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정우는 더 이상 보육원에 맡겨지지 않았다.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그 곳에 들르곤 했다. 오랜 습관처럼.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그 여자애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입시 준비로 하루가 빠듯해지면서, 보육원을 더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기억 속에서 그 장소도, 그 여자애도 차츰 잊혀져 갔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어느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정우의 눈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떠들며 지나가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혼자 걷고 있었다. 어깨에 멘 가방이 걸음에 맞춰 조금씩 흔들렸다. 특별히 눈에 띄는 모습은 아니었는데, 어쩐지 그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여학생은 정류장에 이르러 걸음을 멈췄다. 정우가 무심코 그쪽을 바라본 순간,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며 옆얼굴이 드러났다. 낯이 익었다. 처음에는 어디서 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여학생이 귀 뒤로 머리칼을 넘기는 순간, 오래전 기억 속의 어린 얼굴이 겹쳐졌다. “…어?” 여학생이 고개를 돌렸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정우 오빠?” “맞네. 너였구나.” 그녀도 웃었다. 예전보다 키가 훌쩍 자랐고 얼굴선도 달라졌지만, 웃을 때 한쪽 눈이 조금 더 가늘어지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와, 진짜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못 알아볼 뻔했어.” 정우는 새삼 그녀의 교복을 내려다봤다. “벌써 고등학생이야?” “그럼요, 오빠는요? 대학생?” “응. 지금은 아르바이트하고 오는 길.” 그녀는 정우의 손등에 난 작은 상처를 힐끗 보았다. “저녁 먹었어요?” “응? 아직, 넌?” “나도,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 가요.” 그제야 정우는 조금 전 느꼈던 쓸쓸함이 자신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여학생은 제법 당돌했고, 오래간만에 만난 그를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Last Updated : 2026-10-1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