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8시, 한남동 ‘EUN’ 플래그십 루프탑 가든.남산 타워와 한강의 화려한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테라스 위로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와인 잔을 든 은서의 곁으로, 은빛 턱시도를 차려입은 프랑스 보석 평론가이자 로스웰 가문의 방계 거물, 가브리엘이 다가왔다.“정말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밤입니다, 은서 아가씨.”은서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님을 맞았다. 초청 명단에서 읽었던 이름이었다. 파리의 사건 이후 로스웰이라는 성만 보면 먼저 경계하게 됐지만, 행사장에서 곧바로 적의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작품은 보셨나요?”“작품보다 만든 사람이 인상적이더군요.”그 말에 은서는 미소를 조금 거뒀다. 가브리엘은 진열장 쪽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설명을 이어 갈 때마다 말을 끊고, 누구와 친분이 있는지 어떤 자리에 초대할 수 있는지를 늘어놓았다.은서는 그가 권한 별도 만찬을 거절했다. 상담은 아틀리에의 공식 창구로 해 달라고 했다. 손님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던 가브리엘의 입술이 잠깐 굳었다.“이런 기회는 매일 오지 않습니다.”“제 일정도 제가 정해요.”남자가 잔을 든 손을 느슨하게 흔들었다. 농담을 못 알아들었다는 듯 웃었지만 눈은 차가웠다. 은서는 옆으로 몸을 돌려 직원이 있는 방향을 확보했다.가브리엘의 눈빛 속에는 노골적인 탐욕과 매혹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은서에게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서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샴페인 잔을 건네며 은서의 하얀 손등을 향해 제 손을 뻗었다.“방돔 광장이라면 당신 이름을 더 크게 걸 수 있지요. 내 손을 잡으세요. 파리 사교계가 누구를 기다렸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Last Updated : 2026-09-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