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회장의 집은 성북동이 아니라 한남동이었다.문은 작았다. 집은 컸다. 서정구는 현관에서 직접 서하를 맞았다. 육십 대, 큰 키, 큰 목소리.“윤서하 대표. 딸이 하도 얘기를 해서.”“연희 씨가요?”“적인지 아군인지 정하는 데 두 달 걸렸다더군. 그 애가 사람 정하는 데 두 달 쓴 건 처음이야.”저녁은 한식이었다. 서정구는 식사 중에 사업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세라온도, 명진코스도, 해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정세라 이야기를 했다.“이십 년 전에 그 양반이 해원을 돌려세웠을 때, 업계가 뒤집어졌지. 다들 무슨 수로 그랬냐고. 나도 몰라. 그런데 하나는 알아. 그 뒤로 강일호가 정세라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안 올렸어. 이긴 사람 이름은 안 올리는 법이지.”“할머니가 이겼다고 생각하세요?”“회사를 지켰으니까. 사위는 잃었지만.”서하의 젓가락이 멈췄다.“알고 계셨어요?”“업계는 다 알았어. 김재현 연구소장이 그 화재로 죽은 거. 아무도 말을 안 했을 뿐이지.”식사가 끝나자 서정구는 서재로 데려갔다. 바둑판이 있었다. 돌이 놓여 있었다. 두다 만 판이었다.“앉아.”서하는 앉았다. 서정구는 흑돌 하나를 집었다.“강태성이 리테일로 다온을 끌어들였어. 그 양반은 유통으로 세라온을 조르고, 공장으로 조르고, 모델로 조르고. 그 다음은 뭘 조를까.”“사람이요.”“맞아. 사람. 자네 남편.”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자네 남편이 누군지 알아?”“남편이에요.”서정구가 웃었다. 크게.“그 대답, 딸이 말해 줬어. 그래도 직접 듣고 싶었어.”“왜요.”“강도윤이 누군지 모른다면서 그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처음 봐서. 알고 서 있는 여자보다 무섭군.”“무섭다는 게 칭찬이에요?”“바둑에서는 그래.”그가 흑돌을 놓았다. 판 한가운데.“나는 강태성 쪽에 설 수도 있고 강도윤 쪽에 설 수도 있어. 리테일 유통권을 주겠다는 건 강일호가 한 말이고, 강일호는 늙었어. 그 다음 사람이 누구냐가 명진한테는 중요해.”“저한테 그걸 왜 말씀하
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