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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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물고기보다 신난 사람

수족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하랑의 눈이 커졌다. “우와.”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다. 커다란 입구 위로 물고기 모양 장식이 움직이고 있었고, 안쪽에서는 푸른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왔다. 하랑은 입구를 올려다보다 기태를 돌아봤다. “팀장님, 빨리요.” “표부터 사야죠.” “네.” 대답은 했는데 몸은 이미 매표소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태가 뒤에서 불렀다. “뛰지 마요.” 하랑의 걸음이 뚝 멈췄다. 뒤를 돌아봤다. “안 뛰었어요.” “뛰려고 했잖아요.” “빨리 걸은 거예요.” “천천히 걸어요.” “네에.” 하랑은 속도를 줄였다. 딱 다섯 걸음. 다시 빨라졌다. 기태가 웃으며 뒤를 따라갔다. 표를 사고 입장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하랑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입구 안을 기웃거렸다. 안내판을 봤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그러다 갑자기 기태의 팔을 잡았다. “팀장님.” “왜요.” “펭귄 있어요!” “아까부터 펭귄 찾더니 있네요.” “수달도 있어요.” “네.” “상어도 있어.” “수족관이니까요.” “해파리도 있어요!” 기태가 하랑을 내려다봤다. “그것도 수족관이니까 있겠죠.” “팀장님은 안 신나요?” “신납니다.” “하나도 안 신나 보여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랑이 잠깐 생각했다. “저처럼요.” “하랑 씨처럼 어떻게요.” 마침 입장 안내가 시작됐다. 하랑의 얼굴이 환해졌다. “들어간대요!” 발이 제자리에서 동동거렸다. 오른발. 왼발. 다시 오른발. 기태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걸 해야 합니까?” 하랑도 자기 발을 내려다봤다. “저 이러고 있었어요?” “네.” “몰랐어요.” 그러면서도 발은 멈추지 않았다. 기태가 결국 웃었다. “그렇게 좋아요?” “네!” “아직 물고기 한 마리도 못 봤는데요.” “이제 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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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저 결정했어요

수족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명은 더 어두워졌다. 커다란 수조 안에서는 은빛 물고기 떼가 한꺼번에 방향을 틀었다. “우와…….” 하랑은 기태의 손을 잡은 채 유리 가까이 다가갔다. “팀장님, 봐요.” “보고 있습니다.” “쟤네 어떻게 동시에 움직여요?” “모릅니다.” “한 마리가 먼저 가면 따라가는 건가?” “글쎄요.” “부딪히지도 않아요.” “그러네요.” 하랑은 한참 물고기를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기태는 옆에서 그런 하랑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하랑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또 저 봤죠?” “네.” 이번에는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랑이 웃었다. “물고기 보라니까.” “보고 있습니다.” “저만 보고 있잖아요.” “둘 다 봅니다.” “제가 더 재밌죠?” 기태가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 “네.” “역시.” 하랑은 만족한 듯 다시 수조를 봤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걸었다. 어제 처음 잡았을 때만 해도 신기해서 몇 번이나 내려다봤던 손인데. 오늘은 자연스러웠다. 사람이 많아지면 하랑이 조금 더 가까이 붙었고. 기태는 손을 놓는 대신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럴 때마다 하랑은 괜히 웃었다. “헤헤.” “왜 웃습니까.” “그냥요.” “아까부터 계속 웃는데.” “좋으니까요.” 기태의 입꼬리도 따라 올라갔다. 해파리 수조 앞에 도착했다. 푸른빛 속에서 투명한 해파리들이 천천히 떠다녔다. 이번에는 하랑도 조용했다. 한참을 바라보던 하랑이 슬쩍 옆을 봤다. 기태의 옆얼굴. 다시 해파리. 또 기태. 기태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왜요.” 하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왜 봐요.” 하랑의 입술이 조금씩 올라갔다. “저 결정했어요.” “뭘요.” “부르는 거.” 기태의 시선이 하랑에게 멈췄다. 며칠 전부터 답이 나지 않았던 문제였다. 회사 밖에서 남자친구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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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하랑아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다음 수조로 천천히 걸었다. 하랑은 물고기를 보다가 슬쩍 기태를 올려다봤다. “오빠.” “왜요.” 한 번. “오빠.” “또 왜요.” 두 번. “오빠.” 기태가 결국 걸음을 멈췄다. “왜 자꾸 부릅니까.” 하랑이 배시시 웃었다. “그냥요. 아직 어색해서 자꾸 불러보는 거예요.” “어색한데 왜 계속 불러요.” “계속 부르면 안 어색해지잖아요.” “그런 겁니까.” “네.” 하랑은 만족스럽게 다시 걸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또 입이 열렸다. “오빠.” “……왜요.” “이제 좀 자연스럽죠?” “아직 세 번밖에 안 불렀습니다.” “네 번인데.” 기태가 옆을 봤다. “세고 있었어요?” “당연하죠. 처음이니까.” 처음. 기태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는 일도 하랑에게는 하나씩 전부 처음이었다. 처음 생긴 남자친구. 처음 잡아본 남자친구의 손. 처음 받아본 남자친구의 선물. 그리고 지금은 처음 불러보는 오빠. 하랑은 맞잡은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기태를 빤히 바라봤다. 기태가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 “왜요.” “생각 중이에요.” “뭘요.” “저는 바꿨는데 오빠는 그대로잖아요.” “뭐가요.” “저 부르는 거.” 기태가 잠깐 하랑을 내려다봤다. “하랑 씨가 어때서요.” “이상하진 않은데요.” 하랑은 입술을 삐죽였다. “연애하기 전에도 하랑 씨였잖아요.” “처음에는 이하랑 씨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랑 씨.” “네.” “그럼 이제 다음 거 해야죠.” 기태가 웃었다. “단계가 정해져 있습니까?” “지금 정했어요.” “뭐라고 부르면 되는데요.” 하랑은 잠시 고민했다. “하랑이?” 기태가 먼저 말했다. 하랑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빠도 그렇게 불러요.” “그럼 안 되고.” “큰아빠도.” “또 안 되고.” “큰엄마도 그래요.” 기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가족이 다 부르는 건 안 됩니까?” “오빠는 남자친구잖아요.” “그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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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왜 더 떨리지?

“하랑아.” 하랑의 고개가 바로 돌아갔다. “응?” 대답하고 나서 하랑이 멈칫했다. 기태도 잠깐 그녀를 봤다. 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 방금 응 했어요.” “했네.” “또.” “뭐가.” “반말.” 기태가 웃었다. “말 놓으라며.” “맞는데…….” 하랑은 괜히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상했다. 분명 목소리는 똑같았다. 회사에서 매일 듣던 목소리였고, 조금 전까지도 계속 대화했다. 그런데. ‘왜요’가 ‘왜’가 되고. ‘그렇습니까’가 ‘그래?’가 되고. 자기 이름 뒤에 ‘씨’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그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오빠.” “응.” 또. 하랑이 입을 꾹 다물었다. 기태가 옆을 봤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얼굴로?” “무슨 얼굴인데요?” “할 말 많은 얼굴.” 정확했다. 하랑은 결국 참지 못했다. “오빠는 안 이상해요?” “뭐가.” “나한테 반말하는 거.” “조금 어색하지.” “근데 왜 이렇게 잘해요?” “말 놓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나는 어려운데.” “나한테도 말 놓고 싶어?” 하랑의 눈이 커졌다. “제가요?” “응.” “오빠한테?” “싫으면 하지 말고.” 하랑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건 아직 못 하겠어요.” “왜.” “모르겠어요. 오빠는 오빠라서?” 기태가 웃었다. “그럼 편한 대로 해.” “네.” 하랑은 곧장 대답하고는 다시 물었다. “근데 오빠.” “응.” 또 심장이 쿵. 하랑이 가슴께를 슬쩍 눌렀다. 기태가 그걸 봤다. “왜 그래.” “오빠가 자꾸 응 하잖아요.” “응.” “봐요!” “뭘.” “또 했잖아요.” 기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 마?” “아니요!” 대답이 너무 빨랐다. 기태가 웃었다. 하랑은 빨개진 얼굴로 수조 쪽을 봤다. “계속 해요.” “알았어.” “…….” 또 두근거렸다. 이러다 오늘 하루 종일 심장이 시끄러울 것 같았다. 수족관을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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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조금만 더요

수족관을 나온 뒤에도 데이트는 끝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근처를 걷다가 카페에 들어갔고. 하랑이 예쁜 소품 가게를 발견하는 바람에 한참을 구경했다. 그러다 저녁까지 먹었다. 차에 다시 탔을 때는 이미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오늘 많이 걸었네.” “그러게요.” “발 안 아파?” 하랑이 발끝을 까딱였다. “괜찮아요.” “아까부터 조금씩 느려지던데.” “그걸 봤어요?” “응.” 또. 하랑은 안전벨트를 매다 말고 기태를 봤다. 이제 하루 종일 들었는데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됐다. “왜.” “아니에요.” “또 반말 때문에 그래?” “……조금요.” 기태가 웃으며 시동을 걸었다. 하랑도 따라 웃었다. “근데 좋아요.” “알아.” “어떻게 알아요?” “오늘 몇 번을 말했는데.” “그래도 또 말해주는 거죠.” 기태가 고개를 저었다. “끝이 없네.” “저 원래 질문 많잖아요.” “그것도 알아.” 차가 출발했다. 하랑은 오늘 찍은 사진을 하나씩 넘겨봤다. 수족관에서 찍은 사진. 기태와 처음 찍은 둘만의 사진. 푸른 수조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확대했다가 줄였다. “오빠.” “응.” “우리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갑자기?” “사진 보니까.” 하랑은 휴대폰을 기태 쪽으로 들었다가 운전 중인 걸 깨닫고 바로 내렸다. “나중에 봐요.” “응.” “이거 보내줄게요.” “그래.” “배경 화면 해도 돼요?” 기태가 잠깐 옆을 봤다. “하고 싶으면 해.” “오빠도 해요.” “그건 생각해보고.” “왜요?” “회사에서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아.” 하랑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비밀연애였지.” “벌써 잊었어?” “오늘은 회사 안 갔잖아요.” “내일도 안 가고.” “내일은…….” 말끝이 늘어졌다. 기태가 물었다. “왜.” “내일 본가 가야 돼요.” “그래?” “네. 일요일에는 웬만하면 아빠랑 밥 먹거든요. 큰아빠네도 올 수도 있고.” 기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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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

약속했던 삼십 분을 채우고 다시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하랑은 안전벨트를 풀고도 한참 앉아 있었다. “안 내려?” “내려야죠.” 말뿐이었다. 기태가 웃었다. “아까도 아쉬워서 더 돌았잖아.” “다시 아쉬워졌어요.” “그럼 언제 들어가려고.” 하랑은 대답 대신 기태를 빤히 바라봤다. 오늘 처음 오빠라고 불렀고, 처음 하랑아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심장이 바빴는데. 이제 정말 헤어지려니 또 욕심이 났다. 하랑의 시선이 그의 입술에 잠깐 머물렀다. “오빠.” “응.” “저 갈게요.” “그래. 들어가.” 하랑은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그리고 갑자기 기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쪽. 입술이 짧게 닿았다. 기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작 먼저 입 맞춘 하랑이 더 놀랐다. “잘 자요!” “하랑아.” 대답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후다닥 오피스텔 안으로 사라졌다. 기태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 입술을 한번 쓸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저러려고 안 갔네.” 다음 날 본가 식탁. 하랑은 아침부터 헤죽거렸다. 밥을 먹다가 웃고. 물을 마시다가 웃고. 휴대폰을 한번 확인하고 또 웃었다. “헤헤.” 무혁이 결국 젓가락을 멈췄다. “하랑아. 뭐 좋은 일 있어?” “아니?” 강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있는데.” “없어.” 강진도 하랑을 빤히 봤다. “얼굴에 다 써 있어.” “뭐가?” “좋은 일.” 하랑은 얼른 입술을 꾹 눌렀다. 그런데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보는 순간 또 풀어졌다. [밥 잘 먹고 와.] “헤헤.” 진화가 웃었다. “하랑이 요즘 수상한데?” 무혁도 슬쩍 휴대폰을 보려 했다. “누구야?” 하랑이 얼른 휴대폰을 가슴에 품었다. “비밀.” “아빠한테도?” “응. 아직은 비밀.” 그 뒤로 질문이 쏟아졌지만 하랑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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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이번에는 다르니까

기태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로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대답을 안 해.” “생각 중이야.”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 기태는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내려놨다. “좋다기보다는.” “응.” “지금은 이게 맞는 것 같아.” 로로의 눈썹이 올라갔다. “비밀로 하는 게?” “응.” “왜?” 기태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하랑이는 신입이고, 나는 팀장이고.” “그건 나도 알아.” “아버지는 상무님이고.” “그것도 알고.” “첫 연애고.” 로로가 피식 웃었다. “그게 제일 크지?” 기태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랑은 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모르는 게 많았다. 회사에서는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퇴근하고는 뭘 해도 되는지. 주말마다 만나도 되는지. 전화를 매일 해도 되는지.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해도 되는지. 하나씩 묻고. 하나씩 알아갔다. “굳이 서두를 필요 없잖아.” 로로가 한동안 기태를 바라봤다. “많이 달라졌네.” “뭐가.” “너.” 기태의 눈썹이 움직였다. 로로가 웃었다. “나랑 사귈 때 기억 안 나?” “기억나.” “내가 회사에는 좀 있다가 말하자고 했잖아.” “……응.” “근데 네가 먼저 말했지.” 그때의 기태는 확실한 걸 좋아했다. 사귀면 사귀는 사이였고. 숨겨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굳이 감출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로로가 원했던 속도보다 먼저 나갔다. “그때 너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기태가 로로를 봤다. “기억 안 나.” “사귀는 게 잘못도 아닌데 왜 숨기냐고 했어.” 기태가 작게 웃었다. “그랬나.” “그랬어.” 로로가 팔짱을 꼈다. “근데 지금은 한 달이나 숨기고 있잖아.” “상황이 다르니까.” “그것만?” 기태가 대답하지 않았다. 로로는 그런 기태를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하랑이가 공개하자고 하면?” “해야지.” 대답은 빨랐다. “바로?” “하랑이가 원하면.” 로로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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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분명히 드렸는데요

일이 터진 건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2팀 자리에서 샘플 도면을 확인하던 하랑이 고개를 들었다. 복도 쪽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리더니 생산과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표정부터 좋지 않았다. “이하랑 씨.” “네?” “수정안 왜 안 줬어요?” 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수정안이요?” “어제 넘기기로 한 거요. 생산 들어가야 하는데 수정안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랑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저…… 드렸는데요.” “뭘 줘요. 내가 못 받았는데.” 목소리가 커졌다. 주변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시선이 하나둘 모였다. 하랑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오후에 출력해서 직접 가져다드렸어요.” “나한테?” “네.” “언제요?” “세 시쯤…….” 말끝이 점점 작아졌다.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수정된 치수까지 다시 확인했고. 출력한 서류를 들고 생산과로 직접 내려갔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확신하니 하랑의 기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다른 사람한테 준 건가? 책상에 두고 온 걸 전달했다고 착각했나? “이하랑 씨.” 생산과장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신입이면 더 꼼꼼하게 해야죠. 이거 생산 밀리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죄송합니다.” 하랑의 고개가 바로 숙여졌다. 정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하랑 씨 어제 생산과 내려갔는데요.” “내려온 거랑 내가 받은 거랑 같아요?” 하랑의 손끝이 움찔했다. “제가…… 다시 확인해볼게요.” 급하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파일은 있었다. 수정 시간도 맞았다. 출력 기록도 있었다. 그런데 전달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드렸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떨렸다. 기태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하랑의 눈에 금세 물기가 차올랐다. 자기가 실수한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 전달했나 봐요.” 그 말에 1팀 쪽에 있던 민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생산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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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사과부터 하시죠

하랑은 급하게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자기 실수가 아니었다. 분명 전달했다. 그런데 안도하자 오히려 눈물이 더 차올랐다. “왜 울어요.” 민지가 휴지를 한 장 더 뽑아줬다. “억울해서?” “아니요. 그냥…….” 하랑은 코끝을 훌쩍였다. “제가 잘못한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확인도 안 하고 죄송하다고 하지 마.” 민지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특히 저 과장님한테는.” 정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 저거 한두 번 아니에요.”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생산과장이 다시 올라왔다. 아까보다 기세가 확연히 줄어 있었다. “이하랑 씨.” 하랑이 얼른 일어났다. “네.” “수정안 찾았어요.” “……네.” “다음부터는 서류 놓고 갈 때 말이라도 좀 하고 가요.” 민지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 정훈도 어이없다는 듯 생산과장을 봤다. 하랑은 당황했다. “저 그때 과장님이 통화 중이셔서…….”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확실하게 하자는 거죠.” “잠깐만요.” 기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과장님이 오른쪽에 놓으라고 하셨다면서요.” “그건…….” “이하랑 씨가 수정안을 늦게 전달했습니까?” “아니요.” “잘못된 수정안을 전달했고요?” “그것도 아니죠.” “그럼 생산 일정에 문제가 생긴 원인이 이하랑 씨입니까?” 생산과장의 입이 다물렸다. 기태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아닌 것 같은데요.” “한 팀장, 내가 지금 뭐 하랑 씨 잘못이라고 했어요?” “아까 하셨잖습니까.” 기태의 시선이 생산과장에게 고정됐다. “수정안 왜 안 줬냐고 따지셨고, 생산 밀리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하셨죠.” 하랑이 기태를 바라봤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신입사원이라 더 꼼꼼하게 해야 한다고도 하셨고요.” 생산과장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내가 못 받은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확인부터 하셨어야죠.” 기태가 잘랐다. “저희 팀 실수였으면 제가 책임지고 조치합니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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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회사에서는 안 돼

휴게실 구석에 앉은 하랑은 휴지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울지 말아야지.자기 잘못도 아니었고 사과도 받았다.그런데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왜 자꾸 나와…….”코끝을 훌쩍이는 순간 문이 열렸다.하랑이 고개를 들었다.기태였다.“팀장님?”기태는 아무 말 없이 맞은편에 앉았다.하랑은 얼른 눈물을 닦았다.“저 괜찮아요.”“안 괜찮아 보이는데.”회사였다.둘밖에 없어도 회사였다.그래서 하랑은 팀장님이라고 불렀고 기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진짜 괜찮아요. 제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요.”“알면 됐어.”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반말.기태도 잠깐 멈췄다.하랑은 입술을 꾹 눌렀다.“지금 오빠예요?”“…….”“팀장님이에요?”기태가 한숨처럼 웃었다.“둘 다.”그 말에 하랑의 눈가가 또 붉어졌다.기태의 미간이 좁아졌다.“왜 또 울어.”“몰라요.”“울지 마.”“그렇게 말하면 더 나와요.”결국 눈물이 또 한 방울 떨어졌다.기태의 손이 움직였다가 멈췄다.평소 같으면 이미 닦아줬을 텐데.여기는 회사였다.하랑도 그 손을 봤다.“닦아주고 싶어요?”기태가 어이없다는 듯 봤다.“그걸 지금 물어?”“궁금해서요.”“응.”하랑이 살짝 웃었다.“그럼 됐어요.”“뭐가.”“마음으로 받은 걸로 할게요.”기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울다가도 저런다.“근데 하랑아.”하랑이 움찔하며 문부터 봤다.“오빠!”작게 속삭이자 기태도 자기가 한 말을 깨달았다.하랑이 눈을 크게 떴다.“회사에서는 이하랑 씨라면서요.”“그러게.”“한 달 만에 처음 실수했어요.”“네가 울어서 그래.”그 말에 하랑이 잠깐 조용해졌다.그러다 작게 물었다.“많이 속상했어요?”“응.”“제가 혼난 게요?”“응.”“제가 운 것도?”기태가 하랑을 봤다.“그게 더.”하랑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웃지 마.”“왜요?”“방금까지 울었잖아.”“지금은 좋아졌어요.”“눈은 다 빨개졌는데.”“오빠가 왔잖아요.”기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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