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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151 - Chapter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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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화

결국 티셔츠는 사라가 입었다.강수가 침대 옆에 벗어둔 검은 티셔츠였다.처음에는 자기 옷을 입으라고 했다.사라는 싫다고 했다.옷장에 잠옷도 있고 티셔츠도 수두룩했지만 굳이 강수 것을 집어 들었다.“이거 입을래.”“커.”“알아.”“네 거 입어.”“싫어.”그리고 끝이었다.기어코 머리까지 집어넣었다.189센티미터, 89킬로그램인 강수에게 맞는 티셔츠는 160센티미터의 사라에게 거의 원피스였다.소매는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오고 품은 헐렁했다.사라는 만족스럽게 옷자락을 펄럭였다.“편한데?”강수가 내려다봤다.“내놔.”“싫어.”“민사라.”“나 입었어. 끝.”강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벗길 것도 아니었다.결국 트레이닝 바지만 걸쳐 입고 침실을 나갔다.사라는 히죽 웃으며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넓은 등.단단한 어깨.온몸에 남은 오래된 흉터들이 아침 햇빛 아래 그대로 드러났다.사라는 그 뒤에 바짝 붙었다.강수가 걸으면 걷고.멈추면 같이 멈췄다.주방에 도착한 강수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뒤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오빠.”“왜.”“갈비찜 말고 김치볶음밥!”강수가 냉장고 안을 보다가 멈췄다.분명 조금 전까지 갈비찜이 먹고 싶다고 했다.“바뀌었어?”“응.”“…….”“치즈 넣어서.”강수가 김치통을 꺼냈다.사라의 입꼬리가 바로 올라갔다.“해주는 거야?”“먹는다며.”“많이 넣어줘.”“뭘.”“치즈.”“알아.”사라는 식탁으로 가지 않았다.강수 뒤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김치를 꺼내는 것도 보고.밥을 꺼내는 것도 보고.강수가 프라이팬을 올리자 슬쩍 옆으로 움직였다.“나도 할까?”“됐어.”“왜.”“손목.”사라가 제 손목을 내려다봤다.붕대는 풀렸지만 아직 붉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이제 괜찮은데.”“가만있어.”짧았다.사라는 순순히 조리대에 엉덩이를 기대고 섰다.대신 입은 쉬지 않았다.“김치 작게 잘라줘.”“어.”“나 큰 거 싫어.”“알아.”“햄도 넣을까?”강수가 냉장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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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주말이 끝났다.월요일 아침.청담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검은 세단이 빠져나왔다.뒷좌석에는 강수와 사라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사라는 출근하는 내내 졸았다.처음에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더니 어느 순간 강수 쪽으로 기울었다.강수의 어깨에 이마가 툭 닿았다.눈도 뜨지 않은 채 편한 자리를 찾듯 한 번 비비적거렸다.강수는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대신 사라의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한 손으로 받쳤다.앞자리의 정민은 룸미러를 한번 보고는 모른 척했다.일 년이면 익숙해질 만도 했다.CH건설에 도착하자 상황은 달라졌다.차에서 먼저 내린 사라가 눈을 비볐다.“회장님, 먼저 올라가세요.”존댓말이었다.강수가 쳐다봤다.“왜.”“커피 사게요.”“올라와.”“네.”회사에 들어오는 순간 둘은 회장과 비서실 직원이었다.물론.이제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처음에는 소문이었다.회장의 차에서 함께 내리는 민사라.유독 사라에게만 달라지는 차강수의 행동.사라가 휴가인 날이면 괜히 더 무거워지는 회장실 분위기.결정적으로 퇴근할 때면 너무 자연스럽게 같은 차를 타는 두 사람.일 년이 지나자 CH건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회장은 유부남이었다.사라는 회장 부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잘못 입에 올렸다가는 회사 생활이 아니라 인생이 피곤해질 이야기였다.그래서 모두 알면서 쉬쉬했다.엘리베이터에서 사라와 마주치면 평소처럼 인사했고.강수가 사라를 찾으면 평소처럼 전달했다.뒤에서는 눈빛만 주고받았다.그게 CH건설의 암묵적인 규칙이 되어 있었다.오전 회의가 끝날 무렵.회장실 문이 열렸다.덕배가 들어왔다.“형님.”소파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던 사라가 고개를 들었다.“덕배 오빠.”덕배의 시선이 사라에게 갔다.입이 열렸다.“이ㅃ…….”뚝.사라의 눈이 반짝였다.강수도 서류에서 눈만 들었다.덕배가 헛기침했다.“……사라야.”사라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왜? 계속해봐.”“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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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점심시간.회장실 테이블 위에는 회사 근처에서 포장해 온 떡볶이가 펼쳐져 있었다.떡볶이, 순대, 튀김.사라가 먹고 싶다고 해서 메뉴는 고민할 것도 없이 정해졌다.“오빠, 이거 먹어봐.”강수 앞으로 떡볶이 하나가 들이밀어졌다.강수가 입을 벌렸다.사라는 냉큼 넣어주고 자기 것도 집어 먹었다.“맛있지?”“어.”“근데 좀 맵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수가 옆에 있던 물컵을 밀어줬다.사라는 익숙하게 받아 마셨다.일 년이 지나면서 이런 것들은 너무 자연스러워졌다.사라가 맵다고 하면 물이 먼저 왔고.튀김을 집으면 강수가 종지를 가까이 밀었다.입가에 양념이 묻으면 휴지가 날아왔다.말은 없었다.손이 먼저 움직였다.사라는 그런 강수 옆에 딱 붙어 앉아 마지막 튀김까지 먹었다.“배불러.”강수가 빈 용기를 정리했다.“일해.”“싫은데.”“그럼 가.”“그것도 싫어.”결국 그대로 남았다.오후 결재를 앞둔 서류가 회장실 책상 한쪽에 쌓여 있었다.강수가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하자 사라도 의자를 끌고 왔다.바짝 옆에 붙어 앉았다.“내가 도장 찍어줄게.”강수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해.”사라가 기다렸다는 듯 법인 인감을 집었다.물론 아무 데나 찍는 건 아니었다.강수가 확인을 끝낸 뒤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곳만 찍었다.탁.첫 번째.서류를 옆으로 밀었다.강수가 다음 장을 읽었다.사라는 얌전히 기다렸다.“여기.”탁.두 번째 도장이 찍혔다.그 순간 사라가 몸을 기울였다.쪽.강수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강수의 눈이 서류에서 멈췄다.사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장을 들고 있었다.“다음.”강수가 쳐다봤다.“왜.”“뭐가.”천연덕스러웠다.강수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한 장을 더 확인했다.손가락이 결재란을 짚었다.탁.사라가 도장을 찍었다.그리고 또 몸을 기울였다.쪽.이번에도 입술이었다.강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사라는 다시 제자리.“다음.”“민사라.”“응?”강수가 한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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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마지막 서류에 도장이 찍혔다. 탁. 사라는 당연하다는 듯 강수에게 몸을 기울였다. 쪽. 입술을 찍고 떨어지려던 순간이었다. 강수의 손이 허리를 잡았다. “어?” 몸이 그대로 들렸다. 사라가 눈을 크게 뜨기도 전에 책상 위에 엉덩이가 닿았다. 뒤에 놓여 있던 서류가 우르르 밀렸다. 사라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짚으며 강수를 올려다봤다. “야.” 강수가 사라의 무릎 사이로 들어왔다. 사라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도장 찍으라고 했지. 누가 책상에서 하자고 했어?” 대답은 없었다. 강수는 사라의 턱을 들어 그대로 입술을 막았다. “읍…….” 장난처럼 반복하던 뽀뽀와는 달랐다. 사라가 뒤로 밀리자 강수의 팔이 허리를 받쳤다. “어디 가.” 낮고 짧았다. 책상 위 서류가 바스락거리며 구겨졌다. 방금까지 가지런하던 결재철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라가 입술을 떼며 숨을 삼켰다. “오빠.” “왜.” “회사야.” “알아.” “알면서 이래?” 강수는 대답 대신 다시 입술을 내렸다. 사라의 손이 강수의 목 뒤를 감쌌다. 밀어내기는커녕 가까이 끌어당겼다. 짧았던 입맞춤이 길어졌다. 숨이 뒤섞였다. 고요했던 회장실에는 간간이 책상 위 서류가 밀리는 소리와 거칠어진 호흡만 흘렀다. 사라가 겨우 고개를 돌렸다. “잠깐…… 문.” 강수가 리모컨을 집었다. 찰칵. 잠금장치가 걸렸다. 사라가 그 소리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하려고?”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사라를 다시 끌어당겼다. “차강수, 잠깐…….” 이번에도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 책상 끝에 걸터앉은 사라의 치마는 위로 올라가 있었다. 한쪽 다리에는 속옷이 걸려 있었고, 강수는 사라의 허벅지를 벌린 채 삽입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던 허리가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아흣, 오빠……!” 고요했던 회장실 안에 두 사람의 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흔들리는 책상 소리, 작은 사라의 신음이 가득했다. “도장 몇 번 찍었다고 이렇게 넘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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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현관에 사라의 구두가 아무렇게나 벗겨져 있었다.가방은 소파 아래로 떨어졌고, 강수의 재킷은 그보다 조금 떨어진 바닥에 놓였다.낮에 그렇게 붙어 있었으면서도.집에 돌아오자마자 또 이랬다.넓은 소파가 두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낮게 삐걱거렸다.“아흣…… 오빠…….”사라가 강수의 어깨를 움켜잡았다.흐트러진 긴 머리카락이 소파 등받이 위로 넓게 퍼졌다.강수는 말이 없었다.대신 사라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가까워졌다가 떨어지는 숨.소파 가죽이 눌리고 다시 펴지는 소리.사라의 가쁜 호흡이 넓은 거실 안에서 유난히 선명했다.“하아…… 잠깐.”강수의 움직임이 멎었다.사라가 숨을 고르며 그를 올려다봤다.이 와중에도 강수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그게 괜히 얄미웠다.사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맛있었나 봐?”강수의 눈썹이 움직였다.“뭐?”사라가 킥킥 웃었다.“나.”강수가 가만히 내려다봤다.“회사에서도 그러더니 퇴근하고도 나 아흣 이러고 있잖아.”“…….”“완전 맛 들렸네, 차강수.”강수의 큰 손이 사라의 허리를 다시 끌어당겼다.사라의 웃음이 순간 끊겼다.“어, 잠깐……!”강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얼굴이었다.사라는 다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아까까지 놀리던 입에서는 금세 짧은 숨이 새었다.“오빠…….”강수의 손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사라가 얼굴을 묻자 등을 천천히 쓸었다.거친 손바닥과 달리 움직임은 이상할 만큼 조심스러웠다.잠시 후 사라가 고개를 들었다.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대답은?”“뭘.”“맛있냐고.”강수가 사라를 내려다봤다.한참 뒤.“알면서.”짧은 한마디.사라의 눈이 휘었다.“뭘 알아. 말해봐.”“싫어.”“왜?”대답 대신 강수가 사라의 입술을 막았다.사라가 웃음을 삼키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소파가 다시 작게 삐걱거렸다.탁자 위에 놓여 있던 리모컨이 진동을 따라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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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며칠 전부터였다.사라가 잘 먹지 않았다.처음에는 강수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아침을 안 먹는 날도 있었고, 전날 야식을 많이 먹으면 점심까지 배가 안 고프다며 버티는 날도 종종 있었으니까.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먹고 싶다고 먼저 골라놓고 몇 숟갈 뜨지 않았다.좋아하던 고기를 앞에 두고도 젓가락이 느렸고, 딸기우유도 반쯤 남겼다.그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강수가 계란을 사라 쪽으로 밀었다.“먹어.”“배 안 고파.”“어제도 안 먹었어.”“먹었거든?”강수의 시선이 식탁 위로 떨어졌다.반도 비우지 못한 그릇.사라가 슬쩍 눈을 피했다.“조금 먹었지.”강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대신 출근할 때 사라 가방 안에 작은 초콜릿 하나를 넣었다.그걸 발견한 사라는 회사에 도착해서야 웃었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회장실 문이 열렸다.“여보.”익숙한 목소리에 강수의 눈이 들렸다.서희였다.양손에는 제법 커다란 도시락 가방이 들려 있었다.“짜잔.”서희가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오늘은 내가 점심 책임지려고 왔어.”소파에서 자료를 보던 사라도 벌떡 일어났다.“서희야!”“사라야.”서희의 얼굴이 환해졌다.“너도 있었네? 잘됐다.”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희 손에 들린 무거운 가방부터 받아들었다.“이걸 다 했어?”“응. 아침부터.”서희가 뿌듯하게 웃었다.“여보 요즘 집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잖아.”강수의 손이 잠깐 멈췄다.하지만 아무 말 없이 테이블로 도시락을 옮겼다.사라는 자연스럽게 서희 옆에 붙었다.“뭐 했어?”“불고기. 계란말이도 있고, 잡채도 했어.”“우와.”평소 같으면 벌써 젓가락부터 들었을 반응이었다.셋이 테이블에 앉았다.서희가 음식을 하나씩 꺼냈다.강수 앞에 밥을 놓고 사라 앞에도 그릇을 챙겼다.“많이 먹어.”“응.”사라는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처음 몇 입은 잘 먹었다.계란말이 하나.잡채 조금.불고기도 한 점.그런데 금세 젓가락이 느려졌다.강수의 눈은 이미 그걸 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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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여기가 어디야?”사라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건물부터 올려다봤다.낡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수상하지도 않은 상가 건물이었다.서희는 대답 대신 사라의 팔짱을 끼었다.“일단 가자.”“그러니까 어딜 가는데.”“점집.”사라의 걸음이 뚝 멈췄다.“뭐?”“유명하대.”“갑자기?”“응.”서희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나 이런 데 한 번도 안 와봤잖아. 혼자 가기는 좀 무섭고.”“그래서 날 빌린 거야?”“응.”“차강수한테?”“응.”사라가 기가 막힌 얼굴로 서희를 봤다가 결국 웃었다.“너 진짜 웃긴다.”그래도 돌아가지는 않았다.오히려 먼저 계단을 올랐다.“어디야?”“삼 층.”“근데 뭐 물어보려고?”그 질문에 서희의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그냥.”사라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며칠째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조금 처지는 것 말고는 평소와 다를 것도 없었다.삼 층 끝에 작은 문이 있었다.서희가 먼저 문을 열었다.향 냄새가 훅 끼쳤다.사라가 코끝을 찡그렸다.“냄새 세다.”“쉿.”“왜. 아직 아무것도 안 했잖아.”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방 안에 앉아 있던 중년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예약할 때 이름만 말했을 뿐이었다.서희가 조심스럽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들어와.”서희가 방석 앞으로 다가갔다.사라도 그 뒤를 따라갔다.그런데 둘이 채 앉기도 전이었다.여자의 시선이 서희에게 꽂혔다.미간이 깊게 좁혀졌다.“맘 떠난 놈 뭐 하려고?”서희의 움직임이 그대로 멎었다.사라도 눈을 깜빡였다.“네?”서희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 사라졌다.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서희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잡으려고 왔어?”“아니…… 저 아직 아무 말도…….”“붙잡아 봐야 몸만 옆에 있지.”서희의 손끝이 천천히 굳었다.사라의 표정에서도 장난기가 사라졌다.“선생님.”서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 결혼했는데요.”“알아.”여자가 툭 잘랐다.“그러니까 하는 말이지.”잠시 정적이 내려앉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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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왜요?”서희가 먼저 물었다.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얼굴에는 어느새 긴장이 어려 있었다.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서희.사라.다시 서희.한참을 그렇게 보고 있던 여자가 혀를 찼다.“한쪽은 마음에도 없는 놈 잡겠다고 애 언제 생기나 보러 왔고.”서희의 얼굴이 굳었다.“……네?”여자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사라에게 닿았다.“한 년은…….”말이 뚝 끊겼다.사라가 눈을 깜빡였다.“저는요?”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사라의 얼굴에서 목으로.그리고 더 아래로.배.시선이 그곳에 오래 머물렀다.사라도 덩달아 자기 배를 내려다봤다.“왜요?”아무것도 보일 리 없었다.평소와 똑같았다.사라가 손바닥으로 배를 한번 쓸어봤다.“제 배에 뭐 있어요?”여자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입술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됐어.”“뭐가 됐어요?”“말 안 해.”“아니,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사라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뭐가 보이는데요?”여자는 고개를 저었다.“때 되면 네가 알겠지.”“그게 언제인데요?”“민사라.”이번에는 서희가 사라의 팔을 잡았다.“가만히 좀 있어.”“궁금하잖아.”“나도 궁금해.”둘이 속닥거리자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더니 이번에는 서희를 똑바로 바라봤다.“너.”서희가 자세를 바로 했다.“네.”“니들은 인연 아니야.”방 안이 조용해졌다.서희의 눈동자가 그대로 멎었다.“……저랑 남편이요?”“그래.”단호했다.서희가 당황한 듯 웃었다.“저희 결혼한 지 벌써…….”“결혼하면 다 인연이야?”서희의 입이 다물렸다.“붙어 산다고 다 제짝 되는 거 아니야.”조금 전 회장실에서 도시락을 받아 들던 강수의 얼굴이 떠올랐다.자신이 만든 음식을 받아주던 남편.머리를 쓰다듬고, 밥을 같이 먹고, 여전히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그런데.마음 떠난 놈.처음 들었던 말이 다시 귀를 때렸다.서희가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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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그래도 이것 좀 봐주세요.”서희는 결국 가방을 열었다.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작은 수첩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펜으로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적었다.자기 것.그리고 강수의 것.사라는 옆에서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너 진짜 제대로 보러 왔구나?”“왔으니까 봐야지.”“아까 다 들었잖아.”“그래도.”서희가 종이를 여자 앞으로 밀었다.“남편이랑 제 거예요.”여자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종이를 끌어왔다.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손가락으로 날짜를 짚었다.서희의 것부터.그리고 강수의 생년월일에서 손이 멎었다.“남편이 몇 살이라고?”“서른일곱이요.”여자가 코웃음을 쳤다.“성질 더러운 놈 만났네.”사라가 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었다.서희가 팔꿈치로 사라의 옆구리를 찔렀다.“왜 웃어.”“아니야.”“너 웃었잖아.”“안 웃었어.”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여자가 다시 종이를 내려다봤다.“이놈은 원래 말로 풀어내는 놈이 아니야.”사라의 웃음이 조금씩 사라졌다.“자기 속을 남한테 내놓지도 않고. 한번 결정하면 누가 옆에서 뭐라든 밀고 가.”서희가 조용히 들었다.“고집도 세고.”“맞아요.”“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끌어안고.”이번에는 사라가 눈을 내렸다.강수의 얼굴이 너무 쉽게 떠올랐다.말은 지독하게 없으면서 자신이 먹고 싶다고 한 건 기억하는 남자.떠나겠다고 하면 붙잡으면서도, 결국 선택은 자기에게 남겨두던 남자.“근데 이놈이 한번 돌아서면 무섭겠네.”서희의 손가락이 멎었다.“무섭다고요?”“미련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팔자가 아니야. 마음 가는 데 정하면 거기로 가.”여자가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나란히 놓았다.눈썹이 서서히 찌푸려졌다.한참 뒤 혀를 찼다.“쯧.”“왜요?”“인연이 이리 꼬이나.”서희의 표정이 굳었다.사라도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뭐가 꼬여요?”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종이만 한참 바라봤다.그러다 서희에게 눈을 돌렸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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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사라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처음에는 재미있었다.성질이 독하다느니, 심성이 여리다느니.강수의 성격을 몇 마디로 제법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도 신기했다.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묘했다.마음 떠난 놈.인연이 아니다.착한 애가 상처받는다.셋이 얽혔다.넷이 된다.말은 전부 반 토막이었다.설명은 하지 않으면서 사람 속만 뒤집어놓았다.무엇보다 옆에 앉은 서희의 얼굴에서 웃음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사라가 물었다.“그래서요?”여자가 눈을 들었다.“뭐가.”“아까부터 계속 안 좋은 말만 하잖아요.”“보이는 걸 말하는 거야.”“서희가 남편이랑 인연 아니라면서요.”“그래.”“왜 아닌데요?”“인연이라는 게 생년월일 몇 자 보고 설명되는 줄 알아?”사라의 미간이 구겨졌다.“그럼 왜 말했어요?”“사라야.”서희가 조용히 팔을 잡았다.“됐어.”사라가 서희를 돌아봤다.“뭐가 돼.”“그냥 점이잖아.”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이 아까와 달랐다.사라는 그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기분이 더 나빠졌다.자기가 무슨 말을 듣는 건 상관없었다.팔자가 세다 해도 웃었을 거고, 평생 떠돈다고 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겼을 것이다.그런데 서희는 달랐다.혼자 오기 무섭다고 자기까지 끌고 온 애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있었다.사라가 다시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아까부터 왜 자꾸 내 배 봐요?”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뭐가 보이면 말을 해요.”“…….”“말하기 싫으면 쳐다보지도 말고.”서희가 이번에는 사라의 손등을 눌렀다.“야, 진짜 됐어.”“안 궁금해?”“궁금하지.”서희가 작게 웃었다.“근데 괜히 왔나 봐.”그 한마디면 충분했다.사라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자.”“어?”“가자고.”“사라야, 아직…….”“됐어. 나 기분 나빠.”여자가 사라를 올려다봤다.“성질 나온다.”“네. 저 성질 독하다면서요.”사라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그러니까 그냥 갈게요.”서희가 당황하다가 결국 따라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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