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달빛의 구원:너의 피는 달콤해서: Chapter 11 - Chapter 20

63 Chapters

11화: 붉은 종속

집사가 들고 온 양피지 문서가 엘리자의 차가운 손끝에서 파르르 떨렸다.'영원히 그 늑대에게 귀속될 것이다.'고대의 붉은 잉크로 적힌 문장이 엘리자의 시야를 아득하게 어지럽혔다.피주머니. 가문의 저주를 푸는 데 쓰일 보잘것없는 포로. 그렇게 여겼던 앳된 소년의 피를 삼킬 때마다, 정작 그 피의 굴레에 사로잡혀 영혼까지 길들여지고 있던 것은 저 자신이었다.엘리자는 서늘해진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차가운 쿨톤의 얼굴 위로 기이한 혼란이 짙게 깔렸다."…나가."낮고 서늘한 단절. 집사는 조용히 물러났고, 침실 안에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카엘은 침대 끝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었다.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만지작거리는 소년의 손가락은 매끈하고 가녀렸다. 그러나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여주를 담아내는 눈빛만큼은 깊고 어두웠다. 늑대 특유의 예리한 감각이 여주의 이상 징후를 놓칠 리 없었다.철컥.금속음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긁었다. 카엘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소년은 엘리자의 의자 앞까지 조용히 걸어왔다. 그리고 서늘하게 식어버린 여자의 무릎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미소년의 시선. 청초해 보이는 외껍데기 뒤로 나른하고 치명적인 야성이 넘쳐흘렀다."어디 아파?"낮게 갈라진 음성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위험했다.엘리자는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은은한 피 향이 코끝에 닿을 때마다, 제 몸속 혈관이 미친 듯이 뒤틀리며 이 소년의 체온을 갈구하고 있었으니까."치워, 카엘. 다가오지 마.""싫다면."카엘이 소리 없이 낮게 읊조렸다.소년의 매끈하고 긴 손가락이 엘리자의 창백한 뺨을 타고 내려가, 그녀의 목덜미를 살포시 감싸 쥐었다. 차가운 여자의 피부에 닿는 소년의 체온은 델 듯이 뜨거웠다. 엘리자의 속눈썹이 찌릿한 전율로 크게 떨렸다."방금까지 내 피로 그 예쁜 목구멍을 적셔놓고."카엘이 허리를 끌어 올려 엘리자의 입술 코앞까지 얼굴을 밀어붙였다. 앳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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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핏빛 맹세의 흔적

카엘의 나른하고 서늘한 숨결이 엘리자의 입술 깃을 갉아먹듯 스쳐 지나갔다.사슬을 쥐고 있는 손은 엘리자의 것이었으나, 그 사슬 끝에 묶여 소름 끼치도록 깊은 전율에 떨고 있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이 손 치워, 카엘."엘리자는 어떻게든 이 앳된 미소년의 주도권에서 벗어나려 차갑게 목소리를 깔았다. 하지만 그녀의 서늘한 쿨톤 피부는 소년의 뜨거운 체온이 닿은 부위마다 붉은 온기가 배어들고 있었다.카엘은 코웃음조차 치지 않았다. 대신 목덜미를 감싸 쥔 긴 손가락에 아주 천천히 힘을 가하며, 엘리자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소년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든 엘리자의 눈동자를 노골적으로 집어삼켰다."치우면?"나른하게 갈라진 미소년의 음성이 침실 안을 낮게 울렸다."치우면, 네가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 이 오만한 여자야."카엘이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이목구비는 보호본능을 자극할 만큼 서럽고 예뻤지만, 그 아래 숨겨진 야성의 입꼬리는 핏빛 달처럼 비틀려 있었다."네 가슴속 장기가 비틀려 죽어갈 때, 내 목덜미를 부여잡고 피를 갈구하던 건 너야. 지금도 내 피가 네 혈관 속에서 미친 듯이 타오르고 있는데… 감히 날 거부해?"엘리자의 속눈썹이 경련하듯 떨렸다.카엘의 말이 맞았다. 소년의 피를 마신 직후부터 그녀의 본능은 카엘을 원하고 있었다. 지독한 빈혈과 통증을 진정시켜 주는 고마운 약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신경을 마비시키고 오직 이 늑대 미소년의 체온과 향기만을 좇게 만드는 악마의 독약.'각인.'고서적에 적혀 있던 그 잔혹한 단어가 엘리자의 뇌리를 어지럽혔다.늑대인간 왕가의 피를 이은 '각인목'. 이 소년의 피를 삼킨 이상, 뱀파이어인 그녀는 영원히 이 소년의 존재에 종속되어 그를 향한 지독한 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는 이미 뒤바뀌어 있었다."읏…!"카엘의 손가락이 엘리자의 창백한 입술 중앙을 거칠게 문질렀다. 아까 마셨던 제 피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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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연회장의 도살자들

문 너머에서 밀려드는 마르쿠스 백작의 서늘한 기운에 침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마르쿠스는 숙부 빅토르처럼 어설픈 흉계를 꾸미는 자가 아니었다. 가문의 규율을 집행하는 집행위원장이자, 순혈의 혈통에 미쳐있는 잔혹한 늙은 포식자. 그가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숙부와의 공조 혹은 그 이상의 덫이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했다."가문재판이라니."엘리자는 서늘한 얼굴로 드레스 깃을 정돈했다. 몸속 깊은 곳에서 카엘의 피가 선명한 열기를 뿜어내며 찌릿한 전율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오만함을 유지했다.카엘은 침대 끝에 앉아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엘리자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해냈다. 앳되고 선이 예쁜 미소년의 얼굴에 비틀린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무서워?"카엘이 사슬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얇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마른 근육 선에 서서히 야성의 긴장감이 실렸다."나한테 피를 빨릴 때보다 더 하얗게 질렸는데.""조용히 해, 카엘."엘리자가 차갑게 쏘아붙였지만, 카엘은 오히려 그녀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소년의 은은한 더운 숨결이 엘리자의 창백한 귓가를 스쳤다."걱정 마. 날 사냥개로 세웠으면 제대로 써먹어야지."카엘의 나른하면서도 뼈 있는 목소리가 엘리자의 고막을 간지럽혔다."네 목을 꺾는 건 나라고 했잖아. 저 밖의 늙은 뱀들이 건드리지 못하게, 내가 다 찢어발겨 줄 테니까."가문 재판이 열리는 대심판정.높은 천장 아래로 십여 명의 순혈 귀족들이 서늘한 눈빛을 빛내며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그 중심에 자리한 마르쿠스 백작은 엘리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괴한 실소를 지었다."어서 오시게, 엘리자 영애. 그리고…."마르쿠스의 붉은 눈동자가 엘리자의 발치에 선 카엘에게로 향했다."가문의 거룩한 심판정에 저런 천한 늑대 포로를 끌고 오다니, 가문의 수치로다. 숙부인 빅토르 경이 영애의 안전을 염려하여 고발을 신청했네."빅토르는 마르쿠스의 옆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그렇습니다, 위원장님! 저 오만하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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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포식자의 그늘

대심판정 바닥으로 흩뿌려진 붉은 피가 서늘한 대리석을 따라 천천히 번져 나갔다.두 명의 집행관이 짓이겨진 채 바닥을 굴렀고, 남은 자들은 검을 쥔 손을 미세하게 떨며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앳되고 선이 예쁜 미소년의 얼굴을 한 늑대.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쓱 문지르는 카엘의 눈빛은, 심판정에 모인 그 어떤 순혈 뱀파이어보다 치명적인 포식자의 그것이었다."미친… 저 미친 짐승 놈이…!"빅토르는 마르쿠스 백작의 뒤로 숨으며 하얗게 질린 비명을 질렀다.마르쿠스의 붉은 눈동자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는 손을 올려 집행관들의 행동을 제지한 뒤, 바닥에 웅크려 거친 숨을 내쉬는 카엘을 흥미롭다는 듯 내려다보았다."늑대인간 왕가의 피… '각인목'의 후손이로군."마르쿠스의 서늘한 목소리가 심판정을 묵직하게 짓눌렀다."엘리자 영애. 자네가 왜 저 짐승을 곁에 두고 싸고돌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가문의 혈통병을 진정시킬 유일한 구원줄이자… 자네를 완벽하게 파멸시킬 악마의 사슬."엘리자의 속눈썹이 경련하듯 떨렸다.마르쿠스 역시 그 고서적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단순히 엘리자의 목숨이 아니었다. 카엘의 피를 빼앗아 가문의 주도권을 완벽하게 쥐려는 것.엘리자는 서늘한 얼굴로 카엘의 앞으로 한 걸음 내딛며 소년을 제 치맛자락 뒤로 가렸다. 차갑고 도도한 쿨톤의 눈빛이 심판정 전체를 압도했다."착각하지 마십시오, 백작."엘리자의 낮고 단단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이 아이는 제 소유입니다. 제 저주를 풀든, 저를 파멸시키든… 그 권한은 오직 저에게만 있습니다. 감히 누구 손을 대려 합니까?"카엘은 엘리자의 뒤에서 제 목을 죄어오는 사슬을 쥐고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저 오만한 여자가 자신을 '소유'라 부르며 싸고도는 모습. 하지만 카엘은 알고 있었다. 제 피를 삼킬 때마다 여주의 눈동자에 서리던 그 지독한 갈증과 종속의 기운을.카엘은 억지로 주술의 통증을 이겨내며 일어서 엘리자의 허리를 뒤에서 부드럽고도 거칠게 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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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피의 흔적, 붉은 온도

대심판정의 묵직한 문이 닫히고 저택의 깊은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엘리자의 다리가 미세하게 휘청였다.마르쿠스의 서늘한 기위, 그리고 심판정 전체를 압박하던 분위기를 오만함으로 견뎌냈으나 가슴 깊은 곳에서 저주의 통증이 다시금 온몸의 신경을 죄어오기 시작한 탓이었다."하아…."엘리자가 차가운 대리석 벽에 손을 짚으려는 순간.철컥!쇠사슬 소리와 함께 뜨거운 체온이 엘리자의 허리를 강하게 낚아챘다."조심하지"카엘의 낮게 갈라진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소년은 엘리자의 몸이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선이 얇은 팔로 그녀의 날씬한 허리를 끌어안아 제 품 안으로 완벽하게 밀착시켰다.앳되고 청초한 미소년의 얼굴. 하지만 방금 전 집행관들의 목을 꺾어놓았던 카엘의 몸에서는 여전히 핏비린내와 함께 늑대 특유의 짙고 뜨거운 체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치워… 내가 알아서 걷는다."엘리자는 서늘한 얼굴로 카엘의 가슴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소년의 피를 삼킨 후부터 시작된 신체적, 정신적 종속감 때문에 손끝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소년의 짙은 피 향기가 코끝에 닿을 때마다, 본능적인 갈증에 속눈썹이 경련하듯 떨렸다.카엘은 엘리자의 허리를 감아 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그는 엘리자를 벽과 제 몸 사이에 가둔 채, 아래에서 위로 여주의 붉은 눈동자를 노골적으로 담아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번뜩이는 소년의 눈빛에는, 포로라는 신분을 비웃듯 위험한 소유욕이 넘쳐흘렀다."거짓말은."카엘의 나른한 목소리가 엘리자의 귓가를 스쳤다."내 몸이 닿을 때마다 손끝을 부들부들 떨고 있으면서. 네 몸은 이미 내 피 없이는 버티지도 못하잖아.""카엘…!""가문 재판장에서 절개 있는 주인님 흉내는 잘 봤어."카엘이 긴 손가락으로 엘리자의 창백한 뺨을 타고 내려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포시 짓눌렀다.손가락 끝에 닿는 서늘한 여주의 감촉. 카엘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아득해지며, 이 오만한 여자를 제 품 안에서 완전히 무너뜨리고 싶다는 야성이 또다시 폭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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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서늘한 금서(禁書)와 뜨거운 늑대

심판정에서의 격돌 이후, 저택 전체는 팽팽한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했다. 마르쿠스 백작의 수하들이 복도 곳곳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엘리자의 방 안만큼은 외부와 격리된 또 하나의 밀실이었다.철컥, 철컥.침실 안쪽 깊숙이 숨겨진 비밀 서재. 엘리자는 장미목 책상 위에 놓인 고대의 양피지 묶음들을 붉은 눈동자로 빠르게 훑어내리고 있었다. 가문의 초대 가주가 남긴 기록. '각인목'의 늑대와 뱀파이어 사이에 맺어진 피의 결속에 대한 구체적인 전말을 찾아내야만 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건데"책상 발치, 두꺼운 카펫 위에 웅크려 있던 카엘이 사슬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엘리자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서늘하게 응수했다."알 것 없어. 네놈은 그저 사슬이나 잘 쥐고 있으면 돼.""거짓말은."카엘이 나른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그런데 며칠 전과는 무언가 달랐다. 소년의 걸음마다 바닥을 짓누르는 기운이 한층 더 묵직해져 있었다. 선이 얇고 청초하던 외껍데기는 그대로였지만, 얇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마른 근육의 선이 전보다 확연히 단단해지고 어깨선이 벌어져 있었다. 피를 빨리고 주술의 충격을 이겨낼 때마다, 소년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늑대의 야성이 빠르게 성숙하고 있는 증거였다."내 체온이 없으면 제대로 읽히지도 않으면서."카엘이 엘리자의 의자 뒷목을 손으로 짚고 상체를 푹 숙였다.소년 특유의 은은하고 달콤한 피 향과 함께, 델 듯이 뜨거운 숨결이 엘리자의 서늘한 귓바퀴를 감싸 안았다. 앳된 얼굴을 한 미소년이 여주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가 되자, 서재 안의 공기가 아찔하게 짓눌렸다."카엘, 선 넘지 마."엘리자가 차갑게 굳어버린 시선으로 고개를 들려 했지만, 카엘의 긴 손가락이 먼저 그녀의 턱 끝을 감싸 쥐었다.손가락 마디마디에 닿는 미소년의 뜨거운 체온. 엘리자의 속눈썹이 찌릿한 전율로 크게 떨렸다. 카엘의 피가 제 몸속에서 끓어오르며, 소년의 손길이 닿은 피부마다 미친 듯한 갈증을 내뿜었다."선은 네가 먼저 넘었잖아."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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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핏빛 흉터와 체온

침실 안을 감돌던 아찔한 침묵을 깬 것은, 카엘의 목덜미에서 흘러내린 한 줄기 피였다.아까 16화에서 엘리자의 허리를 억지로 끌어안고 턱을 틀어쥐며 힘을 준 탓일까. 목에 채워진 주술 구속구가 소년의 야성에 반응해 살점을 다시 한번 기분 나쁘게 태워버린 것이었다."읏…."카엘의 나른했던 눈빛이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앳되고 선이 얇은 미소년의 얼굴 위로 진식은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 소년은 턱을 다물고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이번엔 엘리자의 창백하고 차가운 손가락이 그의 목덜미 상처에 살포시 닿았다."거봐. 무모하게 굴지 말라고 했잖아."엘리자의 서늘한 목소리. 하지만 붉은 눈동자 깊은 곳에는 카엘의 피 향을 맡고 요동치는 본능과, 이상하게도 이 앳된 소년의 상처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기묘한 찰나의 흔들림이 섞여 있었다."치워."카엘이 으르렁거리며 여주의 손을 쳐내려 했다. 하지만 엘리자는 차가운 손가락에 힘을 주어 카엘을 화장대 앞 의자에 강제로 앉혔다."가만히 있어, 말 안 들을 거라면."엘리자는 서랍을 열어 뱀파이어 가문 고유의 차가운 연고와 하얀 천을 꺼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카엘의 시선 아래로 자리를 잡았다. 도도하고 오만했던 순혈 가문의 영애가, 포로로 끌려온 늑대 미소년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기괴하고도 다정한 구도.카엘의 동공이 지독하게 흔들렸다."…뭐 하는 짓이야.""상처 치료."엘리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연고를 얹어 카엘의 부풀어 오른 목덜미를 부드럽게 문질렀다.뱀파이어 특유의 냉기가 닿자 상처의 타는 듯한 통증이 가라앉았지만, 동시에 카엘의 척추를 타고 뜨거운 전율이 밀려 올라왔다. 앳된 소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사정없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증오해야 할 원수. 자신에게 사슬을 채운 차가운 뱀파이어.하지만 지금 제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서늘한 손길은, 괴로울 만큼 다정하고 매혹적이었다."네가 죽으면 내 저주를 진정시킬 약이 사라지니까."엘리자가 소년의 목에 천을 둘러 묶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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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이름을 부른 대가

"엘리자."그녀의 이름을 부른 소년의 입술은 더없이 낮고 짙었다.자신의 이름을 머금은 카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자, 엘리자는 순간 숨을 멈췄다. 포로, 짐승, 혹은 차가운 '이 여자'라 부르며 으르렁거리던 소년이 처음으로 꺼내 놓은 제 이름. 그 담백하고 서늘한 울림이 가슴 깊은 곳을 찌릿하게 할퀴고 지나갔다.엘리자는 꿇었던 무릎을 일으켜 세우며 카엘의 손길을 뿌리치듯 고개를 틀었다."언제부터 내 이름을 함부로 머금으라 허락했지?"서늘하게 떨리는 목솟림. 도도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쿨톤의 얼굴 위로 옅은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카엘은 소소하게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화장대 의자에 앉은 채 긴 다리를 꼬며, 아래에서 여주의 동요를 가만히 감상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빛나는 깊고 투명한 눈동자에 묘한 가학심과 예리한 야성이 번뜩였다."허락?"카엘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소년의 목에 둘러진 하얀 천과, 그 위로 채워진 주술 사슬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사슬 소리를 냈지만, 소년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소년은 엘리자를 벽으로 바짝 몰아세웠다.앳되고 선이 예쁜 얼굴. 하지만 바짝 밀착해 오는 소년의 얇은 가슴팍에서는 방금 전 치료받은 늑대의 뜨거운 체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엘리자의 서늘한 옷가지 너머로 카엘의 단단한 가슴이 닿았다."이름 부르는 게 왜, 엘리자."카엘이 여주의 귀밑에 입술을 거의 닿을 듯 밀착하며 소란스럽게 읊조렸다. 소년 특유의 나른하고 더운 숨결이 여주의 피부에 퍼졌다."네가 날 묶어뒀고, 네가 날 치유해 줬잖아. 그런데 왜 이름을 못 불러?""카엘… 너 지금 선을 넘고 있어."엘리자가 손을 올려 소년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카엘의 손가락이 엘리자의 긴 손가락 마디 사이로 파고들어, 그녀의 손을 그대로 벽에 짓눌러 고정해 버렸다. 깍지를 낀 채 벽에 묶인 두 사람의 손."선 같은 건 처음에 네가 먼저 넘었지."카엘의 나른한 목소리가 엘리자의 귓가를 스쳤다."내 목덜미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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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봉쇄된 밤

요란한 종소리가 핏빛 달이 뜬 밤하늘을 찢발겼다.영지 외곽을 에워싼 숙부 빅토르의 사병들과 마르쿠스 백작의 결계사들이 가문의 영주관을 완벽히 봉쇄하기 시작한 신호였다. 대심판정에서의 모욕을 갚고, 엘리자와 카엘의 신변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늙은 뱀들의 발악이었다.침실 안의 더운 온기가 비상 경보의 차가운 진동으로 순식간에 식어갔다.벽에 밀착된 채 카엘과 깍지를 끼고 있던 엘리자가 먼저 서늘하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카엘의 손을 거칠게 털어내며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을 걷어내자, 저택 외곽 산맥을 따라 푸른빛의 차단 결계가 장막처럼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결계… 외부와의 연락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거군."엘리자의 서늘한 쿨톤 피부 위로 차가운 분노가 감돌았다.카엘은 깍지가 풀린 손가락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여주의 서늘한 체온이 지워진 손 끝에 묘한 아쉬움이 맴돌았지만, 소년은 이내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철컥.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쥐고 엘리자의 뒤로 조용히 다가온 카엘. 앳되고 선이 예쁜 미소년의 얼굴에는 겁먹은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제 안의 늑대 피가 끓어오르는 듯, 깊고 투명한 눈동자가 핏빛으로 젖어 들고 있었다."어차피 예상했던 일잖아, 엘리자."소년의 나른하면서도 날이 선 목솟림이 엘리자의 귓가를 간지럽혔다."늙은 뱀 놈들이 쥐새끼처럼 구석으로 몰아넣고 껍데기를 벗기려 드는 거.""알아. 하지만 마르쿠스가 직접 결계를 친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엘리자가 돌아섰다. 창백한 얼굴 위로 흐르는 단호함."마르쿠스의 주술은 뱀파이어의 마력을 마비시켜. 지금 이 상태로 밖으로 나가면 난 마력을 절반도 쓰지 못해.""그래서?"카엘이 허리를 숙여 엘리자의 얼굴 코앞까지 다가왔다. 미소년 특유의 청초함 뒤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체온과 피 향기."마력이 마비되면, 또 내 피에 의존해야겠네?""카엘.""날 사냥개로 채워둔 대가를 치러, 이 여자야."카엘의 가녀린 손가락이 엘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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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결계 속의 흡혈

카엘이 찢어발긴 셔츠 깃 너머로 드러난 목덜미는 거칠고도 아름다웠다.방금 전 치료해 준 하얀 천 아래로 늑대 소년 특유의 뜨거운 혈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피 향이 코끝을 강렬하게 찌르자, 엘리자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저주의 고통을 압도하는 지독한 허기감이 폭발했다."…후회하게 될 거야, 카엘."엘리자의 서늘하고 창백한 손가락이 카엘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내가 후회할지, 네가 내 피에 완전히 미쳐버릴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카엘이 시크하게 비웃는 순간, 엘리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년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아… 읏!"카엘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선이 얇고 매끈한 미소년의 목덜미를 타고 엘리자의 붉은 입술이 밀착되었다. 뜨겁고 달콤한 늑대 왕가의 피가 엘리자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마르쿠스의 결계 때문에 마비되어 가던 그녀의 뱀파이어 마력이 거짓말처럼 붉은 폭풍이 되어 다시금 끓어올랐다.통증 너머로 몰려오는 기이한 전율. 카엘은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엘리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자신의 피를 집어삼키며 숨을 몰아쉬는 이 오만한 여자의 체온. 서늘했던 그녀의 몸이 제 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때마다, 카엘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는 거부할 수 없는 집착으로 물들어갔다."하아… 하."엘리자가 입술을 떼어내자, 소년의 목덜미에 붉은 피가 은은하게 흘러내렸다.피를 삼킨 엘리자의 붉은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치명적이고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력이 완벽히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카엘의 '각인의 피'가 그녀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소년의 존재를 각인시킨 직후였다."준비는 끝났어."엘리자가 차가운 손가락으로 입가에 묻은 핏방울을 닦아내며 시크하게 읊조렸다.카엘은 목의 상처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바닥에 놓여 있던 단단한 쇠사슬을 쥐고 엘리자의 옆에 바짝 다가섰다."늙은 뱀 놈들의 목을 꺾으러 가지, 내 오만한 주인님."콰앙—!엘리자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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