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던 일처럼 지내려고 했다. 태오는 곧 붕대를 풀었고, 간병인도 더는 오지 않았다. 혼자 씻고 밥을 챙겨 먹는 데 문제가 없었고, 날이 좋으면 집 근처를 짧게 걷고 돌아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네 사람이 한 식탁에 앉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다 시간이 맞는 저녁이면 정우는 태오에게 컨디션을 물었고, 민재는 한두 마디씩 끼어들었다.“태오는 이번에 수능 볼 수 있겠어?”“네. 그러려고요.”“너무 무리하지 마. 내년에도 기회 있으니까.”“알겠습니다.”“말만 알겠습니다 하지 말고.”태오가 웃었다. 혜진은 아무렇지 않게 생선의 가시를 발랐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적어도 식탁 위에서는.침대 위에서 혜진은 어느 순간부터 정우의 손을 피하고 있었다.정우가 잠결에 허리를 감으면 슬쩍 돌아누웠다. 입을 맞추려 다가오면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먼저 불을 껐다. 정우는 두어 번쯤 의아한 얼굴을 했다.“요즘 많이 피곤해?”“응. 좀.”“카페 며칠 쉬어.”“됐어. 쉬면 더 피곤해.”정우는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혜진을 불편하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혼자 들킨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정우가 먼저 잠든 뒤에도 한참 눈을 뜨고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 - - 정우가 커다란 캐리어의 지퍼를 닫았다. 침대 끝에 앉아 있던 혜진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요즘 출장 잦은 것 같아.”“그러게.”정우가 캐리어를 세워놓고 혜진에게 다가왔다. 익숙하게 어깨를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혜진은 가만히 있었다.“민재도 없는데.”괜히 툴툴거렸다.“참, 민재는 잘 있대? 어떻게 전화 한 번이 없어.”“톡은 자주 보내. 할 일이 많은가 봐. 학회가 그렇지.”정우가 다시 옷장으로 향했다.“이모님, 저녁까지 계셔 달라고 할까?”“아니야, 그냥 지금처럼 5시에 가시는 게 좋아, 저녁엔 조용히 있고 싶어.” “그래도 태오가 있어서 든든하네.”머리칼을 쓸어 넘기던 혜진의
Zuletzt aktualisiert : 2026-09-18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