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Chapter 41 - Chapter 50

150 Chapters

제41화. 진상

치지직- 삑.새벽 2시, 한남동 펜트하우스 45층 ‘창문 없는 방’.검찰 수사팀 디지털 포렌식 팀이 복원해 낸 마이크로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갔다. 잡음이 몇 차례 튄 뒤, 그 사이로 10년 전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조수현: 서혜진 그 여자가 스위스 광산 지분 포기 각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어떡할 겁니까?]— [태강그룹 전 회장: 심장질환 처방약을 디기탈리스 유도체로 바꿔치기하시오. 어차피 강문혁 명예회장도 태강과의 방산 합작을 위해 그 여자의 입을 막는 데 묵인하기로 합의했소.]쿵-!은서는 어깨를 잔뜩 웅크렸다. 조수현 혼자 꾸민 짓인 줄 알았는데, 녹음 속에서는 태강그룹 전 회장이 어머니의 죽음을 논의하고 있었다. 10년간 은서의 법적 보호자 행세를 했던 강문혁 명예회장도 그 일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되감아 들어도 그 대목은 바뀌지 않았다.은서는 재생이 끝난 화면을 봤다. 다시 누르면 다른 말이 나올 것처럼 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한 번만 더 들을게요.”시후가 플레이어를 잡았다. 은서가 고개를 들자 그는 말없이 버튼을 눌렀다.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어머니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들은 잠깐 망설이거나 말을 낮추지 않았다. 서명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은 다른 계약을 의논하는 말투와 다르지 않았다.은서는 입을 막았다. 구역질이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저분은 알고 있었네요.”말이 나온 뒤 은서는 아랫입술을 눌렀다. 한 번 들은 것을 못 들은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화면 아래의 재생 시간이 끝에 머물러 있었다.시후가 녹음을 멈추려 하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잡음뿐이어도 아직 끄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받아들이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시후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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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헤리티지

별관 아틀리에로 옮긴 뒤 은서는 며칠 동안 조명을 바꿔가며 프레임을 확인했다. 거울은 번쩍였지만 작업에 필요한 빛은 책상 위에 따로 있었다. 눈부심이 보석의 작은 흠집을 가리지 않게 각도를 맞췄다.도면에서 괜찮아 보이던 형태가 실물에서는 너무 뻣뻣했다. 은서는 가운데 장식을 분리하고 옆의 선을 다시 살폈다. 어머니의 각인이 있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 새로 만드는 틀에 오래된 흔적을 억지로 맞춰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디자인팀과 화면을 연결해 의견을 받았다. 직원 한 사람이 옆선이 조금 무겁게 보인다고 했다. 말한 뒤 눈치를 보는 기색이 느껴졌다.“괜찮아요. 그렇게 보이면 그렇게 말해 주세요.”화면 건너편 직원이 펜을 들었다. 지적한 자리에 표시를 하고 나서야 말을 좀 더 길게 이었다. 은서는 질문하려던 것을 노트 귀퉁이에 적고 설명부터 끝까지 들었다. 자기가 미처 못 본 부분이 있었다. 직원이 짚어 주는 선을 따라 수정할 자리를 표시했다.은서는 옆모습 사진을 다시 띄웠다. 직원이 지적한 곳을 줄이자 가운데 돌이 더 또렷해졌다. 혼자 봤다면 손대지 않았을 부분이었다.작업이 끝나갈수록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잘해놓고 마지막에 망칠까 봐 손을 멈춘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도구를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시후가 보내온 식사는 식기 전에 조금씩 먹었다. 이번에는 누가 쓰러질 때까지 일해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니었다.쇼케이스 전날, 은서는 완성된 티아라를 천 위에 내려놓았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화면 속 작품이 천천히 회전했다. 중앙의 핑크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가 서로의 색을 흐리지 않았다.팀원들이 박수를 쳤다. 은서는 웃다가 눈가를 눌렀다. 울 일이 아닌데 눈물이 나왔다. 수사 파일과 함께 보던 보석을, 이제는 작품 사진 안에서 보고 있었다.“이름은 그대로 갈게요. 퀸즈 헤리티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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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붕괴

쇼케이스 대기실에서 은서는 마지막 순서를 확인했다. 장비 점검이 끝났다는 보고를 듣고도 스태프에게 동선을 한 번 더 물었다. 스태프가 손으로 짚어 주는 곳을 눈여겨봤다. 자신의 발이 정확히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무대 바닥의 작은 표식은 검은색이었다. 그 위에 서면 조명이 가장 잘 닿는다고 했다. 은서는 대기실에서 표시된 위치를 따라 한 번 걸었다. 치맛자락에 구두가 걸리지 않았다.팀원이 휴대폰을 보여줬다. 이미 기사 몇 개가 올라와 있었다. 보석 사진 옆에 시후와 자신의 관계를 묻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은서는 화면을 끝까지 읽지 않고 돌려줬다.“오늘은 작품 사진을 더 많이 남겨주세요.”은서는 직원의 화면에서 제목 아래 작은 사진을 확대했다. 가까이 보면 이음새까지 보이는데 줄어든 사진에는 색만 남았다. 직접 보여줄 시간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때는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도 말할 수 있었다.“네, 팀장님.”직원이 대답하자 은서는 웃었다. 팀장이라는 호칭이 좋았다. 이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연결되는 이름이었다.시후가 대기실 문 앞에 섰다. 어깨에 걸친 재킷을 여미던 은서가 그를 봤다.“오늘 무대에서는 옆에 안 서요?”“네 발표다.”은서는 대답을 듣고 잠깐 말을 잃었다. 늘 앞을 막던 남자가 그렇게 말하니 오히려 긴장됐다.“중간에 내려와도 실망하지 마세요.”“다 끝내고 내려와.”평소 같은 말투였다. 은서는 피식 웃다가 들이마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자기 이름을 붙인 작품을 발표하는 일은 또 달랐다.직원이 입장을 알렸다. 은서는 마지막으로 티아라의 고정 상태를 확인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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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혈흔

쿵-!호텔 지하 2층 비상계단 철문이 시후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찌그러지며 날아갔다. 계단을 굴러 떨어지며 도주하던 강현민이 사색이 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어깨에서 피를 흘리는 강시후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현민이 뒤로 물러날 때마다 구두 소리는 더 가까워졌다.“히, 히익! 형님! 살려주십시오! 조수현 그 여자가 시켜서……!”파앗!시후가 뻗은 손에 현민의 멱살이 잡혔다. 몸을 빼려던 현민은 그대로 끌려가 콘크리트 벽면에 부딪쳤다.쿵-!시후의 다른 손이 강현민의 오른팔을 잡고 비틀어 올렸다.우드득!“크아아악-!”어깨 관절이 꺾인 강현민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 묻은 손을 닦아내며, 뒤따라온 검찰 수사팀 수사관들에게 턱짓했다.“살인미수 현행범이다. 평생 감방에서 썩게 만들어.”현민이 끌려 나간 뒤 시후는 벽에 손을 짚었다. 붙잡을 상대가 사라지자 어깨에서 뒤늦게 통증이 올라왔다. 계단참의 불빛이 두 겹으로 번져 보였다.윤 실장이 가까이 왔다.“부사장님, 처치부터 받으셔야 합니다.”“은서는.”“대기실에 계십니다. 의료진이 확인했습니다.”시후는 그 말을 두 번 확인하고서야 계단을 올랐다. 대기실 문 앞에서 은서가 일어나려 했다. 그녀의 드레스 끝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앉아 있어.”“오빠나 앉아요.”은서가 의자를 밀었다. 시후가 다른 말을 하려 하자 의료진도 같은 쪽을 가리켰다. 시후는 의자 등받이를 잡고 몸을 낮췄다.어깨를 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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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첫키스

단 0.1mm의 틈새.두 사람의 뜨겁고 거친 숨결이 서로의 입 앞에서 뒤섞이며, 입술 끝이 스칠 듯 아슬아슬하게 떨렸다. 시후의 짙은 눈동자 속에는 인간의 이성을 집어삼킨 맹수의 갈증과 타는 듯한 열망이 들끓고 있었다. 남자의 단단한 턱관절이 부서질 듯 굳어졌다.몸은 이미 여러 번 열렸다. 비행기에서도, 책상 위에서도, 창문 없는 방에서도. 그가 허리를 잡고 밀어 넣을 때마다 은서는 그 무게를 알았다. 그런데도 입술만은 한 번도 닿지 않았다. 목덜미와 쇄골과 앵클릿은 그의 것이었지만, 입술 앞의 1mm는 언제나 남아 있었다. 강압으로 몸을 빼앗으면서도 그 한 줄만은 스스로 남겨 둔 선이었다.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남자의 피 묻은 상처 앞에서, 그 선의 의미가 달라졌다. 남매라는 허울도, 도덕이라는 방벽도 아니었다. 몸이 먼저 섞인 뒤에야 남는 것. 진심을 허락할 자리였다. 은서는 그가 무전을 끈 뒤의 침묵을 들었다. 누군가 또 문을 두드리거나 사건을 보고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상처가 더 벌어지면 안 돼요.”은서의 말에 시후가 어깨를 조금 돌렸다. 괜찮다고 하려던 입술이 멈췄다. 낮에 그녀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움직이면 좀 아프다.”그 대답을 듣자 은서는 눈물이 더 날 것 같았다. 남자가 아프다고 인정하는 말이 이렇게 낯설 줄 몰랐다.“그런데 왜 다시 뛰어갔어요.”“그놈을 놓치면 또 네게 올 테니까.”“오빠가 안 돌아오면 저는요.”시후가 은서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자신을 지키겠다고 말했지만 그 대답은 준비하지 못한 얼굴이었다.은서는 제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섭고 원망스러웠던 일은 그대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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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K

오전 9시, 한남동 펜트하우스 45층 마스터 베드룸.협탁에서 번지는 은은한 조명이 킹사이즈 침대 위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시후의 단단하고 넓은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뜬 은서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어젯밤, 처음으로 입술이 닿았던 열병 탓인지, 은서의 붉게 부어오른 입술과 새하얀 쇄골 위에는 시후가 새겨놓은 깊고 선명한 키스마크들이 꽃잎처럼 흩어져 있었다.남자의 긴 팔이 은서의 가느다란 허리를 빈틈없이 끌어안고 있었다. 허벅지 안쪽이 아직 미지근했다. 은서는 그 감각을 확인하고 나서야 얼굴을 조금 들었다.“더 자라.”시후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은서의 정수리를 울렸다.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은서의 이마와 콧날, 그리고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어젯밤의 격정 이후, 남자의 손길에는 은서를 제 모든 것으로 받아들인 지독한 소유욕과 다정함이 깊게 배어 있었다.은서는 더 자라는 말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옆에 놓인 붕대와 약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시후의 어깨가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약 먹을 시간 확인했어요?”“네가 먼저 잤잖아.”“그럼 안 먹었다는 말이에요?”시후가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은서는 대답 대신 물컵을 가져왔다. 같은 방에 있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잠깐 어색했다.시후도 그런지 평소보다 말을 적게 했다. 은서는 그 침묵이 꼭 불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 먼저 명령하지 않아도 물컵을 놓고, 커튼이 없는 벽을 보고, 아침이 됐다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오늘 회사는 조금 늦게 가도 되겠죠?”은서가 물었다. 묻고 나서 웃음이 났다. 어느새 허락을 구하는 말이 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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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제네바

인천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오른 서경그룹 전용기 보잉 비즈니스 제트(BBJ). 순항 고도 3만 피트의 밤하늘, 칠흑 같은 창밖으로 별빛조차 닿지 않는 외부와 단절된 밀실에서 묵직한 샴페인 잔이 부딪혔다. 전용기 마스터 스위트룸의 가죽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아 스위스 연방 법원 서류를 살피던 은서의 등 뒤로, 서늘한 시더우드 향과 짙은 남자의 체향이 덮쳐왔다.가져온 서류에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작성한 페이지와 최근에 발급된 페이지가 섞여 있었다. 은서는 날짜별로 나누다가 시후를 돌아봤다.“이 사람을 알고 있었어요? K라는 사람.”“금고 관리에 관여했다는 것까지는.”“엄마랑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고요?”시후도 그 부분은 모른다고 인정했다. 은서는 그 대답을 들으니 조금 더 불안해졌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걸 그가 인정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은행 담당자와의 연락 내역을 읽었다. 직접 확인해야 할 서류와 현지에서 안내받을 일이 나뉘어 있었다. 은서는 자신의 서명이 필요한 곳에 표시했다. 대신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많아도 모든 것을 남에게 맡겨버리고 싶지는 않았다.“법무팀이 볼 거다.”은서는 해당 문단 끝에 물음표를 적었다. 읽지 않고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은 성수동의 실패로 충분했다. 믿을 사람과 확인할 서류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펜 끝이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종이를 팔걸이에 받쳤다.은서가 펜을 멈추자 시후가 말을 이었다.“저도 봐야죠. 나중에 제가 뭘 받았는지도 모르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은서는 서류를 덮지 않았다. 읽는 속도가 느려지자 시후가 옆자리에 앉았다. 은서는 모르는 문장을 가리켰다. 그가 설명하고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물었다. 시후가 이번에는 왜 두 번 묻느냐고 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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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상속

레만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알프스 설산 절벽 위의 로젠버그 고성(Château). 육중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벽난로의 장작불이 타오르는 그랜드 다이닝 룸 한가운데, 10년 전 서혜진이 자필 서명한 붉은 밀랍 인장의 신탁 유언장이 펼쳐졌다.“서혜진 여사께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제게 이 자산을 맡기셨습니다. 마터호른 에메랄드 광산 지분 5,000억 원입니다.”카일 백작이 은빛 지팡이를 가볍게 짚으며 은서를 응시했다.은서는 유언장의 서명부터 봤다. 너무 익숙한 글씨여서 오히려 더 오래 들여다봤다. 다른 사람에게 확인해 달라고 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녀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은 뒤 법무팀에 대조를 요청했다.카일은 재촉하지 않았다. 도장을 보여주고 작성 경위를 설명했다. 은서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끊어 물었다.“왜 지금까지 연락하지 않으셨어요?”첫 질문보다 이 말이 더 어려웠다. 카일이 지팡이 손잡이에 얹었던 손을 내렸다.“연락과 인도에 필요한 확인이 늦었습니다. 아가씨가 겪은 일을 그 말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은서는 입을 다물었다. 고맙다고만 말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원망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자신이 성수동에서 빼앗긴 10억을 떠올리며 비를 맞고 있을 때, 이곳에는 어머니가 맡긴 재산이 있었다.그렇다고 저 남자를 탓하면 모든 것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은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아직 듣지 못한 경위를 종이 위에 나눠 적었다. 지금 분명한 것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된 신탁이 있고, 그 수익자로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시후가 그녀의 펜 끝을 봤다. 은서는 자료를 넘기며 덧붙였다.“제가 몰랐던 것까지 다 알고 싶어요. 서두르지 말고요.”카일이 다음 서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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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눈사태

쿠구구궁-!해발 3,000m, 알프스 마터호른으로 향하는 산악 협곡 도로.출발 전부터 일정은 몇 번 바뀌었다. 시후는 위험 구간 확인이 끝날 때까지 광산 쪽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은서는 차 안에서 서류를 덮었다. 종이로 확인한 권리를 실제 장소에서 확인하려던 길이었다.눈이 굵어지면서 창밖의 형태가 흐려졌다. 윤 실장이 속도를 낮췄다. 터널에 진입하기 전 대기 지점에서 현지 팀의 확인을 받을 예정이었다.“오늘 못 가면 돌아와도 돼요.”은서가 말했다. 시후가 그녀를 봤다.“금고는 거기 있잖아요. 날짜 때문에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시후는 짧게 알겠다고 했다. 은서는 그 말이 마음에 놓였다. 무조건 가겠다고 우기지 않은 것도, 자신이 겁먹었다고 비웃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차가 굽이를 돌자 협곡 아래가 보였다. 은서는 저도 모르게 손잡이를 잡았다. 시후가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창밖이 낯설어도 차 안의 손은 익숙했다.윤 실장이 앞쪽 차량과 연락했다. 확인 지점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들렸다. 은서는 보온병의 뚜껑을 닫고 가방에 넣었다. 손가락을 장갑 안으로 밀어 넣을 때 작은 경보음이 들렸다.칼바람과 함께 백색 눈보라가 시야를 가로막는 가운데, 시후와 은서가 탑승한 특수 방탄 SUV 행렬이 얼어붙은 절벽 도로를 간격을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차 안에서 은서의 차가운 손을 쥐고 있던 시후의 미간이 일순간 굳어졌다.삐이이익-!차량 전방 하부의 금속 탐지 레이더가 적색 경보음을 울렸다.“급제동!”끼이이익-!운전석의 윤태준 실장이 핸들을 꺾으며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50m 앞 터널 입구의 도로 아스팔트가 화염과 함께 솟구쳐 올랐다.콰아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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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산장

쾅-!산장의 묵직한 오크나무 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렸다.쿠구구구궁-!수백 톤의 눈이 협곡으로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문짝까지 울렸다. 한참 뒤 굉음이 잦아들었다. 은서는 귀를 기울였지만 문 너머에서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해발 3,200m, 알프스의 눈보라 속에 고립된 외딴 목조 산장(Refuge).바깥으로 통하는 길은 수 미터의 눈 아래 파묻혀 있었다. 위성 통신도 연결되지 않았다. 닫힌 문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가 내는 소리에만 의지해야 했다.은서는 문 안쪽 바닥에 주저앉았다. 귀가 먹먹했다. 밖의 굉음이 멎은 뒤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같은 소리가 울렸다.시후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펴 보라고 했다. 은서는 장갑을 벗으려다 실패했다. 그가 도와주자 손끝이 얼얼하게 드러났다.“윤 실장님은요?”“다른 대피로로 빠진다는 연락을 받았다.”“확실해요?”“마지막 교신은 그랬어. 연결되면 다시 확인한다.”시후도 확답하지 못했다. 은서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려다 말았다. 두 사람의 호흡이 하얗게 보였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다 무릎에 힘이 풀려 다시 앉았다.산장에는 비상 물품이 든 장과 난로가 있었다. 시후가 담요를 꺼내 곁에 뒀다. 은서는 그가 움직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의 광산에 왔다는 사실은 멀어지고, 오늘 밤을 어떻게 버틸지가 더 가까워졌다.손에 쥐고 있던 가방은 차에 남겨뒀다. 은서는 빈 무릎을 내려다보다가 시후의 얼굴을 봤다. 그도 가방에 대해 묻지 않았다. 지금 잃어버린 물건을 세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알고 있었다.“하…… 읏, 추워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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