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복수의 불장난 - 내 최고의 친구의 남편이 나에게 불륜을 제안했다: Chapter 61 - Chapter 70

240 Chapters

61 말하지 않은 것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그 순간만큼은 그가 CEO가 아니었다.그저 책상에 앉아 그녀에게 부탁하고 있는 한 남자일 뿐이었다.“당신 집이잖아요. 허락받을 필요 없어요.”그는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왔다.남은 하루는 회의와 이메일, 그리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업무의 소음 속에서 흘러갔다.그녀는 사무실 건너편에서 그를 몇 번이나 보았다. 회의실에서, 책상 앞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그의 가면은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언제나처럼 절제된 표정.언제나처럼 철저한 거리감.그녀는 자신이 그 순간의 균열을 정말 본 게 맞았는지 의심했다.그날 밤.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네리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부드러운 바지에 헐렁한 스웨터, 풀어 내린 머리.한 시간째 이곳에 앉아 있었다.책도 읽지 않았다. 일도 하지 않았다.그저 앉아 있었다.창가에는 난초가 놓여 있었다. 도시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받아 하얀 꽃잎이 은은하게 빛났다.조금 전에 물을 줬다.여전히 살아 있었다.왜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그때 엘리베이터가 울렸다.거실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기계가 부드럽게 작동하는 소리.문이 열리는 소리.발걸음이 들려왔다.그리고 침묵.그가 현관에 서 있었다.네리사가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공간을 둘러보았다.자신의 공간.이제는 그녀의 공간이기도 한 곳.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거실, 주방, 창문.그리고 창가에 놓인 난초.그는 안으로 들어왔다.커다란 창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였다.“어때?”그가 물었다.“혼자 여기서 지내는 거.”목소리가 조용했다.평소 CEO로서 말할 때와는 달랐다.조금 더 인간적인 목소리였다.“조용해요.”그녀가 대답했다.“좋아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리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긴장한 것도, 편안한 것도 아닌 어깨.무언가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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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상처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며 낮게 웅웅거렸다.네리사는 한쪽에 서서 태블릿을 들고 최종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밴스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서서 층수가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해링턴 측에서는 처음 10분 안에 전체 지속가능성 분석 자료를 확인하고 싶어 해요. 재인의 발표는 그다음이에요.”“그 사람 자료는 봤어.”밴스의 목소리는 담담했다.“괜찮더군.”네리사가 그를 흘끗 바라보았다.“검토했어요?”“어젯밤에 보내왔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두고 싶었지.”그녀는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래서요?”“문제는 없었어. 건축 설계 쪽에서는 실력이 확실하더군.”엘리베이터가 계속 올라갔다.28층.29층.30층.“긴장한 것 같던데요.”그녀가 말했다.“오늘 아침 로비에서 지나가면서 봤어요.”밴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그러다 입을 열었다.“그럴 만하지. 이번 프레젠테이션에 해링턴 가문이 최종적으로 투자할지가 달려 있으니까. 성공하면 그의 회사는 앞으로 몇 년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야. 실패하면…”“실패하지 않을 거예요.”네리사가 재빨리 말했다.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밴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리사는 태블릿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그러니까… 작업 결과가 좋다는 뜻이에요. 준비도 충분히 했고요.”“알아.”엘리베이터는 계속 올라갔다.32층.33층.34층.“42층에서 만나기로 했어요.”네리사가 말했다.“리암이 그러는데, 시작하기 전에 할아버지가 꼭대기에서 도시 전망을 보고 싶어 하신대요.”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앨리스터는 상징적인 걸 좋아하지. 자신이 세우려는 것을 내려다보는 것도.”네리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예전에도 같이 일해봤어요?”“충분히 오래.”그가 대답했다.“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인지 알 정도로.”엘리베이터가 38층을 지나갔다.39층.40층.네리사가 층수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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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그래도 떠나버리다

그는 수납장을 열었다. 구급상자. 붕대. 테이프. 소독용 물티슈.상처를 거칠게 닦아냈다. 너무 거칠게.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손을 늦추지 않았다. 두꺼운 거즈를 상처 위에 대고 테이프로 어깨를 감아 단단히 고정했다. 너무 꽉 조였다.그리고 옷장을 열었다. 여벌의 정장과 셔츠들. 오래전부터 여분을 준비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 회의가 길어질 때가 있었다. 커피를 쏟을 때도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그는 짙은 색 정장을 골랐다. 아까 입었던 것보다 더 어두운 색이었다.숨기기에 좋았다.새 셔츠와 재킷을 꺼내 왼팔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갈아입었다.낡은 옷은 가방에 넣어 묶었다. 그리고 옷장 안쪽 깊숙한 곳에 숨겼다.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안색은 창백했다. 하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표정은 평온했다. 평소처럼 절제되어 있었다.그는 방을 나섰다.42층 회의실은 온통 유리와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창밖으로 철과 유리로 이루어진 도시의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고, 멀리 언덕들이 보였다. 알리스터 해링턴은 자리에 앉기 전 한동안 창가에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마치 자신이 앞으로 차지할 곳을 확인하듯.리암은 할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펜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들 양옆에는 해링턴 이사회 임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오십 대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여성과,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계산기 시계에서 작게 알림음이 울리는 백발의 남자였다.벤스는 그들 맞은편에 앉았다.네리사는 그의 옆에서 태블릿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료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사회와 발표자 모두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리고 잰은 앞에 서 있었다.손에는 리모컨이 들려 있었고, 화면에는 첫 번째 슬라이드가 떠 있었다.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셔츠 깃이 답답할 정도로 조여 있었고, 첫 슬라이드로 넘기는 손끝도 살짝 떨렸다.하지만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안정적이었다."커뮤니티 시설은 기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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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그의 달콤한 비밀

아파트는 조용했다.네리사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었다. 화면에는 해링턴 프로젝트의 수치가 떠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 온 지 사십 분째 최종 전망치를 하나씩 확인하며 작업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문이 열렸다.벤스가 걸어 나왔다.걸음이 이상할 정도로 느렸다.너무 느렸다.움직임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마치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어디까지 움직여도 괜찮은지 확인하는 것처럼.표정은 평소처럼 침착하고 절제되어 있었다.하지만 뭔가 달랐다.어깨의 각도.그리고 왼팔을 몸에서 살짝 떨어뜨린 채 걷는 모습.그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큰 창가로 걸어가더니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멈춰 섰다."수치는."목소리는 안정적이었다."얼마나 남았지?""거의 끝났어요."그녀는 그를 바라봤다."괜찮으세요, 벤스 씨?""괜찮아. 긴 하루였을 뿐이야."그는 돌아보지 않았다.유리에 비친 그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하지만 뒤로 번지는 도시의 불빛 때문에 표정을 제대로 읽기는 어려웠다.그녀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몇 글자를 입력했다.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그는 여전히 창가에 서 있었다.움직이지 않았다.왼손은 몸 옆으로 늘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알아차렸다.손가락이 살짝 구부러져 있었다.힘을 뺀 자연스러운 손이 아니었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에게 다가갔다."벤스 씨."대답이 없었다.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벤스."그가 천천히 돌아봤다."왜?"그녀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평소와 같은 절제된 표정.하지만 피부색이 이상했다.늘 유지하던 냉정함 아래로 창백함이 드러나 있었다. 이마에는 희미하게 땀이 맺혀 있었다."안 괜찮아 보여요.""괜찮아."그는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여전히 조심스러웠다.여전히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있었다."물 있어?""냉장고에요."그가 냉장고를 열었다.오른손으로 물병을 꺼냈다.왼팔은 움직이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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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키스해 줘

그곳에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의 턱선이 닿을 법한 셔츠 깃 아래에 희미한 얼룩 하나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 빛이 바랬지만, 알아보지 못할 수 없었다.립스틱.빈티지 크림슨.몇 달 전, 엘리베이터에서 그녀가 그에게 입을 맞췄던 바로 그 색이었다.그가 그 셔츠를 간직하고 있었다.그녀의 흔적이 남은 채로.자신의 서랍 안에 숨겨 둔 채.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날 밤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셔츠 깃.그 흔적을 그는 씻어내지 않았다.그녀의 일부를, 이렇게 오랫동안 곁에 두고 있었다.“음…”침대 쪽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고통스러운 목소리였다.네리사는 급히 셔츠를 접었다. 서랍 안에 다시 넣고 닫았다.그리고 몸을 돌렸다.밴스가 침대 위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얼굴에는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움직임 하나가 어깨의 상처를 자극한 모양이었다.네리사는 깨끗한 셔츠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갈아입어야 해요.”그가 그녀를 바라봤다.평소처럼 따질 힘조차 없는 얼굴이었다.그녀는 그를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망가진 셔츠를 벗기는 동안 최대한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그의 피부는 뜨거웠다.열은 아직 높았다.깨끗한 셔츠를 그의 오른팔부터 끼웠다. 그리고 붕대를 감은 왼쪽 어깨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통과시켰다.그는 이를 악물고 숨을 삼켰지만,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그녀는 셔츠를 제대로 입힌 뒤 그를 다시 눕혔다. 그리고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잠시 후 욕실에서 찬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왔다.그녀는 그의 이마 위에 수건을 올렸다.밴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안도하는 듯한 소리였다.네리사는 구급상자 안에서 진통제를 찾아 두 알 꺼냈다.“이거 드세요.”그가 눈을 떴다.네리사는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쳐 올렸다.그는 말없이 약을 삼켰다.그녀는 물병을 들어 그의 입가에 대주었다.약을 넘긴 것을 확인한 뒤, 침대 옆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그리고 그를 바라봤다.그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됐다.차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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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쉬세요, 블랙우드 씨

창밖으로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네리사는 잠들지 못했다.그녀는 밤새 그의 침대 곁 의자에 앉아 그를 지켜봤다. 새벽 네 시쯤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의 호흡도 안정됐다. 창백했던 얼굴에는 조금씩 혈색이 돌아왔다.그가 눈을 떴다.네리사는 그 곁에 있었다.그녀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가 몇 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침대 가까이 끌어놓은 의자와 협탁 위의 의료용품, 무릎 위에 올려놓은 그녀의 손까지 차례로 시선이 움직였다.“계속 있었군.”목소리가 거칠었다.“침대에서 거의 죽을 뻔했잖아요.”네리사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누군가는 지켜봐야 했으니까요.”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리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의사한테 가야 해요.”“싫어.”“가야 해요, 블랙우드 씨.”그녀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상처가 감염됐어요. 피도 너무 많이 흘렸고요. 열이 102도까지 올랐어요. 이건 협상할 일이 아니에요.”그가 몸을 움직이다가 얼굴을 찡그렸다.“병원에 가면—”“그럼 병원에 가지 마세요.”네리사가 말을 잘랐다.“개인 주치의를 부르면 되잖아요. 신중한 사람으로요. 당신이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하지 않을 사람.”그가 그녀를 바라봤다.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런 것까지 생각해 뒀군.”“밤새 생각할 시간이 충분했어요.”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러다 그가 말했다.“의사가 한 명 있어. 필립. 예전에…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한 적이 있어.”“그럼 지금 부르세요.”그는 그녀의 시선을 받아들였다.그리고 천천히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었다.움직임은 뻣뻣했고, 통증이 느껴지는 듯했다.네리사는 그가 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지켜봤다.“필립. 나야, 밴스.”잠시 기다렸다.“아리에로 와줘. 조용히.”그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깊은 열상 치료에 필요한 것과 감염 치료에 필요한 약을 가져와.”잠시 침묵.“시간은 알아. 가능한 한 빨리 와.”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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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내 곁에 있어줘

그는 침대에 홀로 앉아 있었다.손이 천천히 입술로 올라갔다.손끝이 입술을 스쳤다.아주 잠시.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40분 후, 그녀가 방에서 나왔다.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카락은 아직 젖어 있었고, 눈에는 여전히 피곤함이 짙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단정한 모습이었다.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입혀준 깨끗한 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 조용한 눈빛.그녀가 현관에 멈춰 섰다."침대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괜찮아.""당신은 항상 괜찮다고 하네요."그녀는 주방으로 향했다."지금 아침 만들게요."그는 그녀가 주방을 오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찬장을 열고, 프라이팬을 찾고, 계란을 그릇에 깨뜨렸다."그럴 필요 없어.""이미 하고 있잖아요."그녀는 돌아보지도 않았다."앉아서 쉬어요. 이건 제가 할게요."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파에 몸을 기대고 그녀를 바라봤다.주방에서는 계란이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접시와 포크, 유리잔을 꺼냈다. 두 사람의 물도 함께 따랐다.몇 분 뒤, 그녀는 커피 테이블 위에 접시 두 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 소파 끝에 앉았다.그는 음식을 바라보다가 그녀를 봤다."요리할 줄 아는군.""조금밖에요."그녀가 포크를 들었다."요리는 늘 잘 못했어요. 자인은 항상 요리를 했거든요. 저보다 훨씬 잘했고."그녀의 손이 멈췄다.그녀는 그대로 굳었다.공기 속에 그 이름이 남았다.그녀는 그를 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접시만 바라봤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턱이 아주 조금 굳었다.가슴 한가운데 이름 붙이기 힘든 무게가 내려앉았다.그녀가 한입 먹었다. 천천히 씹고 삼켰다."저는 요리를 잘 못해요."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요."그가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음식을 먹었다."괜찮아."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둘은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잠시 후."자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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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그저 단순한 것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다. 방 안은 조용했고, 두 사람의 숨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그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붙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그저 놓는 것을 잊은 것처럼.아니면 놓고 싶지 않은 것처럼.몇 분이 흘렀다.그녀는 시간을 세지 않았다.그러다 천천히 움직였다.아주 조금.그녀의 손목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그의 손가락은 더 조여 오지 않았다. 그녀를 붙잡으려 하지도 않았다.그녀의 손은 그의 손 옆, 침대 위에 내려앉았다.가깝지만 닿지는 않았다.어두운 침대 시트 위에 두 사람의 손가락이 나란히 놓였다. 몇 인치의 간격을 두고.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두 손을 바라봤다.어두운 천 위에서 창백하게 보이는 그의 손.아직 그의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자신의 손.마치 기차 안에서 서로 다른 좌석에 앉은 낯선 사람들처럼, 두 사람의 손은 각각의 팔걸이 위에 놓여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낯선 사이가 아니었다.그녀는 침묵의 무게를 느꼈다.더 이상 무거운 침묵은 아니었다.조금 달랐다.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침묵이었다.그의 손은 그녀의 손을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그녀 역시 그의 손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그저 나란히 앉아 있었다.몇 인치 떨어진 두 손.그리고 서로의 숨소리.— 펜트하우스 —도시 반대편에서, 조비는 어두운 거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펜트하우스는 지나치게 넓었다.그리고 지나치게 조용했다.예전에도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밤을 보냈다.늘 일하느라 늦는 남편을 기다리면서.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어젯밤만 해도 그녀는 그가 늦게까지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런 일은 흔했다.그래서 묻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밤.두 번째 밤이 되자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받지 않았다.문자를 보냈다.답이 없었다.그녀는 회사에도 전화를 걸었다.리디아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전문적이고 침착했다."블랙우드 대표님은 현재 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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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우리 둘 다 이런 건 서툴러

그녀는 그가 숨 쉬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러다 문득 생각했다.자신의 삶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남편은 다른 곳에 있고, 자신의 결혼을 망가뜨린 여자는 아이를 임신한 채 거대한 펜트하우스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그런데 자신은 지금 상사의 침실에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그의 개인적인 공간에서.그의 침대 곁에서.모든 것이 너무 많았다.너무 복잡했고, 너무 커다란 일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조용한 방 안에서, 잠든 남자가 곁에 있는 이 순간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게 느껴졌다.그녀는 눈을 감았다.다시 피로가 밀려왔다.너무 오랫동안 아드레날린으로 버티고 있었다.병원.열.상처.그리고 밤새 그의 곁을 지킨 시간.이제 주변이 조용해지자, 그녀의 몸이 자신에게 잠을 자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려주고 있었다.하품이 터져 나왔다.크고 참을 수 없는 하품이었다.턱이 딱 벌어졌다.그녀는 너무 늦게 입을 가렸다.그가 몸을 움직였다.그리고 눈을 떴다.잠에 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눈에 잠시 흐릿함이 남아 있었다.그러다 그녀를 알아봤다.그리고 그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당신도 자야 해."그의 목소리는 잠에서 깨어난 직후라 낮고 거칠었다.어딘가 사적인 느낌이 묻어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그가 그녀를 바라봤다."방으로 가."그녀도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침대에서, 이 따뜻한 공간에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이 이상한 작은 세계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았다."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네요."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제가 방으로 가면 당신은 일어나서 다시 일할 것 같아요."그가 눈을 깜빡였다.그러더니 천천히 입꼬리 한쪽이 올라갔다."나도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군."그가 말했다."당신이 방으로 가는 척하다가 문이 닫히는 순간 노트북을 꺼낼 것 같은데."그녀는 그를 바라봤다.그러다 자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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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펜트하우스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조비는 옆자리가 비어 있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어제 하우스키퍼가 정리한 뒤 그대로인 침대 시트는 여전히 팽팽했고, 반대편 베개에는 밴스가 누웠던 흔적조차 없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메시지도 없었다. 부재중 전화도 없었다.그녀는 밴스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갔다.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음성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그녀는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어디 있어? 왜 전화를 안 받아?그런 말을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조비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를 바닥으로 내렸다.오늘은 병원 예약이 있었다. 초음파 검사였다.그가 올까?그가 자신이 하겠다고 약속한 역할을 계속해 줄까?그녀는 어떻게든 그에게 연락해야 했다.조비는 회사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 신호음에 리디아가 받았다."밴스 블랙우드 씨 비서실입니다.""리디아, 나야." 조비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남편이 아직 전화를 안 받아서 찾고 있어. 오늘 출근했어?"잠시 침묵이 흘렀다.아주 조금 길었다."사모님." 리디아의 목소리는 매끄럽고 전문적이었다. "블랙우드 씨는 아직 몸이 좋지 않아 출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틀째입니다."조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이틀.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나니 더 끔찍했다."그렇구나." 그녀는 휴대전화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연락은 왔어? 언제쯤 돌아올지는 알고?""아닙니다, 사모님. 이틀 전 병가 연락을 주신 이후로 회사에는 따로 연락하지 않으셨습니다."이틀 전.그녀가 밴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기도 전이었다.조비가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무언가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리디아.""네.""한 가지만 더. 네리사 설리번 씨 사무실로 연결해 줄 수 있어?"침묵.이번에는 더 길었다."설리번 씨도 현재 출근하지 않고 계십니다, 사모님. 이틀째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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