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은 밤새 서이경의 글씨를 지우지 못했다.자기 이름으로 발표된 드레스 서른여덟 벌. 구조를 바꾼 붉은 선, 신부의 통증을 적은 메모, 납기를 맞추려고 새벽 세 시에 저장한 기록마다 작성자는 이경이었다.그가 한 일은 마지막 발표 자료에서 익명 표시를 확인한 것뿐이었다.‘허리 절개 2센티미터 아래. 고객이 앉을 때 갈비뼈 압박.’‘장식 삭제. 신부가 어머니 취향을 거절함.’태준은 두 번째 메모 앞에서 손을 멈췄다. 이경은 모르는 신부의 거절은 지켜 주면서, 자기 이름이 지워지는 일에는 한 번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그 침묵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정확히는 자신을 위한 사랑이 계속 공짜일 거라고 믿었다.휴대전화를 들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두 글자를 썼다.‘고맙다.’답은 점심이 지나 도착했다. 문장이 아니라 파일이었다.‘조정 별첨 누락분: 한주웨딩 미지급 보수 명세.’합의서에 오른 열 명의 수당은 기한에 맞춰 지급됐지만, 증거가 없어 빠졌던 퇴직자와 외주 인력이 남아 있었다. 재단사, 피팅 직원, 야간 계약직의 이름과 시간이 한 줄씩 적혔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지연 이자 계산이 붙었다.태준이 전화를 걸었다.“문자는 봤어?”“봤어요.”“그게 답이야?”“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먼저 갚으세요. 내게 보낼 말로 직원들 시간을 대신하지 말고.”“네 몫은?”“이혼 조정에서 정리했습니다.”“칠 년을 숫자 몇 줄로 끝낼 수 있어?”이경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끝낸 건 숫자가 아니라 당신 선택이에요.”통화는 끊겼다.태준은 재무팀을 불렀다. 명세를 지급하라고 지시하자 담당 임원이 난색을 보였다.“법적으로 시효가 지난 항목도 있고, 회사가 인정하면 유사 청구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확인되는 시간은 지급해.”그 말은 처음으로 옳았지만 늦었다. 지급 승인란 아래에는 과거 미지급을 묵인한 대표의 전자서명도 함께 남았다.명세 속 사람들의 계좌에 돈이 들어오자 누구도 태준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정 실장은 입금 여부를 확인한 뒤 원본을
Last Updated : 2026-09-1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