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네 이름을 부르는 사이: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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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어디 앉아요?

파스타집에 들어선 하랑은 기태의 손을 놓았다. 직원이 두 사람을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이 돌아갔다. 기태는 자연스럽게 한쪽 의자를 빼려다가 멈췄다. 하랑이 테이블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기태 맞은편 의자를 한번 보고. 옆자리 의자를 한번 보고. 다시 맞은편. 다시 옆. 기태가 한동안 지켜보다 물었다. “뭐 합니까?” “자리 보는 중이에요.” “자리는 여기입니다.” “그건 알아요.” 하랑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 앉아요?” “편한 데 앉으세요.” “그걸 모르겠어요.” “뭘요.” “데이트잖아요.” “네.” “그럼 옆에 앉아요? 앞에 앉아요?” 기태가 잠시 말이 없었다. 하랑은 정말 몰라서 묻는 얼굴이었다. “보통 밥 먹을 때는 마주 앉지 않습니까?” “근데 커플은 옆에 앉기도 하잖아요.” “그렇죠.” “그럼 옆에 앉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고 싶으면요.” 하랑이 옆자리를 봤다. 한 발 움직였다. 그러다 멈췄다. “근데 이상할 것 같아.” 다시 맞은편으로 갔다. 의자를 잡았다. “그럼 여기?” “네.” 앉으려다가 또 멈췄다. “근데 너무 멀잖아요.” 기태가 결국 웃었다. “테이블 하나입니다.” “그래도 아까는 손잡고 있었는데.” 하랑은 옆자리를 또 봤다. 기태가 물었다. “하랑 씨.” “네.” “언제까지 고민할 겁니까?” “잠깐만요.” 하랑은 휴대폰까지 꺼냈다. 기태의 눈썹이 올라갔다. “뭘 찾습니까?” “커플은 밥 먹을 때 어디 앉는지.” “그걸 검색하게요?” “모르니까요.” 기태가 하랑의 휴대폰을 살짝 내려놓았다. “검색하지 마요.” “왜요?” “우리 둘이 밥 먹는 겁니다.” 하랑이 눈을 깜빡였다. “남들이 어디 앉는지가 왜 중요합니까.” “그럼요?” “하랑 씨가 앉고 싶은 데 앉아요.” 하랑은 다시 두 자리를 번갈아 봤다. 그러더니 기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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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한 입만

“그래서 몇 살 차이였어요?” 기태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직도 그게 궁금합니까?” “네.” “왜요.” “아까 대답 안 해줬잖아요.” 하랑은 바로 옆에 앉아 기태를 빤히 올려다봤다. “연하도 만나봤다고만 했어요.” “그 정도만 알면 됩니다.” “왜요?” “첫 데이트에서 전 여자친구 얘기만 할 겁니까?” 하랑이 잠시 생각했다. “그건 싫어요.” “그렇죠?” “근데 궁금한 건 궁금한데.” “참아요.” “어떻게 참아요?” 기태가 메뉴판을 접어 하랑 앞에 놓았다. “다른 걸 궁금해하세요.” 하랑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뭐 물어봐도 돼요?” 기태는 순간 잘못 말했다는 걸 깨달았다. “……적당히요.” “데이트 몇 번 해봤어요?” “그것도 전 여자친구 얘기잖아요.” “아.” 하랑이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 십 초쯤 지나 음식이 나왔다. 크림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하랑의 관심이 바로 음식으로 넘어갔다. “예쁘다.” “먹는 걸 보고 예쁘다고 합니까?” “예쁜데요?” 사진까지 찍은 하랑은 포크를 들었다. “저 오늘 진짜 반 먹을 거예요.” “네.” “못 믿죠?” “먹으세요.” 하랑은 야무지게 면을 돌려 한입 먹었다. “맛있어.” 두 입. 세 입. 기태는 말없이 자기 음식을 먹었다. 잠시 뒤 하랑의 속도가 느려졌다. 네 입.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섯 입. 포크가 멈췄다. 기태가 물었다. “끝났습니까?” 하랑이 억울하게 쳐다봤다. “아직 먹고 있잖아요.” “포크 내려놨는데요.” 하랑은 얼른 다시 들었다. “쉬는 거예요.” “네.” “진짜예요.” “알겠습니다.” 기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랑은 다시 한입 먹었다. 그러다 기태의 접시를 봤다. “그건 맛있어요?” “먹어볼래요?” “한 입만.” 기태가 고기를 작게 잘라 포크로 찍었다. 하랑은 자기 접시를 내밀었다. 그런데 고기는 접시로 오지 않았다. 입 앞에서 멈췄다. 하랑이 포크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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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다음에는 뭐 해요?

파스타집을 나온 하랑은 기태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다. 조금 전 들어올 때만 해도 손을 잡아도 되는지 물어봤는데. 나올 때는 달랐다. 기태의 손이 보이자 그냥 잡았다. 기태가 내려다봤다. 하랑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앞을 봤다. “왜요?” “아닙니다.” “왜 봤어요?” “그냥요.” “손잡아서요?” “네.” 하랑이 맞잡은 손을 한번 내려다봤다. “이제 안 물어보고 잡아도 되죠?” “그걸 매번 물어보려고 했습니까?” “처음에는 물어봐야 되는 줄 알았죠.” 기태가 피식 웃었다. “잡고 싶으면 잡아요.” “진짜요?” “네.” 하랑의 손가락이 조금 더 단단히 얽혔다. “그럼 계속 잡아야지.” 둘은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금요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하랑은 지나가는 연인들을 슬쩍슬쩍 구경했다. 손을 잡고 걷는 사람. 팔짱을 낀 사람.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 한참 구경하던 하랑이 기태를 불렀다. “팀장님.” “왜요.” “우리 이제 뭐 해요?” “뭐 하고 싶습니까?” “그걸 모르겠어요.” 기태가 하랑을 내려다봤다. “아까도 그러더니.” “저 데이트 처음이라고 했잖아요.” “데이트라고 특별한 걸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순서 같은 거 없어요?” “무슨 순서요.” “밥 먹었잖아요.” “네.” “그다음에 뭐 해요?” 기태가 잠시 생각했다. “걷기도 하고.” “지금 하고 있고.” “커피도 마시고.” “저 배불러요.” “구경도 하고.” “뭘요?” “하랑 씨가 보고 싶은 거요.” 하랑이 눈을 깜빡였다. “그게 데이트예요?” “그렇죠.” “그냥 같이 있는 건데?” “데이트가 원래 그런 겁니다.” 하랑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다 맞잡은 손을 한번 흔들었다. “그럼 지금도 데이트네.” “아까부터 데이트였습니다.” “헤헤.” 기태가 웃었다. “좋습니까?” “네.” “뭐가 그렇게 좋아요.” 하랑이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같이 밥 먹었고.” “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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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이게 제일 예뻐요

편집숍에 들어오자마자 하랑의 걸음이 느려졌다. “우와…….” 기태는 예상했다는 듯 하랑을 봤다. 조금 전까지 첫사랑이 몇 살이었냐며 따라붙던 사람은 사라졌다. 하랑은 진열장 앞에 붙어 있었다. “팀장님, 이것 봐요.” “보고 있습니다.” “이거 귀엽죠?” “네.” 두 걸음. “이것도.” “네.” 세 걸음. “이건 반짝이는 게 되게 예뻐요.” “그러네요.” 하랑이 고개를 홱 돌렸다. “제대로 보는 거 맞아요?” “보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네, 그러네요만 하잖아요.” 기태가 하랑이 들고 있는 귀걸이를 봤다. 작은 큐빅이 여러 개 박힌 화려한 디자인이었다. “그건 별로입니다.” 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요?” “하랑 씨한테는 너무 복잡해요.” “저 화려한 거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거랑 어울리는 건 다르죠.” 하랑이 귀걸이를 귀 옆에 가져다 댔다. “안 어울려요?” 기태가 잠시 바라봤다. “예쁘기는 한데.” “근데요?” 기태가 옆 진열대에서 작은 귀걸이 하나를 집었다. 가느다란 선 끝에 작은 스톤 하나가 달린 단정한 디자인이었다. “이게 더 어울립니다.” 하랑은 거울 앞에서 바꿔 대봤다. 오른쪽. 왼쪽. 고개도 살짝 기울였다. “진짜네.” “그렇죠.” “팀장님 보는 눈 있네요.” 기태가 어이없다는 듯 봤다. “제 직업이 뭡니까.” “아.” 하랑이 웃었다. “우리 둘 다 디자이너지.” “이제 생각났습니까?” “여기 오니까 잠깐 까먹었어요.” 하랑은 다시 진열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기태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하랑은 하나를 볼 때마다 멈췄다. 예쁘다고 했다가. 자기가 만들면 여기를 조금 바꿀 거라고 했다가. 세공 방식까지 확인했다. 결국 직업병이었다. “이건 여기 연결을 다르게 하면 더 예쁠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랑이 바로 돌아봤다. “진짜요?” “네.” “역시 우리 잘 맞는다.” 기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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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원래 이렇게 아쉬운 거예요?

오피스텔 앞에 도착하고도 하랑은 기태의 손을 놓지 않았다. 기태가 건물을 올려다봤다. “다 왔습니다.” “네.” “들어가요.” “네.” 대답은 잘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 기태가 하랑을 내려다봤다. “안 들어갑니까?” “들어가야죠.” “그런데요.” 하랑은 맞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여전히 단단히 얽혀 있었다. 조금 전 편집숍에서 기태가 사준 목걸이도 목에 걸려 있었다. 밥도 먹었고. 같이 걸었고. 손도 잡았고. 선물도 받았다. 집 앞까지 왔다. 오늘 데이트는 끝이었다. 그런데. “팀장님.” “왜요.” “원래 이렇게 아쉬운 거예요?” 기태의 시선이 하랑에게 머물렀다. “뭐가요.” “헤어지는 거.” 하랑이 입술을 삐죽였다. “아까까지는 계속 같이 있었잖아요.” “네.” “근데 이제 팀장님은 가고 저는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렇죠.” “그게 아쉬워요.” 기태가 작게 웃었다. “첫 데이트라 그런가.” 하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원래 데이트 끝나면 다들 이래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팀장님은요?” 역시 질문은 바로 돌아왔다. “아쉽습니까?” 기태가 대답하지 않자 하랑이 고개를 기울였다. “안 아쉬워요?” “아쉽습니다.” “진짜요?” “네.”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저만 그런 줄 알았어요.” “왜 하랑 씨만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팀장님은 너무 멀쩡하잖아요.” “그럼 여기서 울까요?” 하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 풉 웃었다. “팀장님 우는 거 상상이 안 돼.” “저도 안 할 겁니다.” “저는 할 수도 있는데.” “울지 마요.” “아직 안 울어요.” “그러니까요.” 하랑은 다시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기태의 손을 한번 꼭 쥐었다. “내일은 토요일인데.” “네.” “회사 안 가는데.” “그렇죠.” “그러면 팀장님 못 보잖아요.” “왜 못 봅니까.” 하랑이 눈을 깜빡였다. “네?” “회사 안 가면 못 보는 사이입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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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집에 돌아와서

기태는 하랑이 사라진 오피스텔 출입문을 한동안 바라봤다. 분명 들어가는 것까지 봤다. 이제 가면 됐다. 그런데 발이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기태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하는 거냐.” 아쉽다고 몇 번이나 돌아본 건 이하랑인데. 정작 가지 못하고 서 있는 건 자신이었다. 기태는 그제야 몸을 돌렸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 다시 뺐다. 조금 전까지 하랑의 손이 있던 자리였다. 작고 따뜻했던 손. 처음 잡을 때는 가만히 손바닥만 올려놓더니 손가락을 얽어주자 신기한 듯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금방 익숙해져 먼저 잡았다. 기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은 비어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데 괜히 한번 쳐다보게 됐다. 오늘 하루가 머릿속을 스쳤다. 회사에서 시계만 노려보던 얼굴. 회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확인하겠다며 자꾸 뒤를 돌아보던 모습. 좋아하는 아는 척을 어떻게 하냐고 묻던 목소리. 남자친구. 제 남자친구.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좋아하던 얼굴. 기태가 핸들을 잡은 채 웃었다. “남자친구가 그렇게 신기한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럴 만했다. 하랑에게 자신은 첫 남자친구였다. 첫 데이트도. 연인과 손을 잡는 것도. 남자친구에게 선물을 받는 것도. 데이트가 끝나 아쉬워하는 것까지. 전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랑은 사소한 것까지 물었다. 옆에 앉아야 하는지. 마주 앉아야 하는지. 손을 잡아도 되는지. 데이트가 끝나면 원래 아쉬운 건지. 기태에게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것들을 하랑은 하나씩 물어봤다. 그리고 대답 하나에도 좋아했다. 신호에 걸린 기태가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처음인 건 하랑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자신도 처음 해본 게 꽤 많았다. 데이트 자리 하나를 두고 저렇게 오래 고민하는 여자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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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안 끊으면 안 돼요?

[진짜요???]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이하랑. 기태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요.” - 팀장님. “네.” - 진짜 아쉬워요? 첫마디부터 그거였다. 기태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웃었다. “네.” - 얼마나요? “그걸 어떻게 말합니까.” - 조금? 많이? “많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 헤헤. “그 말 들으려고 전화했습니까?” - 그것도 있고요. “또 뭐요.” - 그냥요. “그냥?” - 목소리 듣고 싶어서. 기태의 손이 잠시 멈췄다. 하랑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좋으면 좋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전화하고. “……잘했어요.” - 뭐가요? “전화한 거요.” - 해도 돼요? “이미 했잖아요.” - 다음에도요. “하세요.” - 밤에도? “네.” -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생각나도? “네.” - 새벽 두 시에도? “자고 있으면 안 받습니다.” - 아. 기태가 웃었다. “왜 실망합니까.” - 남자친구는 다 받아주는 줄 알았어요. “누가 그래요.” - 몰라요. 그냥 그런 줄 알았지. 하랑의 목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합니까?” - 침대 누웠어요. “머리는 말렸습니까?” - 네. “제대로요?” - 거의요. “거의가 뭡니까.” - 조금 축축해요. “말리고 누워요.” - 귀찮은데. “하랑 씨.” - 네에. 곧 침대가 다시 바스락거렸다. - 말리고 올게요. 끊지 마요. “알겠습니다.” 멀리서 드라이어 소리가 들렸다. 기태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기다렸다. 몇 분 뒤 소리가 멈췄다. - 다 했어요. “이제 잡니까?” - 아직 안 자요. “왜요.” - 통화할 거예요. “무슨 얘기 하게요.” - 아무거나. 정말 아무거나였다. 메롱이가 오늘 자기 양말을 물고 도망갔다는 이야기. 편집숍에서 봤던 귀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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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아직 안 끊었어요?

하랑이 눈을 뜬 건 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한동안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옆구리가 따뜻했다. 메롱이가 이불 위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메롱아…….” 잠긴 목소리로 부르자 귀만 한번 까딱했다. 하랑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눈을 번쩍 떴다. 어젯밤. 전화. 팀장님. 하랑이 침대 위를 더듬었다. 베개 옆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화면을 켰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통화 중. 07:46:18. “……어?” 하랑이 벌떡 일어났다. “여보세요?” 대답이 없었다. “팀장님?” 잠시 뒤 낮고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 깼습니까? 하랑의 눈이 더 커졌다. “팀장님!” - 네. “아직 안 끊었어요?” - 그런 것 같네요. “왜요?” - 끊지 말라면서요. 하랑은 입을 벌렸다. 분명 그런 말을 하긴 했다. 그런데. “진짜 안 끊었어요?” - 네. “밤새?” - 네. 하랑은 휴대폰을 내려 통화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팀장님도 자면서요?” - 잤습니다. “전화 켜놓고?” - 네. “왜요?” 잠시 조용했다. - 싫지 않아서요. 하랑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제 숨소리 들으면서 잤어요?” - 자고 있는데 어떻게 듣습니까. “자기 전에는 들었잖아요.” - 조금. “얼마나요?” - 하랑 씨. “네.” - 아침부터 시작입니까? 하랑이 웃었다. “헤헤.” - 잘 잤어요? “네. 팀장님은요?” - 잘 잤습니다. “저 코 안 골았어요?” - 안 골았습니다. “잠꼬대는?” - 없었고요. “이상한 소리도 안 했어요?” - 안 했습니다. 하랑이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 했어도 말 안 해줬을 겁니다. “왜요?” - 하루 종일 그것만 물어볼 것 같아서요. “제가 언제요?” 수화기 너머에서 기태가 웃었다. 하랑은 침대에서 내려와 거울 앞에 섰다. 머리는 엉망이었다. 눈도 조금 부어 있었다. 그런데 목에는 어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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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치마 입어요? 바지 입어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하랑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옷장 앞에 섰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멈췄다. “……뭐 입지?” 아까 기태에게 이미 물어봤다. 뭐 입어요? 편한 거요. 치마? 바지? 편한 거요. 신발은? 많이 걸어도 안 아픈 거요. 머리는 풀어요? 풀어요. 예쁘니까. 마지막 대답만 정확했다. 하랑은 머리를 말리면서도 몇 번이나 혼자 웃었다. 문제는 옷이었다. 청바지를 꺼냈다. “이건 너무 회사 갈 때 같고.” 다시 넣었다. 연한 색 원피스를 꺼냈다. 거울 앞에 대봤다. “너무 꾸몄나?” 침대 위로 던졌다. 짧은 치마를 꺼냈다가 다시 바지를 꺼냈다. 침대 위에 옷이 하나씩 늘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롱이가 원피스 위에 털썩 올라앉았다. “메롱아, 거기 앉으면 안 돼.” 메롱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좋겠다. 맨날 똑같은 거 입어서.” 하랑은 치마와 바지를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결국 휴대폰을 집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몇 번 가지 않아 기태가 받았다. - 준비 다 했습니까? “아니요.” - 그런데 왜 전화했어요. “물어볼 게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짧은 한숨이 들렸다. - 뭡니까. “치마 입을까요? 바지 입을까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 아까 편한 거 입으라고 했잖아요. “둘 다 편해요.” - 그럼 입고 싶은 거 입어요. “둘 다 입고 싶어요.” - 그럼 제가 어떻게 합니까. 하랑은 거울에 치마를 대봤다. “팀장님은 뭐가 좋아요?” - 제가요? “네. 남자친구니까 물어보는 거예요.” 기태가 잠시 말이 없었다. 하랑이 재촉했다. “치마? 바지?” - 치마요. 하랑의 입꼬리가 바로 올라갔다. “왜요?” - 골라달라면서 또 이유까지 물어봅니까? “궁금하니까요.” - 예쁠 것 같아서요. 하랑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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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여긴 어때요?

차에 올라탄 하랑은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휴대폰을 꺼냈다. 기태가 시동을 걸었다. “어디 가고 싶습니까?” “지금 찾고 있어요.” “천천히 찾아요.” “네.” 대답은 했지만 손가락은 전혀 천천히 움직이지 않았다. 검색창을 열었다. 데이트. 주말 데이트. 서울 데이트. 커플 데이트 추천. 기태가 힐끗 봤다. “그렇게까지 검색해야 합니까?” “찾아봐야죠.” “왜요.” “두 번째 데이트잖아요.” “첫 번째랑 뭐가 다른데요.” 하랑이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기태를 봤다. “한 번 해봤잖아요.” “그래서요?” “어제보다 잘해야죠.” 기태가 웃었다. “데이트에도 실력이 있습니까?” “있겠죠.” “누가 그래요.” “제가요.” 하랑은 다시 검색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을 기태 쪽으로 내밀었다. “팀장님, 여긴 어때요?” “운전 중입니다.” “제가 설명해줄게요. 전시회래요.” “가고 싶습니까?” “조금?” 화면을 내렸다. 스크롤을 두 번 했다. “아, 여긴 어때요?” “어딘데요.” “수족관.” “물고기 좋아합니까?” “예쁘잖아요.” “그럼 갈까요?” “잠깐만요.” 또 넘겼다. “여기도 좋아 보여요.” “이번에는 뭡니까.” “도자기 만드는 데.” “하랑 씨.” “네.” “하나만 고르세요.” “보고 있잖아요.” “지금 세 개째입니다.” “더 있어요.” 기태가 짧게 웃었다. 예상대로였다. “여긴 향수 만들기.” “네.” “여긴 커플 반지 만들기.” 하랑의 손가락이 멈췄다. 기태도 잠깐 옆을 봤다. 하랑은 화면을 빤히 바라보다 얼른 넘겼다. “이건 나중에.” “왜요.” “너무 커플 같아요.” “커플인데요.” “알아요.” 하랑의 귀가 살짝 빨개졌다. “그래도 사귄 지 이틀 됐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그러니까 나중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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