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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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오빠의 여자친구

하랑은 잠시 기태의 품에 기대 있었다. “저는요.” “응.” “비밀연애 안 하고 싶어요.” 기태가 하랑을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공개하고 싶어?” “네.” 고개를 끄덕이던 하랑이 금세 입술을 삐죽였다. “근데 걱정되는 게 있어요.” “뭔데.” “오늘 같은 거요.” “오늘?” “오늘은 진짜 제 잘못이 아니었잖아요.” “응.” “근데 나중에는 진짜 제가 잘못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아직 신입이고, 모르는 것도 많고.” 하랑은 기태의 셔츠 끝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오빠가 제 편을 들어주면요?” “잘못했는데 왜 편을 들어.” 하랑이 눈을 깜빡였다. “안 들어줄 거예요?” “응.” 너무 즉답이었다. “너 잘못이면 네가 사과해야지.” 하랑의 입이 벌어졌다. “와.” “왜.” “남자친구 너무 냉정해.” “그럼 네가 잘못했는데도 잘했다고 해?” “아니요.” “그럼.” “그래도 조금은 감싸줄 수도 있잖아요.” “퇴근하고 감싸줄게.” “회사에서는요?” “혼나야지.” 하랑이 입술을 삐죽였다. 기태가 웃었다. “대신.” “뭔데요?” “네가 한 것보다 더 욕먹게 두진 않아.” 하랑의 표정이 달라졌다. “잘못한 만큼만 책임지면 돼. 누구 여자친구라서 덜 책임질 필요도 없고, 누구 여자친구라서 더 책임질 필요도 없어.” 하랑은 한참 기태를 올려다봤다. “오빠는 그게 돼요?” “해야지.” “저 울어도?” “그건 좀 힘들겠지만.” “헤헤.” “웃지 마.” 하랑이 다시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 그래도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사람들이 오빠한테 뭐라고 하면 어떡해요?” “뭐라고.” “한 팀장이 여자친구라서 감싼다. 이하랑이 상무님 딸이라서 봐준다. 뭐 그런 거요.” 기태의 손이 하랑의 머리 위에 얹혔다. “그건 내가 감당할 일이야.” “그래도 저 때문에 오빠가 난처해지는 건 싫어요.” “하랑아.” “네.” “연애 혼자 해?” “아니요.” “그럼 왜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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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제일 먼저 말해야 할 사람

하랑의 표정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아빠…….” “응.” “회사에 공개하면 아빠 귀에도 바로 들어가겠죠?” “아마도.” “아마도가 아니라 무조건이잖아요.” 하랑이 기태의 품에서 슬그머니 떨어졌다. 아까까지 공개연애를 하겠다며 신나 있던 얼굴은 어디 가고 없었다. “어떡하지?” “뭘.” “아빠요.” “말해야지.” 하랑의 눈이 커졌다. “누가요?” “우리가.” “우리?” “응.” 기태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회사에서 알게 하는 것보다 우리가 먼저 말씀드리는 게 맞아.” 하랑은 입을 꾹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너무 맞는 말이라 문제였다. “오빠.” “응.” “우리 아빠 무서워요?” 기태가 잠시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안 무서워.” “그럼 밖에서는요?” “네 아버지로 만나본 적이 없잖아.” 하랑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빠 딸 문제에는 완전 다른 사람인데.” “알 것 같아.” “어떻게 알아요?” 기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사 초부터 딸이 울었다는 말에 직접 내려오던 사람이었다. 등산에서 하랑이 다쳤을 때도 그랬고. 무엇보다. ‘우리 하랑이 좀 잘 잡아줘요.’ 그 부탁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 신입사원을 잘 잡기는커녕 사귀고 있었다. 기태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한숨 쉬어요?” “그냥.” “벌써 무서워졌죠?” “아니.” “맞는 것 같은데.” “하랑아.” “네.” “언제 말씀드릴까.” 하랑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진짜 말하게요?” “공개하고 싶다며.” “그렇긴 한데.” “상무님이 다른 직원한테 듣게 할 수는 없잖아.” 그건 하랑도 싫었다. 자기 연애를 아빠가 회사 소문으로 처음 알게 되는 건 더 이상했다. “그럼 제가 먼저 말할까요?” “같이 말씀드려.” “같이요?” “응.”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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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설마 쟤야?

월요일 아침. 출근한 하랑은 평소와 똑같았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기태가 출근했을 때도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네. 좋은 아침입니다.” 완벽했다. 눈도 오래 마주치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하랑은 속으로 뿌듯했다. 역시 회사에서는 잘할 수 있다. 문제는 기태가 자기 자리를 지나간 뒤였다. 하랑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정훈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이하랑 씨.” “네?” “입꼬리 내려요.” 하랑이 화들짝 놀라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올라갔어요?” “엄청.” “티 났어요?” “엄청.” “어떡해.” 정훈이 웃음을 참았다. “둘이 공개한다면서요.” 하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아셨어요?” “한 팀장님이 아침에 말해줬는데요. 상무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공개하기로 했다고.” 하랑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헤헤.” “그러니까 그 헤헤부터 좀 어떻게 해봐요.” “이게 마음대로 안 돼요.” 두 사람이 작게 웃었다. 그때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무실로 들어온 무혁이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오다 멈췄다. 시선이 정확히 한곳에 꽂혔다. 하랑.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정훈. 둘이 웃고 있었다. 무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젯밤 하랑에게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다. 남자냐? 읽고도 대답하지 않았던 딸. 요즘 휴대폰만 보면 헤죽거리고. 지난번 본가에서도 끝까지 비밀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남직원과 저렇게 웃고 있다. 무혁의 시선이 정훈에게 천천히 내려앉았다. ‘……쟤야?’ 아무것도 모르는 정훈은 하랑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거 수치 하나 빠졌어요.” “어디요?” “여기.” 하랑이 모니터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정훈도 옆에서 화면을 봤다. 무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너무 가깝다. “한 주임.” 정훈이 화들짝 돌아봤다. “네, 상무님.” “뭐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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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질투도 하네?

무혁은 한동안 기태를 바라봤다. “한 주임이랑 연애하는 것 같아요.” 기태는 입술 안쪽을 한번 깨물었다. 웃으면 안 됐다. 절대로. 무혁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아까 나란히 붙어서 이야기하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리기는 하던데…….” 기태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렇습니까.” “키도 적당하고. 인상도 나쁘지 않고.” “……네.” “한 주임 일도 잘한다고 했죠?” “네.” 무혁은 또 심각하게 생각했다. 기태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인이 남자친구라고 지금 말해야 하나. 하지만 하랑과 같이 말하기로 했다. 무혁이 먼저 손을 내저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나가보시죠.” “네, 상무님.” 기태가 돌아서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뒤에서 무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인사과죠?” 기태의 손이 멈췄다. “한정훈 주임 인사내역 좀 가져오세요.” “…….” “입사 때부터 현재까지요. 인사평가하고 부서이동 내역도 같이요.” 잠깐의 침묵. “아니, 무슨 일 있는 건 아닙니다.” 무혁이 헛기침했다. “그냥 업무적으로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요.” 기태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업무적. 절대 아니었다. “아, 그리고.” 또 이어졌다. “징계받은 거 있으면 그것도 같이요.” 기태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왔다. 이번 일요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주임님이 제 초콜릿 먹었잖아요!” “하랑 씨가 먹으라고 줬잖아요.” “하나 먹으라고 했지 두 개 먹으라고 했어요?” “두 개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그걸 말을 해야 알아요?” 하랑과 정훈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초콜릿 봉지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정훈이 마지막 하나를 집으려 하자 하랑이 잽싸게 먼저 낚아챘다. “이건 제 거예요.” “치사하게.” “두 개나 먹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죠.” “다음에 사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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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왜 또 한 주임이야

점심시간이 되자 정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 뭐 먹습니까?” 하랑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저 돈가스요.” “어제도 돈가스 먹었다면서요.” “어제랑 오늘은 다르잖아요.” “돈가스가?” “날짜가요.” 정훈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매일 먹어도 되겠네요?” “그건 싫어요.” “왜요?” “질리니까.” “이하랑 씨 논리는 진짜 모르겠다.” 둘이 또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기태는 모니터를 보면서도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랬다. 초콜릿 하나 가지고 싸우더니 이제는 점심 메뉴였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모습인데. 로로에게 질투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괜히 신경 쓰였다. “팀장님.” 하랑이 불렀다. 기태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돈가스 어때요?” “상관없습니다.” “그럼 돈가스!” 정훈이 바로 반박했다. “저는 국밥.” “주임님은 아까 아무거나 좋다면서요.” “갑자기 국밥이 먹고 싶어졌어요.” “돈가스.” “국밥.” “돈가스.” “국밥.” 기태의 미간이 좁아졌다. “둘 다 그만하세요.”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로로가 입술을 깨물었다. 또 시작이다. 결국 1팀과 2팀 직원 몇 명이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돈가스로 결정됐다. 하랑은 신이 났고 정훈은 끝까지 투덜거렸다. “다수결도 안 했는데 왜 돈가스입니까.” “팀장님이 된다고 했잖아요.” “그건 상관없다고 한 거지 돈가스 먹고 싶다고 한 게 아니잖아요.” “똑같죠.” “어디가요?” 하랑이 키득거리며 정훈의 팔을 툭 쳤다. 기태의 시선이 정확히 그 손으로 내려갔다. 툭. 정말 별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왔다. 로로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또 본다.” “뭘.” “하랑이 손.” “안 봤어.” “봤어.” 기태는 대꾸하지 않고 앞서 걸었다. 식당에 도착해서도 문제였다. 하랑이 빈자리를 발견하고 먼저 앉았다. 정훈이 자연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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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그걸 왜 먹여줘

야근이 확정된 건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1팀과 2팀 모두 샘플 일정 때문에 남게 됐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사무실로 간식이 도착했다. 샌드위치와 과일, 작은 디저트까지 잔뜩이었다. 민지가 상자를 열며 감탄했다. “역시 상무님.” 하랑이 냉큼 달려왔다. “우와. 맛있겠다.” “상무님이 보내신 거래요.” 하랑이 괜히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 아빠가 이런 건 잘해요.” “이하랑 씨.” 기태의 목소리에 하랑이 화들짝 주위를 봤다. 다행히 다들 간식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 상무님이요.” 로로가 피식 웃었다. “공개한다더니 아직 안 했어?” 하랑이 작게 속삭였다. “아빠한테 먼저 말해야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훈만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랑이 돌아봤다. “주임님, 안 먹어요?” “이것만 정리하고요.” “다 없어져요.” “먼저 먹어요.” “빨리 와요.” “오 분만.” 하랑은 샌드위치를 한입 먹다가 정훈을 다시 봤다. 여전히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결국 접시 하나를 들고 정훈의 자리로 갔다. 기태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주임님.” “네.” “아.” “뭐가 아예요.” 하랑은 작은 샌드위치 조각을 집어 정훈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맛있어요.” “놔두면 먹는다니까요.” “식으면 맛없잖아요.” “샌드위치가 뭘 식어요.” “아, 빨리요.” 정훈은 양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먼저 먹어요.” “그러다 다 먹고 나면 후회한다니까.” 하랑은 아예 샌드위치를 정훈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아.” 정훈이 황당하게 쳐다봤다. “왜 하랑 씨가 입을 벌려요?” “빨리 먹으라고요.” “애도 아니고.” “아.” 결국 정훈이 웃으며 입을 벌렸다. 하랑이 냉큼 넣어줬다. “맛있죠?” “네. 맛있네요.” 그 순간. 탁. 기태가 들고 있던 펜이 책상 위에 떨어졌다. 로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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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처음 싸운 날

정훈은 결국 간식 테이블 앞으로 왔다. “샌드위치 어디 있어요?” “이거요.” 하랑이 냉큼 하나를 집어 건넸다. “아까 먹은 게 이거예요.” “과일도 먹어야겠다.” “딸기 맛있어요.” 하랑은 이번엔 딸기가 담긴 접시까지 정훈 앞으로 밀었다. 기태는 그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아침부터였다. 초콜릿. 점심 자리. 돈가스. 그리고 지금은 간식까지. 평소 같았으면 같은 팀 선후배가 친하다고 생각하고 넘겼을 일들이 이상하게 하나씩 거슬렸다. 더군다나 조금 전에는. 직접 먹여주기까지 했다. “주임님, 이것도 먹어봐요.” 하랑이 작은 디저트 하나를 집었다. “이건 뭔데요?” “몰라요. 근데 맛있어요.” “모르는 걸 왜 줘요.” “제가 먹어봤으니까요.” “그럼 하랑 씨나 먹어요.” “싫어요. 너무 달아요.” “그걸 나한테 줘?” “주임님 단 거 좋아하잖아요.” 하랑이 웃었다. 정훈도 웃었다. 기태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놨다. 탁. 이번에는 소리가 조금 컸다. 로로가 슬쩍 기태를 봤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진짜 터지겠는데.’ 민지도 눈치를 챘는지 하랑을 불렀다. “하랑아,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 “잠깐만요. 정훈 주임님 이것만 주고요.” 하랑은 아무것도 몰랐다. 정훈에게 디저트를 건네고 다시 물었다. “커피도 가져다줄까요?” “됐어요. 내가 가져올게요.” “어차피 저 가는 길인데.” “이하랑 씨.” 기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랑이 돌아봤다. “네, 팀장님.” “그만 좀 하세요.” 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뭘요?” “한 주임 챙기는 거요.”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하랑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왜요?” “본인 일이나 하세요.” “제 일 다 했는데요.” “다 했다고 남의 것까지 챙겨야 합니까?” 목소리가 평소보다 딱딱했다. 하랑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냥 같이 간식 먹는 건데요.” “같이 먹는 거랑 계속 따라다니면서 챙기는 건 다르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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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없는 놈, 넘치는 놈

기태가 승철에게 연락을 받은 건 퇴근 직전이었다. [오늘 술 한잔할래?] 평소 같으면 거절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답했다. [그래.] 하랑은 이미 먼저 퇴근했다. 같이 가자는 메시지에도 혼자 가겠다고 했고, 그 뒤로는 연락이 없었다. 기태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한 시간 뒤. 승철과 기태는 회사 근처 조용한 술집에 마주 앉았다. 승철이 소주잔을 채우며 물었다. “무슨 일 있냐?” “없어.” “표정이 있는데?” “너나 말해. 술 마시자며.” 승철이 한숨부터 푹 쉬었다. “방실이가 이상해.” “왜.” “질투를 안 해.” 기태가 잔을 들다 멈췄다. “뭐?” “질투를 안 한다고.” 승철은 진지했다. “오늘 민원실에 전에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이 왔거든. 반갑다고 내 팔도 잡고, 점심 먹자고 하고.” “그래서?” “방실이가 옆에 있었어.” “근데.” “아무렇지도 않아.” 승철이 답답한 듯 술을 마셨다. “오히려 나한테 그러더라. 친한 사람이면 점심 먹고 오라고.” 기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승철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물어봤어. 다른 여자가 나한테 저렇게 해도 아무렇지도 않냐고.” “뭐래.” “응. 왜? 이러더라.” “…….” “내가 질투 안 나냐고 물었더니.” 승철이 방실의 말투를 흉내 냈다. “오빠가 그 사람이랑 사귈 거 아니잖아.” 기태가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네.” “너도 지금 웃기냐?” “그럼 뭐라고 해야 되는데.” “그래도 여자친구면 조금은 신경 쓰여야 되는 거 아니냐?” “믿는 거겠지.” “믿는 거랑 질투는 다르잖아.” 승철이 억울한 얼굴로 잔을 내밀었다. “나는 방실이가 남자 동료랑 웃으면서 얘기만 해도 신경 쓰이는데.” 기태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남자 동료. 웃으면서 이야기. 오늘 하루 종일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정훈과 웃던 하랑. 초콜릿. 돈가스. 그리고 샌드위치를 직접 입에 넣어주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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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로로한테 물어보자

승철이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한참 생각했다. “근데 우리 둘이 얘기해봤자 답 안 나오겠다.” 기태가 눈을 들었다. “뭐가.” “질투.” “됐어.” “나는 안 해줘서 서운하고, 너는 너무 해서 싸우고.” 승철이 휴대폰을 집었다. “여자한테 물어보는 게 빠르겠다.” “누구한테.” “로로.” 기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갑자기?” “왜. 싫어?” “싫을 건 없는데.” 승철은 잠깐 기태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너 이제 로로한테 감정 없잖아.” 기태는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없어.” “그럼 됐네.” 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 한때 삼 년을 만났고 같이 살았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의 기태에게 로로는 더 이상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승철은 곧장 로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 수화기 너머로 로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 가는 중. 왜?” “술 마실래?” “너 혼자?” “기태랑.” 잠깐 조용해졌다. “둘이 왜 술을 마셔?” “연애 상담.” “……둘이?” “어.” 로로가 웃었다. “벌써 웃긴데?” “올 거야, 말 거야.” “어딘데.” 승철이 가게 이름을 알려줬다. 전화를 끊은 뒤 기태가 물었다. “장혁은?” “로로가 알아서 말하겠지.” “너 요즘 로로만 부른다?” “혁이 불러서 뭐 하게. 여자 마음 물어볼 건데.” 승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혁이 오면 백 퍼센트 우리 놀리기만 해.” 그건 기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삼십 분쯤 지나 로로가 술집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맞은편에 앉았다. “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누구부터 망했어?” 승철이 기태를 가리켰다. “얘.” 기태가 바로 승철을 가리켰다. “얘.” “둘 다네.” 로로가 잔을 하나 챙겼다. “뭔데.” 승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방실이가 질투를 안 해.” “좋은 거 아니야?” 승철의 얼굴이 바로 구겨졌다. “너도 그러냐?” “뭘 어떡해. 믿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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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처음 화해한 날

술집을 나온 기태는 바로 하랑에게 전화했다. 신호가 길게 갔다.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또 받지 않았다. [하랑아. 자?] 읽음도 뜨지 않았다. [잠깐 내려올래?] 몇 분을 기다려도 그대로였다. 기태는 운전석에 앉아 한참 휴대폰만 내려다봤다. 평소라면 전화 한 통에도 바로 받던 애였다. 그런 하랑이 연락을 피하고 있었다. 결국 시동을 걸었다. 하랑의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을 때도 연락은 없었다. 기태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신호가 몇 번 가지 않아 끊겼다. 거절. “……많이 화났네.” 기태는 차에서 내렸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다. 메롱이를 보러 몇 번 드나들면서 하랑이 알려준 번호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현관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반응이 없었다. 한 번 더 눌렀다. 잠시 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구세요?” “나.” 조용해졌다. “하랑아.” 몇 초 뒤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하랑이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잠옷 차림에 긴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다. 눈가가 살짝 부어 있었다. 기태의 표정이 굳었다. “울었어?” “아니요.” “울었네.” “안 울었어요.” “눈 부었어.” 하랑이 입술을 삐죽였다. “오빠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누구 때문에 울었는데.” “……오빠 때문에요.” 기태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하랑의 눈이 살짝 커졌다. “회사에서 화낸 거.” “…….” “내가 잘못했어.” 하랑은 문을 조금 더 열었지만 여전히 비켜주지는 않았다. “저 진짜 뭐 잘못한 줄 알았어요.” “알아.” “주임님 간식 챙겨준 게 그렇게 잘못이에요?” “아니.” “근데 왜 화냈어요?” 기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로로와 승철의 말이 떠올랐다. 하랑인데? 말 안 하면 모른다. 기태는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질투해서.” 하랑이 눈을 깜빡였다. “네?” “질투했다고.” “오빠가요?”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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