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남편이 나를 팔았고, 그 남자가 나를 샀다: Chapter 101 - Chapter 110

116 Chapters

101화

한지아가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출입문 옆 쓰레기통 안에 버려진 자신의 명패였다.구겨진 종이컵과 휴지 사이에 은색 명패가 처박혀 있었다. ‘한지아 투자전략팀장’이라는 글자 위에는 누군가 마시다 버린 커피가 흘러내린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지아가 명패를 집어 들자 회의실을 정리하던 총무팀 직원이 황급히 다가왔다.“죄송합니다, 팀장님. 대표님께서 기존 명패는 모두 폐기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제 자리도 바뀌었습니까?”직원은 대답하지 못하고 회의실 안쪽을 바라보았다.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지아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민서라를 발견했다.어제까지만 해도 인턴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던 서라가 대표이사석 바로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 앞에는 금색 테두리를 두른 새 명패가 놓여 있었다.**민서라. 투자사업총괄실장.**지아는 잠시 그 글자를 바라보았다.그동안 서라가 지아의 업무 성과를 자기 이름으로 제출하고, 현우가 그것을 묵인하는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히 공로를 빼앗는 수준이 아니었다.현우는 아내가 쌓아 올린 자리 자체를 내연녀에게 넘기려 하고 있었다.“지아 씨, 오셨어요?”서라가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현우는 그녀의 어깨에 걸린 머리카락을 떼어 주다가 지아를 발견하고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거기 서 있지 말고 자리에 앉아. 곧 회의 시작하니까.”지아는 손에 든 명패를 내려다보았다.“제 자리는 어디입니까?”현우가 턱으로 회의실 뒤편을 가리켰다.출입문 옆에는 책상도 없는 보조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직원들이 오가려면 의자를 밀어야 하는 좁은 공간이었다.“오늘부터 거기 앉아. 네가 예전처럼 내 옆에 앉을 이유는 없잖아.”서라가 입술을 가리며 웃었다.“대표님, 그래도 지아 씨가 불편하시겠어요. 원래 앉으시던 자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바뀌면 당황하실 수도 있잖아요.”“불편하면 서서 듣든가. 회사에서 자기 자리가 영원할 줄 아는 사람이 문제지.”현우는 지아가 듣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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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한지아 씨, 앞으로는 제 지시에 따라 주세요.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저를 민 실장님이라고 불러 주셨으면 좋겠어요.”현우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들었지? 새 상사한테 인사부터 해야지.”지아는 현우를 바라보았다.“인사발령 문서를 확인한 뒤 업무 범위를 정리하겠습니다.”“내가 지금 서라한테 인사하라고 했잖아.”현우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직원들 몇 명이 고개를 숙였다. 재무팀장은 펜을 쥔 손을 움직이지 못했고, 박 대리는 입술을 깨문 채 모니터만 바라보았다.현우는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너는 남편이 회사 대표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그동안 봐주니까 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았지?”지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님이 결정하신 인사발령은 확인하겠습니다. 다만 제 업무 성과와 책임에 관한 평가는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현우는 비웃음을 흘렸다.“아직도 네 성과 타령이야? 그 프로젝트가 누구 돈으로 진행됐는데?”그가 화면에 다음 항목을 띄웠다.**한지아 성과급 지급 보류 및 인사평가 재검토.**지아의 손끝이 굳었다.그 성과급은 회사 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지급을 미뤄 온 돈이었다. 현우는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반드시 정산해 주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성과급 지급 기준과 평가 내역을 서면으로 요청하겠습니다.”“요청해 봐. 내가 지급하지 말라고 하면 끝이니까.”현우가 회의실을 둘러보았다.“오늘부터 한지아가 작성하는 모든 보고서는 민 실장의 검토를 받아. 그리고 민 실장이 지시한 업무를 거부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추가하겠어.”서라는 지아를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한지아 씨.”지아는 그 얼굴을 바라보다 노트북을 열었다.회의 날짜와 참석자, 발표된 인사 조치와 성과급 보류 지시를 차례로 기록했다.현우는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고 생각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회의를 이어 갔다.***회의가 끝나자마자 지아의 업무 시스템 권한이 회수되었다.투자 계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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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저는 인수인계 범위 안에서 협조하겠습니다.”서라는 지아가 자신을 지나쳐 가자 뒤에서 낮게 말했다.“대표님이 그러셨어요. 지아 씨는 밖에 나가면 아무도 안 써 줄 거라고.”지아의 걸음이 멈췄다.“그 말씀까지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으셨습니까?”서라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웃었다.“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대표님이 아직 회사에 남겨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지아는 돌아보지 않고 복도로 나왔다.***오후가 되자 인사팀에서 직책 변경 통지서가 도착했다.성과급 지급 보류와 인사평가 재검토도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지아는 인사팀장을 찾아가 평가 근거와 지급 기준을 요청했다.인사팀장은 난처한 얼굴로 문을 닫았다.“한지아 씨, 대표님이 워낙 강하게 지시하셔서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정식 평가 절차가 있었습니까?”“아직 세부 평가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성과급 지급 보류부터 결정됐다는 말씀이군요.”인사팀장은 대답하지 못했다.지아는 서면 요청서를 접수하고 수신 확인을 받았다.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가 울렸다.백현우였다.“지금 내 방으로 와.”대표실에 들어서자 현우는 지아가 보낸 메일을 책상 위로 던졌다.“너 지금 나 엿 먹이려고 작정했어?”“업무 범위와 책임을 확인한 겁니다.”“서라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될 일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현우는 책상을 돌아 나와 지아 앞에 섰다.술 냄새가 났다. 아직 퇴근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네가 서라보다 오래 일한 게 그렇게 대단해? 그동안 내가 회사에 붙여 줬으니까 일할 수 있었던 거잖아.”지아는 손에 든 서류철을 놓지 않았다.“제가 수행한 업무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현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아직도 네가 뭔가를 해냈다고 생각해?”그가 갑자기 지아의 손목을 움켜쥐었다.예상하지 못한 힘에 지아의 몸이 앞으로 끌려갔다. 서류철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종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놓으세요.”“내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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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지아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웠다.허리를 숙이는 순간 허벅지에 부딪힌 부위가 욱신거렸다. 그녀가 한쪽 손으로 책상을 짚자 현우는 짜증스럽게 말했다.“그렇게 아픈 척할 거면 일찍 집에 가든가. 대신 내일 자료는 전부 완성해 와.”지아는 아무 말 없이 서류를 정리했다.대표실 문을 닫고 나왔을 때, 복도 끝에 서라가 서 있었다.서라는 지아의 흐트러진 머리와 붉어진 손목을 훑어보더니 작게 웃었다.“대표님이 많이 화나셨나 봐요.”지아는 서라를 지나쳤다.그러자 서라가 뒤에서 덧붙였다.“그러게 진작 말을 잘 들으시지 그랬어요.”지아는 멈추지 않았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지아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붉은 자국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그녀는 휴대전화로 상처를 촬영했다. 손목의 안쪽과 바깥쪽을 각각 찍고, 시간을 확인한 뒤 사진을 보관했다.주차장에 내려갔지만 바로 차에 타지 않았다.손목을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올라왔고, 책상에 부딪힌 허벅지는 걸을 때마다 욱신거렸다.지아는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진료실에서 의사가 다친 경위를 묻자 그녀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그동안 현우가 거칠게 손을 잡거나 몸을 밀쳤을 때마다 지아는 별일 아니라고 넘겼다. 그가 화가 나서 그랬다고, 회사 일이 힘들어서 예민해졌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그러나 오늘은 달랐다.“남편이 손목을 세게 잡고 벽으로 밀었습니다.”의사는 통증 부위를 확인하고 필요한 검사를 안내했다.지아는 다친 경위가 진료 기록에 남도록 설명했다.병원을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그녀는 차 안에 앉아 약봉투를 내려놓았다.현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내일 아침 확인서 가져와. 괜히 버티지 말고.*곧이어 서라에게서도 메시지가 도착했다.*지아 씨, 대표님이 많이 화나셨어요. 내일부터는 제 지시에 따라 주시면 좋겠어요.*지아는 두 메시지를 지우지 않았다.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운전대에 손을 올렸지만 손목이 아파 다시 손을 뗐다.그녀는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회사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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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표지에는 민서라의 이름이 총괄 책임자로 적혀 있었고, 작성자란 역시 민서라로 바뀌어 있었다.그러나 본문에는 지아가 직접 작성한 문장과 분석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이 자료는 제가 작성한 원본을 바탕으로 한 겁니다.”“그래서요?”“작성 이력은 사실대로 유지해야 합니다.”서라의 얼굴이 굳었다.“아직도 그런 소리예요? 대표님이 제 이름으로 정리하라고 하셨잖아요.”지아는 서류를 덮었다.“현재 책임자로 보고하는 것과 과거 작성자를 바꾸는 건 다릅니다.”서라가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지아 씨가 지금 무슨 처지인지 모르세요? 대표님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해고할 수도 있어요.”그 순간 지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재무팀장이었다.“한지아 씨,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 어제 민 실장 명의로 발송된 투자 자료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지아는 서라를 바라보았다.서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어떤 문제입니까?”“최종 검토가 끝나지 않은 투자 조건이 확정된 것처럼 전달됐습니다. 투자자 측에서 공식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어요.”지아는 서류철을 다시 펼쳤다.서라가 발송한 자료의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투자금 집행 조건과 연결된 수치가 변경되어 있었다.“이 자료를 누가 승인했습니까?”재무팀장이 잠시 말을 멈췄다.“대표님 결재가 있습니다.”서라가 다급히 손을 뻗었다.“전화 끊어요.”지아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민 실장님, 업무 관련 통화 중입니다.”“그걸 지금 여기서 말하면 어떡해요!”서라의 목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갔다.지아는 통화를 마친 뒤 서라에게 서류철을 돌려주었다.“어제 미확정 투자 조건을 검토해야 한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대표님도 참조에 포함되어 있으니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서라는 입술을 깨물었다.“당신이 일부러 그런 거죠? 내가 실수하게 만들려고 중요한 걸 숨겼잖아요.”지아는 노트북을 열어 어제 보낸 메일을 화면에 띄웠다.미확정 항목에 대한 경고와 최종 검토 요청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숨긴 내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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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지아는 자신이 작성한 검토 의견을 회의록에 첨부해 달라고 요청했다.현우는 끝까지 개인적인 배신을 당했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직원들 앞에 결재 기록이 드러난 뒤였다.회의가 끝나자 현우가 낮게 말했다.“한지아, 넌 남아.”지아는 문 앞에서 멈췄다.“오늘 회의 내용은 공식 회의록으로 남겨 주세요.”현우의 눈빛이 험악해졌다.“네가 원하는 게 그거야?”지아는 그를 바라보았다.“네. 기록으로 남기는 겁니다.”***그날 저녁, 지아는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병원에서 받은 진료 서류와 인사발령 통지서, 성과급 관련 규정, 근로계약서가 놓여 있었다.그녀는 서류를 하나씩 정리했다.현우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지아를 강등시키고, 내연녀에게 그 위의 자리를 주었으며, 성과급까지 빼앗으려 했다. 그것도 모자라 신체적 폭력을 행사했고, 문제가 생기자 자신이 승인한 업무의 책임을 지아에게 떠넘기려 했다.지아는 더 이상 남편을 설득할 방법을 찾지 않았다.대신 자신이 회사를 떠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퇴직 절차와 미지급 성과급,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대응 방법을 정리하고, 자신이 맡았던 업무의 인수인계 범위를 확인했다.그녀는 개인 노트에 날짜를 적었다.**퇴사 준비 시작.**회사에서 나오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현우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지아를 붙잡으려 할 것이고, 그녀가 떠나려는 순간 더 잔인해질지도 몰랐다.그러나 오늘의 사건으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현우는 지아가 없어도 회사가 돌아갈 거라고 믿으면서, 정작 문제가 생기면 그녀의 이름을 가장 먼저 찾았다.지아는 노트북을 열어 독립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업무를 정리했다.재무 구조 분석, 사업성 검토, 투자 전략 자문처럼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였다. 회사의 영업 비밀이나 투자자 자료를 가져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구분했다.아직 계약 상대도, 사무실도 없었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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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카페에서 사직서 초안을 저장한 다음 날, 한지아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밤새 내린 비가 건물 입구의 대리석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로비를 가로지르는 동안 오른쪽 손목이 몇 번이나 욱신거렸지만, 지아는 서류 봉투를 왼손으로 고쳐 쥐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봉투 안에는 밤새 다시 작성한 사직서와 인수인계 계획서, 미지급 성과급 정산 요청서가 들어 있었다.어젯밤 그녀는 사직서의 첫 문장을 세 번이나 고쳤다. 처음에는 개인 사정이라고 적었고, 다음에는 건강상의 이유라고 적었다가 결국 두 문장 모두 지워 버렸다.남편에게 폭행당하고 자신의 성과를 빼앗긴 데다 부당하게 강등된 사람이 회사를 떠나면서까지 모든 책임을 개인 사정으로 돌릴 이유는 없었다.그래서 최종 문서에는 사직 의사와 함께 직책 변경, 업무 권한 회수, 미지급 성과급, 인수인계 협의 요청을 별도의 항목으로 정리했다.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화장으로 안색을 정돈했으며, 목까지 올라오는 블라우스로 턱 아래의 희미한 멍도 가렸다.하지만 소매 안쪽은 달랐다.현우가 움켜쥐었던 손목에는 손가락 모양을 따라 검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서류 봉투를 조금만 세게 잡아도 팔 안쪽이 저릿했다.지아는 소매를 내려 손목을 가렸다.사무실 층에 도착하자 복도 끝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 두 명이 그녀를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다른 사람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지아는 그들을 지나 복사실 옆의 작은 방으로 향했다.전날 총무팀이 옮겨 놓은 책상과 개인 물품 상자는 그대로였다. 창문도 없는 공간에는 복사기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배어 있었고, 형광등은 스위치를 올리자 두 번이나 깜빡거렸다.지아는 상자 안에 놓인 깨진 결혼사진 액자를 보았다.사진 속 현우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웃고 있었다. 한때는 그 손이 자신을 지켜 줄 거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남편의 손을 떠올릴 때마다 멍든 손목부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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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수화기 너머에서 현우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확한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인사팀장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모습만으로도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알겠습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서류 봉투를 지아 쪽으로 밀었다.“대표님이 직접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이 서류는 일단 가져가시는 게…….”지아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서류는 여기 두겠습니다. 수령하신 사실을 확인해 주세요.”“한지아 씨, 제 입장도 좀 생각해 주십시오.”인사팀장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에 가까운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이 회사에서 현우가 화를 내면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은 언제나 직원들이었다. 지아 역시 그동안 그들 앞에 서서 현우의 분노를 막아 왔지만, 이제는 인사팀장조차 그녀의 사직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팀장님께 책임을 떠넘기려는 게 아닙니다. 수령 여부만 기록해 주시면 이후 절차는 제가 공식적으로 요청하겠습니다.”인사팀장은 한참을 망설이다 서류를 받았다.그가 접수 시각을 적은 사본을 돌려주는 동안 지아는 책상 위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에서는 인사팀장도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그녀는 사본을 챙겨 대표실로 향했다.***대표실 앞에는 민서라가 있었다.몸에 맞게 재단된 짙은 남색 정장을 입은 서라는 비서실 직원에게 자료를 건네다가 지아를 발견했다. 방금까지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던 표정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어머, 지아 씨. 사표 내셨다면서요?”일부러 낮추지 않은 목소리에 비서실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저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하셨나 봐요. 저는 지아 씨가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는데.”지아는 서라를 지나 대표실로 향하려 했다.그러나 서라는 기다렸다는 듯 서류철을 내밀며 앞을 가로막았다.“잠깐만요. 이것부터 봐 주세요. 오늘 투자자들에게 보내야 하는 보고서인데, 제가 마지막 위험 분석표를 확인하지 못했거든요.”지아는 서류철 첫 장을 펼쳤다.전날 긴급회의에서 문제가 됐던 투자 조건이 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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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대표실에 들어서자 현우는 문부터 닫으라고 지시했다.지아는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멈췄다.어제 이 방에서 등을 벽에 부딪쳤던 순간이 떠올랐다. 현우가 손목을 비틀던 힘과 숨이 막히던 감각이 몸에 남아 있어, 문을 닫는 소리조차 견디기 어려웠다.“문 닫으라니까.”지아가 문을 닫자 현우는 책상 위에 놓인 사직서 사본을 집어 들었다.“이게 뭐야?”“오늘 오전에 제출한 사직서입니다.”현우가 종이를 흔들었다.“내가 어제 분명히 확인서 가져오라고 했지. 그런데 네가 가져온 게 사표야?”그는 사직서 뒤에 첨부된 인수인계 계획서를 넘기다가 비웃음을 터뜨렸다.“아주 준비를 단단히 했네. 퇴직 일정 협의? 업무 인수인계? 내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어제 말씀하신 확인서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서명할 수 없습니다. 사직 의사는 그와 별개로 결정했습니다.”“별개?”현우가 사직서를 책상에 탁 내려쳤다.“서라가 실장 된 게 그렇게 배 아팠어? 내가 네 자리 하나 바꿨다고 남편 얼굴에 먹칠하겠다는 거야?”지아는 책상 위의 사직서를 바라보았다.그 문서에는 입사일과 직책, 퇴직 절차에 관한 요청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현우는 그녀가 회사에서 보낸 시간보다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만 분노하고 있었다.“제가 맡았던 업무와 성과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직책 변경과 별개로 퇴직 절차는 진행하고 싶습니다.”“또 그놈의 기록.”현우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지아를 훑어보았다.“너는 정말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는구나. 내가 널 이 회사에 앉혀 줬으니까 그동안 팀장 노릇이라도 했던 거잖아.”지아의 목 안쪽이 바짝 말랐다.몇 년 전, 투자자와의 협상에서 돌아온 현우가 그녀를 끌어안았던 날이 떠올랐다. 지아가 밤새 수정한 사업계획서 덕분에 계약을 성사시켰다며, 자신에게는 네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던 남자였다.“회사 어려울 때 네가 뭘 했다고 그렇게 생색이야? 내가 밖에서 투자자들 만나고 계약 따오는 동안 넌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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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현우는 한 걸음 다가왔다.지아가 물러서자 그는 비웃음을 흘리며 다시 거리를 좁혔다.“어제 그렇게 혼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그의 시선이 지아의 오른쪽 손목으로 향했다.“그 손목, 아직 아파?”지아는 소매 안으로 손을 감췄다.현우가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비틀었다.“아프면 말을 들어야지. 왜 자꾸 사람을 화나게 만들어?”그가 갑자기 지아의 손목을 낚아챘다.“아!”지아가 몸을 움츠렸지만 현우는 놓아주지 않았다. 어제 생긴 멍 위로 손가락이 파고들자 통증이 팔꿈치까지 번졌다.“이거 놔주세요.”“놓으라고?”현우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네가 지금 누구한테 명령하는데?”지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아파요. 놓으세요.”“그러니까 진작 말을 들었어야지.”그는 지아를 책상 쪽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지아의 허벅지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쳤고, 충격에 몸이 휘청거렸다.“네가 감히 내 앞에서 사표를 찢어도 소용없다는 소리를 해? 내가 널 얼마나 우습게 봐 줬으면 여기까지 기어올라!”현우는 지아의 손목을 놓고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똑바로 봐. 네 남편이 누군지 잊었어?”지아는 턱을 빼내려 했지만 그의 손가락이 뺨을 파고들었다.“대답해.”“……놓으세요.”“이 씨발, 끝까지!”현우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짝!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지아의 몸이 책상에 부딪쳤다. 입술 안쪽이 찢어졌는지 비릿한 피 맛이 번졌고, 한쪽 귀에서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현우는 지아가 몸을 바로 세우기도 전에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그는 붉게 부어오른 지아의 뺨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내가 좋게 말할 때 들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지아는 숨을 몰아쉬었다.그녀가 손을 빼내려 하자 현우는 팔을 놓는 대신 문 쪽을 가로막았다.“사표 철회해.”“……못 합니다.”현우의 눈빛이 험악해졌다.“한 번 더 말해 봐.”지아는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사직 의사를 철회하지 않겠습니다.”현우는 그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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