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그 순간만큼은 그가 CEO가 아니었다.그저 책상에 앉아 그녀에게 부탁하고 있는 한 남자일 뿐이었다.“당신 집이잖아요. 허락받을 필요 없어요.”그는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왔다.남은 하루는 회의와 이메일, 그리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업무의 소음 속에서 흘러갔다.그녀는 사무실 건너편에서 그를 몇 번이나 보았다. 회의실에서, 책상 앞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그의 가면은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언제나처럼 절제된 표정.언제나처럼 철저한 거리감.그녀는 자신이 그 순간의 균열을 정말 본 게 맞았는지 의심했다.그날 밤.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네리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부드러운 바지에 헐렁한 스웨터, 풀어 내린 머리.한 시간째 이곳에 앉아 있었다.책도 읽지 않았다. 일도 하지 않았다.그저 앉아 있었다.창가에는 난초가 놓여 있었다. 도시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받아 하얀 꽃잎이 은은하게 빛났다.조금 전에 물을 줬다.여전히 살아 있었다.왜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그때 엘리베이터가 울렸다.거실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기계가 부드럽게 작동하는 소리.문이 열리는 소리.발걸음이 들려왔다.그리고 침묵.그가 현관에 서 있었다.네리사가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공간을 둘러보았다.자신의 공간.이제는 그녀의 공간이기도 한 곳.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거실, 주방, 창문.그리고 창가에 놓인 난초.그는 안으로 들어왔다.커다란 창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였다.“어때?”그가 물었다.“혼자 여기서 지내는 거.”목소리가 조용했다.평소 CEO로서 말할 때와는 달랐다.조금 더 인간적인 목소리였다.“조용해요.”그녀가 대답했다.“좋아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리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긴장한 것도, 편안한 것도 아닌 어깨.무언가를 기
Last Updated : 2026-09-2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