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41 - Chapitre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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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밀폐된 세단 안, 서늘하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비서실장의 나직하고 건조한 음성이 이어졌다.“설명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 앰플은 무색, 무취의 특수 약물입니다. 물이든 술이든 몇 방울 타기만 하면 됩니다. 마신 지 10분 이내에 수면 마취 수준의 깊은 잠에 빠져들 겁니다. 사지가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되지요.”비서실장은 손끝으로 봉투 속 손가락 두 마디 정도되는 한 초소형 카메라 렌즈를 툭툭 건드렸다.“그리고 이 카메라는 침실이나 소파가 잘 보이는 사각지대에 미리 숨겨두십시오. 약에 취해 곯아떨어진 놈과 송 계장님의 아주 비밀스럽고 은밀한 장면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내시면 됩니다. 놈의 옷을 벗기고, 계장님이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그림 몇 장이면 충분합니다. 법무부 보호관찰관에게 성상납을 강요했거나 가석방 상태에서 담당관을 강간하려 했다는 프레임…… 어느 쪽이든 놈의 보석을 영구히 취소시키고 사회적으로 매장하기엔 차고 넘치니까요.”단순하고 명쾌한 설명이었지만, 송주아는 거대한 쇠망치로 정수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끔찍한 충격을 받았다.‘날더러…… 제 발로 들어가 꽃뱀 짓을 하라고?’비록 출세를 향한 욕망에 눈이 멀어 마태석의 비위를 맞추고 한동의 돈다발을 덥석 받아 쥐었다지만, 자신은 엄연히 국가의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었다.그런데 한동그룹의 총괄부사장이 바란 것은 정당한 감시나 행정적인 압박 따위가 아니었다.제 몸뚱이를 미끼로 던져 사냥감을 낚아채 오라는, 가장 저열하고 추악한 공작의 총알받이에 불과했던 것이다.수치심과 모욕감에 턱 끝이 덜덜 떨려왔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하지만 차 안의 냉랭한 기류는 주아에게 거부하거나 항변할 틈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자, 받으시죠.”비서실장이 서류 봉투를 주아의 무릎 위로 사정없이 쑤셔 넣었다.주아는 차마 거역하지 못한 채, 부들거리는 두 손으로 차가운 앰플이 든 봉투를 품에 안았다.달칵, 뒷좌석 문이 열리며 바깥의 축축한 밤공기가 밀려들었다.도망치듯 차에서 내린 주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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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주말인 토요일 오후에도 대상자에 대한 관찰 업무는 365일 24시간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주말 근무가 배정된 직원들은 어김없이 출근했다.서울중앙보호관찰소의 공기는 평소보다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계장실 책상 앞에 선 송주아는 거울을 보며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덧발랐다.평소의 단정한 정복 대신, 쇄골이 은근히 드러나는 실크 블라우스에 몸매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검은색 머메이드 스커트.거울 속 제 모습을 훑는 주아의 눈동자에는 초조함과 음침한 욕망이 뒤섞여 번들거렸다.주아는 핸드백 깊숙한 안쪽 지퍼를 열었다.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초소형 카메라, 그리고 투명한 약물이 든 앰플 두 병이 손끝에 차갑게 닿았다.‘오늘 밤, 강태하를 내 것으로 만들든지 나락으로 떨어지든지 둘 중 하나야.’가방을 챙긴 주아가 계장실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사무실에는 주말 당직을 자처한 혜진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주아는 혜진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결재 서류철을 툭 던졌다.“서 주무관. 마 계장 비위 관련해서 본부에 올릴 잔여 기록 분류 작업, 오늘 자정까지 다 끝내 놔.”혜진이 고개를 들어 주아를 올려다보았다.평소와 확연히 다른 주아의 과도한 치장, 짙은 향수 냄새, 그리고 묘하게 경직된 태도.“……계장님, 오늘 밤 일정 있으십니까?”“어? 으, 응. 너, 넌 내 일에 상관하지 말고 너 할 일이나 잘 해.”정곡을 찔린 주아의 반응은 동기의 무심코 던진 말에 너무나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주아는 혜진의 대답도 듣지 않고 요란한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출입문이 닫히는 순간, 혜진의 등줄기로 서늘한 직감이 내려 앉았다. 단순한 개인 스케쥴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가방을 챙겨 나가는 주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눈빛에는 벼랑 끝에 몰린 인간 특유의 살기가 서려 있었다.‘오늘 밤이야.’혜진의 직감이 요란하게 경종을 울렸다.송주아가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혜진은 떨리는 손으로 개인 휴대폰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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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테이블에 얹은 송주아의 손등이 미세하게 떨려왔다.하지만 이내 호흡을 가다듬은 주아는 슬며시 허리를 곧게 펴며 실크 블라우스 사이로 깊게 파인 쇄골을 은근히 드러냈다.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태하 쪽으로 다가앉는 주아의 몸에서 짙은 향수 냄새가 훅 풍겨왔다.그녀가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와, 이제 보니 전망이 정말 좋네요. 매일 밤 이런 곳에서 혼자 지내면…… 적적하지 않으세요?”그녀가 다리를 꼬는 사이 은밀한 곳이 살짝 노출되었다. 나긋나긋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노골적인 .자신의 매력으로 사내를 옭아매겠다는 얄팍한 유혹이었다.하지만 태하는 서류에서 시선조차 떼지 않은 채, 차가운 조소를 흘릴 뿐이었다.“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단말기나 확인하고 가시죠.”자존심이 무너지는 경멸에 주아의 입꼬리가 파르르 경련했다.남자로서의 흥미 따위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얼음장 같은 태도였다.그때, 태하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위스키 잔을 들어 한 모금 입을 축였다.짙은 호박색 액체가 남자의 단단한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주아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분위기가 너무…… 삭막하네요. 저도 한 잔 주시겠어요?”태하의 서늘한 눈동자가 비로소 주아의 얼굴에 닿았다.“공무 중에는 술 마시면 안되는거 아닙니까?”“불시 점검 중에 대상자와 나누는 원만한 소통이라고 해두죠.”태하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남자가 잔을 챙기러 뒤편 바 테이블로 등을 돌린 그 찰나의 순간.주아의 손가락이 번개처럼 움직였다.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앰플의 캡을 소리 없이 꺾은 뒤, 태하가 마시던 위스키 잔 안으로 투명한 약물을 남김없이 털어 넣었다.무색, 무취의 마취제는 차가운 얼음 사이로 흔적도 없이 녹아들었다.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사납게 요동쳤다.새 잔을 들고 돌아온 태하가 맞은편 소파에 다시 앉았다.주아는 바짝 타들어 가는 목구멍을 억누르며 태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태하의 커다란 손이 테이블 위에 놓인 제 위스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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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현관문을 닫고 돌아선 태하의 걸음걸이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거실로 들어서는 남자의 얼굴에는 조금 전 문틈 너머에서 혜진을 품에 안았던 온기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온기를 말끔히 지워낸 자리에는 서늘한 기세만이 남아 있었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송주아가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누구예요? 이 밤중에…….”“경비실 착오에요. 다른 집과 헷갈렸답니다.”태하는 무심하게 대꾸하며 맞은편 1인용 소파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자신의 위스키 잔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주아의 시선이 남자의 손끝에 벼락처럼 꽂혔다.얼음이 든 호박색 액체가 남자의 입술로 향하는 순간, 주아는 속으로 환성을 지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마셔. 어서 마셔버려……!’하지만 잔이 입술에 닿기 직전, 태하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남자가 피식, 조소를 흘리며 잔에 든 얼음을 가볍게 흔들었다.달그락거리는 크리스털 잔의 마찰음이 청아하게 울렸지만 주아의 속은 타들어 갔다.태하는 잔을 마시는 대신, 테이블 위를 미끄러뜨리듯 밀어 송주아의 바로 코앞에 가져다 놓았다.“먼저 드시죠.”“……네?”주아의 숨이 턱 멎었다.“좋은 술인데 귀한 손님에게 먼저 대접하는 게 예의 아닙니까. 목이 타 보이는데, 한 모금 마셔요.”태하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주아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주아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려갔다.“아, 아니에요…… 전 제 잔에 있는 걸로……. 그리고 남이 마시던 걸……”“그래요? 근데 왜 그렇게 손을 떨지?”태하의 검은 눈동자가 살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설마…… 내 잔에 마실 수 없는 거라도 탔나?”쿵, 하고 주아의 심장이 바닥 아래로 곤두박질쳤다.그녀의 입술이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경련했다.알고 있었다.이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다.공포에 질려 굳어버린 주아를 내려다보며 태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남자는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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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가, 가짜 정보를 흘리라고요?”사색이 된 주아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태하는 바닥에 흩어진 박살 난 카메라 파편을 구두 끝으로 툭 차내며 소파로 다가섰다.그리고 주아를 향해 서늘하게 명령했다.“휴대폰 꺼내.”“네……?”“네 휴대폰으로 날 찍어. 지금 당장.”주아가 영문을 몰라 멍하니 굳어 있자, 태하는 망설임 없이 소파 깊숙이 제 몸을 눕혔다.단정한 셔츠의 단추 서너 개를 제 손으로 뜯어내듯 풀고, 팔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리며 약에 취해 완전히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고개를 꺾었다.완벽한 연출이었다.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태하는 테이블 위 유리잔 바로 옆에, 주아가 가져왔던 마취 앰플 공병을 카메라 화각 끝에 교묘하게 올려두었다.게다가 바닥에 부셔져 있는 카메라 잔해도 사진 끝부분에 살짝 나오도록 주아에게 명령했다. 한동그룹 측이 나중에 언론이나 검찰에 사진을 유포하는 순간, 그 사진 자체가 역으로 강성우의 함정이라는 것을 입증할 결정적 덫이 되는 것이었다.“뭘 멍하니 보고 있어? 네 블라우스 앞섶도 살짝 뜯고, 내 위로 몸을 겹쳐서 찍어. 놈들이 원하는 그림이 그거잖아.”태하의 재촉에 주아는 손을 떨며 스마트폰 카메라를 켰다.찰칵, 찰칵.어두운 조명 아래, 거구의 남자가 약에 취해 쓰러져 있고 그 위에 헝클어진 옷차림의 주아가 걸쳐져 있는 그럴듯한 스틸컷 몇 장이 화면에 담겼다.태하가 번쩍 눈을 뜨며 주아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채 사진을 확인했다.남자의 표정에 결정적 증거를 쥔 사람의 자신감이 서렸다. 그 순간, 주아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뜬 이름은 ‘한동 비서실’.주아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흠칫 떨며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됐어. 이제 전화 받아. 스피커폰으로.”주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송 계장님, 어떻게 됐습니까.]비서실장의 건조하고 날 선 음성이 거실을 채웠다.태하가 엄한 눈빛으로 주아를 응시했다. 주아는 태하의 지시에 따라 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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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소파 가죽이 짓눌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혜진의 등이 푹신한 쿠션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비상계단의 차가운 어둠 속에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던 시간들, 그리고 눈앞에서 그를 영영 잃을 뻔했다는 절박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혜진은 태하의 넓은 목덜미를 부서질 듯 끌어안으며 남자의 입술을 먼저 깊숙이 탐했다.“하…… 혜진아.”태하의 입술 사이로 낮고 거친 탄식이 새어 나왔다.시선이 맞닿는 순간, 혜진의 숨이 턱 멎었다.가까이서 마주한 남자의 얼굴은 그 어떤 정교한 조각상보다도 비현실적으로 완벽했다.어스름한 거실 조명 아래, 날카롭게 떨어지는 콧날과 군더더기 없이 베일 듯한 턱선, 짙은 눈썹 아래로 내려앉은 긴 속눈썹이 위험할 만큼 치명적인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평소 오만하리만치 냉정하던 흑표범 같은 눈동자는 이제 오직 혜진 한 사람만을 집어삼킬 듯 붉은 열기를 띠며 번들거렸다.단추가 거칠게 뜯겨 나간 태하의 검은 실크 셔츠가 어깨 뒤로 힘없이 흘러내렸다.대담하게 드러난 사내의 상체는 여자의 시선을 단숨에 마비시켰다.거대한 골격, 성벽처럼 떡 벌어진 어깨와 굵고 다부진 쇄골 라인.조각칼로 정교하게 깎아낸 듯 선명하게 갈라진 흉근과 복근 위로, 달뜬 열기에 배어난 투명한 땀방울이 보석처럼 맺혀 흘러내렸다.소파를 짚은 남자의 두꺼운 팔뚝에는 거친 힘줄과 굵은 핏줄이 사납게 솟아올라 야성적인 관능을 뿜어냈다.“살아 있네, 강태하…… 진짜 살아 있네.”혜진이 떨리는 손을 뻗어 남자의 베일 듯 날렵한 뺨과 단단한 턱선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손바닥에 닿는 사내의 매끄러운 살결은 데일 듯 뜨거웠고, 코끝을 맴도는 서늘한 민트 향과 짙은 사향이 혜진의 남은 이성을 모조리 태워버렸다.태하는 혜진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낚아채 제 입술에 꾹꾹 눌러 맞추며 나직하게 읊조렸다.“네가 안 왔더라면…… 강성우 그 자식의 함정에 빠질 뻔 했어. 네가 날 살렸어, 혜진아.”가슴을 묵직하게 울리는 깊은 중저음이 귓바퀴를 파고들어 심장 깊은 곳까지 사정없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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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폭풍 같은 열기가 잦아든 펜트하우스 거실에는 나른한 침묵과 서늘한 새벽 공기만이 감돌았다.소파 위, 태하의 단단한 맨가슴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있던 혜진의 시선이 테이블 구석으로 향했다.대리석 바닥에 뒹구는 깨진 초소형 카메라 파편과 아직 투명한 액체가 조금 남아 있는 앰플 공병.방금 전까지 태하를 위협하던 잔해를 바라보는 혜진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렸다.“송주아에게 찍게 한 사진…… 정말 괜찮은 거예요? 강성우 측이 그 사진을 가지고 당장 법원에 보석 취소를 신청하면 어쩌려고요.”방금 전 송주아와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혜진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이 배어 있었다.보호관찰관과의 부적절한 스캔들이나 성적 비위는 보석 취소는 물론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태하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남자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혜진의 땀에 젖은 나신을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가느다란 등줄기를 따라 다정하게 쓸어내렸다.피부에 닿는 따뜻한 체온이 혜진의 긴장을 녹여내렸다.“강성우는 절대 그걸 법원에 바로 내지 못해. 그놈의 진짜 목적은 내 보석 취소 따위가 아니거든.”태하가 낮게 가라앉은 중저음으로 속삭였다.“SNS와 언론에 먼저 유포해서 날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낙인찍고, 여론 재판으로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는 게 그놈의 그림이지. 그래야 그룹 승계 구도에서 날 배제할 수 있으니까.”태하의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서 날카로운 지략이 번뜩였다.남자는 혜진의 턱 끝을 부드럽게 쥐어 올려 제 시선을 마주 보게 했다.“그리고 그 사진 화각 끝에는 저 앰플 공병과 부서진 카메라 파편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놈들이 그 사진을 세상에 푸는 순간, 그 사진 자체가 역으로 강성우의 살인 교사와 불법 공작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거야.”강태하는 상대가 쳐 놓은 함정을 이용해 오히려 상대를 파멸시킬 수단으로 바꾸었다. 혜진은 안도와 전율을 동시에 느끼며 남자의 품속으로 얼굴을 더 깊이 묻었다.그 남자의 심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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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책상 위로 떨어진 수화기에서는 무미건조한 기계음만이 공허하게 흘러나왔다.송주아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간신히 책상을 짚고 일어섰다.얼마 전 마태석 계장이 감찰실로 압송되던 그 서슬 퍼런 풍경이 주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다음 차례는 자신이었다.유리 칸막이 너머로 나오는 주아의 걸음걸이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흉하게 비틀거렸다.사무실 직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와 흘겨보는 시선이 쏟아졌지만, 주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초점 없는 눈으로 복도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혜진은 자리에 앉은 채 송주아의 힘없는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마침내 한동그룹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본부 감찰관실 특별조사실.밀폐된 방 안의 온도는 바깥의 공기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송주아는 마치 냉동실에 있는 것처럼 온 몸을 떨어댔다. 송주아의 맞은편에는 굳은 표정의 감찰관 두 명이 서류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송주아 계장 직무대리.”주임 감찰관이 안경을 고쳐 쓰며 책상 위에 태블릿 PC 하나를 툭 던졌다.화면을 확인한 주아의 숨이 그대로 멎어버렸다.주말 밤, 강태하의 펜트하우스에서 찍어 비서실장에게 전송했던 바로 그 사진들이었다.약에 취해 쓰러진 거구의 강태하, 그리고 그 위에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겹쳐져 있는 송주아.“오늘 아침, 언론과 경찰에 익명으로 제보된 사진입니다. 물론 SNS에도 그대로 유포가 되었고요.”감찰관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주아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집중 관찰 대상자인 재벌가 3세가 가택연금 상태에서 담당 보호관찰관을 유인해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제보예요. 그런데…….”감찰관이 상체를 불쑥 앞으로 기울였다.“제보 내용에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더군요. 송 계장 역시 처음부터 출세를 위해 피감독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거액의 뇌물을 받고 보석 철회 혐의를 눈감아 주었다는 고발장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습니다.”“……네?”주아의 입술이 사색이 되어 파르르 떨렸다.“결국 성폭행 피해자라는 건 핑계고, 뇌물수수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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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본부 감찰관실 특별조사실의 침묵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송 계장, 침묵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 본인이 더 잘 알 텐데.”주임 감찰관이 서류철을 거칠게 탁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사적 유착에 뇌물 수수, 피감독자와의 부적절한 성적 스캔들까지. 이대로 입을 닫고 있으면 혐의를 인정하는 걸로 보고 즉시 긴급 체포 영장을 청구할 겁니다.”맞은편 감찰관의 날 선 어조에 주아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턱 끝으로 뚝뚝 떨어졌다.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 나올 듯 했지만 송주아는 입을 닫고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묵비권.지금 이 순간, 자신이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은 오직 강태하뿐이었다.여기서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는 강성우가 쳐 놓은 함정에 빠질게 분명했다. “끝까지 이렇게 나오시겠다?”감찰관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던 바로 그 때였다. 똑, 똑, 똑.정적을 깨고 조사실 문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누굽니까? 지금 조사 중인 거 모릅니…….”문이 열리며 단정한 감청색 맞춤 정장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명함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사내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법무법인 태산의 정윤석 변호사입니다. 오늘부로 송주아 계장 직무대리의 정식 법률 대리인을 맡았습니다.”그는 강태하가 보낸 국내 최고의 변호사였다. 송주아 역시 감찰관들처럼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강태하가 정말로 사람을 보낸 것이다.“변호사?”주임 감찰관이 당황을 지워내고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번지수를 잘못 찾으셨습니다. 이건 기관 내부 감찰 조사예요. 피의자 신문도 아닌 내부 감찰에 외부 변호사 입회는 불허합니다. 당장 나가시죠.”“그 원칙이 성립하려면 제출된 증거가 유효해야겠지요.”정 변호사는 흔들림 없는 태도로 서류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제보자들이 유포한 사진 원본의 메타데이터와 현장 증거 분석 결과가 방금 국과수로 정식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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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송주아의 몰골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처참했다.검게 번져버린 마스카라, 눈물과 식은땀으로 얼룩져 들뜬 파운데이션.사무실 복도를 향해 휘청거리며 첫발을 내딛던 주아의 손목을 누군가 부드럽게, 그러나 뿌리칠 수 없는 완력으로 낚아챘다.흠칫 놀라 고개를 든 주아의 시야에 차분한 무테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들어왔다.서혜진이었다.“……혜, 혜진아..”혜진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주아를 이끌고 복도 끝 두터운 비상계단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철컥.무거운 철문이 닫히며 서늘하고 적막한 계단실 공기가 두 사람을 사로잡았다. 혜진이 손목을 놓아주자마자, 송주아는 마치 뼈마디가 전부 부서져 나간 사람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털썩 무릎을 꿇어버렸다.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무력감에 온몸에 힘이 빠진 것이다.“혜진아…….”주아가 부들거리는 손을 뻗어 혜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나, 나 좀 살려줘…… 제발 살려줘…….”체면도, 직급도, 알량한 오만함도 전부 사라져 버렸다. 감찰관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변호사.그리고 강성우의 공작을 뒤엎어버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국과수의 감식과 정보 전달력. 주아는 이제야 깨달았다.자신이 감찰실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이유는, 강태하의 권력 때문이라는 것을. 혜진은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상관을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손가락을 들어 안경을 가볍게 치켜올리는 혜진의 말투에는 동요조차 없었다.“계장님.”낮고 서늘한 혜진의 음성이 계단실에 울려 퍼졌다. “강성우가 계장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제 아셨습니까?”주아의 어깨가 딸꾹질하듯 들썩였다.“그자에게 당신은 강태하를 묻기 위해 쓰고 버릴 총알받이에 불과했죠.”혜진이 한 걸음 다가서며 주아의 얼굴을 쏘아보았다.“오늘 감찰관실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해서 죄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마취 앰플, 불법 카메라 사주, 그리고 한동 비서실에서 받아 챙긴 뇌물 계좌. 마음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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