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엘의 면담은 카시안의 것보다 짧게 끝날 줄 알았다.서부 별관의 지하 창고에 들어간 시각과 안나를 발견한 경위, 칼베르에게서 열쇠를 넘겨받은 과정까지는 이미 경위서에 적었다. 그녀는 같은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서명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헬레나 모렌은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펜을 멈추었다.“문을 열었을 때 안나 벨로스가 먼저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라엘은 창고 안을 떠올렸다. 낮은 천장과 벽에 기대앉아 있던 여인, 입을 막은 천을 풀자 터져 나온 기침. 안나의 손목을 붙들고 있던 밧줄이 젖어 있었다. 울음 때문에 말이 끊겼고, 라엘은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나가지 못하게 했다고…….”“칼베르 로딘이 그랬다는 이름도 그때 들으셨습니까?”라엘의 입술이 멈추었다. 이름은 들었다. 분명히 들었지만, 그것이 재갈을 풀어 준 직후였는지 물을 마신 뒤였는지까지는 선명하지 않았다. 여인이 자신을 따라 지하로 내려왔다고 말한 기억과 칼베르를 복도로 끌어내던 순간이 겹쳐 있었다.“그건 정확하지 않아요.”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기록에 표시했다. 실망하거나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그럼 최초 발언에는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것으로 남기고, 이후 확인한 내용은 따로 구분하겠습니다. 칼베르의 열쇠로 문을 연 것은 직접 보셨습니까?”“네. 제가 열었어요.”“열쇠를 받은 시점에 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질문은 계속되었다. 라엘은 안나의 손목에 난 상처를 어디까지 직접 보았는지, 물그릇을 누가 옮겼는지, 칼베르의 소매에 묻은 소금을 자신이 먼저 확인했는지 하나씩 되짚었다. 몇 가지는 데미안이 말해 준 것이었다. 그때 함께 있었기에 자신이 보았다고 생각했던 장면도 있었다.면담실에는 작은 창문 하나가 있었다. 창틀에서 떨어진 햇빛이 탁자 끝을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 라엘은 그 빛이 처음보다 손등에 가까워졌을 때야 자신이 한 시간 넘게 같은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경위서 일부를 정정해도 될까요?”“물론입니다.”
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