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산은 일요일 아침이었다.서하는 노트북에 표를 만들었다. 월세, 관리비, 전기, 수도, 식비. 도윤은 그 표를 진지하게 읽었다. 투자 보고서를 읽는 얼굴이었다.“식비가 편의점 영수증 열한 장입니까.”“당신이 요리를 못 하니까요.”“당신도 못 하잖습니까.”“저는 실험실에서 십 년을 살았어요. 비커에 밥은 안 해요.”“그럼 이건 뭡니까.”그가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콘돔이요. 반씩.”도윤이 웃었다. 소리를 내서. 서하는 그 웃음을 처음 들었다. 낮고 짧았고, 끝이 조금 갈라졌다.“그건 제가 사겠습니다.”“왜요.”“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있던 거니까.”“사용한 적은 없다면서요.”“그러니까 제 몫입니다.”서하는 그 줄을 지우지 않았다. 대신 옆에 적었다. 강도윤 부담.오후에 서하는 민지의 USB를 열었다. 두 번째 처방의 배합 기록. 세 번째 처방의 안정성 데이터. 육 년의 절반이 거기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회사 서버에서 지워졌고, 채린의 계정에 있었다.도윤이 옆에 앉았다.“무슨 처방입니까.”“관심 있어요?”“내 아내가 뭘 만드는지는 알아야죠.”서하는 화면을 돌렸다.“첫 번째는 보습. 피부 장벽을 만드는 거예요. 두 번째는 진정. 예민한 피부를 가라앉히는 거. 세 번째는 재생. 상처 난 피부를 회복시키는 거예요. 세 개가 한 세트예요. 막고, 가라앉히고, 고치고.”“순서가 있군요.”“네. 할머니가 정한 순서예요. 좋은 화장품은 따뜻해야 한다고. 피부는 온도를 기억하니까.”“회사 이름은 정했습니까.”서하가 잠깐 망설였다.“세라온.”“무슨 뜻입니까.”“할머니 이름이에요. 정세라. 거기에 따뜻할 온.”도윤은 그 이름을 한 번 입 안에서 굴렸다.“언제 만듭니까.”“소송 세 개 끝나면요. 아직 하나지만 곧 세 개가 될 거예요.”“그럼 그 전에 이름부터 지키세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당신한테 말했는데요.”“저는 아무나가 아닙니다.”밤이 되자 둘은 같은 침대에 누웠다.서하는 노트북을 펼쳤고 도윤은 화면
Last Updated : 2026-09-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