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축하해, 여보. 그런데 그 아이 당신 아이 아니잖아: Chapter 51 - Chapter 60

90 Chapters

51화 — 도움도 숨기면 통제다

“월백을 보호하려면 로안이 과반을 가져야 합니다.”이사가 첫 문장부터 결론을 말했다. 이경은 맞은편의 빈 의자를 보았다. 선우는 약속대로 회의에 들어오지 않았다.“누구에게서 보호한다는 뜻입니까?”“한주가 공급과 언론을 모두 쥐고 있습니다. 서 대표 개인 회사로는 방어가 불가능합니다.”“그래서 고객 자료까지 로안 공동 자산으로 만들겠다는 겁니까?”이사는 표현을 바꿨다.“통합 보안 관리입니다.”이경은 수아의 비동의 영상, 서진의 의료 치수, 영숙의 피팅 사진이 유출된 경로를 한 장씩 화면에 띄웠다. 이름과 몸은 가리고 접근 권한만 표시했다.“모두 회사가 고객을 자산이라고 부른 순간 생긴 일입니다. 월백은 로안의 보호를 받기 위해 같은 구조로 들어가지 않습니다.”“그러면 공격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죠?”이경은 독립 자금안을 펼쳤다. 신규 맞춤 주문을 무리하게 늘리는 대신 수선·복원 매출, 단계별 착수금, 공동 창작 사용료와 비상 준비금을 분리한 계획이었다.“지난달 수선 매출은 예상의 두 배였습니다. 취소율은 공격 전보다 높지만, 투명 가격표를 본 고객의 재계약률은 로안 평균보다 높습니다.”“차 대표가 제공한 장소와 홍보 덕분 아닙니까?”“맞습니다. 그래서 장소 사용료와 고객 유입 기여를 계약대로 지급합니다.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과 지분을 넘겨야 한다는 결론은 같지 않습니다.”다른 이사가 손목 보호대를 가리켰다.“대표 한 사람이 다치면 일정이 흔들리는 회사입니다.”“그 지적도 맞습니다.”이경은 숨기지 않았다.“그래서 접근성 설계팀과 이중 치수 확인, 팀 패턴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주 제가 바늘을 잡지 못했지만 두 벌이 직원 이름으로 완성됐습니다. 한 건은 취소됐고 그 손실도 표에 넣었습니다.”좋은 숫자만 골라 오지 않은 자료였다.이사회는 한 시간 넘게 질문했다. 한 이사는 월백 이름을 로안웨딩 아래에 두면 마케팅비를 늘리겠다고 제안했다.또 다른 이사는 지원의 결혼 취소를 도운 일이 호텔 매출을 해친다고 공격했다.“고객에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52화 — 가짜 가족 옷은 싫어요

“이름표 떼도 돼요?”민아가 물었다. 흰 재킷 가슴에는 ‘정민아’가 수놓아져 있었다. 아이의 현재 이름은 강민아였다.준호의 조끼에도 ‘정준호’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성을 따라 태어날 때부터 강준호로 살았다. 새엄마를 뜻하는 분홍색 꽃 장식까지 손으로 가렸다.“누가 이름을 정했습니까?”이경이 부모에게 물었다.강주희와 정우진이 서로를 보았다. 우진이 먼저 답했다.“양가 부모님이 결혼식부터 한 가족처럼 보여야 한다고 해서요. 예식 업체가 시안을 만들었습니다.”“한 가족이면 성이 같아야 해요?”민아가 물었다.어른들이 바로 답하지 못했다.주희는 이혼 뒤 민아를 혼자 키웠고, 우진은 아내와 사별한 뒤 어머니 성을 쓰는 준호와 살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집을 합치기로 했지만 아이들 성과 법적 관계는 서두르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결혼식 준비가 시작되자 양가는 같은 옷, 같은 성, ‘엄마·아빠’ 호칭을 사진에 담으라고 요구했다.집에서도 이미 작은 충돌이 있었다. 민아 방 문패를 ‘정민아’로 주문한 날 아이는 문을 잠갔고, 준호는 주희가 싸 준 도시락을 먹고도 학교에서는 새엄마가 만들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두 아이 모두 결혼 자체를 반대한 적은 없었다. 어른들이 가족이 됐다는 증거를 자기 이름과 입으로 만들라고 요구할 때마다 뒤로 물러났을 뿐이었다.준호가 조끼를 벗어 의자에 놓았다.“엄마 꽃 달면 진짜 엄마 잊는 것 같아요.”주희가 놀라 손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내가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 적은 없어.”“할머니가 식 날만이라도 부르래요. 사진 예쁘게.”주희의 눈이 흔들렸다.이경은 네 사람을 한 줄로 세워 조화로운 색을 고르려다 멈췄다. 가족마다 다른 것을 지켜 주겠다고 하면서도, ‘함께 보이는 옷’부터 생각하고 있었다.“오늘은 가족 의상 시안을 만들지 않겠습니다.”우진이 당황했다.“아이들이 싫다고 해서요?”“아이들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아직 따로 듣지 못했습니다. 어른 앞에서 한 대답만으로 정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53화 — 아이 얼굴을 판 사람들

광고는 가봉 다음 날 아침부터 지하철 화면에 걸렸다.민아와 준호의 얼굴이 모자이크도 없이 웃는 가족사진 사이에 배치됐다. 실제로는 서로 다른 피팅실에 있던 두 아이를 한 화면에 합성한 사진이었다.‘진짜보다 아름다운 새 가족.’민아 가슴에는 월백이 떼어 낸 ‘정민아’ 이름표가 다시 붙어 있었다. 준호 발에서는 공룡 운동화가 지워지고 네 사람 모두 같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광고 마지막에는 백세라가 배를 감싸며 말했다.“가족은 하나가 되려는 노력으로 완성됩니다.”주희가 월백으로 뛰어 들어왔다.“학교 단체방에 광고가 올라왔어요. 민아 친아빠도 봤고요.”우진은 광고 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가족 대표’가 촬영에 동의했다는 답만 돌아왔다. 법적 권한도 없는 우진의 어머니가 동의자로 적혀 있었다.“할머니가 왜 우리 얼굴을 허락해요?”민아가 물었다.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이경은 광고 원본과 게시 위치를 먼저 보존했다. 그리고 부모에게 선택지를 설명했다. 즉시 임시 중지 신청, 형사 고소, 광고주와의 비공개 합의. 아이들에게는 법률 용어 대신 자기 얼굴이 어디에 쓰였고 지금 무엇을 멈출 수 있는지 알려 줬다.“내 얼굴 다 지워 주세요.”민아가 말했다.준호는 광고를 보지 않겠다고 했다.“내가 확인 안 해도 지울 수 있어요?”“응. 네가 다시 볼 필요 없어.”이경은 두 아이를 기자 앞에 세우지 않았다. 부모에게도 아이가 한 말을 인터뷰에서 그대로 읽지 말라고 부탁했다.한주에 보낸 사용 금지 통지에는 피팅장 촬영 금지 표지, 미성년자 별도 동의 부재, 이름과 의상 합성 사실이 적혔다.법무팀은 태준에게 긴급 보고했다.‘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전혀 없으며, 아동 본인의 명시적 거부도 확인했습니다. 즉시 집행 중단 권고.’혜란은 가족 캠페인을 멈추면 한주가 입양과 재혼 가족을 차별한다는 역풍이 분다고 주장했다.세라는 광고 반응표를 보여 줬다. 클릭률은 평소의 세 배였다.태준은 민아의 이름이 강씨라는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 서봄이 자기 성을 거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54화 — 피를 앞세운 카메라

“서봄은 내 피를 받은 딸입니다.”박도윤이 생방송에서 말했다. 화면 아래에는 ‘친부에게서 아이를 빼앗은 입양 권력’이라는 자막이 흘렀다.그 옆에 앉은 세라는 배를 감싸고 고개를 끄덕였다.“새 가족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뿌리를 알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봄의 이름은 가리지 않았다. 전학한 학교를 찾아내려는 댓글이 바로 올라왔다.이경은 작업실 텔레비전을 끄고 봄에게 물었다.“오늘 상담실에 갈까, 집에 갈까?”“집. 저 아저씨 목소리 듣기 싫어.”“알겠어.”선우가 차를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이경은 상담 교사가 안내한 비공개 이동 차량을 불렀다. 봄은 직원과 함께 카메라가 없는 뒷문으로 나갔다.민아와 준호도 부모가 데리고 돌아갔다. 이경은 세 아이가 모두 현장을 떠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방송사로 향했다.진행자는 반론을 위해 아이와 함께 출연해 달라고 요구했다.“피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있어야 균형이 맞습니다.”“아이를 먼저 노출한 쪽과 똑같이 하라는 뜻입니까?”“봄 양이 친부를 싫어한다고 직접 말하면—”“일곱 살이 전국에 자기 가족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결정문과 성인 책임자의 기록으로 하겠습니다.”이경은 혼자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선우도 대기실에 남았다.도윤은 이경을 보자 눈물을 짜냈다.“돈 많은 집에 시집가려고 내 딸을 가져갔잖아.”화면에는 일곱 해 전 입양 동의서가 떴다. 도윤의 서명 아래 치료비와 양육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필 문장이 있었다.“이 서명도 빼앗겼습니까?”이경이 물었다.“변호사들이 겁을 줬어.”“병원 면담 영상에서는 돈을 주면 바로 서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안 언니가 살아 있을 때 폭행으로 접근금지 명령도 받았고요.”도윤이 얼굴을 붉혔다.“부부끼리 싸운 걸 폭력으로 만들지 마!”그 한마디로 세라가 준비한 피해자 얼굴이 갈라졌다.이경은 지안의 사진을 내놓지 않았다. 폭력 기록의 사건번호와 확정 결정만 화면에 띄웠다.“죽은 사람의 상처까지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겠습니다.”세라가 끼어들었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55화 — 각자 다른 성으로 서는 가족

“저 옷 안 입을래요.”민아가 맞춤 재킷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결혼식 시작까지 두 시간, 신부 대기실 밖에는 이미 사진기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주희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어디가 불편해?”“옷은 안 불편해. 등에 쓴 글씨가 싫어.”네 벌의 재킷 뒤에는 한 글자가 같은 금실로 놓여 있었다.정.우진의 성이었다. 주희 쪽 친척이 ‘이제 진짜 한 가족이니 사진만큼은 성을 통일하자’며 몰래 자수실에 추가한 글씨였다.준호도 자기 재킷을 벗었다.“저는 강준호인데요.”월백 직원이 당황해 작업 지시서를 펼쳤다. 원래 도안에는 네 사람이 각자 고른 작은 기호만 있었다. 민아는 연필, 준호는 축구공, 주희는 들꽃, 우진은 커피잔이었다.이경은 자수를 손끝으로 확인했다.“이건 월백이 승인한 작업이 아닙니다.”우진의 어머니가 대기실로 들어왔다.“내가 부탁했어요. 성 하나 맞추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밖에서는 벌써 피도 안 섞인 애들을 데리고 가족 흉내 낸다고 난리인데.”“그래서 아이들 이름을 지우셨습니까?”“지운 게 아니라 묶어 준 거죠.”이경은 아이들에게 먼저 물었다.“금실을 뜯으면 바늘자국이 조금 남을 수 있어. 새 옷으로 바꾸면 식에 늦을 수도 있고. 어떻게 하고 싶어?”민아는 재킷을 뒤집어 보았다.“자국 남아도 뜯을래요.”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제 축구공은 그대로 두고요.”“그렇게 할게.”이경은 두 아이의 대답을 작업지에 직접 적게 했다. 일곱 살 준호는 삐뚤빼뚤하게 이름을 썼고, 열 살 민아는 ‘정씨로 바꾸지 않음’이라고 또박또박 덧붙였다.우진이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저도 아이들이 제 성을 가져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네가 지금은 좋아도 나중에 남들이—”“남들 보여 주려고 결혼하는 것 아닙니다.”이번에는 주희가 말을 이었다.“민아가 우진 씨를 아빠라고 부를지도 아이가 정해요. 준호도 저를 엄마라고 부를 의무 없고요.”두 어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물러나지 않았다.이경과 정 실장은 금실을 한 땀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56화 — 손으로 말하는 신부

“신부는 긴장해서 말을 잘 못합니다. 저한테 설명하세요.”박소담의 어머니가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정작 소담은 테이블 끝에 앉아 이경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소담 옆에는 수어통역사가 있었다. 예식장 직원은 통역사의 얼굴만 보며 일정표를 읽었다.“입장 음악은 어머님이 고르셨고, 서약도 어머님이 낭독하시면 됩니다. 신부님은 웃으면서 서 계시면—”소담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통역사가 입을 열었다.“제가 왜 제 서약을 하지 못하나요?”직원이 다시 통역사를 향했다.“하객들이 수어를 모르면 전달이 안 되잖아요. 어머님이 읽는 게 감동도 있고요.”소담은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화면에 직접 쓴 문장이 나타났다.‘전달되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볼 생각이 없는 겁니다.’직원의 얼굴이 붉어졌다.“그런 뜻은 아니고요.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이경은 일정표를 덮었다.“오늘은 드레스 상담부터 하겠습니다. 진행 방식은 소담 씨가 정한 뒤 다시 이야기하죠.”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얘가 요즘 고집이 세졌어요. 결혼식은 친척들도 오는 자리인데 알아들을 수 있게 해야죠.”소담은 어머니 쪽을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그린 그림을 이경 앞에 펼쳤다.얇은 베일 아래 두 손이 보였고, 손끝에서는 빛이 퍼지고 있었다. 베일은 입술과 턱을 가리지 않았다.이경은 그림을 살피다 통역사에게 물었다.“베일 길이는 어느 정도를 원하신대요?”통역사의 손이 움직이기도 전에 소담이 연필로 탁자를 두드렸다.시선이 마주쳤다.소담은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 태블릿에 썼다.‘제가 여기 있습니다.’이경의 등이 굳었다.가족과 예식장 직원만 탓할 일이 아니었다. 자신도 질문을 소담에게 던지지 않고 더 익숙한 목소리를 향했다.“미안합니다.”이경은 의자를 옮겨 소담의 정면에 앉았다. 통역사가 두 사람 모두의 손이 보이는 옆자리로 물러났다.“제가 수어를 못해서 통역사님만 봤어요. 다시 물을게요.”이경은 천천히 입 모양을 보이며 동시에 태블릿에 문장을 적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57화 — 입술을 가리는 베일

“이 목소리, 제 목소리 아니에요.”소담이 태블릿 화면을 세게 눌렀다. 영상 속에서는 분명 소담의 얼굴이 움직였고, 낯선 여자의 음성이 정확한 문장으로 이어졌다.“서이경 대표가 장애를 홍보에 이용했습니다. 계약을 취소하고 싶습니다.”새벽 한 시에 올라온 영상은 이미 수십만 번 재생됐다. 자막에는 ‘농인 신부의 용기 있는 폭로’라고 적혀 있었다.소담의 어머니가 월백으로 달려왔다.“일단 기자들한테 제가 설명할게요. 우리 애는 말을 못하니까—”소담의 손이 탁자 위에서 멈췄다.소담은 어머니를 보지 않고 이경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저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이경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누가 대신 설명할지는 소담 씨가 정합니다.”선우가 로안 법무팀의 대응안을 세 장 내밀었다. 즉시 기자회견, 플랫폼 삭제 요청, 디지털 감식과 보전 신청이었다.“어느 것도 지금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소담은 기자회견 쪽에 굵은 선을 그었다.‘싫어요.’그 아래 직접 적었다.‘저 사람들 앞에서 또 제 진짜 목소리를 증명하고 싶지 않아요.’이경은 플랫폼 삭제와 증거 보존에만 표시했다.“결혼 일정도 그대로 두고 싶습니까?”이번에는 소담의 눈을 보고 물었다.소담은 잠시 생각한 뒤 ‘네’라고 수어했다.베일 가봉은 예정대로 이어졌다. 이경은 얼굴 앞에 천이 한 겹도 내려오지 않도록 머리 뒤에서 고정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고개를 돌릴 때도 입술과 손이 동시에 보여야 했다.소담의 약혼자 준석은 거울 앞에서 직접 입 모양을 확인했다.“여기 서면 빛 때문에 손이 안 보여.”소담이 바닥 위치를 옮겼다.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듣지 않은 것뿐이었다.이경은 조명 담당자에게 시각 신호 순서를 설명하다 멈췄다.“제가 정하지 않겠습니다.”리모컨을 소담에게 건넸다.소담은 여섯 개 불빛의 간격을 직접 맞췄다. 너무 빠른 세 번째 신호를 늘리고, 마지막 불빛은 두 사람이 함께 켜지도록 바꿨다.오후가 되자 합성 영상 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58화 — 훔쳐 붙인 목소리

합성임을 알고도 강태준은 영상 삭제를 막았다.이경은 그의 결재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이제 누가 확산을 선택했는지 더는 추측할 필요가 없었다.한주 내부 메일에는 법무팀 경고까지 붙어 있었다.‘조작 영상으로 확인될 경우 정보통신망법 및 장애인 차별 관련 책임이 확대될 수 있음.’그 아래 태준이 전자서명했다.위험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알고도 유지하라고 선택했다.이경은 메일 원본을 증거 보전 목록에 넣었다.“플랫폼이 아직 답이 없어요.”직원이 말했다.“백세라 쪽은 영상이 소담 씨 계정에서 나온 진짜 폭로라고 인터뷰를 열었고요.”화면 속 세라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저도 같은 여성 창작자로서 박소담 씨의 용기를 지지합니다. 서이경 대표는 장애를 감동 상품으로 소비한 책임을 져야 해요.”기자가 합성 의혹을 묻자 세라는 눈을 내리깔았다.“당사자의 목소리를 또 가짜라고 의심하는 게 더 큰 폭력 아닐까요?”소담의 말을 훔쳐 놓고, 의심하는 사람을 가해자로 만드는 방식이었다.이경은 즉시 반박 방송을 켜지 않았다. 먼저 소담에게 세 가지 선택지를 문자로 보냈다.월백 명의의 기술 감식 결과만 공개하는 방법. 소담의 원본 수어 영상을 함께 공개하는 방법. 아무 영상도 공개하지 않고 법원 절차만 밟는 방법.답은 세 번째였다.‘오늘은 아무것도 내지 마세요. 제 채널에서 제가 결정할게요.’“그렇게 하겠습니다.”이경은 홍보팀이 준비한 해명문에서 소담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지웠다. 월백은 조작 파일의 삭제와 보존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한 줄만 올렸다.댓글은 곧바로 뒤집혔다.숨기는 게 있다는 말, 진짜 피해자가 맞다는 말, 신부를 압박했다는 말이 쏟아졌다.예약 고객 두 팀이 상담을 미뤘고, 소담의 예식장도 최종 대관 보류 공문을 보냈다.더 큰 손실은 소담에게 갔다. 작업 의뢰를 주던 출판사가 사실관계 확인 전까지 계약을 중단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소담의 진짜 수어 영상마다 거짓말쟁이라는 댓글을 달았다.이경은 손해 목록을 월백 것과 소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59화 — 목소리는 소리만이 아니다

오전 열 시, 박소담의 화면에는 아무 음성도 없었다.카메라는 얼굴과 두 손을 한 화면에 담았다. 자막도 미리 넣지 않았다. 소담은 자기 채널의 생방송 버튼을 직접 눌렀다.손이 움직였다.‘먼저 제 말을 들으려면 보셔야 합니다.’몇 초 뒤 실시간 자막 담당자가 소담의 수어를 문장으로 옮겼다. 통역 음성은 선택 버튼을 눌러야만 들리게 했다.‘어젯밤 영상의 얼굴은 저였지만 목소리는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월백이 저를 이용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접속자가 빠르게 늘었다.댓글창에는 왜 직접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올라왔다.소담은 그 문장을 화면에 고정했다.‘저는 계속 직접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음성만 말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이경은 작업실 한쪽에서 방송을 보고 있었다. 옆에 앉지도, 화면에 등장하지도 않았다. 소담이 요청한 감식 보고서 한 장만 전달했을 뿐이었다.소담은 보고서의 핵심 부분을 직접 띄웠다.원본 무음 영상과 합성 음성의 생성 시각. 세라 홍보팀 결제 주소. 한주 관리 계정의 삭제 보류 기록.‘서이경 대표도 처음에는 제 통역사에게 질문했습니다.’월백 직원들이 숨을 삼켰다.이경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제가 지적하자 사과했고, 그 뒤에는 저를 보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약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고칠 기회를 줄지 결정했기 때문입니다.’칭찬보다 더 정확한 증언이었다.소담은 세라를 용서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내 얼굴을 훔친 사람과 내 목소리를 만든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습니다. 하지만 제 결혼식을 그 사람들의 사건으로 부르지는 마세요.’방송은 십일 분 만에 끝났다.소담은 마지막까지 후원 버튼을 켜지 않았다. 영상 재사용도 금지했고, 방송사가 화면을 가져갈 때는 수어 전체를 자르지 않는 조건을 달았다.한 방송사는 속보를 위해 손동작 사이를 잘라 20초 영상으로 쓰겠다고 했다. 소담은 허가를 취소했다. 시청률이 높은 곳보다 원래 속도와 문맥을 지키는 작은 채널 하나를 골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60화 — 빛으로 울리는 축가

첫 번째 불빛이 켜지자 박소담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음악은 이미 시작됐지만 소담은 소리를 쫓지 않았다. 통로 바닥의 빛이 차례로 살아났고, 손목의 진동이 다음 박자를 알려 줬다.두 번째 빛.세 번째 빛.네 번째 불빛에서 장치 하나가 잠깐 꺼졌다. 리허설 때 정해 둔 대로 준석이 손바닥을 두 번 폈고, 소담은 멈춘 채 신호를 확인했다. 직원은 음악을 억지로 이어 가지 않고 대기했다.몇 초 뒤 예비 조명이 켜졌다. 하객들은 사고가 아니라 소담이 선택한 속도로 받아들였다. 완벽한 장비보다 멈춰도 되는 약속이 예식을 지켰다.베일은 머리 뒤에서 부드럽게 흘렀다. 입술도 두 손도 가리지 않았다.하객들은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소담이 서약할 때는 통역사를 보지 말고 신부의 손을 먼저 보라는 문장도 식순에 적혀 있었다.통로 끝에서 준석이 손을 들었다.‘천천히 와.’소담이 웃으며 답했다.‘기다리고 있어.’다섯 번째 불빛까지 준석이 켰다. 마지막 스위치는 소담의 어머니 앞에 놓여 있었다.어머니는 서둘러 누르지 않았다. 딸이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기다렸다.여섯 번째 빛이 켜졌다.소담이 단상에 도착하자 음악이 멈췄다. 정적이 어색해질 틈도 없이 하객석 양옆의 작은 조명이 손 모양처럼 펼쳐졌다.축가를 맡은 친구들이 목소리와 수어로 같은 노래를 시작했다. 저음은 바닥 진동판을 통해 발끝에 닿았고, 가사의 핵심은 빛의 색으로 바뀌었다.누군가는 음성을 들었고, 누군가는 손을 봤다. 어느 한 방식도 다른 방식의 자막이 아니었다.서약 순서가 오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소담의 어머니에게 건네려 했다. 어머니는 받지 않고 딸 쪽으로 돌려놓았다.소담은 마이크 대신 두 손을 들었다.‘준석 씨, 당신은 내 침묵을 대신 채우지 않았습니다. 내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화면 자막이 한 문장 늦게 따라왔다.‘나는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당신과 같은 방향을 보는 연습을 하겠습니다.’준석도 수어로 답했다. 손 모양이 몇 번 틀렸고 소담은 웃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PREV
1
...
45678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