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된 볼룸 한가운데, 시후의 손목에 차인 티타늄 스마트워치가 미세한 진동을 울렸다.[GPS 추적: 한은서 — 호텔 1층 프라이빗 드레스룸 내 정지 중. 심박수 정상.]“윤 실장, 비상 발전기 가동하고 1층 드레스룸 경호선 강화해라.”시후는 침착하게 지시를 내리며 1층 드레스룸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시각, 1층 프라이빗 드레스룸 안. 은서는 드레스 안감에서 떼어낸 ‘더미 주파수 에메랄드 브로치’를 실내 마네킹의 발목에 단단히 고정해 둔 상태였다.불이 꺼지자 은서는 먼저 드레스룸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고 잠깐 벽을 짚었다. 숨이 너무 커서 복도에 들릴 것 같았다.안감에서 브로치를 떼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손이 떨려 실밥을 한 번에 잡지 못했다. 매끈한 장신구가 손바닥에 들어오자 곧바로 마네킹 아래에 내려놓았다.아직 돌아갈 수 있었다. 이 물건을 다시 숨기고 시후를 기다리면 정전 때문에 놀랐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은서는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 얼굴이 창백했다.그러나 돌아가면 그 얼굴로 또 몇 달을 살아야 할지 몰랐다. 은서는 마네킹의 받침을 눌러 흔들리지 않는지 확인했다. 머리의 티아라는 벨벳 보관함에 넣어 남겨 두었다. 이곳을 떠나는 데 보석을 가져갈 필요는 없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제 몸과, 진실을 확인할 기회였다.브로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 공진 주파수가 백금 앵클릿의 위장 신호를 서버로 완벽히 송출하고 있었다. 은서는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스커트 자락을 단숨에 찢어내어 기동성을 확보하고, 하이힐을 벗어 던진 채 맨발로 비상계단을 질주했다.타닥, 타닥!차디찬 콘크리트 계단을 밟으며 단 2분 만에 지하 3층 기계실 방화벽 앞에 도달했다.철컥-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헤드라이트를 끈 채 대기하고 있던 스
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