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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1 - チャプター 20

68 チャプター

11화

정우의 책상 위에는 서류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성년자 입양에 관한 서류.정우는 한동안 봉투를 열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읽었다. 필요한 서류도, 절차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절차가 아니었다.정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태오가 생각한 것보다 더 일찍 정우는 그를 알고 있었다.정우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엄마는 종종 몇 달씩 집을 비웠다. 여자 혼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어쩔 수 없었다. 장기간 지방 일을 나갈 때면 정우는 엄마와 친분이 있는 원장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겨졌다.그래도 정우는 다른 아이들보다 형편이 나았다. 기다릴 사람이 있었으니까. —조금만 버티면 엄마가 온다.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 웬만한 건 견딜 수 있었다.어느 날이었다.계단참에 앉아 숙제를 하던 정우의 눈에 마당 한쪽에 쭈그리고 앉은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꼬질꼬질한 원피스, 한 손에는 돌멩이 하나.아이는 땅바닥에 무언가를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다 정우는 보았다. 아이의 턱 끝에서 떨어진 눈물이 흙바닥에 작은 점을 만드는 것을.돌멩이로 그 자국을 연신 지우고 있었다.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 안에 아껴둔 토마토 주스가 생각났다. 주스를 꺼내는데 열린 창문 너머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두 번째라고?”“그러니까. 그렇게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했는데…….”정우의 손이 냉장고 문에 멈췄다.“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파양당하면 애 마음이 어떻겠어.”파양. 그때의 정우는 그 말의 정확한 뜻을 몰랐다. 다만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정우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잠시 생각하다 찬장에 있던 젤리도 하나 챙겼다. 여자아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이거 먹을래?”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울어서 눈가가 엉망이었다. 정우가 내민 젤리와 토마토 주스를 번갈아 보더니 젤리만 가져갔다.“주스는 싫어?”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우도 더 묻지 않았다. 토마토 주스에 빨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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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없었던 일처럼 지내려고 했다. 태오는 곧 붕대를 풀었고, 간병인도 더는 오지 않았다. 혼자 씻고 밥을 챙겨 먹는 데 문제가 없었고, 날이 좋으면 집 근처를 짧게 걷고 돌아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네 사람이 한 식탁에 앉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다 시간이 맞는 저녁이면 정우는 태오에게 컨디션을 물었고, 민재는 한두 마디씩 끼어들었다.“태오는 이번에 수능 볼 수 있겠어?”“네. 그러려고요.”“너무 무리하지 마. 내년에도 기회 있으니까.”“알겠습니다.”“말만 알겠습니다 하지 말고.”태오가 웃었다. 혜진은 아무렇지 않게 생선의 가시를 발랐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적어도 식탁 위에서는.침대 위에서 혜진은 어느 순간부터 정우의 손을 피하고 있었다.정우가 잠결에 허리를 감으면 슬쩍 돌아누웠다. 입을 맞추려 다가오면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먼저 불을 껐다. 정우는 두어 번쯤 의아한 얼굴을 했다.“요즘 많이 피곤해?”“응. 좀.”“카페 며칠 쉬어.”“됐어. 쉬면 더 피곤해.”정우는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혜진을 불편하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혼자 들킨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정우가 먼저 잠든 뒤에도 한참 눈을 뜨고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 - - 정우가 커다란 캐리어의 지퍼를 닫았다. 침대 끝에 앉아 있던 혜진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요즘 출장 잦은 것 같아.”“그러게.”정우가 캐리어를 세워놓고 혜진에게 다가왔다. 익숙하게 어깨를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혜진은 가만히 있었다.“민재도 없는데.”괜히 툴툴거렸다.“참, 민재는 잘 있대? 어떻게 전화 한 번이 없어.”“톡은 자주 보내. 할 일이 많은가 봐. 학회가 그렇지.”정우가 다시 옷장으로 향했다.“이모님, 저녁까지 계셔 달라고 할까?”“아니야, 그냥 지금처럼 5시에 가시는 게 좋아, 저녁엔 조용히 있고 싶어.” “그래도 태오가 있어서 든든하네.”머리칼을 쓸어 넘기던 혜진의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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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침실 앞에서 둘은 어설프게 봉인해두었던 욕망을 조금씩 풀어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집어삼킬 듯 타올랐던 손길이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오히려 조심스러워졌다.— 왜 하필 여기였을까.다른 방도 있었다.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숨어들던 작은 방. 태오가 머물던 그 곳도 있었는데. 태오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아직 남아 있는 상처의 흔적를 어루만진다. 혜진의 손길이 거기서 멈췄다.“이제 안 아파?”“네.”태오가 잠시 혜진을 바라봤다.“근데 다른 데가 아파.”혜진의 눈썹이 올라갔다.“어디?”“마음.”“장난치지…….”말을 끝내기도 전에 태오가 입을 막는다. 혜진은 눈을 감았다. 거친 손이 부드럽게 혜진의 허리부터 굴곡을 따라 아래로 점점 깊이 파고든다. “하아…”드디어. 기다렸어. 며칠 동안 애써 밀어냈던 감각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그 사실이 괜히 싫어서 더 깊이 태오를 끌어안았다.침대 가장자리에 다리가 닿았다. 그제야 혜진의 움직임이 멈췄다. 익숙한 침대였다. 베개도, 침대 옆 테이블 위의 남편의 책, 스위스 인터라켄의 호수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도 모두 그대로였다.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곳. 혜진은 그걸 알면서도 태오의 입술을 놓지 않았다. 태오가 먼저 멈췄다.“여기서 괜찮아요?”혜진은 대답대신 태오의 티셔츠를 벗겼다. 아직은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온 태오는 한동안 그렇게 안고 있었다. 최대한 오랫동안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었다. 사방을 감싸는 축축함과 따뜻함. 자신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 목덜미에 은은한 로션 냄새, 귀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숨결, 허리를 감싸는 매끄러운 다리. 언제나 급했어서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었다.혜진이 태오의 어깻죽지를 그러잡는다. 울퉁불퉁한 상처 자국을 손으로 어루만진다. 이렇게 계속 만지면 지워질수 있다는 듯이. 곧이어 혜진의 손이 침대 포스트를 움켜쥐었다. 손등 위로 핏줄이 선명하게 솟았다. 태오가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혜진의 손등을 덮고 손가락 사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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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지면이 가까워질수록 활주로의 불빛이 선명해졌다. 수진은 창밖을 내려다보다 작게 중얼거렸다.“맨날 따로 와야 하네.”불만 섞인 말과 달리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꽤 만족스러웠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입국장을 빠져나와 짐을 찾았다. 게이트를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수행비서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이쪽으로 오십시오.”수진은 선글라스를 살짝 밀어 올려 인사 대신 고개를 까딱하고 다시 걸었다.또각, 또각.구두 소리가 공항 바닥을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러면서도 괜히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있을 리 없었다. 그 사람이 탄 비행기는 진작 도착했을 테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집이겠지. 수진은 휴대폰을 꺼냈다.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지만 의미없는 사람들의 메세지들 뿐이다.“치.”“네?”앞서가던 비서가 돌아봤다.“아무것도 아니야.”수진은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여행지에서는 그렇게 다정하더니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귀신같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게 둘 사이의 규칙이었다. 같이 떠나도, 돌아올 때는 따로. 수진도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계약서처럼 조항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 법. 차에 올라탄 순간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수진은 거의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도착했어?]그제야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진은 한참 답장을 쓰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다 딱 한 줄만 보냈다.[누구는 이제 생각났나 봐]차창 밖으로 건물들이 빠르게 밀려났다. 수진은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봤다.—엄밀히 말하면 내가 먼저였어.친구의 남편으로 만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자신은 보자마자 알아봤는데 정작 그는 한동안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도 꽤 자존심이 상했다.—어떻게 나를 잊어.물론 어두운 조명이었고 시간도 많이 지났엇다. —그래도 자신은 알아봤는데.수진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톱 끝이 살을 꾹 눌렀다.다정한 남편, 좋은 아버지, 성공한 사업가. 아내는 밝은 그의 모습만 알고 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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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똑.똑정우가 태오의 방문을 열었다. ”잠깐 시간돼?“”네.“태오가 거실로 간다. ”여기 앉아.“테이블 위에 서류 몇 장이 놓여 있다.”전에 얘기했지? 입양 말이야.“정우가 서류를 태오 쪽으로 밀었다. ”기왕 하는 거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거든.“태오의 시선이 종이 위를 훑었다.”사모님도…“말끝이 걸린다.”…동의하셨어요?“”응.“너무 빠른 대답이다. 태오가 고개를 든다.“동의하셨다구요?”“응, 그럼.”—왜? 정우가 뒷머리를 한번 쓸었다.“뭐, 사소한 조건이 하나 있긴 했지만—”“뭔지 여쭤봐도 되요?”정우가 잠깐 뜸을 들인다. “어차피 민재도 독립할 예정이었고, 너도 성인이니까.”테이블 아래에서 손이 천천히 말렸다.“독립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조금만 시간을 주시겠어요?”“그래, 그래. 천천히, 하지만 최대한 빨리 얘기해줘.”정우가 서류를 거뒀다. 태오는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한참을 서있었다.입양, 혜진의 동의, 그리고 독립— 나랑 다른 의미인가.운동복을 꺼내 걸쳤다. “산책 좀 하고 오겠습니다.”“그래. 무리하지 말고.”단지 정문을 향해 터덜터덜 걷는데 익숙한 차 한대가 들어온다. 태오의 걸음이 멈춘다. 차가 속도를 줄이다가 이내 차창이 내려간다.“태오, 어디가?”아무렇지 않은 얼굴의 혜진이었다. “잠깐 얘기 좀 할래요?”혜진이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그래, 타.”차는 한참을 달려 산길 초입의 작은 공터에 멈췄다. 해가 거의 넘어가 있었다. 낮에는 초록이었을 숲이 검게 보였다. 혜진이 시동을 끄고 머리를 높이 묶었다.“뭔데?”태오가 옆얼굴을 바라봤다. “입양, 동의하셨다면서요.”잠시 손길을 멈춘다.“응, 맞아.”“왜요?”혜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리끈을 한 번 더 조였다.“왜긴. 너도 앞으로 보호자가 있는 게 좋을 것 같고, 정우 씨도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고—”“그런거 말고요, 진짜 이유.”태오가 혜진을 정면으로 쳐다본다. “…”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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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그 뒤로는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태오는 다시 단답형 말투로 돌아왔다. 더이상 혜진과 눈이 길게 마주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고, 아무도 없는 시간에 산책을 할 뿐이었다. 사고와 입원 때문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수능 결과도 좋았다. “태오 붙었대.” 정우가 시계를 풀러 서랍 안에 넣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어디?” “원하던 데.” “……그래?” 혜진은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괜히 로션을 탁 하고 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놓았다. 축하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한 집에 있어도 태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한 것도 정우를 통해 알았다. 캐리어 하나에 짐을 싸고 있는 태오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노크를 했다. 태오는 슬쩍 뒤를 보더니 혜진인 걸 알고 다시 책을 정리했다. 혜진이 방문 앞에서 더 다가가지 못했다. “도와줄까?” “괜찮아요.” 태오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본다. “언제까지 이럴거야?” “뭐가요.“ 여전히 캐리어 안의 짐을 조정하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알잖아.“ 그제서야 손이 멈춘다. ”원하던 거잖아요.“ —그래, 맞아. 필요 이상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서로의 생활에 관여하지 않는다, 같은 집에 살지 않는다. — 잘된 건가 잘된 거지. 혜진은 마치 정답을 확인하듯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말했다. 생각보다 더 혜진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다. 더 이상 둘 사이에 기류 같은 것도 없고, 눈이 마주친다고 심장이 내려앉지도 않는데, 왜 기분이 안좋은지 모르겠다. “선을 지키자고 했지, 밀어내라고는 안했어.“ 태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혜진 쪽으로 다가왔다. “윤혜진씨는, 마음 속에 선이 많은 가봐요.” 혜진은 순간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건가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선은 밟으면 안되고 저 선은 되고.“ 태오는 혜진의 반걸음 앞에서 멈췄다. “그래서 더이상 안가려고요. 저 그렇게 복잡한 게임 못해요. 워낙 단순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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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식사는 한식이었다. 갈비찜, 잡채, 전 몇 가지.“와, 이걸 혼자 다 했어?”“네. 괜찮나요?”민재가 갈비 한 점을 입에 넣더니 감탄했다.“형, 완전 훌륭. 내 인생 음식 이제 엄마 닭갈비에서 형 갈비찜으로 바꾸려고.”“서운한데, 한민재.”혜진도 갈비를 하나 집어 먹었다. 부드럽게 익은 살이 젓가락 끝에서 쉽게 떨어졌다.“그런데 나도 인정할게.”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태오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다. 태오는 먼저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민재의 빈 접시에 갈비를 덜어주었다. 혜진은 물잔을 들었다. 태오는 이제 더이상 자신을 보지 않았다. 물을 삼키고도 입 안이 자꾸 말랐다. 태오는 밥을 먹고, 정우의 말에 대답하고, 민재와 웃었다.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웠다.혜진이 원했던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단호하게 선을 지키고 있었다.물론 먼저 그 선을 그은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막상 태오가 한 발자국도 넘지 않으니, 이번에는 그게 거슬렸다.—왜, 신경쓰지마부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뇌답게, 신경쓰지 말자고 할수록 더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괜히 거실을 둘러본다. 역시나 물건이 많지 않았다. 싱글 소파와 낮은 테이블. 벽에 걸린 시계. 구석에 세워둔 운동 가방. 사람 하나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만 있었다. 자신이 들어올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 우스워졌다.—당연하지애초에 없어야 하는 자리였다.“핸드폰 충전 좀 하고 싶은데.”혜진이 거실 한구석을 눈으로 더듬으며 말했다.“방에 있는 충전기 가져올게요.”“아니, 내가 가서 충전할게. 그냥 있어.”혜진은 일어나려는 태오를 손으로 만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실도 단출했다. 침대 하나. 가지런히 펴놓은 이불. 베개는 모서리까지 각이 잡혀 있었다. 혜진은 충전기에 휴대폰을 꽂았다.“후우…….”그게 다인데 괜히 한숨이 나왔다. 간단한 일이었다. 가족처럼 대하고, 웃어주고, 으레 가족끼리 하는 말을 주고받는 것.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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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거실에는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는 태오에게서는 옅은 풀잎 향이 났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도 살짝 젖어 있었다.“왔어요?”불순한 의도로 찾아온, 떳떳하지 못한 방문객을 맞이하기에는 지나치게 해맑은 목소리였다. 혜진은 괜히 태오의 얼굴을 한번 훑어보았다. 밤새 잠도 안 잤는지 눈가가 조금 붉었다. 그런데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뭐가 저렇게 좋아.그렇게 호기롭게 찾아와 놓고도 혜진은 현관에서 잠시 머뭇거렸다.신발을 벗으려던 참에 태오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기다렸잖아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해 뜨기 전에 왔…….”끝내지 못한 말이 입술 사이에서 사라졌다. 끝내지 못한 단어가 태오의 혀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혜진의 몸도 태오 품에 풀썩 안긴다. 혜진은 한쪽 신발을 벗다 말고 휘청거렸다. 태오가 허리를 감싸자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잠깐. 신발…….”대답 대신 또 입술이 닿았다. 혜진은 결국 남은 신발마저 발끝으로 밀어냈다. 현관 바닥에 가방이 떨어졌다. 태오의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스쳤다.“너 안 잤어?”“못 잤어요.”“왜?”태오가 그녀를 내려다봤다.“진짜 몰라서 물어요?”혜진이 입꼬리를 올리려는 찰나도 태오는 가만 두지 않고 먹어버렸다. 혜진의 옷매무새는 금방 흐트러졌다.. 태오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잘게 갈라진 근육을 쓸어올린다. 태오가 양팔을 들어주자 티셔츠가 훌렁 벗겨졌다. ”아…흡…”태오가 브래지어 후크를 풀어 그대로 앞으로 손을 돌려 가슴을 움켜쥔다. 이미 솟아오른 젖꼭지를 검지로 굴리고는 그대로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밀착시킨다. 혜진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서로의 숨이 뒤섞였고, 몇 걸음 남지 않은 소파까지 가는 길이 터무니없이 멀게 느껴졌다. 허벅지 뒤로 소파 팔걸이가 닿았다 싶은 순간, 혜진의 몸이 기울었다 커다란 몸이 자신을 덮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바로 어제였다. 이 자리에 앉아 배를 깎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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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일찍 왔네.“정문에는 아직 CLOSED 팻말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안쪽은 이미 한창이었다. 다림질한 테이블보가 하나씩 펼쳐지고, 직원들은 와인잔을 빛에 비춰가며 닦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오늘 새 알바생 온다며,“ ”응, 웬일로 주방 쪽 지원했더라고. 허우대로 봐서는 홀 쪽이 딱인데.“ 지유가 코트를 사물함에 넣고 피식 웃었다. ”왜, 이번엔 네 취향이야?“ ”옷을 좀 못입긴 한데 수트빨 장난 아닐거 같은 몸?“ ”언제 또 눈으로 벗긴거야?“ 이미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동료가 입술에 틴트를 바르고 있다. ”내가 좀 그 쪽으론 감이 좀 있잖아. 일부러 키운 근육이 아니거든, 그런거.“ ”네. 그러십니까.“ 치마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참, 지유야, 이따 저녁 약속 안잊었지?“ ”하아, 나말고 없어?“ ”제발, 창민 오빠랑 재회하게 도와준다며.“ 지유가 스타킹을 끌어올리다 말고 거울 속 동료를 흘겨봤다. ”마지막이야.“ “알았어, 알았어. 이번이 진짜 마지막.” “그 말 지난번에도 했거든?” 지유는 사물함 문을 닫았다. 직원실에서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툭. 누군가의 어깨와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 고개를 든 지유의 말끝이 흐려졌다. 검은 티셔츠. 넓은 어깨. 조금 헝클어진 머리카락.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남자였다. - 어? 남자도 그녀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여기 남자 직원실 있는 줄 알고…… 어?” 지유는 잠깐 그를 올려다봤다. 어제는 후드티를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컸다. 티셔츠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에는 잔근육이 단단하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얼굴. 눈썹은 짙은데 눈매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웃지 않을 때는 조금 무뚝뚝해 보이다가, 눈이 마주치면 묘하게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얼굴.- 아. 이런 얼굴이었지. “여기서 일해요?” 태오가 먼저 물었다. 지유는 정신을 차렸다. “네. 오늘부터 온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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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지유는 맥주잔을 들이켜면서도 온통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 생각뿐이었다.한태오.투박한 손으로 방금 배운 디저트를 제법 섬세하게 완성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소리를 지르는 게 기본값인 메인 셰프조차 접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드물게 감탄하는 눈치였다.“처음 만든 거 맞아?”“네.”“손재주 있네.”그 짧은 칭찬에 태오는 그저 눈썹을 들어올릴 뿐이었다. 지유는 그 얼굴을 떠올리며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도 의외였다. 당장 미식축구 선수로 뛰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을 하고서는 그림 그리는 게 취미란다.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이것저것 그린다고 했다. 하마터면 보여달라고 할 뻔했다. 민지가 들었다면 또 남자한테 꼬리 친다고 놀렸을 거다. “지유 씨는 쉴 때 보통 뭐 해요?”“……네?”맞은편 남자가 웃으며 질문을 반복했다.“취미 같은 거요.”“아. 그냥 집에 있어요.”억지로 나온 소개팅이 귀찮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쉬는 날에는 정말 집에 있었다. 남자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옆에 앉은 민지가 테이블 아래로 팔꿈치를 뻗어 지유의 옆구리를 찔렀다.지유는 못 본 척 맥주잔을 내려놓았다.“민지야, 나 잠깐 화장실 좀.”민지의 남자친구 창민이 한 달 전부터 잡아놓은 소개팅이었다. 지유는 나가지 않을 속셈으로 몇 번이나 미뤘다. 그러는 사이 창민이 민지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어떻게든 재회하고 싶었던 민지가 네 사람이 만나는 자리를 억지로 성사시켰다. 다행인지 두 사람은 생각보다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화장실 어디예요?”“밖으로 나가서 골목 안쪽으로 돌아가셔야 해요.”직원이 열쇠를 내밀었다. 지유는 그걸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왜 술집 화장실이 밖에 있어.문을 열자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지유는 코트 깃을 여미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서서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냈다.연초에 비하면 영 시원찮았다. 그래도 냄새에 민감한 요식업에서 일하려면 언젠가는 끊어야 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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