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겸은 피하지 않았다. 세령은 그가 동생과 부모를 원망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고백해야 할 남자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에게 유리한 변명을 버렸다.응접실 탁자에는 세령이 돌려놓은 패물 상자가 열려 있었다. 진주 목걸이 옆의 저택 열쇠가 스탠드 불빛을 받아 반짝였고, 유건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는 의자 하나가 밀려나 있었다. 이도의 고백을 들은 정혁은 굳은 얼굴로 장남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누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할지 지시하지 못했다.“저도 잘못했습니다.”태겸이 말을 시작하자 혜란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아들이 자신을 탓하리라 예상한 듯 두 손을 맞잡고 있었으나, 태겸은 어머니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어머니가 편지를 숨겼고 유건이가 문자를 조작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한 일이죠. 하지만 제가 세령이한테 직접 확인하지 않은 건 제 선택입니다.”세령은 그 시절 새벽마다 태겸의 번호를 눌렀다가 지웠던 일을 떠올렸다. 답이 없으면 다음 날 더 점잖은 문장을 골랐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지나치게 매달렸기 때문에 버림받았다고 결론지었다. 연락을 끊은 사람을 미워하다가도 곧 자신을 탓했던 시간이었다. 태겸은 가족이 전해준 행복한 세령을 믿었지만, 정작 세령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었다.세령은 가방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입에 올린 '선택'이라는 단어가 낯설 만큼 정확했다. 오래전 그녀는 태겸이 보냈다고 믿었던 차가운 답장을 수십 번 읽었다.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조차 모른 채 결혼을 준비했던 자신과 달리, 태겸에게는 직접 찾아올 기회가 있었다.“7년 전, 네가 잘 지낸다는 말을 듣고 물러났어. 내 편지를 읽으면 네가 다시 흔들릴 거라고, 네 행복을 위해선 내가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태겸은 숨을 고른 뒤 세령을 바라봤다.“그런데 네가 행복한지, 나를 만나고 싶은지 한 번도 안 물었어. 네 마음을 지킨 게 아니라 내가 상처받을까 봐 확인하지 않은 거야
Last Updated : 2026-10-0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