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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하나를 만든 사람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1 12:07:35

윤서린.

이름이 드러난 순간 민유리는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공개 일정이 있을 때마다 팬들의 줄을 정리하고, 위험하게 밀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달려와 막던 직원이었다. 웃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적어도 맡은 일은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칠 주년 전시회 마지막 날에도 윤서린은 소속사 관계자 자격으로 찾아왔다. 루미너스 멤버들에게 전달할 편지와 선물을 확인한다는 이유였고, 유리는 그녀에게 직접 은색 스태프 팔찌를 건넸다.

그때 나눈 말은 짧았다.

전시회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시온 씨가 좋아해 주시면 좋겠네요.

윤서린은 전시장 안을 천천히 둘러본 뒤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유리는 촬영 일정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났고, 이후 마주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사진 속 윤서린은 분명 은색 팔찌를 차고 있었다.

“시온아.”

정태준이 휴대전화를 가까이 당겼다.

“윤서린 대리 지금 어디 있지?”

—오늘 회사에 안 나왔어. 어젯밤 늦게 몸이 안 좋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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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보지 말아야 할 사진

    화면 속 321번 사진은 확대할수록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유리온실 뒤편의 좁은 통로, 빗물이 맺힌 유리벽,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커튼 사이에서 오현석은 서한나의 뺨을 감싸고 있었다. 입술이 맞닿은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지만 요란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나 익숙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에 가까웠다. 현석의 다른 손은 한나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팔꿈치 아래를 받치고 있었고, 한나는 놀란 기색 없이 그의 재킷 깃을 붙들고 있었다.“이건 우연히 한 번 입 맞춘 사람들이 아닌데요.”유리의 말에 태준이 화면 오른쪽의 촬영 정보를 확인했다.“결혼식 당일 오후 세 시 사십이 분.”“시간을 묻진 않았어요.”“증거를 볼 때는 기본 정보부터 확인해야지.”“휴가 중인 변호사님 아니었어요?”“친구의 중대한 은폐가 발견됐는데 휴가가 중요해?”유리는 어이가 없어 웃으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아래에는 윤혜림이 남긴 작은 표시가 있었다. 공개 갤러리에 포함되지 않으며, 당사자 동의를 확인하기 전까지 다운로드가 제한되는 사진이라는 뜻이었다. 처음부터 결혼식 전체 사진과 별도로 분류해 둔 모양이었다. 혜림은 우연히 포착한 순간을 신랑 신부에게는 알리되, 사진 속 사람들의 허락 없이 누구도 파일을 가져갈 수 없도록 잠가 두었다.그 표시를 발견하자 유리는 화면을 닫았다.“왜 닫아?”“보면 안 되는 사진이었어요.”“이미 봤는데.”“봤으니까 더 보면 안 되죠. 혜림 작가님도 잠가 뒀고.”태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노트북을 덮었다. 친구를 추궁할 준비가 이미 끝난 얼굴이었다.“현석이가 결혼식 날 나한테 증인 서명을 두 번 확인했어.”“그게 왜요?”“평소보다 말이 많았지.”“긴장해서 그랬겠죠. 자기도 몰래 연애 중이면서 친구 혼인 신고 증인란에 서명하려니까.”“그러고 보니 구청에서도 한나 씨한테 계속 커피를 건넸어.”“그건 현석 씨가 원래 친절해서…….”말끝이 흐려졌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이상한 장면이 한둘이 아니었다.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돌아온 사진의 자리

    공항 체크인 카운터의 저울이 24.7킬로그램을 가리켰다.직원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고, 민유리는 아주 천천히 정태준을 돌아보았다. 태준은 팔짱을 낀 채 문제의 캐리어를 내려다봤다.“내가 카메라는 기내로 들고 타라고 했지.”“카메라는 기내 가방에 있어요.”“그럼 저 안에 뭐가 들었는데.”“렌즈 두 개, 조명 장비, 설치용 장갑, 테이프, 여분 케이블, 프린트 보관함, 옷.”“옷은 마지막이네.”“출장이잖아요.”“신혼여행이기도 하고.”유리는 대답 대신 그의 캐리어를 저울 위로 밀었다. 14.2킬로그램. 어딘지 억울할 만큼 단정한 숫자였다.“정 변호사님 가방에는 뭐가 들었는데요?”“옷, 상비약, 충전기, 네가 놓고 온 멀티어댑터 두 개, 진통제, 위장약, 밴드, 여분 배터리, 우산.”“……내 보호자 가방이에요?”“남편 가방.”태준이 아무렇지 않게 정정했다. 결혼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는 그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묘하게 능숙했다. 유리는 아직도 ‘남편’이라는 말을 속으로 한 번 굴려 본 다음에야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직원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두 분 짐을 합산하면 허용 범위 안입니다.”“다행이네요.”“신혼여행이세요?”유리와 태준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출장입니다.”“신혼여행입니다.”둘의 말이 정확히 겹쳤다. 직원의 미소가 더 환해졌다.“두 가지 다이시군요.”탑승권을 받아 든 유리가 태준의 팔을 툭 쳤다.“왜 혼자 신혼여행이라고 해요?”“왜 혼자 출장이라고 해.”“싱가포르 다큐멘터리 포럼에 초청받아서 가는 거잖아요.”“결혼식 열이틀 뒤에 같이 비행기를 탔고, 일정 뒤로 사흘을 비워 뒀잖아.”“그건 정 변호사님이 멋대로 연차를 길게 낸 거고요.”“대표한테 결재받았으니까 멋대로는 아니지.”“호텔도 내가 잡은 포럼 숙소 그대로면서.”태준은 잠깐 침묵했다. 그 미세한 틈을 유리는 놓치지 않았다.“왜요?”“방은 바꿨어.”“뭘로?”“도착하면 봐.”그의 시선이 지나치게 태연했다. 유리는 눈을 가늘게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결혼 다음 날에도

    민유리가 결혼 다음 날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남편의 얼굴도, 손가락에 돌아온 반지도 아니었다.허리가 움직이는지였다.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보던 유리는 아주 천천히 몸을 옆으로 돌렸다. 등과 허리에 묵직한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안도하며 이불을 끌어 올리는 순간, 뒤에서 팔 하나가 허리를 감쌌다.“어디 갑니까?”잠긴 목소리가 목덜미 가까이에서 들렸다. 유리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팔을 손바닥으로 눌렀다.“안 가요. 시간 보려고.”“휴대전화는 반대쪽에 있습니다.”“그러니까 일어나려고 했죠.”“더 자요.”정태준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그녀의 등을 자신의 가슴에 붙였다. 평소라면 먼저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뉴스까지 확인했을 사람이 오늘은 이불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유리는 그의 왼손을 찾아 손가락을 맞물렸다. 어제 다시 끼워 준 반지가 창문 틈으로 들어온 아침빛을 희미하게 반사했다. 반지 안쪽의 문장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에 닿아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남편.”유리가 시험하듯 부르자 태준의 팔에 바로 힘이 들어갔다.“한 번 더.”“싫어요.”“방금은 왜 불렀습니까?”“잘 자나 확인하려고.”“이제 깼습니다.”“그럼 일어나요.”유리가 몸을 빼려 하자 태준은 허리를 놓는 대신 목덜미에 입술을 눌렀다. 따뜻한 숨이 피부에 닿고, 어젯밤 그의 입술이 머물렀던 자리에 다시 간지러운 감각이 번졌다.“정태준 씨.”“네.”“아침이에요.”“알고 있습니다.”“어제 결혼식 했어요.”“그것도 알고 있습니다.”“피곤하지 않아요?”“피곤합니다.”“그런데 왜 이래요?”그가 느리게 몸을 일으켜 유리의 어깨 너머로 내려다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잠이 덜 깬 얼굴인데도 시선만은 지나치게 선명했다.“남편이라고 불러 놓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호칭 한 번에 반응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요?”“매번 반응하면서 살겠습니다.”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 순간, 태준의 입술이 다시 닿았다.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가장 평범한 날의 약속

    결혼식 날 아침, 민유리는 알람이 울리기 삼 분 전에 눈을 떴다. 특별한 예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옆자리의 정태준이 밤새 세 번이나 뒤척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은 긴장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주장했지만, 평소라면 한 번도 깨지 않고 자는 사람이 새벽 두 시에는 물을 마시러 나갔고 네 시에는 휴대전화를 확인했으며 여섯 시에는 베개를 바로 놓는 척 유리가 잘 자고 있는지 살폈다.유리는 눈을 감은 채 물었다.“지금도 안 떨려요?”옆에서 움직임이 멈췄다.“깼습니까?”“태준 씨가 계속 깨우잖아요.”“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사람이 옆에서 긴장하면 침대가 알아요.”유리가 눈을 뜨자 태준은 이미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그의 왼손 약지에는 전날까지 끼고 있던 반지가 없었다. 결혼식 때 다시 서로 끼워 주기로 하고 두 사람의 반지를 한 상자에 넣어 윤혜림에게 맡겼기 때문이다.그제야 유리는 자신의 손가락도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과 하룻밤인데도 허전했다. 반지 자리에 남은 옅은 자국을 엄지로 쓸자 태준의 시선이 따라왔다.“잃어버린 것 같아요.”“윤 작가님이 보관하고 있습니다.”“알아요. 그런데 손에 없으니까 이상해요.”태준이 유리의 빈 약지를 잡아 입술에 댔다.“몇 시간 뒤에 다시 끼워 주겠습니다.”“긴장해서 떨어뜨리면요?”“그럴 일 없습니다.”“지금 심장 엄청 빨리 뛰는데.”유리가 그의 가슴에 손바닥을 올렸다. 얇은 잠옷 아래로 규칙보다 조금 빠른 박동이 느껴졌다. 태준은 손을 치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손을 겹쳤다.“당신도 빠릅니다.”“저는 긴장한다고 인정했잖아요.”“그러면 나도 인정하겠습니다.”“뭘요?”태준은 유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많이 떨립니다.”그 말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유리는 베개 위에서 조금 가까이 다가가 그의 턱 아래에 이마를 기댔다.“지금이라도 도망가고 싶어요?”“아닙니다.”“저는 조금 도망가고 싶어요.”태준의 몸이 굳었다. 유리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결혼식 말고 준비 과정에서요.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나란히 걷는 사람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다온갤러리 2층의 작은 회의실이었다. 처음 받은 기획안에서는 호텔 스위트룸과 웨딩드레스를 촬영 장소로 제안했지만, 수정된 기획안에는 민유리의 사진이 걸린 전시장과 작업실만 남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도 결혼 반지를 강조하기 위한 꽃 장식 대신 《좋아한다는 마음을 찍는 법》과 싱가포르 전시에 출품할 작품 목록이 놓였다.유리는 자리에 앉기 전 녹음기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인터뷰를 맡은 기자는 삼십 대 중반의 여자였다. 그녀는 먼저 명함을 건네고, 사전에 합의한 질문 외에는 추가 질문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그래도 민 작가님께서 불편하시면 언제든 중단하셔도 됩니다.”“네. 저도 질문에 따라 대답하지 않을 수 있고요.”“물론입니다.”기자가 녹음 버튼을 누르기 전 다시 동의를 구했다. 그 작은 절차만으로도 유리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록하는 자리였지만, 오늘은 무엇을 남길지 미리 알고 있었다.첫 질문은 파리에서 찍은 〈기다리는 사람의 자리〉 연작에 관한 것이었다. 유리는 두 개의 커피잔에서 시작한 작업이 어떻게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가족과 이름을 잃은 사진들로 넓어졌는지 설명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행동이라고 말했다.“사진집 제목이 《좋아한다는 마음을 찍는 법》인데요. 작가님께 사진은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의 표현인가요?”“네. 다만 예전과는 뜻이 많이 달라졌어요.”“어떻게 달라졌나요?”유리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예전에는 오래 바라보면 잘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오래 바라본다는 이유로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많이 안다고 느끼는 순간, 상대의 뜻을 묻지 않고 넘어가기 쉬워지거든요.”“그 변화에는 과거 팬 사진을 촬영하셨던 경험도 영향을 주었을까요?”사전 질문지에는 없던 문장이었다. 질문 자체가 무례하지는 않았지만, 유리는 대답하기 전에 기자를 바라보았다. 기자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그 질문은 하셔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변호사 말고, 내 사람

    청첩장 인쇄본이 도착한 날, 민유리는 현관 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한동안 열지 못했다. 상자 안에 든 것은 종이 오십 장뿐이었다. 이미 시안도 여러 번 확인했고 인쇄 직전에는 정태준과 나란히 앉아 이름의 간격과 글자 크기까지 살폈다. 그런데 막상 실물로 도착하고 나니, 그 종이가 두 사람이 정말 결혼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처럼 느껴졌다.유리는 식탁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사진부터 찍었다. 포장된 상태로 한 장, 칼로 테이프를 가른 뒤 한 장, 청첩장의 모서리가 처음 보이는 순간도 한 장.맞은편에 앉아 있던 태준이 물었다.“언제까지 찍을 겁니까?”“기록하는 중이에요.”“조금 전에는 카메라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연습을 한다고 했잖아요.”“결혼식 날 이야기죠. 오늘은 제가 찍어도 돼요.”“청첩장보다 당신이 먼저 보고 싶습니다.”유리가 카메라를 내렸다.“왜요?”“내 표정이 어떤지 궁금하다면서요.”그제야 유리는 렌즈를 태준 쪽으로 돌렸다. 그는 평소처럼 단정한 셔츠 차림으로 식탁에 앉아 있었지만, 상자 위에 올린 손끝이 아주 조금 굳어 있었다. 유리가 셔터를 누르지 않고 기다리자 태준이 눈썹을 올렸다.“안 찍습니까?”“긴장했어요?”“아닙니다.”“손가락에 힘 들어갔는데.”태준이 상자에서 손을 뗐다.“이제 아닙니다.”“그렇게 숨기면 더 티 나요.”유리는 카메라를 식탁에 내려놓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맨 위에는 인쇄소에서 보호용으로 넣은 얇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걷자 아이보리색 청첩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면에는 온실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작게 인쇄되어 있었다. 유리는 카메라 가방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은 태준과 맞잡고 있었다.청첩장을 펼친 태준이 안쪽의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정태준과 민유리가서로의 가장 평범한 날을 함께 살아가기로 했습니다.그 아래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유리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어때요?”“좋습니다.”“그게 다예요?”“종이를 보고 울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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