가 쓰던 낡은 작업대.손때가 밴 물레.몇 번이나 수리한 작은 가마.엘로디아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었다.하지만 이것은 달랐다.황실 도요원.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도공들이 모이는 곳.한때 르메르가 쫓겨났던 곳.그곳에.다시 르메르의 이름이 걸렸다.그것도.누군가의 은혜가 아니라.시험을 보고.1등을 하고.자격을 얻어서.엘로디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울면 안 된다.아침부터 혼자 명패 보고 울면 너무 이상하다.“마음에 들어?”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엘로디아가 홱 돌아봤다.“전하!”라시엘이 복도 입구에 서 있었다.“왜 이렇게 놀라.”“인기척 좀 내세요.”“냈는데.”“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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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 후보가 황태자의 접시를 뺏었습니다

서부연합 사절단이 황궁에 도착하기까지 이틀.엘로디아는 새 작업실을 받은 지 하루 만에 그곳에서 밤을 새울 뻔했다.정확히는 새벽 한 시가 넘어갈 때까지 버티다가 로제와 테오란에게 동시에 쫓겨났다.“영애께서는 내일 황태자비 후보 예행연습도 있으십니다.”“저 도공이기도 한데요.”“알고 있습니다.”“기술감사관이기도 하고.”“그것도 알고 있습니다.”“그럼 왜 보내요?”“사람이기 때문입니다.”테오란의 대답은 단호했다.옆에서 로제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고, 결국 엘로디아는 유약 성분표를 품에 끌어안은 채 백화궁으로 돌아와야 했다.그런데.네 시간 뒤.눈을 떴다.다시 잤다.한 시간 뒤.또 눈을 떴다.결국 아침 여섯 시가 되기도 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머릿속에 자꾸만 어제 분석한 유약이 떠올랐다.마력 반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감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유약.누군가는 연회용 식기를 이용해 무언가를 숨기려 했다.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른다.그러니 오늘 해야 할 일은 많았다.가짜 식기 제작 경로 확인.연회장 미끼 창고 설치.후보들의 연회 예행연습.예산 검토.그리고 정상 식기 전량 재검수.엘로디아는 세수를 하면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할 수 있어.”눈 밑이 조금 어둡기는 했다.“……아마.”문이 열렸다.로제가 들어왔다.“안 됩니다.”엘로디아가 돌아봤다.“뭐가?”“지금 도요원 가시려고 했죠?”“아닌데.”“머리 묶으셨잖아요.”“아침에 머리 묶을 수도 있지.”“작업용 끈으로요?”엘로디아가 자기 머리를 만졌다.평소 흙을 빚을 때 쓰는 낡은 끈이었다.“……습관이야.”로제는 믿지 않았다.“황후 폐하께서 말씀하셨어요. 오늘 오전에는 무조건 백화궁 일정부터 소화하시라고.”“도요원은?”“오후.”“가짜 식기는?”“기사단이 지키고 있고요.”“성분표는?”“마르센 도공이 보고 계시고요.”“적벽 가마는?”“봉쇄됐고요.”대답이 막힘없었다.엘로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너 테오란 경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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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 말 없이도 들키는 방법

엘로디아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후회했다.정확히는 자신이 어젯밤 라시엘에게 내건 조건을 떠올린 순간부터였다.내일 이 시간까지 좋아한다는 말 금지.좋아한다.예쁘다.보고 싶었다.손을 잡고 싶다.그와 비슷한 뜻까지 전부 금지.분명 그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라시엘이 자꾸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을 표현하니 자신이 제대로 생각할 틈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루쯤 그가 조용히 있으면 자신의 감정도 차분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했다.말만 금지했다.행동까지 금지하지 않았다.그리고 라시엘 폰 아르젠은.그 허점을 너무 잘 이용했다.“…….”엘로디아는 침대에 누운 채 오른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어젯밤.작업실에서 백화궁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다.처음에는 그냥 서 있었다.그러다 라시엘이 그녀를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엘로디아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문제는 복도를 걷기 시작한 뒤에도 그가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물론.물었다.계속 잡아도 돼?그 질문에.자신이.네.라고 대답했다.그 뒤부터 백화궁 앞까지.계속.심지어 헤어질 때도 라시엘은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켰다.대신 엘로디아의 손등을 엄지로 한 번 천천히 쓸고 놓았다.그것뿐이었다.정말.그것뿐인데.“……반칙이야.”엘로디아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말을 안 하면 덜 의식할 줄 알았다.완전히 반대였다.라시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손끝 하나, 시선 한 번, 웃는 표정 하나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특히.손.엘로디아는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오므렸다.아직도 따뜻한 것 같다.“영애.”문 쪽에서 로제의 목소리가 들렸다.엘로디아는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왜.”“일어나셨어요?”“아니.”“대답하셨는데요.”“잠꼬대.”“굉장히 논리적인 잠꼬대네요.”문이 열렸다.로제가 들어왔다.잠시 뒤.“영애.”“왜.”“왜 이불 속에서 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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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두 개일 때 더 진짜처럼 보입니다

아스테르 운송조합 뒤편의 폐창고에서 편지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은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그리고 엘로디아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아침 일곱 시였다.“왜 두 시간이나 늦게 알려주셨어요?”제2황실도요원 작업실.엘로디아는 테오란이 내민 증거 봉투보다 먼저 라시엘을 노려봤다.라시엘은 태연했다.“자고 있었으니까.”“깨우면 되잖아요.”“어제 몇 시에 잤어?”“…….”“몇 시.”“열두 시 조금 넘어서.”“정확히.”“한 시…… 반?”“그래서.”“그래서라뇨?”“두 시간 재웠어.”엘로디아는 어이가 없었다.“전하.”“응.”“저 기술감사관이에요.”“알아.”“이 사건 담당자이기도 하고요.”“그것도 알아.”“그런데 증거가 발견됐는데 재워요?”“응.”조금의 망설임도 없다.엘로디아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옆에서 테오란이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저도 동의했습니다.”“테오란 경까지요?”“영애께서 어제 점심을 제대로 드시지 않았고 최근 사흘 평균 수면 시간이 부족합니다.”“그걸 왜 계산해요?”“업무 효율과 관련된 사항이니까요.”“…….”둘이 짰다.확실하다.엘로디아가 로제를 봤다.마지막 희망.로제는 조용히 차를 따랐다.“전 영애를 깨우러 가려는 시녀를 막았습니다.”“로제.”“건강이 우선이에요.”배신이다.엘로디아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다들 너무해.”라시엘이 그녀 앞으로 접시를 밀었다.빵.달걀.과일.엘로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이건 또 뭐예요?”“아침.”“알아요.”“먹어.”“편지부터.”“먹으면서.”“전하도 먹었어요?”라시엘이 잠시 침묵했다.엘로디아의 눈이 가늘어졌다.“설마.”“먹었어.”“뭐.”“빵.”“몇 개.”“두 개.”“그게 왜 자꾸 두 개예요?”“적당해서?”“안 적당해요.”엘로디아는 자기 접시의 달걀 하나를 그의 접시에 옮겼다.라시엘이 그것을 내려다봤다.“이것도 먹어요.”“당신 거잖아.”“전 과일 먹을게요.”“엘로디아.”“작업실 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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