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은 회색이었다. 서하가 골랐고 도윤이 달았다. 그가 의자 위에서 커튼봉과 씨름하는 동안 서하는 식탁에 서진자문 보고서를 펼쳤다.이십 년 된 종이였다. 복사본의 복사본. 글씨가 번져 있었다.“윤성호 진술. 새벽 한 시경 김재현 소장의 전화를 받음. 연구소에 급히 와 달라는 내용. 한 시 사십 분경 도착. 삼 층에서 연기 확인. 즉시 신고.”서하가 읽었다. 도윤이 의자에서 내려왔다.“신고 시각은 한 시 이십 분입니다.”“네. 도착하기 이십 분 전에 신고했네요.”“진술이 틀렸거나 시계가 틀렸거나.”“시계는 소방서 거예요. 틀렸으면 진술이에요.”서하는 보고서를 넘겼다. 발화 원인 전기 합선. 삼 층 실험실 배전반. 노후. 그리고 서진자문의 의견란.사고사로 판단됨. 보험금 지급 권고.“보험금을 누가 받았어요.”“다온뷰티. 수령인 서명은 재무이사.”“윤성호.”도윤이 맞은편에 앉았다.“지금 치고 싶습니까.”“치고 싶어요.”“그런데요.”“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 다 잃었어요. 회사도, 집도, 채린이도. 궁지에 몰린 사람은 거짓말을 더 잘해요. 지금 가면 또 다른 진술이 나올 거예요.”“그럼 어떻게 합니까.”“엄마 이혼 소송이요. 재산분할 때문에 이십 년 전 회사 재무 자료를 제출해야 해요. 보험금 수령 기록도 거기 들어가요. 법원이 내라고 하면 윤성호는 내야 해요. 제가 묻는 게 아니라.”도윤이 그녀를 오래 봤다.“당신은 가끔.”“네 번째예요.”“네 번째로 무섭습니다.”다음 날 오후, 세라온 사무실.박민지가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숫자가 줄지어 있었다. 사십 도, 사십오 도, 오십 도. 사 주, 팔 주, 십이 주. 분리 없음. 점도 유지. 피에이치 안정.“통과예요, 선배. 1호 장벽 크림. 전 조건 통과.”서하는 화면을 한참 봤다. 그리고 샘플 병을 들어 손등에 발랐다. 냄새를 맡고, 문지르고, 삼십 초를 기다렸다.“할머니 처방이랑 제 처방 사이에 있어요. 이거.”“그게 좋은 거예요?”“좋은 거야. 할머니가 막고, 내
Last Updated : 2026-10-0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