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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Chapter 141 - Chapter 150

195 Chapters

제141화. 며느리값은 없습니다

“제가 직접 돌려드리러 가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세령은 한동안 작업실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아직도 저택 현관의 비밀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비서실에 방문객으로 이름을 올렸고, 돌아갈 때도 그 이름으로 나올 작정이었다. 비서가 알려준 방문 시간은 다음 날 오후 3시였다. 결혼하고 처음 저택에 들어갔을 때도 같은 시간이었다. 혜란이 골라준 원피스를 입고 유건의 손을 잡았으며, 현관에서부터 어떤 말투로 인사해야 하는지 신경 썼다. 이번에는 그 집 문턱을 넘기 위해 허락받을 옷도, 손잡아줄 남편도 필요 없었다.밤늦게 집에 돌아온 세령은 옷장 아래 보관함을 꺼냈다. 목걸이와 귀걸이는 각각 천 주머니에 넣었고, 가족카드와 저택 열쇠는 작은 봉투에 담았다. 결혼 첫 명절에 혜란이 목에 걸어준 진주 목걸이에는 여전히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날 혜란은 이제 정말 우리 식구라며 세령의 어깨를 감쌌다. 며느리가 되는 일에 저렇게 큰 축하가 필요한 줄 몰랐던 세령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었다.상자의 뚜껑을 덮자 보석끼리 닿는 소리가 사라졌다. 세령은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한 것만으로 마음까지 정리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다시는 그것들을 꺼내 특별한 날의 며느리 노릇을 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렸다.다음 날 저택 정문은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경비실 직원은 방문 예약을 확인한 뒤 정중하게 문을 열었다. 세령은 자신의 차를 손님용 주차구역에 세웠다. 네 해 동안 익숙했던 진입로였는데 차를 내리자 담장을 타고 올라간 덩굴의 모양까지 낯설었다. 현관 계단을 오르며 그녀는 휴대전화에서 오후 업무 알림을 확인했다. 저택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혜란이 응접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령을 보자 무심코 팔을 뻗었다가 이내 내렸다. 얼마 전 빌라 앞에서 나눈 사과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왔구나, 세령아. 들어와.”“물건만 드리고 갈게요, 어머니.”예전 호칭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혜란은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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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내가 훔친 결혼

“그건 회장님이 물을 일이 아닙니다.”세령의 대답에 정혁의 얼굴이 굳었다. 응접실 탁자에는 방금 돌려받은 목걸이와 열쇠, 가족카드가 놓여 있었다. 혜란은 보관함 뚜껑에 얹은 손을 떼지 못했다. 세령은 가방을 들어 어깨에 걸었다. 더는 이 집안에서 자신의 앞날을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그때 복도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비서와 짧게 통화를 마친 유건이 응접실로 들어섰고, 뒤이어 태겸과 이도가 나타났다. 정혁은 아들들을 따로 불러놓고도 세령의 방문 시간이 겹칠 줄은 몰랐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세령 역시 우연히 마주한 세 사람을 보고 문가가 또 자신 몰래 자리를 꾸몄는지 의심했다.“무슨 일이에요? 저한테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아니.” 태겸이 먼저 답했다. “네가 여기 있는 줄 몰랐어. 원하면 우리가 나갈게.”세령은 현관 쪽으로 걸으려다 유건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오래전처럼 길을 막거나 여보 하고 불러 세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탁자에 놓인 가족카드에서 잠깐 멈췄다. 함께 살 때 세령의 지갑에 늘 들어 있던 카드였다.“아버지. 세령이한테 무슨 제안을 하셨어요?”정혁은 옆에 놓인 서류철을 덮었다.“정리할 것을 정리했을 뿐이다. 애초에 이 결혼이 이렇게 된 데는 저 애도 생각할 게 있지 않겠냐.”세령의 발이 멈췄다. 정혁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유건이 앞으로 나섰다.“없어요. 그 말 하실 거면 제 얘기부터 들으세요.”“네가 뭘 더 말하겠다는 거냐?”유건은 형제들과 어머니를 차례로 봤다. 별장에서는 아버지가 눈감았던 일과 어머니가 숨겼던 편지가 드러났고, 자신은 그 뒤에 서서 피해자인 척했다. 이혼서류에 서명한 뒤에도 누구에게나 진실을 분명하게 말한 적은 없었다. 세령 앞에서만 후회한 것으로 자기 몫이 끝났다고 여기고 싶었다.“형이 세령이랑 사귄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제가 접근했어요. 처음부터 좋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큰형이 원하는 걸 제가 가지면 이긴 것 같을 줄 알았어요.”혜란이 아들의 이름을 불렀으나 유건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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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막내의 죗값

“용서하지 마. 대신 내가 널 속여서 결혼했다는 건 네 잘못 아니라고 기억해.”유건의 말이 끝나자 응접실에 있던 누구도 곧장 대꾸하지 못했다. 세령은 가방끈을 쥔 손을 천천히 폈다. 이혼한 남편이 이제야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했다는 사실보다, 그 말을 듣고도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이 먼저 느껴졌다. 탁자에는 되돌려준 목걸이와 가족카드가 놓여 있었고, 맞은편 정혁은 아직 덮어둔 보상 서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세령은 결혼식 날 유건이 자기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평생 웃게 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기억했다. 그때의 설렘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듣는 고백이 더욱 쓰렸다.“잘 들었어.”세령은 유건을 바라봤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알아.”유건은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 결혼생활 내내 그가 가장 못했던 일이었다. 세령이 싫다고 말하면 그대로 멈추는 일. 그 간단한 행동 하나를 배우기까지 두 사람은 결국 남이 되어야 했다.바로 그때 이도가 의자 뒤편에서 걸어 나왔다. 조금 전부터 주머니 속 손을 쥐었다 펴던 그는 유건과 태겸 사이가 아니라 세령 앞이 비어 있는 쪽에 섰다. 늘 형들의 반응부터 살피던 막내가 이번에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저도 말씀드릴 게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도 들으셔야 해요.”정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넌 이미 별장에서 다 떠들었잖아.”“그때 형들이랑 세령 씨 앞에서 말했죠. 오늘은 아버지 앞에서 제 책임을 빼지 않으려고요.”이도는 잠시 숨을 골랐다. 세령은 그가 새 번호로 보내왔던 오래된 문자 사진을 떠올렸다. 전송 날짜와 수신자가 또렷하게 찍힌 한 줄. 처음에는 형들끼리 벌일 싸움이 재밌을 거라며 던진 정보였고, 그 뒤로도 침묵한 채 형수님이라고 웃던 남자였다. 휴대전화 화면의 짧은 문장은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날짜 하나 흐려지지 않았다. 그걸 읽은 밤, 세령은 다시 잠들지 못했다.“결혼 전에 큰형이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걸 제가 먼저 알았습니다. 그래서 둘째 형한테 알려줬어요. 도착하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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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두 번 놓쳤다

태겸은 피하지 않았다. 세령은 그가 동생과 부모를 원망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고백해야 할 남자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에게 유리한 변명을 버렸다.응접실 탁자에는 세령이 돌려놓은 패물 상자가 열려 있었다. 진주 목걸이 옆의 저택 열쇠가 스탠드 불빛을 받아 반짝였고, 유건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는 의자 하나가 밀려나 있었다. 이도의 고백을 들은 정혁은 굳은 얼굴로 장남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누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할지 지시하지 못했다.“저도 잘못했습니다.”태겸이 말을 시작하자 혜란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아들이 자신을 탓하리라 예상한 듯 두 손을 맞잡고 있었으나, 태겸은 어머니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어머니가 편지를 숨겼고 유건이가 문자를 조작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한 일이죠. 하지만 제가 세령이한테 직접 확인하지 않은 건 제 선택입니다.”세령은 그 시절 새벽마다 태겸의 번호를 눌렀다가 지웠던 일을 떠올렸다. 답이 없으면 다음 날 더 점잖은 문장을 골랐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지나치게 매달렸기 때문에 버림받았다고 결론지었다. 연락을 끊은 사람을 미워하다가도 곧 자신을 탓했던 시간이었다. 태겸은 가족이 전해준 행복한 세령을 믿었지만, 정작 세령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었다.세령은 가방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입에 올린 '선택'이라는 단어가 낯설 만큼 정확했다. 오래전 그녀는 태겸이 보냈다고 믿었던 차가운 답장을 수십 번 읽었다.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조차 모른 채 결혼을 준비했던 자신과 달리, 태겸에게는 직접 찾아올 기회가 있었다.“7년 전, 네가 잘 지낸다는 말을 듣고 물러났어. 내 편지를 읽으면 네가 다시 흔들릴 거라고, 네 행복을 위해선 내가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태겸은 숨을 고른 뒤 세령을 바라봤다.“그런데 네가 행복한지, 나를 만나고 싶은지 한 번도 안 물었어. 네 마음을 지킨 게 아니라 내가 상처받을까 봐 확인하지 않은 거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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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용서는 아직

“고백했다고 용서받는 건 아니에요.”세령의 말에 유건이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이도는 책장 옆에 서서 손가락을 맞물렸고, 태겸은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았다. 응접실 한가운데 놓인 패물 상자에는 혜란이 결혼식 날 직접 채워주었던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날 세령은 목걸이 무게가 낯설어 몇 번이나 목덜미를 만졌다. 오늘은 그보다 훨씬 무거운 이야기들을 듣고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알아, 세령아.” 유건이 먼저 대답했다.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그 말을 듣는데도 세령은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유건이 숨긴 문자와 외도는 처음부터 그의 선택이었다. 이제 와 그가 모든 사람 앞에서 인정했다고 해서, 자신이 남편을 믿으며 보냈던 밤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건의 얼굴에서 변명할 기색이 사라진 것을 보니 그와 더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 미움이 끝난 게 아니라, 더 확인할 거짓말이 없어진 듯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세령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 이제 그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 여전히 억울했고 때로는 그리울 테지만, 내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누구의 거짓말부터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이도가 세령의 시선을 받자 몸을 바로 세웠다. 무슨 말이든 더할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가 새 번호로 보내온 문자 사진과 카페에서 나눴던 마지막 대화까지 떠올랐지만, 세령은 질문하지 않았다. 귀국 소식을 넘겼다는 것, 편지를 보고도 모른 척했다는 것, 그 일을 장난이라고 여겼다는 것. 이미 그의 입으로 들었고 기록으로도 보았다. 한때 자신이 그를 좋아했던 마음마저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 마음이 이도의 잘못을 씻어주는 건 아니니까.“저한테서 용서받으려고 이러는 거라면 그만하세요.”“아니에요.” 이도가 대답했다. “그런 대답 받을 자격 없다는 건 알아요.”막내답지 않게 농담이 없는 얼굴이었다. 세령은 문득 철없이 웃던 이도가 아주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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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너만 와

세령은 대문을 지난 지 몇 걸음 만에 멈췄다. 이번에도 문태겸이 뒤따라온다면, 자신은 그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발걸음을 붙잡은 건 따라오는 기척이 아니라,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손안에서 차 열쇠가 손바닥을 눌렀다. 저택의 담장을 따라 바람이 지나갔고, 진입로에 떨어진 마른 잎이 신발 앞코를 스쳤다. 세령은 방금 응접실에서 들은 고백들을 떠올렸다. 유건의 조작, 이도의 장난과 침묵, 태겸의 두 번의 외면. 이제 누구도 자신이 몰랐던 과거를 더 들춰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차 문을 열기 전에 그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진 걸까.세령은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는 자신이 또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속이 쓰렸다. 그런데 막상 몸을 돌리자 생각이 달라졌다. 기다려달라고 말한 적도 없이 상대가 제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는 것과, 만나고 싶어서 스스로 부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 차이를 오늘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넓은 진입로 너머 저택의 불빛이 보였다. 현관 유리 너머로 사람 그림자가 겹쳤지만 한 사람도 계단을 내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문득 예전의 자신이 이 길을 얼마나 빠르게 걸었는지 기억했다. 유건이 화를 낸 날에는 돌아오라며 붙잡힐까 봐, 태겸과 눈이 마주친 날에는 마음을 들킬까 봐. 오늘은 둘 다 아니었다. 누구를 기다리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시험하려는 것도 아니었다.세령은 열려 있는 대문 안쪽으로 다시 발을 들였다. 차를 두고 저택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남이 대신 정해준 거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가까이 가려는 것이었다.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대문 옆 경비실에서는 직원이 문을 열어주려다 세령이 손을 들어 괜찮다고 하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잠깐 길을 되돌아가는 이유를 경비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현관 안의 태겸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외투를 걸치지도 않은 채 유리문 너머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세령을 따라가지 않기로 한 까닭을 그녀는 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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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한 걸음만 더

“응.”태겸의 대답은 짧았지만 세령은 그가 발을 맞추기까지 기다렸다. 대문까지 함께 걷자고 해놓고 정작 그 길이 이렇게 짧았나 싶었다. 저택의 현관등은 등 뒤에서 차츰 멀어졌고, 자갈길을 지나 포장된 진입로로 접어들자 구두 굽이 일정한 소리를 냈다. 태겸은 그녀의 오른편을 걸었다. 팔을 뻗으면 손등이 닿을 거리였지만, 두 사람의 손은 각자의 옆에 있었다.“이렇게 얌전히 따라오니까 어색해요.”“대문까지만 오라며.”“평소엔 꼭 한마디씩 더 하셨잖아요.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고.”“할 말은 많아. 그런데 오늘 네가 들을 만큼만 하고 싶어.”세령은 고개를 돌렸다. 장난스럽게 받아치려던 말이 혀끝에서 멈췄다. 조금 전 응접실에서는 세 남자가 모두 자기 잘못을 입 밖에 냈다. 그때 세령은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태겸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용서를 서둘러 받아내려 하지 않았다. 이 짧은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려는 듯했다.대문 앞 경비실에서 직원이 일어서다가 두 사람을 알아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세령은 오래전부터 익숙했던 길을 둘러봤다. 결혼 후 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출입 기록이 남았고,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누군가 이유를 물었다. 이제 그녀는 외출 허락도 귀가 보고도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대문을 지나자 태겸이 걸음을 늦췄다. 약속한 거리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세령의 차는 조금 떨어진 주차 구역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열쇠를 쥔 손으로 차를 가리키지 않았다. 그대로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태겸은 먼저 뒤따르지 않았다. 세령이 두어 걸음 나아간 뒤에야 돌아보았다.“태겸 씨. 왜 안 와요?”“대문까지라고 했잖아.”“대문 지났다고 나 혼자 가라는 소리도 안 했는데.”그는 웃음을 참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어디까지 가면 돼?”“그건 걸으면서 생각할게요.”태겸은 말없이 옆으로 왔다. 세령은 그가 다시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앞을 봤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애매한 대답에 불안해했을 사람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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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이번엔 도망 금지

“응. 이번엔 네가 싫다고 할 때까지.”세령은 그 말을 듣고도 웃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겠다는 고백이 왜 또 누군가의 버팀과 포기에 기대야 할까. 그녀는 사랑한다면서 자신에게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세령은 맞은편 태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는 그녀가 기뻐할 말을 더 보태지 않고 기다렸다.“근데 그 대답, 조금 얄미워요.”“왜?”“내가 싫다고 할 때까지라니. 그럼 그전에는 뭐든 괜찮다는 뜻처럼 들리잖아요.”태겸이 컵받침을 만지던 손을 멈췄다. 밖에서는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지나갔고, 카페 직원은 안쪽에서 컵을 닦고 있었다. 마감이 가까웠지만 세령은 서둘러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감정이 앞선 채 시작해놓고 나중에 서로의 마음을 추측하며 버티고 싶지 않았다.“조건 있어요. 꽤 까다로울 거예요.”“말해. 마음에 안 드는 건 같이 이야기하면 되잖아.”세령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과거의 태겸이라면 듣기도 전에 무조건 지키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키기 어려워지면 자신만 조용히 물러났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찻잔의 따뜻한 옆면에 손을 대고 천천히 말을 골랐다.“첫째, 우리 만나는 데 가족 허락받지 마요. 어머니께 인사드릴 날짜도, 회장님께 보고할 일도 정하지 말고요. 제가 언제 누구를 만날지는 제가 결정해요.”태겸의 눈이 잠깐 탁자 아래로 내려갔다. 얼마 전 아버지 앞에서 세령을 다시 만나는 문제는 자신들이 정할 일이라고 말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가족 일은 내 몫으로 처리할게. 네가 원하지 않으면 끌어들이지 않아.”“둘째, 날 위해서라는 말로 대신 결정하지 마요. 내가 아플까 봐 연락 끊거나,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혼자 물러서지 말아요. 뭘 원하는지 물어봐요.”태겸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세령이 요구하는 건 그녀를 지켜달라는 부탁보다 어려웠다.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듣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견디라는 말이었다. 그는 그녀가 미처 받지 못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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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형수님 금지

이혼한 전남편이 문을 열어줬고, 그 남자의 형은 세령의 연인이 되어 곁에 서 있었다. 문가 저택 현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왔어?”유건은 세령과 태겸을 번갈아 보더니 문을 더 열어주었다. 몇 달 전 같았으면 태겸의 손이 세령의 가방끈에 닿기만 해도 소리를 질렀을 남자였다. 오늘은 현관에 놓인 실내화를 발끝으로 가지런히 밀어줄 뿐이었다. 세령은 자신이 그 변화에 감동할 의무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이 집으로 들어오는 발걸음이 전보다 가벼워졌다는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혜란의 생일을 앞두고 가족끼리 조촐하게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왔던 건 사흘 전이었다. 태겸은 초대를 전하면서도 세령이 원하지 않으면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세령은 작업실 달력을 확인하고 직접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그날 카페에서 ‘7년 늦은 1일’이라고 웃었던 뒤,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각자의 집에서 살면서 일하고, 시간이 맞으면 만나 밥을 먹었다. 태겸은 세령이 늦게 끝나는 날엔 먼저 자겠다고 말했고, 세령은 질투가 나면 웃으며 물어보라고 했다. 완벽한 연애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말을 추측해서 결론 내리지는 않았다.오늘도 태겸은 현관 앞에서 세령에게 물었다.“괜찮겠어? 불편하면 지금 돌아가도 돼.”“내가 오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태겸 씨.”“응?”“안에서 내 대답 대신 하지 마요. 오늘도.”태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자 세령이 외투 소매를 한번 잡았다가 놓았다. 그녀는 문가의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나고 싶은 남자와 함께 식사하는 일을 선택해 이 자리에 왔다.응접실을 지나 식당으로 들어가자 혜란은 작은 생일 꽃다발을 탁자 옆에 놓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세령의 옷차림부터 살피며 누가 볼지 걱정했을 사람이었다. 오늘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자리로 안내하지 않았다. 정혁 역시 세령을 보고 잠깐 말을 멈췄으나, 아들들의 선택을 다시 논하겠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세령은 미리 지정된 자리를 찾지 않고 자신이 앉고 싶은 의자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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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널 고른 건 나야

“내 이름.”그 짧은 대답에 식탁의 세 형제가 동시에 세령을 바라봤다. 한때는 저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의 마음을 멋대로 재단했던 남자들이었다. 이도가 잔을 내려놓자 그들 사이에 남아 있던 어색함도 조금씩 풀렸다.“세령 씨. 접시 좀 건네주시겠어요?”“그렇게 부르면 되잖아. 멀쩡한 이름 놔두고 왜 남의 호적부터 뒤져.”이도가 멋쩍게 웃었다. “습관 하나 고치는데 인생이 걸렸네요.”“습관은 고쳐. 인생은 네가 알아서 살고.”맞은편에서 유건이 짧게 웃었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세령은 그를 마주 보며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 웃었다고 지난 일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았다. 유건도 그 사실을 아는 듯 다시 그녀의 시선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이도는 건네받은 접시를 제 앞에 놓았고, 태겸은 세령이 물을 마시는 동안 말없이 자신의 식사를 이어갔다. 누구도 세령에게 그 집안의 새로운 호칭을 정해주지 않았다.혜란의 생일을 위한 작은 케이크가 나왔을 때 세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축하 인사를 했다. 혜란은 고맙다며 웃었지만 예전처럼 며느리 손을 잡아 끌지는 않았다. 정혁은 잠깐 태겸을 바라봤다가 촛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령은 그 눈길을 굳이 해석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살피던 시간은 지났다. 그래도 불쑥 옛날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한편이 시큰했다. 그 아픔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날에도 남을 수 있었고, 세령은 그런 자신을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식사가 끝나자 태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저희 먼저 가겠습니다.”정혁의 입술이 움직였으나 이번에는 잡아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건은 현관까지 배웅하겠다며 따라나섰다가 한 걸음 뒤에서 멈췄고, 이도는 세령의 코트가 걸린 쪽을 눈짓으로 알려줬다.“잘 가, 세령.”유건이 말했다.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여보라는 말도, 돌아오라는 부탁도 섞여 있지 않았다.“응. 너도 잘 지내.”이도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무슨 농담이라도 꺼낼 듯 입술이 움직였지만 세령을 보자 그만두었다.“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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