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복수의 불장난 - 내 최고의 친구의 남편이 나에게 불륜을 제안했다: Chapter 191 - Chapter 200

244 Chapters

191 신혼여행 계획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밴스가 먼저 눈을 떴다. 네리사는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베개 위로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고,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는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밴스의 몸은 온통 뻐근했다. 네리사 역시 다르지 않을 터였다.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르내리는 가슴, 부드러운 입술의 곡선, 그리고 전날 밤 자신이 남긴 목덜미의 흔적까지.밴스는 몸을 숙여 그녀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 네리사가 살짝 뒤척였지만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그는 어젯밤 남긴 자국 위에 다시 입술을 내렸다.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살짝 빨아들이자 네리사가 잠결에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밴스의 입술이 쇄골과 어깨를 차례로 스쳤다. 그녀의 가슴에 닿았을 때 네리사가 몸을 조금 움직였다.“밴스…….”“좋은 아침.”“너무 일러.”“당신을 원하기에 너무 이른 시간은 없어.”그가 장난스럽게 속삭였다.네리사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웃었다. 그러나 밴스가 다시 입을 맞추자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그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었다.“네리사,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멈출게.”네리사는 대답 대신 그의 뺨을 감싸 쥐고 입을 맞췄다. 그 짧은 입맞춤에 밴스의 눈빛이 짙어졌다.“나도 당신을 원해.”그가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대며 낮게 말했다.“언제나. 몇 번이고.”밴스가 다시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려던 순간이었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침실의 고요를 깨뜨렸다.“엄마? 밴스 아저씨?”마야의 목소리였다. 작지만 집요했다.밴스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네리사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엄마, 보라색 연필이 필요해요. 엄마 방에 있잖아요. 뾰족하게 깎인 거요!”네리사가 베개 속에서 신음하듯 말했다.“거봐.”“그냥 모른 척하자.”“계속 두드릴 거야.”“엄마!”네리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가운을 걸치고 문을 조금 열었다.“어떤 보라색 연필인데, 아가?”“뾰족하게 깎인 거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Read more

192 설레는 마음

네리사가 신혼여행을 가기로 하자 밴스는 뒷베란다로 나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대니얼에게 전화를 걸었다.“대니얼, 신혼여행 준비해 줘. 3일 일정이야. 해외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곳. 벽난로가 있는 빌라에 해변도 있고 폭포도 있었으면 좋겠어.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전부 준비해.”잠시 침묵이 흘렀다.“대표님, 그건…….”“불가능하다고? 자네는 전에도 불가능한 일을 해냈잖아. 이번에도 해내면 돼.”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마침내 대니얼이 한숨을 내쉬었다.“어디로 보내 드릴까요?”“우리도 모르게 해 줘. 알아서 놀라게 해 봐. 완벽하기만 하면 돼.”“빌라는 준비해 두겠습니다. 한 시간 안에 항공편 정보도 보내 드리죠.”“좋아. 정말 마음에 드는군.”“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이 순간을 누리실 자격이 충분합니다.”밴스는 미소 지었다.진심 어린 축하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는 사람들의 말이 이렇게 행복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첫 번째 결혼식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때는 축하의 말 한마디, 축복의 미소 하나에도 거짓이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모든 것이 진심이었다. 자신 역시 그 진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밴스는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마워, 대니얼.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잠시 정적이 흐른 뒤, 전화기 너머에서 대니얼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어라, 이제는 저한테 고맙다는 말도 하시네요? 결혼이 사람을 이렇게 바꿔 놓다니. 밴스 블랙우드가 맞긴 맞습니까?”대니얼이 웃음을 터뜨렸다. 밴스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굴렸다.“빨리 준비나 해.”그는 전화를 끊고 집 안으로 돌아가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합류했다.네리사가 그를 바라보았다.“다 됐어요?”“끝났어.”“대니얼은 엄청난 압박을 받겠네요. 당신은 정말 못 말려요.”“그런 나와 결혼한 건 당신이잖아.”네리사가 미소 지었다.“그러게요. 내가 그랬죠.”밴스는 식탁 건너편에 앉아 아침 식사와 초콜릿 디저트를 즐기고 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Read more

193. 둘만의 신혼여행

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마침내 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작고 울창한 섬은 새하얀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야자수 사이로는 바닷가에 자리한 프라이빗 빌라가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작은 공항에서 보트로 갈아타고 섬으로 향했다. 운전기사는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밴스가 네리사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 주었다.네리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정말 아름답다.”“당신이 더 아름다운데.”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쳐다봤다.“앞으로 계속 이렇게 느끼한 말을 할 생각이야?”“노력은 해 보려고.”빌라는 소박하면서도 넓고 우아했다. 커다란 침실의 창문 너머로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에어리에서 바라보던 풍경과 어딘가 닮았지만, 도시의 불빛 대신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돌로 만든 벽난로와 흔들의자가 놓인 베란다도 있었고, 빌라 뒤편으로는 둘만을 위한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음식과 와인이 담긴 바구니, 그리고 작은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밴스가 쪽지를 펼쳐 읽었다.“회의도, 전화도 없이. 오직 두 사람만. 축하드립니다, 보스.”네리사는 그의 손에서 쪽지를 받아 들고 웃었다.“다니엘은 당신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아.”밴스는 쪽지를 다시 가져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힘든 시절을 많이 함께 버텨 준 사람이니까. 그에게도 이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지.”네리사가 한 걸음 다가섰다.“그럼 이제는?”밴스는 그녀를 품에 끌어당겼다.“이제부터는 이 행복을 마음껏 누릴 생각이야.”그가 입을 맞췄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과 와인은 그대로 잊혔다.입맞춤은 점점 깊어졌다. 밴스는 네리사를 가볍게 안아 올린 뒤,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침실로 향했다.바다가 보이는 창문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밴스는 그녀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는 그동안 미뤄 두었던 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Read more

194. 당신은 그 사람과 달라

해가 저물 무렵, 두 사람은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노을을 바라보았다. 네리사는 밴스의 무릎 위에 앉아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바구니에 담긴 과일을 나눠 먹고 와인을 마시며, 담요 한 장을 함께 덮은 채 서로에게 기대어 숨을 골랐다. 담요 아래 두 사람의 몸에는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았다.“그러다 당신이 먼저 지치겠어.”네리사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말했다.“5년이나 기다렸어.”“그 말, 정말 많이도 하네.”“사실이니까.”그녀가 웃자 밴스는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네리사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두려워? 앞으로 일어날 일들 말이야. 특히 당신 아버지와 관련해서.”밴스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아래쪽 해변에서는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했다.“당신을 또 잃을까 봐 두려워.”한참 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당신이 다시 떠날까 봐서가 아니야. 당신을 내게서 빼앗아 갈 무언가가 생길까 봐.”네리사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아무도 날 빼앗아 가지 못해. 난 이제 도망치지 않을 거야.”밴스는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버지는 내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어.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였지. 늘 차갑고 무심했어. 아버지가 하는 말은 전부 명령이었고, 침묵조차 나에 대한 심판처럼 느껴졌어.”네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기다렸다.“어릴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 아버지란 원래 자식을 안아 주지 않는 사람이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는 사람인 줄 알았지. 학교 공연에 와 주거나 오늘 하루 어땠느냐고 물어보는 일도 없었어. 난 사랑이라는 게…… 일종의 거래라고 생각했어. 성과를 내고, 성공하고, 실망시키지 않으면 그 대가로 버림받지 않는 거라고.”네리사는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손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그 집에서 유일하게 따뜻했던 사람은 어머니였어. 아버지가 보지 않을 때면 밤마다 몰래 내 방에 들어오셨지. 내 손을 잡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Read more

195화. 내 딸에게 바다를 가르쳐 준 남자에게

“뭐라고?”네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밴스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제대로 된 만찬을 주문하겠다는 거야.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당신을 충분히 먹여 둬야 하거든. 내가 당신의 기력을 전부 빼앗아 갈 생각이니까.”네리사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야.”“난 낭만적인 남자일 뿐인데.”밴스는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장모님께 외동딸을 굶겨 놓고 자기 배만 채웠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거든.”그는 네리사의 귓가에 속삭이며 살짝 깨물었다. 그러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빌라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고 나서야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 깨달았다.“음…… 아까까지만 해도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알고 보니 나 정말 배고팠나 봐.”네리사가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뭐,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서 음식 생각을 할 틈이 없었잖아.”밴스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해변으로 향했다. 모래는 서늘했고, 밤하늘에는 별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도시의 불빛도 구름도 없는 하늘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였다.두 사람은 모래 위에 나란히 앉았다. 밴스가 하늘을 가리켰다.“저기 있는 별 보여? 북극성이야. 뱃사람들은 저 별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았대.”네리사는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당신도 길을 잃은 적이 있어?”“매일 그랬어. 당신을 다시 찾기 전까지는.”네리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나도 당신을 다시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밴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결국 나를 선택해 줘서 고마워.”밴스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 코끝을 스친 뒤 입술에 키스했다.처음에는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키스는 깊고 뜨거워졌다.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품에 깊이 빠져들었다. 파도가 밀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Read more

196. 걸려 온 전화

탑승 대기실은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벽을 따라 여행 가방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아이들은 좌석 사이를 뛰어다녔다. 여러 언어로 안내 방송이 겹쳐 울리며 공항 특유의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밴스는 커다란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걸었다. 하나에는 두 사람의 옷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그 밖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새로 산 선명한 빨간색 가방은 이음새가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반면 네리사는 핸드백 하나만 들고 그의 옆을 걸었다.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빨간 여행 가방으로 향했다.“가방을 또 샀어?”“어쩔 수 없었어.”“선물 넣을 가방이 이미 있었잖아.”“그건 꽉 찼거든.”네리사가 걸음을 멈췄다. 밴스도 멈춰 섰고, 그가 끌던 가방 두 개가 다리에 부딪혔다.“밴스. 대체 뭘 산 거야?”그는 빨간 가방을 내려다보았다가 아내를 바라봤다.“마야가 부탁한 조개껍데기랑 보라색 물고기 인형.”“그건 두 개잖아.”밴스는 체중을 한쪽 다리로 옮기며 살짝 헛기침했다.“몇 가지를 더 샀을지도 모르지.”“몇 가지?”그가 가방 지퍼를 열었다.안에는 예쁘고 화려한 원피스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아무리 자주 갈아입어도 다 입기 어려울 만큼 많은 옷이었다. 그 옆에는 봉제 동물 인형들과 나무 퍼즐, 오르골이 들어 있었고, 전문 화가들이 사용할 법한 고급 색연필 세트와 두껍고 질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스케치북 세 권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네리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아직 더 있어.”밴스는 가방 옆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보였다.“나머지를 담으려고 가방을 하나 더 살 뻔했어.”“밴스!”“어떤 원피스를 마야가 좋아할지 도무지 고를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전부 샀어.”네리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마야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려는 거 아니야? 그건 좋은 일이 아니야.”밴스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아버지라면 다 그런 거 아니야? 예쁜 딸을 공주님처럼 아끼는 거 말이야.”그는 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Read more

197. 돌아가는 길

“밴스.”네리사는 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나 좀 봐.”밴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숨 쉬어.”그는 숨을 들이마셨다.“그래, 잘했어. 이제 저쪽으로 가서 앉자.”네리사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에서 떨어진 창가 쪽 의자들로 그를 이끌었다. 밴스가 자리에 앉았고, 그녀도 바로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의 손은 여전히 맞잡혀 있었다.밴스는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회색과 흰색이 반복되는 리놀륨 바닥의 무늬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바닥의 무늬가 아니었다.차갑고, 무심하고, 언제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넌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아버지가 무기처럼 내던졌던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무기가 다시 아버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밴스는 지난 5년 동안 윌리엄 블랙우드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일구었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해 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어머니께 전화해야겠어.”네리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밴스는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릴리는 첫 번째 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밴스.”“어머니. 뉴스를 봤어요.”잠깐 침묵이 흘렀다. 이내 릴리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집으로 올 수 있겠니, 아들아? 엄마에게 네가 필요해. 네 아버지에게도 네가 필요하단다.”밴스는 눈을 감았다. 네리사가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손마디를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저희 지금 공항이에요. 갈게요.”“고맙다…… 정말 고마워.”릴리의 속삭임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겼다.밴스는 휴대전화를 내리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네리사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우리 함께 마주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밴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회색 눈동자는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그저 지쳐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Read more

198. 돈의 무게

병원 복도는 고요했다. 머리 위 형광등이 낮게 윙윙거렸고, 공기에는 소독약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밴스는 네리사의 손을 잡은 채 나란히 걸었다. 턱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회색 눈동자는 복도 끝에 있는 병실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병실 앞에서 릴리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두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의식은 돌아오셨어. 의사들은 회복하실 거라고 했어. 하지만 아직 몸이 많이 약하셔서…….”릴리는 말을 멈췄다. 먼저 밴스를 바라보고, 이어 네리사에게 시선을 옮겼다.“너희 두 사람이 오는 걸 반기지는 않으실 거야.”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릴리가 손을 들어 아들의 뺨을 어루만졌다.“그래도 네 아버지잖니.”“알아요, 어머니.”릴리는 이번에는 네리사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 아들 곁을 지켜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앞으로 쉽지는 않을 거예요.”네리사는 릴리의 손 위에 다른 손을 포갰다.“알아요. 그래도 이제 밴스는 혼자가 아니에요. 더는 혼자 견디지 않아도 돼요. 저희가 어머니 곁에도 있을게요.”네리사가 미소 지었다. 릴리도 희미하게 웃어 보이더니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등을 다정하게 쓸어 준 뒤 천천히 놓아주었다.“손녀를 빨리 만나 보고 싶구나. 모든 일이 조금 나아지면 마야를 데리고 와 주겠니?”네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릴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병실 문을 열었다.병실 안은 어두웠다. 의료기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냈고, 윌리엄 블랙우드는 베개에 몸을 기대고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눈꺼풀은 반쯤 내려와 있었다. 팔에는 수액 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코 아래에는 산소 공급관이 놓여 있었다.그는 밴스의 기억 속 모습보다 늙어 보였다. 한때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거물이 이렇게 작고 초라해 보일 줄은 몰랐다.릴리가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윌리엄, 밴스가 왔어요. 아내도 함께 데려왔어요.”윌리엄이 천천히 눈을 떴다.그의 시선이 밴스에게 향했다. 차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Read more

199. 아버지를 놀라게 한 여자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겁니다.”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윌리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난 네가 여기 있는 게 싫어! 저 여자도 마찬가지야! 네 결혼을 축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절대로!”네리사가 앞으로 나섰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움츠러들지도 않았다.윌리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밴스를 보았고, 다시 탁자 위에 놓인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왜……?”그가 낮게 물었다. 분노로 가득했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제 남편은 아직도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네리사는 그렇게 말하고 한 걸음 물러났다.밴스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이 네리사의 손을 찾아 맞잡았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얽었다.릴리는 밴스의 다른 쪽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감싼 밴스의 손은 여전히 단단했다.그때 네리사가 입을 열었다.“대신 조건이 있어요.”윌리엄의 눈이 번쩍 들렸다.“제 딸을 건드리지 마세요.”네리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손녀의 존재조차 모르는 윌리엄의 눈이 커졌다. 그는 아직 마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그리고 제 남편에게도 손대지 마세요.”네리사는 밴스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다시는요.”밴스는 엄숙한 표정으로 네리사를 바라보았다. 릴리는 슬픔이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지켜보다가 남편에게 시선을 돌렸다.병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의료기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신호음을 냈고, 심전도 모니터에는 규칙적인 파형이 이어졌다.윌리엄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그 금액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자신을 겨누는 무기인 동시에, 벼랑 끝에서 붙잡을 수 있는 생명줄이었다.물론 그 돈만으로 모든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보할 만큼의 지분을 매입하기에는 충분한 액수였다. 적어도 그가 아스테라를 되살릴 기회를 붙잡을 수는 있었다.윌리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들을 떠나게 만들기 위해 네리사에게 던져 주었던 돈이 이런 모습으로 돌아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Read more

200. 돌아온 과거

저녁 햇살이 샘의 가족이 사는 집 창문을 비스듬히 통과했다. 샘은 침대 끝에 앉아 앞에 놓인 포장된 선물 세 개를 바라보고 있었다.안나가 그 선물들을 가져다주었다.“밴스가 보낸 거야. 도시로 떠나기 전에 두고 갔대.”안나가 방을 나간 뒤에도 샘은 한동안 선물에 손을 대지 못했다.이제 혼자 남은 그는 첫 번째 상자를 집어 들었다. 정사각형 모양에 묵직했다. 샘은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벗겼다.나무로 만든 고래였다. 손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작품으로, 매끄러운 표면과 우아한 곡선이 돋보였다.샘은 고래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그러자 작은 카드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내 딸에게 바다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마야의 아빠가 되어 줘서 고맙습니다.— 밴스샘은 목이 꽉 막히는 것을 느꼈다.그는 고래를 내려놓고 두 번째 선물을 집어 들었다. 길고 가느다란 상자였다. 안에는 티타늄 칼날과 단단한 칼집이 달린 다이빙 나이프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에는 산호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마지막 상자에는 두툼한 가죽 표지의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파도 무늬가 장식되어 있었다.그곳에도 같은 문구가 적힌 카드가 들어 있었다.세 개의 선물. 똑같은 문구가 담긴 세 장의 카드.밴스는 샘이 그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세 번이나 같은 말을 전했다.샘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문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괜찮아?”안나가 물었다.샘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응. 괜찮아.”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나무 고래의 꼬리 부분을 천천히 쓸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그래도 했잖아.”안나가 조용히 대답했다.샘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 정말 그랬네.”그는 고래를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자리였다.두 마일 떨어진 도시에서는 고층 건물들의 불빛이 통유리창 너머로 반짝이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Read more
PREV
1
...
1819202122
...
25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