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네 이름을 부르는 사이: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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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저 없는 동안 조용했죠?

이틀 뒤. 팀2 사무실 문이 열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익숙하게 밝은 목소리에 몇몇 직원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곧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오른쪽 발목에 반깁스를 한 하랑이 씩 웃으며 서 있었다. 정훈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하랑 씨.” “네.” “왜 이렇게 밝아요?” “저 출근했잖아요.” “반깁스하고요.” 하랑이 자기 발을 내려다봤다. “반깁스는 발이 했지 제가 한 건 아니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랑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절뚝. 두 걸음. 절뚝. 기태의 시선이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이틀 만이었다. 통화는 했지만 얼굴을 보는 건 등산 이후 처음이었다. 그날 밤 혼자 앉아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지금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팀장님.” 하랑이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저 왔어요.” “……보입니다.” 기태의 시선이 다시 발목으로 내려갔다. “발목은요?” “많이 안 아파요.” “많이는 말고. 아예 안 아픕니까?” 하랑이 잠깐 고민했다. “……조금?” “앉으세요.” “저 지금 자리로 가고 있잖아요.” “빨리 앉으세요.” “반깁스했는데 어떻게 빨리 가요.” 기태의 입이 다물렸다. 정훈이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하랑은 겨우 자리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앉은 회사 의자가 반가운지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역시 내 자리가 제일 편하다.” 기태는 그제야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사무실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삼십 분 뒤. 하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갑니까?” 기태의 목소리가 바로 날아왔다. 하랑이 멈췄다. “샘플실이요.” “왜요?” “샘플 보러요.” “정훈 씨한테 부탁하세요.” “제가 보면 되는데요?” “앉으세요.” 하랑은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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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하던 말 하세요

다음 날 아침. 하랑은 출근하자마자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기태의 자리로 갔다. “팀장님.” “왜요.” “오늘 됐어요.” 기태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들었다. “뭐가요?” “어제 내일 물어보라고 했잖아요.” 기태의 손이 멈췄다. 하랑은 아주 당당했다. “저 없는 동안 조용해서 좋았어요?” “……그걸 진짜 물어봅니까?” “네.” “왜요?” “팀장님이 내일 물어보라면서요.” “그걸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당연하죠.” 하랑이 책상 끝을 짚고 몸을 조금 숙였다. “그래서요?” “뭐가요.” “좋았어요?” 기태가 하랑을 바라봤다. 어제도 이미 대답했다. 아니라고. 그런데 오늘은 그 이유까지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기태가 결국 입을 열었다. “별로 안 좋았습니다.” 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요?” “…….” “왜 안 좋았어요?” 역시 하나를 대답하면 바로 다음 질문이었다. “조용해서요.” “조용한 게 싫어요?” 기태는 잠시 하랑을 봤다. “요즘은 그런가 봅니다.” 하랑이 눈을 깜빡였다. 이번에는 다음 질문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기태가 먼저 물었다. “끝났습니까?” “뭐가요?” “질문.” “아.” 하랑이 뒤늦게 웃었다. “네. 일단은요.” 기태의 시선이 하랑의 반깁스로 내려갔다. “발목은요?” “어제보다 좋아요.” “아프면 바로 말하세요.” “네.” 하랑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별로 안 좋았다. 조용해서. 그 말이 자꾸 생각났다. 하랑이 괜히 입꼬리를 누르며 모니터를 켰다. 오전에는 수정안 검토가 있었다. 하랑은 출력물을 한 장씩 확인하다 한 부분에서 멈췄다. 입술이 조금씩 앞으로 나왔다. 잠시 후 자리에서 기태를 불렀다. “팀장님.” “왜요.” “이거 한번 봐주세요.” 기태가 다가왔다. 하랑이 도면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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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같이 가요

며칠 뒤. “좋은 아침입니다!” 하랑이 밝게 들어오자 기태의 시선이 가장 먼저 발목으로 향했다. 반깁스가 없었다. 하랑은 곧장 기태에게 와 양발을 번갈아 내밀었다. “팀장님, 보세요.” “뭘요?” “반깁스 풀었어요.” “다 나았습니까?” “네. 이제 멀쩡해요.” 신나서 발목을 돌리려 하자 기태가 바로 막았다. “그러다 또 삡니다.” “……축하부터 해주면 안 돼요?” “축하합니다.” “영혼이 없는데.” “다람쥐만 안 따라가면 됩니다.” “그 얘기 언제까지 할 거예요?” “당분간요.” 하랑은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은 일이 많았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하랑은 밀린 수정 작업을 붙잡고 있었고, 기태 역시 남은 업무가 있었다.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면서 사무실에는 둘만 남았다. 한동안 조용하던 하랑이 입을 열었다. “팀장님.” “왜요.” “배 안 고파요?” “조금.” “저도요. 뭐 먹을까요?” “왜 저한테 묻습니까?” “둘밖에 없잖아요.” 기태가 쳐다보자 하랑이 되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팀장님 혼자 먹을 거예요?” 결국 둘은 배달 음식을 시켰다. 마주 앉아 먹던 하랑이 반찬 속 당근을 집어 기태의 접시에 올렸다. “왜 제 접시에 놓습니까?” “팀장님 이거 먹잖아요.” “제가 먹는지 어떻게 압니까?” “봤으니까 알죠.” 기태의 젓가락이 멈췄다. “그걸 기억합니까?” “같이 밥 먹었잖아요.” 하랑이 당근을 하나 더 올렸다. “저도 기억력 좋아요. 팀장님만 저 기억하는 줄 알았어요?” 기태의 시선이 하랑에게 머물렀다. 자신만 하랑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하랑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만 주세요.” “싫어요?” “제가 음식물 처리기입니까?” 하랑이 당근을 다시 가져가려 하자 기태가 먼저 집어 먹었다. “먹네요.” “버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역시 잘 줬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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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메롱이

다음 날 아침. 기태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랑이 다가왔다. “팀장님.” “왜요.” 하랑이 휴대폰을 등 뒤에 숨긴 채 웃었다. “어제 궁금했죠?” “뭐가요?” “고양이 이름.” 기태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안 궁금했습니다.” “거짓말.” “뭐가 거짓말입니까.” “얼굴에 궁금하다고 써 있는데.” “안 써 있습니다.” 하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밀었다. “메롱이에요.” “……뭐라고요?” “메롱이.” 화면에는 어제 봤던 고양이가 있었다. 작은 체구의 코리안숏헤어. 흰 털이 대부분이었고 머리와 등, 꼬리에는 연한 회색 줄무늬가 섞여 있었다. 동그란 연두빛 눈에 분홍색 코. 그리고 분홍색 혀끝이 입 밖으로 아주 조금 나와 있었다. 하랑이 화면을 확대했다. “여기 봐요.” “혀가 나왔네요.” “네. 맨날 조금씩 나와 있어요.” “병원에서는 뭐랍니까?” “이상 없대요. 그냥 원래 그런 거래요.” 하랑이 자기 혀끝을 살짝 내밀었다. “메롱.” 기태가 말없이 쳐다봤다. “왜요?” “그래서 메롱입니까?” “네. 귀엽잖아요.” 사진 속 고양이와 하랑을 번갈아 보던 기태가 작게 말했다. “……잘 어울리긴 하네요.” “그쵸?” 하랑이 신나서 사진을 넘겼다. “이건 제 베개 뺏은 거. 이건 소파 혼자 다 쓰는 거. 이건 새벽에 제 배 위에 올라온 거예요.” 기태는 보여주는 사진을 하나씩 봤다. “밥은 잘 먹습니까?” “엄청 잘 먹어요.” “예방접종은요?” “했어요.” “화장실은?” “잘 가요.” 하랑의 눈이 가늘어졌다. “팀장님.” “왜요.” “안 궁금하다면서요.” 기태가 입을 다물었다. 하랑이 씨익 웃었다. “엄청 궁금했네.” “보여주니까 보는 겁니다.” “질문도 했잖아요.” “일하세요.” “네.” 하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그날은 평소처럼 업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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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십 분이라면서요

현관문이 닫혔다.기태는 신발을 벗고 집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밝고 아늑한 오피스텔이었다.창가에는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고, 테이블 한쪽에는 주얼리 스케치북과 색연필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소파 위에는 고양이 장난감이 널려 있었다.깔끔한데 군데군데 정신없었다.딱 이하랑 같았다.“팀장님.”기태가 고개를 돌렸다.하랑이 메롱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왜요.”“메롱이가 팀장님 봐요.”정말이었다.메롱이는 혀끝을 빼꼼 내민 채 기태를 빤히 보고 있었다.“왜 저렇게 봅니까?”“기억하나?”“그럴 리가요.”하랑이 메롱이를 바닥에 내려놨다.“가봐. 네 은인이야.”“은인 아닙니다.”“밥 사줬잖아요.”“한 번입니다.”메롱이가 기태에게 천천히 다가왔다.냄새를 맡더니 바짓단에 얼굴을 비볐다.하랑의 눈이 커졌다.“어?”“왜요.”“메롱이 낯가리는데.”기태가 고양이를 내려다봤다.메롱이는 아예 기태의 구두 옆에 자리를 잡았다.“팀장님 마음에 드나 봐요.”별것 아닌 말인데 기태의 시선이 하랑에게 향했다.하랑은 메롱이만 보며 웃고 있었다.“앉아요.”“십 분만 있다 갑니다.”“네.”하랑이 소파를 가리켰다.기태가 앉자 메롱이가 기다렸다는 듯 소파로 뛰어올랐다.그리고 기태의 허벅지 위에 앞발을 올렸다.“얘 왜 이럽니까?”“올라가고 싶은가 봐요.”“왜 제 위에요?”“마음에 든다니까.”결국 메롱이가 기태의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분홍색 혀는 여전히 조금 나와 있었다.기태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메롱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가르릉거렸다.하랑이 그 모습을 보다가 웃었다.“잘하는데요?”“뭘요.”“고양이 만지는 거요.”“그냥 쓰다듬는 겁니다.”“처음이라면서요.”하랑이 옆에 바짝 앉았다.“여기요.”손가락으로 메롱이 턱 밑을 가리켰다.“여기 긁어주면 좋아해요.”기태가 그대로 따라 했다.메롱이의 고개가 점점 위로 들렸다.“진짜 좋아하네요.”“그쵸?”하랑이 몸을 숙여 메롱이를 바라봤다.긴 머리카락이 기태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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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처음인데

“……그러게요.” 기태는 다시 무릎 위로 올라온 메롱이를 내려다봤다. 십 분만 보고 가겠다던 사람은 이미 한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랑이 휴대폰을 들었다. “팀장님, 메롱이랑 사진 찍어도 돼요?” “왜요?” “둘이 너무 잘 어울려요.” “고양이랑 뭐가 잘 어울립니까.” “그냥요. 메롱이 좀 들어봐요.” “어떻게요?” “잠깐만요.” 하랑이 기태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메롱이의 앞발 아래로 손을 넣어 자세를 잡아주려 몸을 숙였다. “이렇게요.” 긴 머리카락이 기태의 팔을 스쳤다. 기태가 몸을 조금 뒤로 물렸다. “제가 하겠습니다.” “팀장님 잘 모르잖아요.” “알려줬잖습니까.” “그렇게 말고 여기 받쳐야 돼요.” 하랑이 메롱이를 들어 올렸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기태의 시선이 멈췄다. 하랑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메롱이만 보고 있었다. “메롱아. 여기 봐.” 메롱이는 카메라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기태의 턱에 코를 가져다 댔다. “어?” 하랑이 웃음을 터뜨렸다. “팀장님 진짜 좋아하나 봐요.” “그런 것 같네요.” “메롱이는 좋으면 뽀뽀도 해요.” 메롱이가 다시 기태의 턱에 얼굴을 비볐다. 기태는 고양이를 보다 문득 물었다. “이하랑 씨는요?” “저요?” “좋으면 뽀뽀합니까?” 말하고 나서 기태 자신이 먼저 멈췄다. 왜 이런 걸 물었지. 하랑은 잠시 생각했다. “하죠.” 기태의 시선이 돌아왔다. “누구한테요?” “아빠랑 할머니. 큰엄마도요.” “……그렇습니까.” “네. 좋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하랑이 메롱이를 품에 안으며 웃었다. “저 원래 좋아하면 표현 잘해요.” 기태가 괜히 물컵을 들었다. “그런 것 같네요.” “팀장님도 좋은 사람인데.” 물이 입술에 닿기 직전 손이 멈췄다. “……네?” 하랑이 기태를 바라봤다. 자신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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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왜 피해요?

다음 날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기태가 고개를 들었다. 하랑과 눈이 마주쳤다. “…….” 하랑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곧장 고개를 돌렸다. “한정훈 주임님, 좋은 아침이에요.” 정훈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나한테 따로 인사까지 해요?” “인사는 좋은 거잖아요.” “팀장님한테는?” 하랑의 시선이 아주 잠깐 기태에게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까 다 같이 했잖아요.” 기태는 말없이 하랑을 바라봤다. 어제 집을 나선 뒤부터 계속 생각했던 얼굴이었다.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데 정작 하랑은 자리에 앉자마자 모니터만 바라봤다. 오전 열 시. 기태의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팀장님. A안 연결부 0.3 줄이는 게 나을까요?] 기태가 고개를 들었다. 불과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하랑이 열심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하랑 씨.” “네!” 대답은 빠르다. 그런데 오지는 않는다. “이리 오세요.” “메신저로 말씀해주셔도 되는데요.” “이리 오세요.” “……네.” 하랑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태 옆에 서자 시선은 모니터에만 박혔다. “여기요.” 기태가 화면을 가리켰다. “0.3까지 줄이면 이 부분이 너무 얇아집니다.” “네.” “0.2로 먼저 수정하세요.” “네.” “이하랑 씨.” “네.” “모니터에 뭐 있습니까?” “도면이요.” “그건 저도 압니다.” 하랑이 입을 꾹 다물었다. 기태가 쳐다보자 그제야 눈을 마주쳤다. 정확히 일 초. 하랑의 시선이 기태의 볼로 떨어졌다가 황급히 돌아갔다. “알겠습니다!” 그대로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기태의 손이 천천히 볼에 닿았다. 역시. 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랑은 평소보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1팀으로 향했다. “민지 주임님, 오늘 같이 먹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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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자꾸 이상해져요

그날 이후. 하랑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내가 왜 그랬지? 일을 하다가도 생각났다. 도면을 그리다가도 생각났고, 커피를 마시다가도 생각났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젓가락을 문 채 생각했다. 왜 하필 팀장님한테 뽀뽀했지? 좋은 사람이니까? 하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좋은 사람은 많았다. 아빠도 좋은 사람이고, 큰엄마도 좋은 사람이다. 회사에도 로로와 민지, 정훈처럼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볼에 뽀뽀하고 싶은 적은 없었다. 하랑의 젓가락이 멈췄다. ……뽀뽀하고 싶었던 건가? “이하랑 씨.” “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의 기태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안 먹습니까?” “먹어요.” “아까부터 같은 고기 들고 있는데요.” 하랑이 젓가락을 봤다. 정말 고기 한 점을 든 채 멈춰 있었다. “생각 좀 하느라고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비밀이에요.” 대답하면서 기태를 봤다. 정확히는 그의 볼을. 그날 자신이 뽀뽀했던 곳. 하랑은 얼른 고기를 입에 넣었다. 기태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오후에는 더 이상한 일이 생겼다. “팀장님, 이거 확인해 주세요.” 하랑이 서류를 내밀었다. 기태가 받아드는 순간 손가락 끝이 살짝 스쳤다. “……!” 하랑이 손을 홱 뺐다. 기태가 눈을 들었다. “왜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놀랐는데요.” “안 놀랐어요.” “귀도 빨간데.” 하랑이 얼른 귀를 만졌다. “더워서 그래요.” 기태가 사무실을 한번 둘러봤다. “에어컨 켜져 있는데.” “저만 더울 수도 있죠.” “그렇습니까.” “네.” 하랑은 황급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손끝을 내려다봤다. 고작 손가락이 한번 스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놀랐지? 왜 귀가 뜨거워졌지? 잠시 후 또 서류를 들고 기태에게 갔다. “수정했어요.” “주세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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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왜 기분이 나쁘지?

“기태야.” 오후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던 기태가 멈췄다. 로로가 회의실 안에서 손짓했다. “잠깐 얘기 좀 해.” “뭔데.” 기태가 들어가자 로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너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들었어?” 기태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뜬금없는 질문은 아니었다. 요즘 로로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장혁 때문이야?” “……응.”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질투는 아니었다. 다시 로로와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싫다고 했던 결혼을 이제 다른 남자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기태가 의자에 기대며 물었다. “뭐가 궁금한데.” “그냥…… 넌 왜 그렇게 결혼하고 싶어 했나 해서.” 기태는 잠시 생각했다. “계속 같이 살고 싶었으니까.” 로로가 조용히 바라봤다. “관계에 이름도 붙이고 싶었고, 가족이 되고 싶었어.” 잠깐의 침묵 끝에 기태가 덧붙였다. “네가 돌아갈 사람이 나였으면 했고.” 회의실 앞을 지나던 하랑의 걸음이 멈췄다. 열려 있던 문 사이로 기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같이 살고 싶었다. 가족이 되고 싶었다. 네가 돌아갈 사람이 나였으면 했다. 하랑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다봤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한로로 팀장님. 기태가 삼 년이나 만났던 사람. 결혼까지 하고 싶었던 사람.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답답해졌다. 하랑은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회의실 안에서 로로가 물었다. “후회해?” “뭘.” “나랑 결혼하려고 했던 거.” 기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때 자신은 진심이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방식이면 너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지.” 로로가 작게 웃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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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이게 질투야?

“……어?” 하랑은 한동안 가방 지퍼를 잡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사람이 왜 내가 아니어서 기분이 나쁘지?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만 맴돌았다. 결국 하랑은 침대 옆에서 뒹굴던 메롱이를 번쩍 안았다. “메롱아.” “야옹.” “나 이상한 것 같아.” 메롱이가 혀를 빼꼼 내민 채 하랑을 봤다. “팀장님이 옛날에 다른 여자 좋아했던 게 왜 싫지?” “…….” “지금 좋아하는 것도 아니래.” 메롱이의 앞발이 하랑의 턱을 밀었다. “그리고 한로로 팀장님은 장혁 사장님 만나잖아.” “야옹.” “그치? 아무 상관 없지?” 메롱이는 대답 대신 품에서 빠져나갔다. “너도 모르겠어?” 하랑은 휴대폰을 집었다. 검색창을 열고 한참 고민하다 글자를 입력했다. [좋은 사람이 다른 여자 좋아했던 게 기분 나쁜 이유] 검색 결과를 몇 개 읽던 하랑의 눈썹이 점점 모였다. 질투. 한 단어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질투?” 하랑은 벌떡 일어났다. “아닌데?” 메롱이가 놀라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아니야. 내가 팀장님한테 왜 질투를 해.” 이번에는 다시 검색했다. [질투하는 이유] 좋아하는 사람. 관심 있는 사람. 호감. 비슷한 말이 계속 나왔다. 하랑은 휴대폰을 뒤집어버렸다. “인터넷 이상해.” 그날 밤 하랑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좋은 아침입니다.” 사무실로 들어온 하랑은 평소처럼 인사했다. 기태와 눈이 마주쳤다. 어제까지라면 피했을지도 몰랐다. 오늘은 오히려 빤히 봤다. 기태가 먼저 물었다. “왜 그렇게 봅니까?” “그냥요.”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아니요.” 하랑은 자기 자리로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팀장님을 좋아하나?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기태가 일어나면 시선이 따라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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