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남편이 나를 팔았고, 그 남자가 나를 샀다: Chapter 71 - Chapter 80

116 Chapters

71화

대표실로 돌아온 이건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비서를 불렀다.“백림유통 프로젝트 담당자 명단을 다시 가져오세요. 결재 권한과 승인 단계, 업무 전달 경로까지 정리해서요.”“특별한 문제라도 발생했습니까, 대표님?”“확인해야 할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잠시 뒤 비서가 가져온 조직도를 펼친 이건의 손가락이 전략기획팀 부분에서 멈췄다.한지아 과장.그녀의 이름 위로 팀장과 상무, 최종 결재권자인 백현우 대표이사의 이름이 차례로 연결되어 있었다.이건은 그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지아가 아무리 정확한 보고서를 작성해도 현우가 중간에서 내용을 바꾸거나 그녀를 업무에서 배제한다면 도원에 전달되는 자료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충분히 점검할 만한 문제였다.이건은 조직도에서 백현우의 이름을 잠시 바라보다 비서에게 시선을 돌렸다.“앞으로 한 과장님이 작성하는 투자 관련 보고서는 투자관리팀에 접수되는 대로 원본을 제게도 전달하세요.”“대표님께서 직접 확인하시겠습니까?”“네. 수정 이력도 함께 받겠습니다.”“기존 보고 절차는 그대로 유지할까요?”“그대로 두세요. 다만 최종 보고서와 원본에 차이가 있으면 그 이유까지 확인하겠습니다.”이건은 조직도를 덮었다.“다음 주 백림유통 실무 회의도 제가 참석하겠습니다.”비서가 일정표를 확인했다.“그날 오후에는 해외 파트너사와 협약 관련 미팅이 잡혀 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조율한 일정인데요.”“시간을 조정하세요.”“상대 측에서도 임원들이 참석하는 자리입니다.”이건은 잠시 비서를 바라보았다.“알고 있습니다. 가능한 시간대를 확인해서 다시 보고하세요.”비서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이건은 지아의 보고서를 다시 펼쳤다.이미 여러 차례 검토한 자료였다. 수치도 정확했고, 추가로 확인할 부분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첫 장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뒤에도 그는 서류를 덮지 않았다.비서가 문 쪽으로 돌아서자 이건이 다시 불렀다.“잠깐만요. 다음 주 회의가 끝난 뒤 한 시간 정도 비워 두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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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잠시 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회의실 문이 열렸다.백현우가 먼저 들어왔고, 그 뒤로 재무담당 임원과 한지아가 따라왔다.이건은 현우와 인사를 나눈 뒤 지아를 바라보았다.“한 과장님,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지아는 자신의 이름표를 확인하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제가 이 자리에 앉는 건가요?”“오늘은 한 과장님께 직접 확인할 내용이 많습니다.”“아, 네. 알겠습니다.”지아는 의자를 당겨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이건은 그녀가 자료를 준비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자리에 앉았다.현우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이건은 그 시선을 알아차렸지만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회의가 시작되자 지아는 준비한 자료를 차분하게 설명했다.이건은 필요한 부분에서 질문했고, 그녀가 대답하는 동안에는 말을 끊지 않았다.그러다 현우가 중간에 끼어들었다.“그 부분은 제가 보충 설명하겠습니다. 한 과장이 아직 사업 전체의 방향까지는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서…….”“잠시만요.”이건이 고개를 들었다.“지금은 한 과장님의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아니, 그래도 제가 대표로서 전체적인 방향을…….”“그 부분은 다음 안건에서 듣겠습니다.”이건은 다시 지아를 바라보았다.“계속하시죠.”지아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다음 자료로 넘어갔다.“네. 이 부분은 기존 운송 계약을 유지할 경우와 조건을 재협상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 차이를 비교한 내용입니다.”이건은 그녀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현우가 다시 말을 꺼내려 하자 이건은 손에 쥔 펜을 내려놓았다.“백 대표님, 전체 사업 방향에 관한 의견은 마지막에 따로 듣겠습니다. 지금은 실무 자료부터 확인하죠.”현우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더 이상 끼어들지 않았다.회의가 끝날 무렵, 현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진 대표님, 오늘도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한 과장, 자료 챙겨서 먼저 내려가 있어.”지아가 노트북을 닫으려는 순간 이건이 입을 열었다.“한 과장님은 잠시 남으시죠.”현우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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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한지아가 회의실을 떠난 뒤에도 이건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맞은편에는 그녀가 앉았던 의자가 조금 뒤로 밀려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손도 대지 않은 물잔이 남아 있었다. 이건은 손목시계를 다시 차며 방금 끝난 회의를 떠올렸다.처음에는 투자 자료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지아가 설명을 마치고 일어설까 봐 다음 질문을 찾고 있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항목까지 다시 물으며 그녀를 붙잡아 둔 것은 투자자로서도, 대표로서도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었다.그런데 후회는 들지 않았다.오히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백현우.그 남자가 지아를 아내라고 부르던 목소리였다.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공손하면서도 지아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면 당연하다는 듯 깎아내리던 태도까지 선명하게 떠올랐다.이건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현우가 지아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이야기하던 순간, 그는 하마터면 투자와 관계없는 말을 꺼낼 뻔했다.남편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권리인가.이건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남의 부부관계에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현우가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면, 이번처럼 침착하게 앉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회의실을 나서자 복도 끝에서 기다리던 비서가 다가왔다.“대표님, 백림유통 측에서 수정된 투자 집행계획서를 내일까지 보내겠다고 합니다.”“한 과장님이 작성하는 겁니까?”“전략기획팀에서 취합한다고 들었습니다. 최종 결재는 백현우 대표가 할 예정이고요.”이건은 걸음을 멈췄다.“원본과 최종본을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요청하세요. 특히 한 과장님이 작성한 분석 자료는 최초 제출본부터 수정 이력까지 빠짐없이 받겠습니다.”비서가 태블릿에 지시사항을 기록했다.“알겠습니다. 다음 주 현장 점검은 실무진에게 맡기셔도 됩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참석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그 일정은 그대로 두세요. 그리고 백림유통에서 한 과장님의 담당 업무를 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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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물류 계약별 운송단가 비교표, 물동량 변동에 따른 비용 시뮬레이션, 계약 조건별 절감 가능액까지 모두 그녀가 작성한 자료였다.반면 최종본에서는 분석 과정이 삭제되었고, 대표이사가 직접 절감 방안을 수립한 것처럼 문구가 바뀌어 있었다.이건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남편이라는 자리가 아내의 성과까지 빼앗을 권리를 주는 것인가.손에 쥔 만년필이 손가락 사이에서 느리게 돌아갔다. 그는 펜을 내려놓으려다 자신이 지나치게 세게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백림유통에 연락하세요. 작성 책임자와 수정 승인자를 다음 실무회의에 참석시키라고 하세요.”“백 대표님께 직접 전달하겠습니다.”“그리고 이번 보고서는 승인하지 않겠습니다. 원본과 수정본의 차이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비서가 나간 뒤에도 이건은 화면을 닫지 않았다.수정 이력에 낯선 이름 하나가 남아 있었다.민서라.한지아가 원본을 제출한 다음 날 오전, 그녀가 주요 문구를 수정한 기록이었다.이건은 그 이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백현우는 아내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이름을 지워 놓고도 자신 앞에서는 좋은 남편인 척 웃었다.그 웃음이 다시 떠오르자 이건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다음 실무회의가 열리는 날, 백림유통 회의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이건이 들어섰을 때 현우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연한 분홍빛 블라우스와 몸에 맞게 재단된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민서라는 이건을 발견하자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가에는 환한 웃음을 띠었지만, 시선은 그가 자신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는지 살피듯 머물렀다.“안녕하세요, 진 대표님. 전략기획팀 민서라예요. 오늘은 제가 직접 자료를 준비했어요.”서라는 서류철을 건네면서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손목에서 달콤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대표님처럼 꼼꼼하신 분 앞에서 발표하려니 어젯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혹시 실수하더라도 너무 무섭게 보지 말아 주세요.”말끝에 가벼운 웃음이 섞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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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한 과장, 투자사 대표님이 먼저 와 계신데 담당자가 이렇게 들어오면 어떡해? 시간 관리부터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야?”지아는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확인했다. 아직 회의 시작까지 몇 분이 남아 있었다.“회의 시작 전까지 도착했고, 요청하신 자료도 준비했습니다.”“말대꾸하지 말고 앉아. 서라 씨는 어제도 늦게까지 남아서 보고서를 정리했어. 한 과장도 그런 책임감은 좀 배워야지.”서라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대표님, 그러지 마세요. 과장님도 바쁘셨을 텐데요. 저는 그냥 대표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한 거예요.”말은 지아를 감싸는 듯했지만 서라는 현우의 팔꿈치에 손을 얹으며 눈을 맞췄다.“그래도 대표님이 옆에서 챙겨 주시니까 힘든 줄도 몰랐어요.”현우는 그녀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그러니까 내가 서라 씨를 높이 평가하는 거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잖아.”이건은 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자료를 펼쳤다. 표정은 차분했지만 서류철을 붙잡은 손끝이 희게 질려 있었다.이건의 시선이 천천히 현우에게 돌아갔다.아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와 저토록 노골적으로 친밀하게 구는 남자.그 여자를 칭찬하기 위해 아내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리는 남자.그런 남자가 지아의 남편이었다.이건은 손에 쥔 만년필을 세게 움켜쥐었다.딱.손아귀에서 짧은 파열음이 났다. 만년필 뚜껑에 금이 가 있었다.작은 소리에 비서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이건은 부러진 펜을 내려놓았다.“백 대표님.”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현우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예, 진 대표님.”“오늘 회의가 직원들의 충성심을 평가하는 자리입니까?”현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그런 뜻은 아닙니다만…….”“그렇다면 업무와 관계없는 평가는 그만하시죠. 도원은 누가 대표님 곁에서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는지 확인하러 온 게 아닙니다.”회의실이 조용해졌다.서라가 현우의 팔에서 손을 떼었다.이건은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누가 실제로 일을 했는지 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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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과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일부러 잘못된 숫자를 넣은 것처럼 들리잖아요.”그녀는 현우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대표님, 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제가 괜히 나섰나 봐요. 과장님이 이렇게 싫어하실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손대지 말 걸 그랬어요.”현우는 즉시 서라의 팔을 잡았다.“서라 씨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울지 마.”그는 지아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한 과장,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후배 직원이 밤새워 일했으면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투자사 앞에서 망신을 줘?”서라는 현우의 손목을 붙잡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대표님, 그만하세요. 저 때문에 과장님이 혼나시는 거 싫어요.”그러면서도 눈물을 머금은 채 현우에게 몸을 기댔다.현우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달랬다.“괜찮아. 서라 씨 잘못 아니야. 내가 다 알아.”이건의 시선이 그 손에 꽂혔다.지아는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그런데 현우는 아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그것도 지아를 모욕하면서.이건은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저 손을 치우라고.당장 그 여자에게서 떨어지라고.아내 앞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그의 손이 테이블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손등 위로 핏줄이 선명하게 솟았다.“백현우 대표.”이건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갈랐다.현우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이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예?”“투자사와의 공식 회의 자리입니다. 직원의 감정을 달래는 일보다 잘못된 수치를 확인하는 게 먼저 아닙니까?”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서라 씨가 너무 당황해서 제가 잠깐…….”“그 직원이 당황한 이유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과장님 때문이 아니고요.”이건은 서라를 바라보았다.“민서라 씨. 울어서 해결될 문제라면 투자 검토가 참 쉬웠겠군요.”서라의 눈물이 멈칫했다.“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그럼 자료로 설명하세요. 직접 수정한 보고서라면 근거를 알고 계셔야겠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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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이번 달에 바로 반영할 수 있는 절감액과 다음 분기 이후 검토할 금액을 분리했습니다. 이렇게 수정하면 투자 집행 일정 자체를 늦추지 않고도 계획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이건은 지아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누구를 비난하지 않았다. 서라의 실수를 들춰 망신을 주는 대신 문제가 발생한 지점과 해결 방법을 차례로 제시했다.현우는 얼굴을 붉힌 채 서류를 내려다보았다.***회의가 끝난 뒤 백현우는 먼저 이건에게 다가왔다.“진 대표님, 오늘은 내부적으로 자료 정리가 조금 미흡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건은 서류철을 덮었다.“소통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원본에 있던 중요한 조건이 최종본에서 빠졌으니까요.”현우의 얼굴이 굳었다.“그 부분은 제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작성자와 검토자, 최종 승인자를 명확하게 표시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한 과장님의 분석 자료가 수정될 경우 변경 사유를 남기세요.”현우는 어색하게 웃었다.“물론입니다. 제가 집에서도 잘 이야기해서…….”“백 대표님.”이건이 말을 끊었다.현우가 움찔했다.“업무 문제는 회사에서 처리하십시오.”이건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한 과장님이 백 대표님의 아내라는 사실이 업무상 책임이나 권한을 바꾸지는 않습니다.”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이건은 더 말하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라가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현우는 그녀를 발견하자 곧바로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무언가를 속삭였다.이건은 그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아내에게는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면서 다른 여자에게는 저토록 다정했다.그 순간 이건은 지아가 저 남자의 아내라는 사실이 다시 견디기 어려워졌다.그녀가 저런 남자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퇴근 후에도 같은 공간에서 그의 말을 듣고, 그의 기분을 살피며 살아간다는 것.이건은 턱을 굳게 다물었다.자신에게는 지아의 사생활에 관여할 권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 권리가 백현우에게 있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거슬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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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한 과장님.”그가 다시 부르자 지아가 고개를 들었다.“앞으로도 오늘처럼 하십시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본인이 확인한 사실을 끝까지 설명하세요.”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리고 누군가 부당하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면 혼자 감당할 필요 없습니다. 업무상 필요한 자료나 확인 절차가 있다면 도원에 정식으로 요청하세요.”지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합니다, 대표님.”그녀가 서류철을 안고 돌아서자 이건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지아는 몇 걸음 걷다가 다른 직원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이 보였다.이건은 그 웃음을 바라보았다.방금 전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 아쉬웠다.자신에게만 조금 더 오래 웃어 주었으면 했다.그 생각이 떠오르자 이건은 미간을 좁혔다.그녀의 웃음까지 자신이 독점할 이유는 없었다.그런데도 다른 사람에게 향한 그 얼굴을 보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차에 오른 이건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건물들을 바라보았다.비서가 다음 일정을 보고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이 계속 떠올랐다.백현우가 지아를 몰아세우던 순간.민서라가 눈물을 보이자 현우가 곧바로 그녀를 감싸던 순간.그리고 지아가 차분하게 수정 이력을 펼쳐 놓던 순간까지.이건은 손가락으로 무릎 위를 두드렸다.그는 오늘 자신이 몇 번이나 말을 끊고 싶었는지 떠올렸다.백현우에게 당장 그만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원본과 수정본을 직접 비교해 보여 주며 누가 잘못했는지 밝히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하지만 지아가 먼저 움직였다.이건은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안도감이었다.그리고 그것보다 더 강한 만족감이 있었다.지아가 현우의 말을 차분하게 반박할 때마다 속이 후련했다. 재무담당 임원이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을 때는 자신이 성과를 인정받은 것처럼 기뻤다.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오늘 백림유통 회의는 예상보다 잘 마무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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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이건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조금 전까지 백현우를 떠올리며 굳어 있던 표정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져 있었다.그는 한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한지아.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었다.전화를 걸지는 않았다.대신 연락처를 닫기 전, 그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백현우는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정작 그녀가 얼마나 귀한 여자인지도 모르면서.이건은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한지아의 이름을 오래 바라보았다.저 남자가 가진 자리를 빼앗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머릿속을 스쳤다.그 순간, 이건의 손가락이 멈췄다.자신이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이건이 한지아의 이름을 유난히 오래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의 비서였다.백림유통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이건은 오전부터 투자심의위원회에 제출할 검토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전날 지아가 바로잡은 물류비 절감 수치는 수정 보고서에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었고, 작성자와 검토자의 이름도 구분되어 있었다.마지막 장까지 살핀 뒤 결재 화면을 열었을 때, 비서가 새로운 참석자 명단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대표님, 내일 백림유통 물류센터 현장 점검에 참석할 실무진 명단입니다. 한지아 과장님과 재무팀 김도윤 차장이 설명을 맡기로 했습니다.”이건의 손이 잠시 멈췄다.“김도윤 차장?”“네. 이번 투자 건에서 자금 집행계획과 현금흐름 검토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 과장님과 함께 실무 조율을 해 온 직원입니다.”이건은 명단을 받아 들었다.한지아의 이름 바로 아래에 김도윤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부서가 다른 두 직원이 하나의 투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이름을 한 번 더 읽었다.“그 직원은 어떤 사람입니까?”“서른다섯 살이고, 백림유통에서 근무한 지 칠 년 정도 됐습니다. 재무팀에서는 실무 능력이 좋은 직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한 과장님과는 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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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비서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지아가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안녕하세요, 진 대표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한 과장님도 일찍 나오셨군요.”“오늘 확인하실 구간이 많아서 미리 동선을 점검했습니다. 물류팀에서도 준비를 도와주셨고요.”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안녕하십니까. 재무팀 김도윤 차장입니다. 이번 투자 건의 자금 집행계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이건은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진이건입니다.”악수는 짧았다.도윤은 손을 놓자마자 지아에게 시선을 돌렸다.“한 과장, 아까 확인한 재고 회전율 자료는 내가 설명할게. 운송 계약은 네가 맡는 게 좋겠어.”“네. 그럼 제가 먼저 물류비 구조부터 설명하겠습니다.”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역할을 정리했다. 상대방이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부분을 잘 아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이건은 그 자연스러운 호흡을 지켜보았다.지아가 자신 앞에서는 늘 말 한마디를 고르고 표정을 살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반면 저 남자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그 차이가 마음에 걸렸다.현장 점검은 예정대로 진행됐다.지아는 운송사별 계약 조건과 물동량 변동에 따른 비용 구조를 설명했고, 도윤은 투자금 집행 일정과 현금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보충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설명을 가로막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채웠다.이건은 그들의 업무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특히 지아는 현장 관리자에게 확인한 실제 물동량과 보고서에 반영된 수치를 비교하며, 운송 계약 재협상이 늦어질 경우 발생할 비용까지 설명했다.그녀가 일에 집중할 때마다 이건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오래 두었다.점검이 중반을 넘어설 무렵, 일행은 하역장과 자동 분류 구역을 연결하는 통로로 이동했다.바닥에는 노란색 안전선이 그어져 있었고, 작업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경고등이 켜졌다. 지아는 앞장서 걸으며 태블릿에 표시된 계약 조건을 확인하고 있었다.그때 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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