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네 이름을 부르는 사이: Chapter 121 - Chapter 130

246 Chapters

125화. 다친 데는?

점심시간. 회사 건물을 나오자마자 하랑이 기태의 손을 잡았다. 회사 안에서는 팀장님과 신입사원. 건물 밖으로 한 발만 나오면 달라졌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얽혔다. “오빠.” “응.” “오늘 뭐 먹어요?” “먹고 싶은 거.” “나는 오빠가 먹고 싶은 거.” “난 아무거나.” 하랑이 걸음을 멈췄다. “이러면 아무것도 못 정하잖아.” 기태도 멈췄다. “그럼 네가 정해.” “제육볶음.” “가자.” “이렇게 빨리?” “정했잖아.” 하랑이 웃으며 다시 손을 흔들었다. “헤헤.” 기태가 옆을 봤다. “술 깼는데 왜 그래.” “이건 그냥 웃은 거예요.” “어제랑 똑같은데.” “달라요.” 둘은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하랑은 제육볶음을 시켜놓고도 당근부터 골라냈다. 기태의 밥그릇 위로 하나. 또 하나. 기태가 내려다봤다. “회사에서도 이래?” “밖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밖에서는 오빠니까.” 당근 하나가 더 올라왔다. 기태는 말없이 먹었다. 하랑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오빠는 당근 잘 먹어.” “좋아하는 건 아니라니까.” “근데 잘 먹잖아.” “네가 주니까 먹는 거야.” 하랑의 젓가락이 멈췄다. 기태가 제육을 먹다가 봤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 “좋으면 좋다고 해.” “좋아요.” “밥 먹어.” “응.”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려던 하랑이 갑자기 기태의 손을 당겼다. “잠깐만.” “왜.” “우리 살 거 있어요.” “뭐.” 하랑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커피포트.” 기태가 멈췄다. “회사에서 살 거야.” “안 돼.” “왜.” “내가 망가뜨렸잖아요.” “회사 비품이야.” “그래도 벌써 네 번째잖아.” “그걸 자랑처럼 말하지 마.” “자랑 아니거든요.” 결국 하랑은 근처 생활용품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126화. 저도 해볼래요

점심시간이 끝나고 디자인팀으로 돌아오자 하랑이 제일 먼저 탕비실로 향했다. 기태 손에 들려 있던 상자도 어느새 자기가 받아 들었다. “여러분!” 정훈이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민지도 1팀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하랑이 상자를 번쩍 들어 보였다. “새 거 사 왔어요.” 로로가 상자에 적힌 제품명을 확인했다. “벌써?” “제가 직접 골랐어요.” 기태가 뒤에서 정정했다. “고르기만 했습니다.” “계산도 내가 했거든요.” “네.” “회사 앞까지 내가 들고 왔고.” “삼 분.” 하랑이 홱 돌아봤다. “팀장님.” “왜요.” “굳이 시간까지 말해야 돼요?” “정확해야죠.” 정훈이 웃음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봅시다. 디자인팀 다섯 번째 커피포트.” “네 번째 다음이니까 다섯 번째인 거지, 제가 다섯 개 망가뜨린 건 아니에요.” “아직은.” “한 주임님!” 민지가 결국 웃었다. 하랑은 상자를 들고 탕비실로 들어갔다. 포장을 뜯고 새 커피포트를 꺼냈다. 반짝반짝했다. 아무것도 타지 않았고. 우유가 눌어붙지도 않았고. 물 없이 가열된 적도 없는 완벽하게 깨끗한 새 제품이었다. 하랑이 감탄했다. “예쁘다.” 기태는 출입문에 기대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놓고 나와요.” 하랑이 멈췄다. “왜요?” “놓고 나오세요.” “한번 써봐야죠.” “안 됩니다.” “새로 샀는데 잘되는지 봐야 되잖아요.” “다른 사람이 확인할 겁니다.” “누가요?” 정훈이 슬쩍 뒤로 물러났다. 민지도 시선을 피했다. 로로가 팔짱을 꼈다. “나는 구경.” 하랑이 기태를 봤다. “팀장님이요?” “네.” “나도 해볼래요.” “안 돼요.” “왜요?” 기태가 커피포트를 가리켰다. “다섯 번째까지 사고 싶지 않아서요.” “이건 다섯 번째잖아요.” “여섯 번째.” “아.” 잠깐 납득했던 하랑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127화. 나 안 들어가

오후 업무가 한창일 때였다. 하랑의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상무실로 잠깐 와.] 보낸 사람은 무혁이었다. 하랑은 모니터를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아빠가 회사에서 개인적으로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기태가 모니터에서 눈을 들었다. “네.” “상무님이 잠깐 오래요.” “다녀오세요.” “네.” 하랑은 별생각 없이 상무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혁이 서류를 보고 있었다. 하랑은 문을 닫았다. “상무님, 부르셨어요?” 회사인 만큼 호칭부터 달랐다. 무혁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앉아.” “네.” 하랑이 소파에 앉았다. 무혁도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 정말 다친 데 없는 거지?” 하랑이 웃었다. “없어요.” “감전될 뻔한 것도 아니고?” “아니에요. 한 팀장님이 바로 못 만지게 했어요.” “어제는?” “어제?” “냄비 태웠다며.” 하랑의 표정이 멈췄다. “아빠가 그건 어떻게 알아?” 호칭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무혁이 딸을 봤다. “관리실에서 연락 왔어.” “왜 그걸 아빠한테 연락해?” “네 비상연락처가 나잖아.” “아.” 하랑이 입을 다물었다. 무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냄비만 처음도 아니더라.” 하랑의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였다. “그것도 들었어?” “프라이팬, 고구마, 팝콘.” “…….” “오늘은 회사 커피포트.” “그건 이제 쓸 줄 알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무혁의 목소리가 조금 무거워졌다. 하랑의 웃음도 사라졌다. “그럼?” “아빠가 생각해봤는데.” 무혁이 잠깐 말을 골랐다. “오피스텔 정리해.” 하랑이 눈을 깜빡였다. “뭐?” “본가로 들어와.” 이번에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랑은 무혁을 한참 바라봤다. “갑자기?” “갑자기 아니야.” “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128화. 으앙

상무실 문이 닫혔다. 하랑은 그대로 몇 걸음 걸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화가 아직 남아 있었다. 오피스텔을 정리하라니. 본가로 들어오라니. 자기가 어디서 살지까지 아빠가 정하는 건 아니었다. 스물네 살이었다.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고. 생활비도 자기 월급으로 냈다. 실수한 건 자기가 책임지면 됐다. 그러니까. 잘 말한 거였다. 하랑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복도 중간쯤 갔을 때 걸음이 느려졌다.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마지막에 아무 말도 못 하던 얼굴. 하랑의 발이 멈췄다. ‘너무 나쁘게 말했나?’ 가슴이 금세 답답해졌다. 아니야. 하랑은 다시 걸었다. 잘못한 말 아니었다. 걱정하는 건 알지만 자기가 살 곳은 자기가 정한다고 한 것뿐이었다. 그건 말해야 했다. 안 그러면 아빠는 계속 자기를 어린애처럼 볼 테니까. ‘아니야.’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말했다. ‘잘했어.’ 그런데 이상했다. 눈이 뜨거워졌다. 하랑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아…….” 울면 안 되는데. 회사였다. 조금 전까지 아빠한테도 분명하게 말해놓고 나오지 않았나. 여기서 울면 정말 어린애 같았다. 하랑은 눈을 크게 떴다. 깜빡이면 떨어질 것 같아서. 그대로 걸었다. ‘울지 마.’ 입술을 깨물었다.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아빠랑 의견이 조금 달랐던 것뿐이다. 그런데 자꾸 생각났다. 아빠가 상처받았으면 어떡하지. 하랑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아빠가 싫다는 게 아니었다. 본가가 싫다는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도. 큰아빠도. 큰엄마도. 오빠들도 좋았다. 아빠는 더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냥 혼자 해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아빠가 해줬으니까 아빠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야?’ 자기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랑의 걸음이 또 느려졌다. 너무했나. 아빠는 그런 뜻이 아니었을 텐데. 걱정돼서 그런 건데. 어제도 냄비를 태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129화. 처음으로

상무실은 조용했다. 무혁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한동안 서류 한 장 넘기지 못했다. 시선은 자꾸 소파 쪽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하랑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나 본가 안 들어가.’ 딸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단호했다. 울지도 않았고. 입술을 삐죽이지도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빠 팔을 잡고 애교를 부리지도 않았다. 자기 생각을 똑바로 말했다. 무혁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하랑의 독립을 무조건 말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 오피스텔로 나가겠다고 했을 때도 걱정은 했지만 허락했다. 하랑이 원하는 일이었으니까. 아버지 도움만 받고 살고 싶지 않다며 자기 월급으로 생활하겠다고 했을 때도 내버려뒀다. 걱정하면서도 믿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사고가 반복됐다. 프라이팬. 고구마. 팝콘. 어제는 냄비. 오늘은 회사에서 커피포트 때문에 정전까지 났다. 시설팀에서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 가슴부터 철렁했다. 커피포트가 망가졌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건물 정전도 그다음이었다. 가장 먼저 나온 말은 하나였다. “하랑이는요?” 다친 곳이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숨이 쉬어졌다. 무혁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럴 때마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진서련. 소중한 아내를 먼저 보냈다. 잡을 수도 없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었다. 결국 보내야 했다. 그리고 남은 건 어린 하랑이었다. 엄마가 어디 갔냐고 묻던 작은 아이. 그 아이만큼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 아프지 않게. 다치지 않게. 잃어버리지 않게. 그렇게 키웠다. 그래서 가끔 잊었다. 지킨다는 것과 붙잡아두는 건 다르다는 걸. 하랑은 이미 스물네 살이었다. 혼자 살 집을 골랐고. 회사에 들어와 자기 일을 했고. 실수하면 울면서도 다시 출근했다. 연애도 시작했다. 아버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남자를 좋아하게 됐고.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130화. 편애하는 상무님

하랑은 울음을 그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울음소리만 그쳤다. “훌쩍.” 마우스를 움직였다. “훌쩍.” 도면을 확대했다. “훌쩍.” 정훈이 슬쩍 옆을 봤다. 하랑의 코끝은 빨갰고 눈가도 아직 축축했다. 그래도 입술을 꾹 다문 채 일은 하고 있었다. 정훈이 휴지를 두 장 뽑아 내밀었다. “이하랑 씨.” “네.” 목소리부터 코맹맹이였다. “코 닦아요.” “안 나왔어요.” “나올 것 같은데.” 하랑이 휴지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울면서까지 일하지 말고 잠깐 쉬어요.” “안 울어요.” “훌쩍거리잖아요.” “이건 울음 아니고 잔여물이요.” 정훈이 잠시 멈췄다. “눈물에 잔여물도 있어요?” “있어요.” 맞은편에서 민지가 웃음을 참았다. 로로는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그만 놀려. 또 운다.” “안 울어요.” 하랑이 바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코를 훌쩍였다. 기태는 자기 자리에서 말없이 하랑을 보고 있었다. 조금 전보다 진정되기는 했다. 그래도 눈물이 다시 차오를 때마다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이하랑 씨.” 하랑이 고개를 들었다. “네.” “입술 그만 깨물어요.” 하랑의 입술이 떨어졌다. “저 안 깨물었는데.” “깨물었습니다.” “조금.” “하지 마세요.” “네.” 하랑은 다시 모니터를 봤다. 잠시 후. 또 입술이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기태가 쳐다봤다. 하랑이 눈치를 채고 얼른 입술을 내밀었다. 기태는 한숨처럼 웃었다. 그때 디자인실 문이 열렸다. “간식 왔습니다.” 직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무혁이 서 있었다. 양손에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하랑의 손이 멈췄다. 눈이 마주쳤다. 무혁도 잠깐 멈췄다. 딸의 눈이 아직 빨갰다. 코끝도. 가슴이 다시 묵직해졌다. 그래도 회사였다. 무혁은 평소처럼 말했다. “오후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PREV
1
...
1112131415
...
25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