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네 이름을 부르는 사이: Chapter 91 - Chapter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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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처음 안기는 날

“화해한 거 맞지?” “네.” 하랑은 기태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작게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서운하고 화가 났는데. 기태가 직접 찾아와 미안하다고 하고, 질투였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자 꽉 막혀 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기태의 손이 천천히 하랑의 등을 쓸었다. 평소보다 오래 이어지는 포옹이었다. 하랑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감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줬다. “오빠.” “응.” “저 오늘 진짜 서운했어요.” “알아.” “집에 오면서도 화났고요.” “응.” “전화 왔을 때도 안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 받았잖아.” “그래도 계속 전화할 줄 알았어요.” 기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안 받는다며.” “그래도 해야죠.” “어렵네.” “첫 연애니까 오빠가 알아서 잘해야 돼요.” “너도 첫 연애잖아.” “그러니까 둘이 같이 배우면 되죠.” 하랑이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기태가 잠시 그녀를 내려다봤다. 울어서 조금 붉어진 눈가. 그 아래를 엄지로 천천히 쓸어주자 하랑의 눈이 자연스럽게 감겼다. 기태의 시선이 입술로 내려갔다. “하랑아.” “응?” “키스해도 돼?” 이미 몇 번이나 했던 키스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질문만으로 심장이 다르게 뛰었다. “네.” 입술이 닿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한 번 닿았다 떨어진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였다. 하랑의 손이 기태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숨이 섞일 만큼 가까워지고, 떨어질 때마다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 기태가 멈췄다. “괜찮아?” 하랑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더 해도 되고?” 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말로 해.” 하랑의 얼굴이 빨개졌다. “……해도 돼요.” 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이번에는 하랑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서툴게 그의 목을 끌어안고 먼저 가까이 다가갔다. 기태의 팔이 허리를 감싸자 몸이 완전히 붙었다. 그 순간 하랑의 어깨가 작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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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처음이라서

“오빠한테 처음 안기고 싶어요.”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기태는 하랑을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붉어진 얼굴. 긴장한 듯 제 셔츠를 꼭 붙들고 있는 손. 기태가 그 손등을 천천히 감싸 쥐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하랑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눈을 감고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몇 번이나 해본 키스인데 오늘은 전혀 달랐다. 짧게 닿았다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이 오래 겹쳐질수록 하랑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으응…….”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소리에 하랑이 움찔했다. 기태가 입술을 떼었다. “왜.” “저 이상한 소리 냈어요.” “알아.” “……못 들은 척해요.” “이미 들었는데 어떻게.” 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창피해.” 기태가 작게 웃으며 다시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하랑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숨이 뒤섞이고, 기태의 손이 허리를 천천히 감싸 당겼다. 몸이 가까워졌다. 평소 포옹할 때와는 달랐다. 옷 너머로 전해지는 서로의 체온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랑의 손이 그의 어깨를 더듬다가 셔츠 깃을 붙잡았다. 손끝이 떨렸다. 기태가 그 손을 잡았다. “긴장돼?” 하랑이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천천히 할게.” 그 한마디뿐이었다. 기태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하랑이 굳을 때마다 기다렸다. 입술이 뺨을 스치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자 하랑의 목이 뒤로 젖혀졌다. 따뜻한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오빠…….” 기태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간지러운 것 같으면서도 아니었다. 몸 안쪽 어딘가가 자꾸 뜨거워졌다. 하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기태에게 더 바짝 붙었다. 그럴 때마다 기태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랑이 익숙해질 만큼 기다렸다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손끝이 옷자락에 닿았다. 하랑의 숨이 순간 멎었다. 기태의 움직임도 같이 멈췄다. 말은 없었다. 그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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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못 보겠어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한동안 들리는 건 서로 조금씩 가라앉는 숨소리뿐이었다. 하랑은 이불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태의 품 안에 완전히 숨어 있었다. 한쪽 팔은 그의 허리를 감고, 얼굴은 넓은 가슴팍에 꾹 묻은 채였다. 기태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긴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랑아.” “…….” “자?” 고개가 작게 움직였다. 도리도리. “안 자네.” “네.” 목소리마저 기태의 가슴에 묻혀 웅얼거렸다. 기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얼굴 좀 봐.” 이번에는 움직임이 더 빨랐다. 도리도리. “싫어요.” “왜.” “못 보겠어요.” “뭘.” “오빠 얼굴이요.” 기태가 웃었다. “아까는 잘 봤잖아.” 하랑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리고 얼굴을 더 깊이 묻었다. “그 얘기 하지 마요.” “무슨 얘기.” “아까 얘기요.” “내가 뭘 말했는데.” “지금 말하려고 하잖아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할 거잖아요.” 기태의 가슴이 낮게 울렸다. 웃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하랑이 그의 옆구리를 손끝으로 살짝 꼬집었다. “웃지 마요.” “안 웃었어.” “가슴이 웃었어요.” “가슴이 어떻게 웃어.” “방금 웃었어요.” 기태는 결국 소리 내 웃었다. 하랑은 더 부끄러워졌다. 조금 전 일이 머릿속에서 자꾸 되살아났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던 것. 긴장해서 기태를 몇 번이나 불렀던 것. 그의 손을 꽉 잡았던 것. 평소라면 절대 내지 않았을 목소리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얼굴이 뜨거워졌다. “오빠.” “응.” “저 오늘 기억 지울래요.” “왜.” “창피해요.” “난 싫은데.” 하랑이 살짝 고개를 들려다 다시 묻었다. “왜요?” “좋았으니까.” “……!” 하랑의 손이 그의 가슴을 툭 쳤다. “그런 말 하지 마요!” “왜.” “부끄럽다고요.” 기태는 웃으면서도 하랑을 안은 팔에 힘을 조금 더 줬다. 그리고 흐트러진 긴 머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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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거기 뭐야?

아침에 눈을 뜬 하랑은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 기태의 가슴이 있었다. 그리고 제 허리를 감고 있는 단단한 팔. 어젯밤 그대로였다. 하랑은 눈만 끔뻑였다. 기억이 하나씩 돌아왔다. 키스했던 것. 침실로 들어왔던 것. 기태를 몇 번이나 불렀던 것. 그리고. “…….” 하랑의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다시 눈을 꾹 감았다. ‘못 보겠어.’ 자는 척해야겠다. 그때 머리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깼지.” 하랑이 움찔했다. “……아니요.” “대답했는데.” “잠꼬대예요.” 기태의 가슴이 낮게 울렸다. 웃었다. 하랑은 눈도 뜨지 않은 채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더 깊이 묻었다. “웃지 마요.” “안 웃었어.” “웃었어요.” “얼굴 좀 봐.” “싫어요.” “어제부터 계속 안 보여주네.” “오늘도 안 볼 거예요.” “출근은?” “……해야죠.” “그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하랑이 이불 속에서 웅얼거렸다. “오빠가 먼저 출근하면요.” “같이 가야지.” “따로 가요.” “왜.” 그걸 정말 몰라서 묻나. 하랑이 겨우 눈만 들어 기태를 봤다가 정확히 일 초 만에 다시 가슴에 얼굴을 박았다. 기태가 웃었다. “봤네.” “안 봤어요.” “봤어.” “못 봤어요.” 결국 출근 준비를 하는 내내 하랑은 기태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세수를 하고 나와서도. 아침을 간단히 먹을 때도.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도. 눈이 마주칠 것 같으면 슬쩍 피했다. 차에 타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랑은 창밖만 봤다. 기태가 운전하며 힐끗 쳐다봤다. “하랑아.” “응.” “나 여기 있어.” “알아요.” “근데 왜 창문하고만 얘기해.” “그냥 바깥 보는 거예요.” “내 얼굴은 언제 볼 건데.” “……나중에요.” “언제.” “몰라요.” 빨간불에 차가 멈췄다. 기태가 하랑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낀 하랑은 더 열심히 창밖만 봤다. 그러면서 손은 슬그머니 센터콘솔 위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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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꺄악!

“너희…….” 로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기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반응에 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요?” 로로는 하랑의 목을 보고 있었다. 기태도 똑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하랑은 영문도 모른 채 제 목 옆을 손으로 만졌다. “진짜 뭐 묻었어요?” “하랑아, 잠깐.” 로로가 목소리를 낮췄다. “너 오늘 거울 안 봤어?” “봤는데요?” “목은?” “목이 왜…….” 말끝이 흐려졌다. 목. 붉은 자국. 그리고 기태. 세 가지가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랑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순간. 어젯밤 기억이 머릿속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기태의 품. 자신을 부르던 낮은 목소리. 목덜미에 닿았던 입술. 그리고 그 뒤로 이어졌던 모든 것. 하랑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어?” 로로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설마.” 하랑은 제 목을 두 손으로 가렸다. 그리고 기태를 봤다. 기태 역시 이제야 자국을 확인한 얼굴이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딱 일 초. “꺄악!!” 하랑이 비명을 질렀다. 사무실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왜, 왜 그래요?” 정훈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랑은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목을 가린 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하랑 씨!” 기태가 불렀지만 이미 늦었다. 하랑은 무작정 뛰었다. 그러다 옆자리 의자에 허벅지를 쿵 부딪쳤다. “악!” 휘청. 이번에는 제 발에 걸렸다. “어어!” 철퍼덕.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무실이 얼어붙었다. 기태가 바로 앞으로 나왔다. “괜찮아?” 또 반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랑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벌떡. 넘어진 지 일 초도 되지 않아 다시 일어났다. “잠깐만.” “안 돼요!” “뭐가 안 돼.” “몰라요!” 하랑은 목을 가린 채 또 달렸다. 이번에는 출입문 옆 파티션에 어깨를 툭 부딪쳤다. “아!” “하랑아!” “괜찮아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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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자꾸 한 주임이 걸리네

여자 화장실 세면대 앞. 하랑은 벌써 십 분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앞으로 끌어내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보이고…….” 왼쪽으로 돌렸다. “또 보여.” 목 옆의 붉은 자국이 문제였다. 그걸 볼 때마다 어젯밤이 생각나는 건 더 큰 문제였다. “아아…….” 하랑이 세면대에 이마를 박으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뭐 해?” “꺄악!” 로로였다. “왜 또 소리를 질러.” “놀랐잖아요.” “사무실에서 두 번이나 부딪히고 넘어져놓고 도망간 애가 할 말이냐?” 하랑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로로는 팔짱을 끼고 그녀의 목을 봤다. 하랑이 얼른 손으로 가렸다. “보지 마요.” “이미 봤어.” “잊어주세요.” “어떻게 잊어. 네가 비명까지 지르고 도망갔는데.” “팀장님!” 로로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안 놀릴게.” “지금 웃고 있잖아요.” “미안. 근데 너무 너답잖아.” 하랑이 울상이 됐다. “이거 어떻게 해요?” 로로가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냈다. “이리 와.” “뭐 하게요?” “가려줄 테니까.” 컨실러를 톡톡 두드리자 붉은 자국이 제법 흐려졌다. 로로가 머리카락까지 앞으로 정리해줬다. “이 정도면 가까이서 안 보면 몰라.” 하랑이 거울을 확인했다. “진짜요?” “어.” 안도한 하랑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거울 속 로로와 눈이 마주쳤다. 로로가 묘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왜요.” “아무것도.” “뭔데요.” “한기태 의외네.” “뭐가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하랑은 입을 꾹 다물었다. 또 걸렸다. 로로가 피식 웃으며 먼저 문으로 향했다. “가자. 그리고 뛰지 마. 아까 무릎으로 제대로 찍었어.” 그제야 하랑도 무릎이 욱신거렸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고개를 든 건 기태였다. 눈이 정확히 하랑의 무릎으로 내려갔다. 하랑은 바로 시선을 피했다. 잠시 후 메시지가 왔다. [무릎 보여줘.] 하랑이 흘끔 기태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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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한 팀장이었어요?

무혁은 멀찍이서 2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랑의 책상 앞에 선 정훈이 무언가를 말하자 하랑이 입을 삐죽였다. 그러다 금세 웃는다. 무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사내역까지 확인해봤다. 근태도 좋고 업무평가도 괜찮았다. 특별한 문제도 없었다. 딸보다 여섯 살 많고. 같은 팀 선배. 성격도 무난하고. ‘……잘 어울리긴 하는데.’ 그래도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봐도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 모습을 자기 자리에서 지켜보던 기태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뒀다가는 일요일 전에 한정훈의 가족관계까지 확인할 기세였다. 게다가 더 이상 멀쩡한 팀원을 오해받게 둘 수도 없었다. 기태가 무혁 앞으로 다가갔다. “상무님.” “네, 한 팀장.”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혁이 기태를 봤다. “지금요?” “네.” “말씀하세요.” 기태가 잠시 주변을 봤다. 1팀과 2팀 직원들이 모두 있었다. 로로는 기태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이미 눈치를 챈 얼굴이었다. 하랑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기태가 다시 무혁을 바라봤다. “이하랑 씨가 만나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하랑의 눈이 커졌다. 로로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혁의 표정은 단번에 진지해졌다. “한 팀장이 압니까?” “네.” “누굽니까?” 기태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접니다.” “…….” 조용해졌다. 정말로. 사무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정훈이 들고 있던 연고를 천천히 책상에 내려놓았다. 민지의 입이 벌어졌다가 이내 다물렸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이렇게 공개할 줄은 몰랐다. 하랑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기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요?” “제가 이하랑 씨와 만나고 있습니다.” 무혁의 시선이 기태에게서 하랑으로 향했다. 다시 기태. 그리고 엉뚱하게 정훈에게까지 갔다. 정훈이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저 아닙니다, 상무님.” 누군가 웃음을 삼켰다. 무혁은 정훈을 한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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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남자친구 데려왔어

일요일 오후. 기태의 차가 하랑의 본가 앞에 멈췄다. 하랑은 안전벨트를 풀면서 뒷좌석을 돌아봤다. 과일이며 선물 상자며 한가득이었다. “오빠.” “응.”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 “처음 가는 거잖아.” “우리 가족 진짜 많은데.” “알아.” “할머니도 있고, 큰아빠도 있고, 큰엄마도 있고, 강진 오빠랑 강욱 오빠도 있고, 아빠도 있고.” 기태가 차 문을 열려다 멈췄다. “하랑아.” “네?” “나도 알아.” “아.” 하랑이 웃었다. “긴장할까 봐 다시 알려준 건데.”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 “저는 우리 집인데 왜 긴장해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하랑은 입술을 한번 꾹 눌렀다. 기태가 그걸 보고 물었다. “안 긴장해?” “……조금?” 기태가 피식 웃었다. “가자.” “네.” 하랑은 오피스텔을 나온 뒤부터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 괜찮다고. 아빠도 회사에서 이미 알았고, 가족들도 기태가 누군지는 알고 있으니 그냥 남자친구라고 인사만 하면 된다고. 그런데 막상 현관 앞에 서니 하랑이 먼저 기태의 소매를 잡았다. “오빠.” “왜.” “손.” 기태가 들고 있던 선물을 한 손으로 옮기고 빈손을 내밀었다. 하랑이 바로 손가락을 끼웠다. “이제 들어가요.” “응.” 하랑이 익숙하게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렸다. “나 왔어!” 거실 안쪽에서 강욱의 목소리가 먼저 날아왔다. “혼자?” “아니!” 하랑이 신발을 벗으며 씩 웃었다. “남자친구랑!” 순간 안쪽이 조용해졌다. 기태가 하랑을 내려다봤다. “왜 그렇게 크게 말해.” “다 들으라고요.” “이미 들었어.” “그렇죠?” 거실로 들어가자 정말 전부 있었다. 백금희가 가장 안쪽 소파에 앉아 있었고 무진과 진화가 맞은편에 있었다. 강진과 강욱도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무혁. 금요일 회사에서 기태와 마주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하랑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태의 손을 잡은 채 앞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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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사귀면 결혼하는 거 아니야?

식사가 시작되고도 하랑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오빠, 이거 먹어요?” “응.” “이것도?” “너 먹어.” “나 이거 싫어하는데.” 기태가 하랑이 밀어놓은 버섯을 봤다. “하나 먹어.” “싫어요.” “하랑아.” 하랑이 입술을 삐죽였다. 결국 버섯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맞은편의 진화가 웃었다. “하랑이 말 듣게 하는 사람이 생겼네.” 무혁이 바로 딸을 봤다. “내가 먹으라고 하면 안 먹으면서.” “아빠는 잔소리잖아.” “기태 씨가 하는 건?” 하랑이 눈을 깜빡였다. “챙겨주는 거?” 무혁의 젓가락이 멈췄다. 강욱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뭐가 다른데?” “달라.” “어떻게?” “그냥 달라.” 기태가 말없이 하랑 앞으로 생선살을 발라놓았다. 하랑은 자연스럽게 집어먹었다. 백금희가 그 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두 사람 만난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 달 정도 됐습니다.” 기태의 대답에 하랑이 얼른 끼어들었다. “근데 좋아한 건 더 오래됐어.” 기태가 옆을 봤다. “그건 왜 말해.” “할머니가 얼마 안 됐다고 생각할까 봐.” “한 달이면 얼마 안 된 거 맞아.” “그래도.” 강욱이 웃으며 물었다. “누가 먼저 좋아했는데?” “오빠가.” “너 아니고?” “좋아한다고 말한 건 내가 먼저인데 오빠가 나 먼저 좋아했어.” 기태가 물잔을 들었다. 하랑이 그를 돌아봤다. “맞죠?” “응.” 하랑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잘 만나나 보네.” “응.” 하랑이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더니 밥을 한 숟갈 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나 오빠랑 결혼할 거야.” 툭. 무혁의 젓가락이 떨어졌다. 강욱은 마시던 물을 급하게 삼켰고 진화의 눈이 커졌다. 무진까지 하랑을 돌아봤다. 기태도 움직임을 멈췄다. 하랑이 가족들을 둘러봤다. “왜?” 무혁이 겨우 입을 열었다. “뭐라고?” “오빠랑 결혼할 거라고.” “하랑아.” “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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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꼭 엄마처럼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진화가 주방으로 향하자 하랑이 벌떡 일어났다. “큰엄마, 내가 도와줄게!” “됐어. 앉아 있어.” “왜? 나도 할 수 있어.” “네가 하면 일이 늘어날 것 같은데.” 강욱의 말에 하랑이 홱 돌아봤다. “나 잘하거든?” “뭘?” “다.” “하나만 말해봐.” “설거지.” “저번에 접시 깼잖아.” “그건 미끄러워서 그런 거야.” “과일 깎다가 손도 베었고.” “칼이 너무 잘 들어서.” “컵 엎은 건?” “컵이 거기 있어서.” 강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컵은 원래 거기 있지.” “시끄러워.” 하랑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기태는 소파에 앉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도 하랑이 덜렁거리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하나씩 꺼내놓는 전적은 생각보다 화려했다. 기태가 하랑을 불렀다. “하랑아.” “네?” “그냥 앉아 있어.” 하랑의 눈이 커졌다. “오빠까지?” “응.” “나 진짜 잘하는데.” “알겠으니까 앉아.” “못 믿는 얼굴인데.” “맞아.” “오빠!” 거실에 웃음이 번졌다. 하랑이 볼을 부풀렸다. “두고 봐요. 내가 과일 가져올 거야.” “하랑아.” 기태가 다시 불렀지만 이미 늦었다. 하랑은 신이 나서 주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큰엄마! 과일 내가—” 발끝이 러그 끝에 걸렸다.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어?” 콰당!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랑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하랑아!” 기태가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났다. 무혁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지만 기태가 더 빨랐다. 몇 걸음 만에 하랑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랑아.” “……응.” “어디 봐.” 기태가 하랑의 팔을 잡았다. 넘어지며 바닥을 짚은 손바닥부터 살폈다. 손목. 팔꿈치. 무릎. “여기 아파?” “안 아파요.” “무릎은?” “괜찮아요.” 대답은 씩씩했다. 그런데 눈에는 벌써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기태의 미간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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