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남편이 나를 팔았고, 그 남자가 나를 샀다: Chapter 91 - Chapter 100

116 Chapters

91화

백현우가 회의실 탁자 위로 서류철을 집어 던졌다.두꺼운 서류가 탁자 모서리에 부딪혀 벌어지면서 종이 몇 장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전략기획팀 직원들은 누구 하나 허리를 굽혀 그것을 줍지 못했다. 현우는 내 얼굴을 노려보며 손에 들고 있던 볼펜까지 내려쳤다.“한지아, 너 지금 회사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벽면 화면에는 도원에 제출한 투자금 집행계획서가 떠 있었다. 온라인 판촉비가 과다하게 반영됐고, 물류비 증가분은 빠져 있었다. 어제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자료와는 분명히 다른 숫자였다.“도원에서 아침부터 전화가 왔어. 집행계획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데, 담당자가 대체 뭘 했길래 이 모양이냐고!”현우는 참석자들이 모두 듣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내게 설명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처음부터 책임자를 정해 놓고 몰아세우는 태도였다.나는 노트북을 열어 문서관리 시스템에 접속했다.“대표님, 제가 어제 오후에 올린 수정 요청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현재 화면에 나온 자료는 제가 검토한 최종안과 다릅니다.”“아주 입만 열면 변명이야. 네가 담당자잖아! 담당자가 끝까지 확인했어야 할 거 아니야?”“수정 요청은 오후 다섯 시 십이 분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제 계정에서 투자자료 폴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현우가 의자를 밀치며 일어났다.“그래서? 내가 자료를 못 보게 해서 네가 일을 못 했다는 소리야?”그가 탁자 끝을 돌아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다른 직원들이 눈을 내리깔았지만, 나는 노트북 화면을 닫지 않았다.“누가 접근권한을 변경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최종 승인 과정도 함께 확인해야 책임 소재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책임 소재?”현우가 내 말을 비웃듯 되풀이했다.“야, 한지아. 내가 널 사람 취급해 주니까 아주 회사가 네 것인 줄 알아? 과장 자리 하나 달아 줬더니 이제 대표 결재까지 따지겠다고?”그가 내 노트북 덮개를 거칠게 눌렀다. 화면이 닫히는 순간, 나는 손을 뒤로 뺐다.“대표님, 업무용 장비입니다. 말씀은 듣고 있으니 손대지 말아 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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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이미 책임을 인정하는 문장까지 작성되어 있었다.“여기 서명해. 도원에서 문제 삼으면 담당자 실수로 정리하고 끝낼 거야.”“이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사실이고 나발이고, 내가 시키면 하는 거야!”현우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찻잔이 흔들리면서 물이 받침에 흘러넘쳤다.“네가 여기서 월급 받아먹는 게 누구 덕분인데? 회사에서 내 말 안 듣고, 집에서도 남편 우습게 보더니 이제 아주 대놓고 나를 물 먹여?”서라가 재빨리 현우의 팔을 붙잡았다.“대표님, 그러다 손 다치세요. 사모님도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하시면 되는데 왜 자꾸 일을 크게 만드세요?”나는 서라를 바라보았다.“제가 하지 않은 일을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어요.”서라의 눈이 커졌다. 현우는 그녀를 자기 뒤로 물리더니 다시 내게 다가왔다.“너 요즘 진이건 믿고 까부는 거지?”그가 내 앞에 바짝 섰다.“그 자식이 몇 번 잘해주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착각하지 마. 넌 아직 내 아내고, 백림유통 직원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네 자리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라고.”나는 현우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업무상 잘못이 있다면 정식 절차에 따라 처리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경위서에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그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끝까지 버텨 보겠다?”“확인할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요.”나는 경위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오늘 중으로 자료를 정리하겠습니다.”돌아서려는 순간 현우가 내 팔목을 붙잡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서 뼈가 눌리는 통증이 올라왔다.“내 말 아직 안 끝났어.”나는 붙잡힌 팔을 내려다본 뒤 그를 바라보았다.“놓으세요. 업무 이야기는 계속 듣겠습니다.”현우는 몇 초 더 버티다가 거칠게 손을 놓았다. 나는 흐트러진 소매를 정리하고 대표실을 나왔다.복도 끝까지 걸어간 뒤에야 손목을 살폈다.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휴대전화를 꺼내 시계를 확인했다.오전 열 시 사십이 분.나는 방금 대표실에서 들은 지시와 발언을 시간순으로 메모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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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나는 서류철 위에 놓인 경위서 사본을 바라보았다. 현우가 내게 서명하라고 했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아니요, 대표님. 제가 설명하겠습니다.”“직접 하시겠습니까?”“네. 이번에는 제 입으로 정확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요.”이건은 내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좋습니다. 내일 회의에 참석하십시오. 관련 기록은 정식으로 보존하도록 하겠습니다. 발표 도중 누구도 설명을 막지 못하게 하죠.”나는 손끝으로 서류 모서리를 매만졌다.“감사합니다.”“한 가지는 분명히 하겠습니다. 제가 백 대표와 다투는 자리를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투자자로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과장님에게 설명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그걸로 충분합니다.”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누군가 나 대신 현우를 혼내 주는 일은 잠깐 통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현우는 또다시 내가 다른 남자의 힘을 빌렸다고 비웃을 것이다.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내가 확인한 자료를 내가 설명하고, 현우가 한 일을 현우 자신의 책임으로 남기고 싶었다.나는 노트북을 열어 발표 자료의 첫 장을 고쳤다.‘투자금 집행계획서 오류 정정 및 발송 경위.’그리고 그 아래에 내 이름을 적었다.작성자, 한지아.***다음 날 도원 회의실에서 현우는 내 옆자리에 앉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오늘 입 잘못 놀리면 회사 돌아올 생각 하지 마.”나는 준비한 자료를 꺼내며 대답했다.“확인된 사실만 말씀드릴 겁니다.”“한지아, 너 정말 끝장을 보고 싶은 거야?”그가 내 팔꿈치를 거칠게 건드렸다.나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회의가 곧 시작됩니다. 손 치워 주세요.”현우는 이를 악물고 손을 거뒀다.잠시 후 진이건이 들어왔다. 그는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고, 곧바로 투자금 집행계획서의 오류부터 확인하자고 했다.현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담당자가 최종 검토를 소홀히 해서 일부 수치가 잘못 전달됐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이미 조치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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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투자심사팀장은 회의록 작성자에게 승인 경위에 대한 추가 확인 요청을 남기라고 지시했다. 정정 집행계획서는 별도 검토하되, 발송 절차와 최종 승인 책임도 백림유통 측에서 문서로 설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현우는 의자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는 그를 보며 웃지 않았다.다만 며칠 전 대표실에서 그가 내게 던졌던 경위서를 떠올렸다.그 종이에는 내 잘못이 아닌 일을 내 잘못이라고 쓰라고 되어 있었다.이제 도원 회의록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남게 됐다.백림유통 대표실의 최종 승인 경위를 확인할 것.현우가 남에게 떠넘기려던 책임을 자신의 이름으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었다.***회의가 끝나자 현우는 복도에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너 오늘 아주 신났지? 투자자 앞에서 남편 망신 주니까 속이 다 시원해?”그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지나가던 직원이 걸음을 늦추자 현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내게 몸을 숙였다.“회사 돌아오면 각오해. 내가 너 하나 어떻게 못 할 것 같아?”나는 그를 피해 복도 한쪽으로 이동했다.“대표님, 회사 업무와 관련된 지시는 공식적으로 전달해 주세요. 오늘 회의에서 요청받은 보완 자료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네가 지금 누구한테 명령이야?”“명령이 아니라 업무 처리 방식을 말씀드리는 겁니다.”현우는 내 얼굴을 노려보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더 대꾸하지 않고 회의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때 진이건이 복도 끝에서 다가왔다.현우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표정을 바꿨다.“진 대표님, 저희 내부 문제 때문에 괜히 불편하게 해드렸습니다.”이건은 현우의 말에 길게 답하지 않았다.“추가 확인 자료는 담당 부서를 통해 제출해 주십시오.”그는 곧바로 도원 직원에게 다음 일정을 확인했다. 현우가 더 말을 붙이려 했지만, 이건은 회의 내용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았다.나는 현우가 먼저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진 뒤에야 서류철을 정리했다.“한 과장님.”이건이 내게 다가왔다.“오늘 설명은 명확했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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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백현우가 내 책상 위로 서류철을 집어 던진 것은 도원 회의가 끝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두꺼운 서류철이 모니터 받침대에 부딪히면서 벌어졌고, 안에 들어 있던 종이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전략기획팀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지만 현우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모두 듣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한지아, 너 어제 진이건 앞에서 나 망신 주니까 아주 신났지? 회사가 네 놀이터야? 남편 팔아먹어서라도 네 잘난 능력 인정받고 싶었어?”나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도원에 제출할 수정 집행계획서였다. 어젯밤 늦게까지 물류비와 온라인 판촉비를 다시 계산해 정리한 자료가 그의 구두 아래 깔려 있었다.“대표님, 그 자료는 오늘 오후까지 제출해야 합니다. 발로 밟지 말아 주세요.”현우는 내 말을 듣고도 일부러 발을 움직였다. 종이 위에 검은 구두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이깟 종이 몇 장이 그렇게 아까워? 회사 백억짜리 투자 날려 먹을 뻔한 년이 지금 종이 걱정이나 하고 있어?”그가 내 의자를 발끝으로 걷어찼다. 바퀴가 뒤로 굴러가면서 의자가 옆자리 책상에 부딪혔다.“내가 너한테 과장 자리 달아준 게 실수였어. 집에서는 아내 노릇도 제대로 못 하면서 회사에선 잘난 척만 해대고. 너 같은 여자를 누가 데려가겠어?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기나 했겠냐고!”사무실이 얼어붙었다.나는 현우를 바라보았다. 결혼하고 나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자기 덕분이고, 내가 살아가는 것조차 자기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그런데 오늘은 그 말이 더 이상 나를 작아지게 만들지 않았다.오히려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들렸다.내가 왜 이 남자에게서 벗어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현우가 직접 설명해 주고 있었다.“대표님, 도원 회의에서 확인된 내용은 번복할 수 없습니다. 최종 승인 경위는 재무팀에서 확인하고 있고, 저는 요청받은 정정 자료를 제출하겠습니다.”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어디서 또박또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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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나중에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할 수도 있어요. 지금 당장 뭘 해달라는 건 아니에요.”나는 더 부탁하지 않았다. 직원에게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대신 현우가 들어온 시각과 발언, 서류를 던지고 의자를 걷어찬 행동을 업무 메모에 남겼다. 사무실 공용 공간의 CCTV 보존 기간도 확인해 둘 생각이었다.예전에는 현우가 화를 내면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부터 생각했다.이제는 그가 무엇을 했는지부터 기록했다.***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민서라가 전략기획팀으로 내려왔다.연한 크림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한 손으로 배를 감싼 채 내 자리 앞에 섰다. 다른 손에는 얇은 파일 하나를 들고 있었다.“사모님, 대표님이 이것 좀 전달하라고 하셨어요. 도원에 보낼 온라인 사업 개선안인데, 제가 어젯밤에 정리해 봤거든요.”나는 파일을 받아 첫 장을 넘겼다.표지에는 ‘온라인 유통 수익구조 개선 및 투자금 활용 방안’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고, 작성자란에는 민서라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하지만 목차부터 익숙했다.납품처별 공급가 조정, 물류비 증가분 반영, 판촉비 재배치, 온라인 채널별 예상 마진율까지. 내가 지난주 작성해 팀 공용폴더에 올렸던 기획안과 구성 순서가 같았다.표 안에 사용된 수치도 거의 일치했다. 내가 최종 검토 과정에서 삭제했던 설명 문장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서라 씨가 직접 작성한 자료예요?”내가 묻자 서라는 수줍게 웃었다.“네. 물론 사모님이 전에 정리하신 자료도 참고했어요. 제가 아직 부족해서요. 대표님이 젊은 감각으로 다시 정리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그녀는 파일을 내 쪽으로 조금 더 밀었다.“사모님이 마지막으로 숫자만 확인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발표는 제가 하기로 했거든요.”나는 마지막 장의 작성일을 확인했다.어젯밤 날짜였다.“원본 파일도 있나요?”“왜요?”서라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생성 이력과 산출 근거를 확인해야 하니까요.”“그냥 숫자만 봐주시면 안 돼요? 사모님이 워낙 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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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오후 세 시, 대표실에서 메일이 왔다.민서라가 작성한 온라인 사업 개선안을 도원 측에 설명할 예정이니, 한지아 과장은 관련 수치 검증과 발표자료 보완을 지원하라는 지시였다.나는 메일을 읽고 곧바로 답장을 작성했다.‘검토 지원은 가능합니다. 다만 해당 자료의 작성 경위와 원본 기획안의 작성자 표기가 실제 업무기록과 일치하는지 먼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부 수치는 아직 재무팀 확정값이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발표 전 재산정이 필요합니다.’참조에는 전략기획팀장과 재무팀 담당자를 넣었다.십 분도 지나지 않아 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너 지금 나랑 장난해?”그는 인사도 없이 고함을 질렀다.“서라가 밤새워 만든 자료 좀 도와주라는데 그걸 못 해서 회사 사람들한테 메일을 돌려? 아주 대놓고 애 하나 잡겠다는 거야?”“원본 작성자와 검증 책임을 확인하자는 겁니다. 자료에 미확정 수치도 포함되어 있고요.”“그럼 네가 고치면 되잖아! 네가 잘하는 게 그런 뒷정리 아니야?”현우가 비웃었다.“서라는 사람들 앞에 서면 빛이 나는 애야. 넌 뒤에서 숫자나 맞추면 되는 거고. 솔직히 네가 발표하면 누가 듣고 싶겠어? 얼굴만 봐도 분위기가 칙칙해지는데.”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사무실에서는 프린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제가 작성한 기획안이라면 제 이름으로 기록돼야 합니다.”“하, 이제 공까지 탐내?”“제가 한 일을 다른 사람의 성과로 기록하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한지아, 착각하지 마. 회사에서 네가 만든 건 전부 회사 거야. 내가 서라 이름으로 내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거고, 네가 싫으면 당장 사표 써!”현우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그리고 이혼이든 뭐든 네 마음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나는 휴대전화를 귀에서 잠시 떼었다가 다시 들었다.“업무에 관한 지시는 메일로 남겨 주세요. 자료 검토 결과도 공식적으로 제출하겠습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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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해당 수치는 아직 확정값이 아닙니다. 현재 화면의 마진율은 물류센터 추가 운영비가 반영되기 전의 초안 수치입니다.”서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나는 화면 공유를 요청해 수정 내역을 띄웠다.“제가 지난주 작성한 원본 기획안에서는 해당 항목에 재산정 필요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이후 재무팀에서 받은 운영비 추정치를 반영하면 예상 마진율은 현재 발표자료보다 낮아집니다.”도원 실무자가 물었다.“그러면 지금 발표 중인 자료는 한 과장님이 작성한 원본을 바탕으로 수정한 것입니까?”나는 잠시 서라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네. 원본 기획안의 작성자와 생성 이력은 사내 문서관리 시스템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발표자료는 그 기획안을 기초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됩니다.”현우가 화면 너머에서 몸을 움직였다.“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 투자자 앞에서 누가 작성했는지 따질 때야?”도원 실무자의 표정이 굳어졌다.“백 대표님, 투자 판단에 사용되는 자료라면 작성 책임자와 검증 담당자가 누구인지도 중요합니다. 특히 미확정 수치가 확정값처럼 설명된 부분은 바로잡아야 합니다.”현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준비한 정정표를 화면에 띄웠다.“현재 확정 가능한 수치와 추가 검토가 필요한 항목을 구분했습니다. 오늘은 검증된 부분까지만 설명드리고, 나머지는 재무팀 확인 후 제출하겠습니다.”도원 실무자는 자료의 작성 및 수정 이력을 함께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전략기획팀장도 회의록에 원본 작성자와 발표자료의 수치 검증 경위를 구분해 남기겠다고 했다.나는 그 자리에서 한 가지를 더 요청했다.“팀장님, 이번 기획안의 원본 작성자와 발표자료 수정 담당자를 업무기록에 정확하게 구분해 주십시오. 이후 같은 자료가 재사용될 때 작성 경위에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팀장은 잠시 현우 쪽 화면을 살폈다.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알겠습니다. 문서관리 시스템의 이력을 확인해 반영하겠습니다.”그 순간 서라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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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그날 저녁, 진이건에게서 전화가 왔다.“한지아 과장님, 오늘 실무회의 내용 전달받았습니다.”나는 퇴근 준비를 하다 다시 의자에 앉았다.“네, 대표님. 미확정 수치가 포함된 부분은 정정했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보완 자료를 보내겠습니다.”“원본 기획안도 과장님이 작성하셨더군요.”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네. 지난주부터 준비했던 자료입니다.”“그런데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습니까?”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나는 그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평소보다 말수가 줄었고, 질문도 단호했다.“대표실 지시였습니다. 다만 작성 이력과 수정 사항은 공식적으로 확인받았습니다.”“백 대표는 과장님이 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문제가 생기면 과장님에게 책임을 묻는군요.”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걸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수화기 너머에서 종이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특히 과장님처럼 자기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에게 그러는 건 더더욱요.”나는 책상 위에 놓인 펜을 만지작거렸다.“대표님,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에요.”“알고 있습니다.”이건은 곧바로 대답했다.“그래서 제가 대신 처리하지 않은 겁니다.”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하지만 한 과장님이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나는 펜을 내려놓았다.그가 내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마음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업무 능력을 인정하거나 발표 기회를 주는 것과는 달랐다.이번에는 분명히 내게 벌어진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감사합니다. 아직 보완할 부분이 남아 있어서요.”“그건 실무팀과 처리하시면 됩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한 과장님, 오늘 저녁은 드셨습니까?”나는 대답하려다가 휴대전화를 다시 확인했다.“아직 못 먹었습니다. 자료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좀 늦어졌네요.”“그럴 줄 알았습니다.”그의 목소리에 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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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이건이 다시 말했다.“대신 해결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과장님이 혼자 버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네. 기억하겠습니다.”“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저녁 꼭 드시고요.”“대표님도요.”통화를 끝낸 뒤에도 나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현우는 내가 어디에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내가 대답을 늦게 하면 숨기는 게 있다고 몰아붙였고, 이유를 설명하면 변명이라고 했다.그런데 이건은 달랐다.그는 내게 저녁을 먹었느냐고 물었고, 병원 일은 괜찮아졌느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만큼만 듣고, 그 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나는 식어 버린 샌드위치를 꺼냈다가 다시 포장했다.오늘은 제대로 된 저녁을 먹고 싶었다.***진이건은 통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않았다.도원 대표실의 창밖으로 도심의 불빛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백림유통의 투자금 집행계획서와 실무회의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이건은 보고서를 다시 펼쳤다.한지아가 원본 기획안을 작성했고, 민서라가 그 자료를 기초로 발표했으며, 잘못된 수치를 바로잡은 사람도 한지아라는 내용이었다.백현우가 어떤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려 했는지도 이미 확인했다.그는 보고서에 적힌 현우의 이름을 바라보았다.아내의 능력을 이용하면서도 그 공을 다른 여자에게 넘기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남자.이건은 그런 남자가 한지아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못마땅했다.처음에는 단순히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경영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지아와 함께 일할수록 백현우라는 인간의 비열함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이건은 보고서를 덮었다.그는 마음만 먹으면 백현우를 불러 강하게 질책할 수 있었다. 투자자로서 요구할 수 있는 설명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그러지 않았다.한지아는 자신이 만든 자료를 스스로 되찾고 있었다. 이건이 끼어들어 대신 싸우면 그녀가 확보한 기록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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