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Chapter 61 - Chapter 68

68 Chapters

61화

지금도, 하나하나 단추를 풀고 있는 자신의 손길에 넘실거리는 태오의 욕정을 가득 담은 눈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브래지어를 밀어 올려, 한껏 솟아난 젖꼭지를 돌리고 있는 손가락까지. 오랫동안 자신은 가족이라는, 사회라는 제도가 부여한 옷을 유니폼처럼 입고 살아왔다. 아내의 옷. 어머니의 옷. 누군가의 친구이자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서 입어야 하는 옷. 모두 몸에 잘 맞았다. 오래 입어 익숙했고, 남들이 보기에도 단정했다. 그런데 태오를 만나고부터는 전혀 다른 옷을 입어 보고 싶어졌다. 패션쇼에서나 볼 법한 기묘하고 대담한 옷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저런 걸 입어? 하고 지나쳤을 실험적인 의상들을 하나씩 걸쳐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옷을 입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몸이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태오를 눕히고 그 위에 앉은 혜진이 잠깐 그의 가슴, 복근, 그리고 치골까지 이어지는 근육을 손길로 선을 긋듯 주욱 이어내렸다. 드로즈 끝은 이미 젖어서 진한 색상이었고, 협소한 공간에서 아우성 중인 그의 페니스를 옷 위에서 살살 매만졌다. 이미 태오에게 자신은 맨몸이 상태였다. “좋아?” 옷 위에서 선연하게 느껴지는 귀두를 매만지며 혜진이 물었다. “미치겠어.” 팬티를 제치자, 뜨거운 기운이 혜진의 얼굴에 들이닥쳤다. “하아…” 본능이었다. 저렇게 크고 두꺼운 거에 자동반사적으로 혜진은 입을 한껏 열어 삼켰다. 분명 작지 않은 제 입을 한없이 작게 만드는 크기였다. 몸과는 다른 체취, 맛이다. 투명한 액체는 말그대로 무맛이었다. 그런데 어떤 카페인보다 더 중독적이다. 태오의 허벅지는, 혜진의 애액으로 번들거렸다. ”으…쓰..읍..“ 한동안 무아지경으로 태오의 것을 빨아대는 혜진이, 못참겠다는 듯, 그녀의 것을 태오의 선단 위에 올려 놓는다. 태오가 그녀의 양 엉덩이를 잡고 조준하듯이, 그곳을 돌려 비빈다. 이미 한껏 젖었지만, 항상 넣기 직전에 혜진은 망설인다. 매일 해도 익숙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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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또다시 한강변이었다. 첫 대화도, 첫 키스도 이곳에서 나누었다.오늘은 첫 재회인가.지유는 어느새 마음이 누그러져 있었다.“뭘 원하는 건데?”태준은 역시 본론부터 꺼냈다.“제가 뭐 요구했어요?”“그럼 왜 이러는데.”“오늘 찾아온 건 태준 씨예요.”태준은 입을 다물었다.맞는 말이다. 먼저 연락을 끊은 것도, 견디지 못해 다시 찾아온 것도 자신인데, 정작 지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있다니.모순이었다.태준은 이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조차 혼란스러웠다.한참 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난 너랑 결혼 못 해.”지유가 웃음을 터뜨렸다.처음에는 짧게 시작된 웃음은,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왜 웃어?”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나 지유의 웃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눈가에 눈물까지 맺힐 만큼 천진하고 싱그러운 웃음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준도 결국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풀고 말았다.“진짜…… 웃겨.”지유가 눈가를 훔쳤다. 한바탕 웃고 나니 조금 전까지 마음에 남아 있던 원망마저 희미해졌다.“사귀면 다 결혼해요?”태준은 멍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아니, 누가 청혼이라도 했어요? 왜 혼자 결혼까지 갔다가 혼자 안 된다고 하는 건데요?”“지유야.”“우리 아직 사귀지도 않았거든요?”지유가 웃음을 머금은 채 덧붙였다.“그냥 서로가 좋은 건데.”그 말에 태준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그게 그렇게 어려워요?”태준이 손을 핸들 위에 올려 놓더니, 말을 골랐다.“너는, 내 친구…”“그러니까, 그래서요?”지유는 이제 아예 태준 쪽으로 몸을 반쯤 돌렸다. “저 몇 살인지 알죠?”“알아.”“성인인 것도 알고요?”“그런 문제가 아니잖아.”“그럼 무슨 문제인데요?”태준은 핸들을 쥔 손가락을 느리게 움직였다.문제는 많았다. 나이 차이도, 오랜 친구와의 관계도, 자신이 살아온 시간도.“넌 아직 어려.”지유의 눈썹이 올라갔다.“그 말 나올 줄 알았어요.”“지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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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어리다고 했던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친구의 딸이라는 사실도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태준은 지유의 몸을 거침없이 탐했다. 침대 위에서 그는 그녀의 두 다리를 어깨에 걸친 채 한동안 보지에 얼굴을 파묻었다. 처음엔 클리토리스였다. 분명 그녀의 입 안에서 말캉하고 부드러웠던 그의 혀는 전기라도 일으키는 듯, 닿을때마다 그녀의 척추까지 찌릿하게 했다. 시트를 그러쥐고는, 얕은 신음을 내뱉을 때마다, 자극은 더 강해졌다. 이윽고 발기되어 한껏 예민해진 음핵을 공략하더니, 이내 내벽 안으로 혀가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아아….” 그의 코가 강하게 음핵을 압박하고, 내벽 바로 안쪽의 가장 민감한 곳을 휘젓자, 울컥하고 젤리가 덩어리째 나왔다. 마치 흡입기처럼 그녀 몸에서 나오는 건 다 빨아버린 그가 번들거리는 입매를 혀로 핥으면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맛있는데?” — 미쳤어. 지유는 시트를 움켜쥐었다가 이내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천박하고 음란해. 하지만 지유는 그 낙차감에 흥분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마 태준도 나이 차와, 친구 딸이라는 사실은 여기서 그의 욕정을 돋구는 향신료일 뿐일 것이다. 지유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한껏 벌리고 태준의 등을 그러 안았다. “넣어줘?” 지유는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였다. 이미 태준의 손가락은 그녀의 질구를 마구 문지르고 있었고, 그에 흥분한 지유의 둔부가 시트 위로 자꾸만 들렸다. “그럼 말해봐. 자지 넣어주세요라고.” —뭐야. 지유는 마음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취향이었나. 그런데, 꽤 나쁘지 않다. 이렇게 민감한 부위를 활짝 벌린 채, 눈과 혀로 맛보고 있는 남자 앞에서 느끼는 여자의 수치심이란, 수치심으로 극복해야 제 맛이라는 걸. 태준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 욕망 자체가 심연에 있는 건데, 바닥 끝까지 끌어내리는 거, 태준의 취향이 그러했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여자들도, 점차 태준에게 길들여졌었다. 먼저 자진해서 도구를 탐색하고, 그걸 착용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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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혜진은 휑한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디 갔지? 목걸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태오의 집에 떨어뜨리고 온 모양이었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잠시 망설인 끝에 도로 내려놓았다. “우리 해외 가서 살래요?” 그날 밤 태오가 했던 말이 줄곧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휴가일 뿐인데. 일상 속 카페인 같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무미건조한 하루에 잠깐의 각성을 주는, 조금은 중독적이지만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는 그런 것. —커피를 하루 종일 마실 수는 없잖아. 더구나 이 감정도 언젠가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터였다. 지금은 선명하고 간절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희미해질 것이었다. 혜진은 난감함과 들뜸 사이, 그 어느 즈음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낮게 진동하기 시작하고 익숙한 소음이 카페에 퍼졌다. ——----- “제가 바로 가면 되는데요.” “아니야. 어차피 전해 줄 것도 있고. 같이 가자.” 태오는 정우의 손에 들린 노트북 상자를 받아 들었다. 신입 직원들에게 지급할 노트북을 주문하면서 같은 모델로 하나 더 구입해 두었다고 했다. “강의 듣고 과제하려면 필요하잖아. 사양 좋은 걸로 써야지.” 태오가 돈을 모아 직접 샀던 것도 아직 쓸 만했다. 팬 돌아가는 소음이 제법 크고 배터리가 금세 닳기는 했지만, 앞으로 이 년쯤은 더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전자제품이야 최신일수록 좋다지만, 멀쩡한 물건을 그리 자주 바꾸는 일은 태오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정우는 거실에 들어서서 잠시 숨을 고르더니, 가방에서 새 면도기 세트까지 꺼내 보였다. “혜진이가 두 세트 샀길래.” 혜진이. 태오는 그 이름에서 수진을 떠올렸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깊은 관계를, 대체 언제부터 이어 온 걸까.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 이제 와서 그 관계를 멈추게 할 수 있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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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그날 혜진이 먼저 정우에게 다가온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의 섹스는 없었다. 물론 수진을 만나는 간격이 유독 짧아진 탓에 정우로서는 아쉬울 겨를도, 안하게 된 기간을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혜진과는 잘 맞았다. 첫 만남부터 혜진은 섹스에 있어서는 꽤 대담했고, 즐겼다. 하지만 평소의 그녀는 조신하고 단정한 축에 속했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확연한 여자. 정우는 그 이중적인 면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혜진 역시 정우와의 관계를 꽤 만족해했었다. 한 번으로 만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정우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고 나서야 혜진은 아쉬운 듯 웃으며 그의 몸을 꼭 끌어안곤 했다. —그런데 정우는 올리브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먹어? 회사에서 뭐 먹고 왔어?” 혜진이 의아한 듯 정우의 접시를 들여다봤다. 음식은 반 넘게 남아 있었다. 어느새 다음 메뉴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 있었다. “점심 먹은 게 아직 소화가 안 됐나 봐.” “뭐 먹었는데?” “삼계탕” 정우의 시선이 문득 혜진의 목덜미에 머물렀다. 목걸이 하나 걸려 있지 않은 공허한 목덜미에서 쇄골까지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화장에도 채 가려지지 않은 붉은 반점이 눈에 들어왔다. 모를 수가 없다. 상대의 입술이 집요하게 머물렀을 때, 특히 피부가 연약한 여자에게 남곤 하는 흔적이었다. 정우 자신도 수없이 보아 왔고, 남기기도 했던 자국. 울혈. 정우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왜?” 혜진이 그를 바라봤다.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목덜미에 머물러 있었다. “어디 아파?” 혜진이 물었다. 그제야 정우는 눈을 거두었다. “아니.” 그는 레몬수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올리브의 짠맛과 레몬의 신맛이 전혀 어우러지지 않은 채 입 안을 맴돌았다. “참, 다음 주에 부부 동반 모임 있는 거 알지?” 혜진은 새로 서빙된 도미 필레를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껍질은 노릇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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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정우는 셔츠를 벗어 던졌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아직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태오의 침대 밑에서 발견한 목걸이와 혜진의 목덜미에 남아 있던 붉은 흔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우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느새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혜진은 주방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찻잔을 꺼내는 뒷모습이 평소와 다름없이 익숙했다. 정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태오 집에는 가끔 가?” “응?” 혜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아직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곱씹고 있었다. 태오의 아슬아슬한 질문이 못내 화가 났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일까. 정우가 조금만 더 예민하게 받아들였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언제 끝낼 것인지. 이제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했다. 자신은 결국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남편이 있고, 아들이 있고, 오랫동안 일구어 온 생활이 있는 세계. 잠시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거의 안 가지. 그건 왜?” “아니, 뭐. 태오 혼자 있으면 적적하잖아. 민재도 없고, 나도 거의 일에 매여 있고.” 정우는 주방 조리대에 한 손을 짚었다. “당신은 카페 오가는 길에 가끔 들러 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투도, 내용도 한없이 다정했다. 그러나 혜진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달랐다. 사소한 표정 변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요하고 날카로웠다. 혜진은 티백을 꺼내 찻잔에 넣느라 그 눈빛을 보지 못했다. 아마 보았더라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지금 정우가 걱정하는 것은 태오의 외로움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혜진 자신이 경계해야 할 사람은 태오가 아니라는 것을. 정우가 조리대를 돌아 혜진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붉은 흔적은 티셔츠의 목선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화장이 거의 지워진 탓에 오히려 아까보다 선명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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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회

“이건요?” 지유가 장식장 위의 작은 물건을 가리켰다. 태준은 잠시 그것을 바라봤다. “그건…….”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지유의 질문에는 단순히 물건의 이름을 묻는 것 이상의 호기심이 있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왜 이런 것을 샀는지, 어째서 여기에 두었는지. 그러고 보면 태준 자신도 이유를 잊어버린 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적지 않았다. 필요해서 샀던 것인지,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던 것인지조차 가물가물한 것들. 지유가 묻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별생각 없이 그 자리에 두었을 것이다. “왜요? 기억 안 나요?” “그러게. 이걸 왜 샀더라.” 태준이 웃자 지유도 따라 웃었다. “집에 있는 물건인데도 몰라요?” “오래 살다 보면 그래.” “얼마나 오래 사셨는데요?” “십 년은 넘었지?” “와.” 지유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통창 너머 정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키가 제법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정원 한편에는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뒤로 낮은 담장이 이어졌다. 혼자 살기에는 꽤 넓은 단독주택이었다. 아마도 넷, 아니 그 이상의 가족 구성원을 염두에 두고 구입한 집이리라. 5개의 방과 4개의 욕실은 좀 오버야. “안 무서워요?” “뭐가?” “이렇게 넓은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는 않았지만, 가끔 지나치게 조용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 “나라면 맨날 거실에만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방은 들어갈 일도 없겠는데요?” “나도 그래.” “그럼 나머지 방은 왜 있어요?” 태준은 웃으며 거실 통창 앞에 서있는 지유의 실루엣을 눈에 담았다. 정원에서 스며든 오후의 햇빛이 그녀의 어깨와 머리카락 가장자리에 엷게 내려앉아 있었다. 지유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봐요?” “그냥.” 태준은 느릿하게 웃었다. “잘 어울려서. 우리 집이랑.” 지유는 입술을 샐쭉 내밀더니 소파 쪽으로 걸어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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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회

지유는 태준의 커다란 티셔츠 한 장을 걸친 채 서재에 앉아 있었다. 벽과 천장, 책장까지 온통 나무로 마감된 공간이었다. 제법 넓은 방이었지만 차갑거나 휑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목재 특유의 색감과 은은한 향 덕분에 아늑했다. 간간이 다이닝룸 쪽에서 도마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그 소리마저 지유의 마음을 고요하게 했다. 지유는 의자를 뒤로 돌려 책장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경제서와 역사서, 두꺼운 외국어 원서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그사이에서 유독 낡은 양장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책등에는 아무런 제목도 적혀 있지 않았다. — 무슨 책이지? 호기심에 책을 꺼내 펼쳤다. 그 순간, 책장 사이에서 편지와 쪽지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어?” 지유가 놀라 몸을 숙였다. — 뭐야. 학창 시절에 주고받은 연애편지라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에 피식 웃으며 바닥에 흩어진 종이들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 누렇게 바랜 편지 봉투, 반으로 접힌 메모지, 모서리가 닳은 작은 종이들. 그사이에 사진 한 장이 섞여 있었다.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지유는 무심코 사진을 집어 들었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찍은 듯했다. 두 사람의 뒤로 테이블과 조명이 희미하게 보였다. 사진 속 여자는 꽤 어려 보였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앳된 얼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웃음이었다.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어찌나 밝은지 사진을 보는 사람마저 따라 웃게 만들 정도였다. 그 옆에는 태준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얼굴이었다.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입가와 눈매에는 희미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지유는 사진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갔다. — 이렇게 웃는 사람이었나. 사진 아래쪽의 흰 여백에는 작고 동그란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태준 오빠,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한 장뿐인 이 사진은 오빠가 간직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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