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정에서의 격돌 이후, 저택 전체는 팽팽한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했다. 마르쿠스 백작의 수하들이 복도 곳곳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엘리자의 방 안만큼은 외부와 격리된 또 하나의 밀실이었다.철컥, 철컥.침실 안쪽 깊숙이 숨겨진 비밀 서재. 엘리자는 장미목 책상 위에 놓인 고대의 양피지 묶음들을 붉은 눈동자로 빠르게 훑어내리고 있었다. 가문의 초대 가주가 남긴 기록. '각인목'의 늑대와 뱀파이어 사이에 맺어진 피의 결속에 대한 구체적인 전말을 찾아내야만 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건데"책상 발치, 두꺼운 카펫 위에 웅크려 있던 카엘이 사슬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엘리자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서늘하게 응수했다."알 것 없어. 네놈은 그저 사슬이나 잘 쥐고 있으면 돼.""거짓말은."카엘이 나른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그런데 며칠 전과는 무언가 달랐다. 소년의 걸음마다 바닥을 짓누르는 기운이 한층 더 묵직해져 있었다. 선이 얇고 청초하던 외껍데기는 그대로였지만, 얇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마른 근육의 선이 전보다 확연히 단단해지고 어깨선이 벌어져 있었다. 피를 빨리고 주술의 충격을 이겨낼 때마다, 소년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늑대의 야성이 빠르게 성숙하고 있는 증거였다."내 체온이 없으면 제대로 읽히지도 않으면서."카엘이 엘리자의 의자 뒷목을 손으로 짚고 상체를 푹 숙였다.소년 특유의 은은하고 달콤한 피 향과 함께, 델 듯이 뜨거운 숨결이 엘리자의 서늘한 귓바퀴를 감싸 안았다. 앳된 얼굴을 한 미소년이 여주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가 되자, 서재 안의 공기가 아찔하게 짓눌렸다."카엘, 선 넘지 마."엘리자가 차갑게 굳어버린 시선으로 고개를 들려 했지만, 카엘의 긴 손가락이 먼저 그녀의 턱 끝을 감싸 쥐었다.손가락 마디마디에 닿는 미소년의 뜨거운 체온. 엘리자의 속눈썹이 찌릿한 전율로 크게 떨렸다. 카엘의 피가 제 몸속에서 끓어오르며, 소년의 손길이 닿은 피부마다 미친 듯한 갈증을 내뿜었다."선은 네가 먼저 넘었잖아."카
Last Updated : 2026-09-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