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모님, 자세가 묘합니다: Chapter 71 - Chapter 80

130 Chapters

제71화

청담동 루미너스 본사 1층 로비.소율은 안내 데스크 앞에서 보석함을 열었다.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함께 온 서류에는 10억 원 상당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장미 꽃바구니에는 카드가 꽂혀 있었다.[내 아내 한소율. 이혼은 절대 없어. 다시 시작하자.]소율은 끝까지 읽고 카드를 내려놓았다. 선물을 받았을 때의 표정을 기다리던 직원이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법률 대리인을 통해 전달하셨다고 해서…….”“받으신 분 잘못 아니에요. 다음부터 이 이름으로 오는 물건은 제게 바로 알려주세요.”소율은 꽃과 보석함을 제 자리로 가져가지 않았다. 카드를 떼어 직원에게 보관을 부탁하고, 포장째 들어 로비 한쪽의 큰 폐기함에 내려놓았다. 유난히 화려한 리본이 가장자리에 걸렸다.그녀는 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최민우가 회사로 물건을 보냈어. 카드도 있고. 이혼은 없다고 적었네.”- 또? 물건 건드리지 말고 발송 내역부터 남겨줘.“받을 생각 없어. 치워놓긴 했어. 증거로 필요하면 회수해서 보관하게 할게.”- 그렇게 해. 접촉 금지 위반 여부랑 기존 사건에 추가할 내용 확인하자. 네가 직접 답장은 보내지 마.통화를 끊은 소율은 직원에게 지은의 요청을 전달했다. 버리겠다는 마음과 증거를 없애는 행동은 달라야 했다. 그녀는 목걸이를 다시 꺼내 목에 대보지 않았다. 보석함이 닫히자 반짝임도 보이지 않았다.“제 사무실로 보내지 마세요.”그 말만 남기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목에 무엇이 걸릴지는 자기가 정할 일이었다. 왼손의 사파이어 반지가 가방 손잡이에 닿았다.***같은 시각, 지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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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서울남부구치소 접견실.소율은 박지은과 나란히 앉았다. 지은은 가져온 서류를 순서대로 놓고 메모할 준비를 했다. 소율은 유리벽 너머 빈 의자를 봤다. 민우가 할 말이 있다며 접견을 요청한 뒤, 직접 전할 이야기는 이것으로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다.교도관과 함께 들어온 민우가 그녀를 보자 걸음이 빨라졌다. 수의가 몸에서 조금 헐렁하게 움직였다. 예전에 입던 맞춤 정장과는 달랐지만, 소율은 그 차이를 오래 보지 않았다.“소율아. 와줬구나.”그가 유리벽 가까이 앉았다. 소율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얘기인데?”민우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다 사파이어 반지에서 눈을 멈췄다. 입술이 한 번 비틀렸다가 다시 풀렸다.“내가 보낸 건 봤어? 당신 좋아할 것 같아서…….”“받지 않았어.”“왜?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로…….”“물건 얘기 하려고 온 거 아니야.”소율이 말을 끊자 민우의 눈가가 젖었다. 지은은 그가 다음 말을 하는 동안 시선을 서류에 두었다.“내가 미쳤었어. 윤세라한테 홀려서,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당신하고 하린이한테 너무 몹쓸 짓을 했어.”소율은 끝까지 들었다. 그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동안에도 책임의 시작은 늘 다른 여자에게 가 있었다.“그 여자한테 홀리지 않았으면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민우가 고개를 들었다.“무슨…….”“회사 로고를 네가 만들었다고 한 것도, 내가 일하는 걸 막은 것도 세라 씨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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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서울 청담동, 루미너스 글로벌 메디컬 웰니스·리햅 센터 착공식장.1,500평 규모의 센터 계획을 알리는 자리였다. 앞서 기공식을 치른 테헤란로 타워와는 별도의 청담 거점이었다. 소율은 행사장 입구에 세워진 조감도를 잠깐 보고 단상 뒤로 들어갔다.의료·피트니스 관계자와 투자자 30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소율은 버건디 테일러드 수트 앞섶을 정리하며 도진을 봤다. 그는 진행 순서가 표시된 자료를 접고 있었다.“이제 제 차례네요.”“같이 나갑니다.”그가 서류를 내려놓고 그녀 옆에 섰다. 소율은 짧게 웃었다. 단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도진이 먼저 나서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이름을 소개받았다.소율은 공간과 브랜드 기획을, 도진은 운동 지도와 현장 운영에 필요한 부분을 설명했다. 서로의 영역을 대신 말하려 하지 않으니 설명이 명확해졌다.“많은 분이 몸을 감추기 위해 운동 공간에 들어옵니다. 저는 들어오는 순간부터 평가받는다고 느끼지 않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소율은 안내 데스크와 대기 공간을 가리켰다. 회원이 처음 마주하는 자리를 설명하며 루미너스에 처음 갔던 날이 잠깐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몸을 숨기던 순간이었다.그녀는 그 기억을 길게 연설하지 않았다. 대신 그림 속에서 사람이 서 있을 위치를 짚었다. 옷을 갈아입고 운동 공간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길이 화면에 나타났다.도진이 마이크를 이어받았다.“이동이 힘든 분과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분의 동선도 함께 봐야 합니다. 운영하면서 발견되는 불편을 기획에 다시 반영하겠습니다.”설명이 끝나자 질문이 이어졌다. 소율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을 당장 가능하다고 답하지 않았다. 맡은 범위와 협의가 필요한 범위를 구분했다. 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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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주말 오후, 한남동 테라스 빌라.하린이가 외할머니와 나들이를 간 집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도진이 주방에서 소매를 걷어 올리는 동안 소율은 식탁 위에 있던 물건들을 옆으로 옮겼다.“정말 제가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그릇만 꺼내주십시오.”소율이 찬장에서 접시를 꺼냈다. 도진은 해산물 오일 파스타와 안심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있었다. 팬에 재료가 닿는 소리가 주방을 채웠다. 소율이 가까이 들여다보자 그가 기름이 튈 수 있다며 몸을 조금 옆으로 옮겼다.그녀는 카운터 반대편에서 지켜봤다. 예전에는 음식을 하면서도 남편이 무슨 말을 할지부터 신경을 썼다. 오늘은 도진이 등을 보인 채 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소율은 편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간 좀 봐주실래요?”도진이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소율은 한 입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맛있어요.”“싱거우면 말씀하세요.”“정말 맛있어서 그런 건데. 칭찬 한 번 받아주세요.”도진이 웃었다. 소율은 접시를 내려놓고 와인 잔을 꺼냈다. 그가 음식을 접시에 담는 동안 테라스 식탁을 준비했다.스테이크를 올리는 순간 소율은 오래전 차가워졌던 식탁을 떠올렸다. 결혼기념일에 혼자 기다리던 저녁이었다. 생각을 지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때도 자신은 누군가와 따뜻할 때 먹고 싶었을 뿐이었다.도진이 맞은편에 앉았다.“식기 전에 드시죠.”소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이프를 들었다. 고기를 잘라 입에 넣자 금방 미소가 났다.“이 말 듣는 게 좋네요.”“무슨 말이요?”“식기 전에 먹자는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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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심야의 청담동 루미너스 아틀리에.소율이 도착했을 때 지은은 이미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도진은 의자를 당겨 소율 옆에 앉았다.화면의 제목을 읽자 소율의 표정이 굳었다.[루미너스 총괄 디렉터 한소율, 옥중 남편 버리고 연하 트레이너와 불륜. 정관계 스폰서 의혹까지.]이미 확정된 이혼은 빠져 있었다. 사진은 나란히 서 있는 모습만 남았고, 언제 어디에서 찍힌 것인지 설명하는 부분은 지워져 있었다.“아직도 남편이라고 썼네.”소율이 낮게 말했다. 지은은 다음 자료를 열었다.“그 말 하나가 필요했던 거야. 읽는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받아들이게.”조작된 녹음은 더 불쾌했다. 소율은 끝까지 듣고 나서야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실제로 했던 말이 섞여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었다.도진이 손을 뻗자 그녀가 손바닥을 한 번 들었다. 잠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공항에서 잡힌 파파라치 관련 진술 자료 있지? 그리고 도진 씨한테 20억 수표 내밀었던 대화 기록.”“응. 기존 사건 자료랑 묶어놨어.”지은이 파일 목록을 보여주었다. 소율은 이름만 훑지 않고 사건별 날짜와 출처를 확인했다. 서로 다른 사건을 분노로 한꺼번에 섞으면 오히려 설명이 흐려질 수 있었다.“이번 초안이 그 사람들하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부터 보여줘야겠네.”“맞아. 내용이 거짓이라는 자료와 누가 시켰는지 보여주는 자료는 나눠서. 고소장도 그 기준으로 정리했어.”도진이 자신의 휴대폰에서 저장한 대화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20억 원 수표를 내밀던 남자의 목소리가 짧게 재생됐다. 소율은 그 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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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오전 9시, 루미너스 본사 대강당 프레스센터.악성 게시물이 퍼진 지 1시간 뒤였다. 전날부터 준비한 회견장에는 100여 개 언론사 취재진이 모여 있었다. 소율은 네이비 핀턱 수트 차림으로 단상에 올라 마이크 앞에 섰다.첫 질문은 준비한 설명보다 빨리 나왔다.“수감 중인 남편을 외면하고 트레이너와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에 대해…….”“전남편입니다.”소율이 말을 끊었다. 기자가 잠깐 멈췄다.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다시 말했다.“이미 이혼이 확정됐습니다. 그 사실부터 바로잡겠습니다.”스크린에 이혼 판결 관련 자료가 나타났다. 소율은 확정된 시점과 이후의 일을 구분해 설명했다. 개인적인 만남을 언제부터 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필요한 범위까지만 답했다.“차도진 씨와의 관계를 숨기기 위해 나온 자리가 아닙니다. 존재하지 않는 불륜과 거래를 사실처럼 유포한 일에 대해 설명드리는 자리입니다.”도진은 단상 옆에 서 있었다. 카메라가 그쪽으로 향해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소율은 잠깐 그를 본 뒤 다음 화면을 요청했다.공항에서 촬영을 사주받은 남자의 진술 자료, 도진에게 20억 원 수표를 내밀었던 대화 기록, 최민우 쪽에서 움직인 돈의 내역이 차례로 제시됐다. 개인정보를 가린 화면에도 사건의 연결은 드러났다.녹음이 재생되는 동안 대강당이 조용해졌다.한소율 곁을 떠나라는 요구와 금액이 남자의 목소리로 들렸다. 곧이어 누가 보냈느냐는 도진의 질문이 나왔다. 소율은 객석을 봤다. 기자들은 이번에는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해당 대화의 원본은 수사기관에 제출했습니다.”지은이 마이크를 이어받았다.“이번에 유포된 사진과 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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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경찰에 연행된 영상 채널 운영진과 브로커의 진술은 처음부터 일치하지 않았다.누군가는 자료를 받아 올렸을 뿐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돈을 받은 사실부터 부정했다. 그러나 이미 확보된 대화 내역이 제시되자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기 시작했다.조사가 시작된 뒤 30분쯤 지나, 최민우 쪽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는 진술이 나왔다. 그것만으로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진술을 압수한 메신저 기록과 대조하고, 누가 어떤 자료를 만들고 전달했는지 확인했다.지은은 수사 진행 소식을 받아 소율에게 알렸다. 아직 밖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내용도 있었다. 그녀는 확인된 사실과 전망을 나눠 적었다.***서울남부구치소.민우는 추가 기소와 수용 중 조치에 관한 문서를 받았다. 종이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 또 다른 범죄 혐의가 자신의 이름 아래 적혀 있었다.밖에서 시킨 일은 자신과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브로커가 붙잡혔다고 해도 제 이름까지 나오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문서에는 그가 건넨 지시가 되돌아와 있었다.“이걸 왜 나한테…….”민우는 혼잣말을 하다가 문 쪽을 봤다. 교도관은 정해진 내용을 안내하고 돌아섰다. 민우는 다시 문서를 내려다봤다.새 사건들을 묶어 징역 3년의 추가 구형이 거론되고 있었다. 받아들여지면 기존 8년에 더해 11년을 복역하게 될 수 있었다. 아직 선고되지 않은 숫자인데도 민우는 그것을 읽는 순간 숨이 막혔다.외부와의 연락에도 제한이 따랐다. 민우는 접견과 서신 관련 안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욕을 뱉었다. 마음대로 사람을 불러 지시하던 방식이 점점 막히고 있었다.“한소율이 시킨 거야. 그 여자가…….”중얼거림은 곧 애원으로 바뀌었다.&ldquo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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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서울가정법원 심문기일.민우는 푸른 수의를 입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곁의 변호사가 이미 확정된 이혼을 다투는 주장과 친권 변경 요구를 설명했다. 소율은 맞은편에서 서류를 들었다.여전히 같은 말을 법률 용어로 바꾼 것처럼 들렸다. 아내가 돌아오지 않으니 판결이 잘못됐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니 아이에게도 해로울 것이라는 주장들이었다.지은이 준비한 자료를 제출했다. 공항 파파라치 사주 계약서, 20억 원 매수 시도의 녹음, 허위 게시물 유포를 위해 돈이 움직인 내역이었다.“신청인은 지금도 상대방의 일상과 관계에 개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존 결정 이후 무엇이 아이에게 유리하게 달라졌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가 없습니다.”민우가 옆의 변호사에게 몸을 기울여 무엇인가 말했다. 변호사는 서류를 넘기다가 말을 고쳐 이었다.소율은 그 모습을 보며 손에 힘을 뺐다. 민우가 얼굴을 찌푸릴 때마다 자신이 먼저 무엇인가를 해줘야 할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의 옆에 앉은 사람이 대응하면 될 일이었다.아이의 생활을 묻는 질문에는 소율이 직접 답했다. 현재 누가 함께 살고 있는지, 출장이 있을 때는 어떻게 돌보는지 설명했다. 하린이의 이름이 나오자 목소리가 잠깐 부드러워졌다.“아이는 원래 다니던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일과가 바뀌지 않도록 하고 있고요.”민우가 끼어들려 하자 재판부가 말을 제지했다. 소율은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지 않고 답을 마쳤다.심문을 거친 재판부는 민우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판단된 사안을 되풀이하는 부분과 친권 변경에 필요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 설명했다. 누구를 응징하기 위한 연설은 없었다. 문서에 남을 판단이 차례대로 낭독됐다.민우는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판결이 잘못됐다는 말과 자기는 아이 아빠라는 말이 번갈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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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하린이의 방문을 닫자 거실이 조용해졌다.소율은 테라스로 나갔다. 낮에 받은 델피늄은 거실 꽃병에 꽂아두었다. 도진은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 그녀가 나오자 옆자리를 비웠다.“잠들었어요.”소율이 앉으며 말했다. 아이는 꽃을 만져보겠다고 몇 번이나 손을 뻗다가, 작은 잎 하나가 떨어진 것만으로도 속상해했다. 그 이야기를 하자 도진이 웃었다.“내일 일어나면 다시 보겠네요.”“아침부터 물을 갈아주겠다고 할 거예요.”두 사람은 거실 쪽을 봤다. 꽃병 아래에 하린이가 그린 그림이 놓여 있었다. 소율은 아이가 왜 거기에 뒀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한곳에 모아두는 버릇이었다.도진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소율은 등을 기대고 잠깐 눈을 감았다. 낮에 법정 의자에 앉아 있던 시간이 뒤늦게 몸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오늘은 말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그러세요.”도진은 질문하지 않았다. 소율은 그의 손이 어깨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픈 곳을 찾아 설명하는 손길이 아니라 그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손이었다.잠시 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할 말 없다고 해놓고 자꾸 생각이 나네요.”도진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소율은 밤하늘을 보며 말을 골랐다.“법정에서 민우 씨가 얼굴을 찌푸렸는데, 잠깐 제가 뭘 잘못했나 생각했어요. 아무 상관 없는 일인데도.”“오래 그렇게 사셨으니까요.”“그 버릇까지 없어져야 정말 끝난 줄 알았어요.”도진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소율은 그가 대신 결론을 내주지 않는 동안 마음속에서 자기 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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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선고 법정.소율은 방청석에서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추가 사건의 심리를 거쳐 선고를 듣는 날이었다. 지은은 곁에서 서류를 접고 재판부를 바라봤다.명예훼손과 스토킹 교사 등 이번 사건에 대해 민우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추가 선고됐다. 기존 횡령·배임과 도주 사건으로 확정된 8년에 더해, 선고된 형은 모두 11년이 됐다.소율은 숫자를 들은 뒤에도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 숫자에는 자신이 받았던 연락과 사진,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갔던 하루까지 얽혀 있었다. 아무 일 없는 일상을 원했을 뿐인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법정에서 설명할 것이 이렇게 많아졌다.민우는 선고가 끝나자 고개를 들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옆에 앉은 변호사가 낮게 말했지만 그의 시선은 소율 쪽에 머물렀다.“소율아.”그가 이름을 불렀다. 소율은 그 소리를 듣고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재판부가 마치는 말을 끝까지 듣고, 지은이 서류를 챙긴 뒤 함께 나왔다.복도에서 지은이 판결 내용을 다시 짚었다. 항소 여부를 확인할 날짜를 수첩에 적고 소율에게도 보여주었다. 소율은 그 날짜 옆에 오늘 선고된 형을 적었다.“그래도 이번 일에 대한 판단은 나온 거네.”소율이 말했다.“응. 그건 분명해.”지은의 대답에 소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무릎에 얹어놓았던 손의 힘을 풀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참고 있던 숨도 조금 길게 내쉬었다.***그날 저녁, 루미너스 본사 50층 스카이라운지 테라스.소율과 도진, 지은, 강태욱 대표가 한자리에 앉았다. 강 대표는 법정 이야기를 길게 묻지 않고 잔을 들었다.“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계산합니다. 추가 설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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