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Chapter 21 - Chapter 30

195 Chapters

제21화. 결혼 전부터

“네 형이 결혼 전부터 알았다고? 그럼 날 위로하러 온 그날도 우연이 아니었겠네.”세령이 조수석 문을 도로 닫자 이도가 차 키를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작업실 앞 도로에 정차한 차 안으로 늦여름 햇빛이 쏟아졌으나, 세령의 손끝은 차가웠다.“형수님, 난 ‘그런 것 같다’고 했지 확실하다고는 안 했어요.”“평소엔 입만 열면 농담이더니 왜 이럴 땐 말을 아껴?”“확인도 안 된 걸 사실처럼 떠들면 형수님만 또 다치니까.”“그럼 왜 꺼냈어?”이도는 선글라스를 벗어 운전대 위에 놓았다. 장난을 치려다가 말아버린 얼굴이었다.“둘째 형은 큰형이랑 관련된 일만 나오면 꼭 저렇게 변하거든요. 예전부터.”“어떻게?”“내가 뭘 봤다고 하면 사진부터 없애려고 들고, 형수님이 뭘 물으면 큰형 이름부터 꺼내잖아요.”세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유건은 호텔에서 들켰을 때보다 태겸의 지갑 사진 앞에서 더 거칠어졌다. 어젯밤에는 큰형이 세령을 뺏어갈까 봐 겁먹은 사람처럼 굴었다.“그래서 네 생각엔 뭐가 맞는데?”“내 생각보다 형한테 직접 들으세요. 대신 말 돌리면 그냥 보내주지 마시고.”“넌 참 편하다. 불씨 던져놓고 빠지면 끝이니까.”“맞아요. 이번엔 나도 욕먹어야 해요.”이도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곤 평소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돌아와 세령의 도면 통을 가리켰다.“근데 오늘은 일부터 하세요. 형수님이 밤새 그린 거, 남자 셋 때문에 망치면 너무 아깝잖아. 특히 제가 제일 아깝고.”“왜 네가 아까운데?”“형수님 멋있게 일하는 거 볼 기회가 줄어드니까.”세령은 피식 웃으려다 참았다. 이도가 알아챈 듯 손을 흔들었다.“웃어도 되는데. 제가 둘째 형한테 자랑은 안 할게요.”작업실에 들어간 세령은 도면을 펼쳤지만 선 하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에게 버림받았다고 믿던 날, 전시장 뒤 카페에서 차를 건네던 유건. ‘당신은 웃을 때 예뻐요’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웃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그가 기다려준 밤은 거짓이 아니길 바랐다. 아팠을 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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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처음부터의 의미

“처음부터? 문유건, 그 말 다시 해봐. 내가 네 형을 사랑했다는 걸 언제부터 알았다고?”세령이 물컵을 내려놓자 유건은 술기운까지 달아난 얼굴로 입술을 훔쳤다. 방금 전까지 고함치던 남편이 이번에는 억지로 웃었다.“아니, 자기야. 그게 아니라…… 형 사진을 본 뒤부터라는 뜻이야.”“그 사진은 나 만나기 전에 봤다며.”“봤지. 얼굴만. 형이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나중에 알았고.”“언제 나중에?”“날짜까지 어떻게 기억해. 7년 전 일이잖아.”세령은 식탁에 튄 물을 행주로 닦았다. 대화를 피할 때마다 유건은 다정한 얼굴을 꺼냈고, 설명이 막히면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태겸의 이름을 꺼내면 기억이 놀랍도록 선명해졌다.세령은 물기가 남은 식탁을 내려다봤다. 결혼기념일 아침마다 유건은 그 자리에 꽃을 늘어놓고, 세령이 먼저 웃으면 뻔뻔하게 보상을 요구했다.‘뽀뽀 한 번. 아니, 두 번. 결혼한 남자한테 인색하면 벌 받아.’“이상하다. 내 전시 철수 날짜는 기억해서 찾아왔으면서.”“찾아간 거 아니라고 했잖아!”“그래. 우연히 갔다는 거지. 그런데 지난번엔 형의 옛 애인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잖아. 이제는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그게 무슨 차이야?”“세령아, 제발 말꼬리 좀 잡지 마.”유건이 그녀의 손등을 감싸려 했다. 세령은 손을 빼고 의자를 밀었다. 결혼 초기만 해도 그 손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등을 토닥여주고, 아침에는 머리맡에 따뜻한 차를 놓아주던 손이었다. 그때의 행복이 진짜였기에 지금의 변명이 더 잔인했다.“말꼬리? 당신은 내 인생 첫 장을 찢어놓고 말꼬리라고 해?”“우린 사랑해서 결혼했어. 그건 사실이잖아.”“맞아. 나는 널 사랑했어. 그래서 더 묻는 거야.”그 말에 유건의 표정이 잠깐 풀렸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세령의 허리를 끌어안으려 했다.“자기야, 그럼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내가 매일 밥해주고, 네가 좋아하는 꽃도 사 올게. 당신 웃게 해주는 건 내가 제일 잘하잖아.”“꽃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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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뺏은 사람

“형, 또 뺏어가려고?”유건의 그 말에 세령은 잠갔던 안방 문을 다시 열었다.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쥔 남편은 거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용서를 구하던 얼굴은 사라지고, 누군가에게 빼앗긴 아이처럼 이를 악물고 있었다.“누굴 뺏어? 나?”세령은 차가운 맨발로 거실 바닥을 딛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남편은 꽃을 사 오겠다며 용서를 빌었다. 그런데 그녀가 안방에 들어가자마자 태겸에게 전화해 그녀를 빼앗아 가지 말라며 으르렁댔다. 사랑한다는 말 뒤에 이렇게 추한 속셈이 붙을 줄은 몰랐다.유건이 흠칫 돌아봤다.“자기야, 들어가 있어. 형이랑 할 말이야.”“내 얘기라면 나도 들어야지. 나 빼놓고 무슨 거래하는데?”수화기 너머에서 태겸의 목소리가 들렸다.“유건아. 내가 뺏은 적은 없어.”그 한마디에 유건이 헛웃음을 터뜨렸다.“그래, 형은 늘 그런 식이지. 가만히 있으면 다 형 거였잖아. 부모님 기대도, 칭찬도, 형이 싫다고 밀어낸 것까지 결국 다 형한테 돌아갔어!”세령은 발끝이 식어가는 줄도 몰랐다. 남편은 태겸을 향해 화를 냈지만 정작 태겸에게 무엇을 빼앗겼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방금 나온 ‘다’라는 말 속에 자신까지 들어 있다는 사실만은 선명했다.“문유건, 그 ‘다’에 나도 포함돼?”“아니, 세령아. 넌 다르지.”“맞아. 나는 다른 사람이야. 그런데 왜 형이 나를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내 손도, 내 마음도 네가 대신 쥐고 있어서?”“난 네 남편이니까!”“결혼반지를 끼워줬지 목줄을 채운 건 아니잖아. 그 차이도 몰라?”유건은 대답 대신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세령의 손을 잡으려 다가왔다.“여보, 미안. 술이 아직 안 깼나 봐. 내일 아침은 내가 차릴게. 당신 좋아하는 반숙도.”“그 반숙으로 네 입부터 막아. 나 지금 밥 얘기할 기분 아니야.”그가 손을 내리자 세령은 결혼 초기의 아침을 떠올렸다. 유건은 달걀 하나를 뒤집다가 터뜨려놓고도 ‘당신한테 반해서 노른자도 심장이 터졌나 봐’라며 웃었다. 세령은 그 농담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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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셋 다 버리라는 남자

“셋 다 버리라고? 문이도, 그 셋에 너도 들어간다는 건 알아?”세령의 말에 이도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아직 유건이 구겨 던진 재킷이 놓여 있었고, 태겸은 계단 아래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도가 먼저 씩 웃었다.“당연하죠. 형수님이 버릴 거면 저는 제일 먼저 버리세요. 원래 귀찮은 건 앞에서 치워야 하니까.”“입만 열면 농담이지. 네가 뭘 안다고 나한테 버리라 마라야?”“형수님 얼굴이요. 방금까지 저희 셋 눈치 보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셨잖아요.”세령은 되받아치려다 멈췄다. 맞는 말이라는 게 더 열받았다. 그동안 유건의 아내로, 문가의 며느리로 불리는 동안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참으라고 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집안 분위기를 망치지 말아야 하는 건 언제나 세령이었다.유건이 얼른 다가왔다.“세령아, 이도 말에 휘둘리지 마. 내가 잘못했어. 우리 둘이 집에 가서 얘기하자.”“집에 가면 뭐가 달라져? 당신은 또 꽃 사 오겠지. 미안하다면서 내 손에 입 맞추고, 내가 웃으면 다 끝난 줄 알겠지.”“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데! 무릎이라도 꿇어?”“내가 물어본 것부터 대답해. 날 처음 만나러 간 게 정말 우연이었는지.”유건의 입이 닫혔다. 태겸이 한 발 움직이자 유건은 곧장 형을 노려봤다.“형은 가만있어. 세령이 데려갈 생각 하지 말고.”“문유건!”세령이 소리치자 유건이 움찔했다.“나 여기 있거든? 제발 나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거래 좀 하지 마. 너희가 놓쳤다느니 빼앗았다느니 하는 동안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한 놈이라도 물어봤어?”태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세령의 떨리는 손을 보고 다가서려다가 눈이 마주치자 멈췄다. 그 작은 멈춤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7년 전에는 세령이 무거운 걸 들면 '나 좋은 데 좀 써먹어'라며 웃던 남자였다. 지금은 도와주겠다는 말조차 조심했다.“오늘은 아무도 따라오지 마요.”“어디 가려고?” 유건이 물었다.“당신 없는 곳.”“세령아, 밤이야. 위험해. 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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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열일곱 통

“문이도, 내가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열일곱 번이나 전화했어? 아니면 형수 감시가 네 취미야?”세령은 부재중 통화 목록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문태겸 1통, 문이도 17통. 정작 남편 유건에게서는 연락 한 번 없었다. 그 숫자들을 보고 있으니 문가 저택을 뛰쳐나오던 순간보다 더 숨이 막혔다.미래가 주방에서 달걀을 뒤집다 말고 고개를 내밀었다.“야, 누가 그렇게 전화했는데? 채권자야?”“시동생.”“와, 빚보다 지독하네. 남편은 바람피우고 동생은 출석 검사야?”세령은 휴대전화를 엎어놓았다. 어젯밤 미래의 소파에서 잠든 건 오랜만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면 속 숫자만으로 그 집 사람들이 다시 현관 안으로 밀려드는 기분이었다.“이 집 주소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당연하지. 네가 원하면 남편한테도 국 끓여서 던질 수 있어.”“그건 국이 아까워.”두 사람이 웃을 때 또 전화가 울렸다. 이도였다. 세령은 한참 화면을 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나 살아 있어. 이제 됐지?”“형수님, 어디예요?”“네가 알 필요 없어.”“어젯밤 차도 안 보이고 집에도 없길래…… 진짜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요.”평소라면 한마디쯤 능글맞은 농담을 붙였을 이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숨이 가빴다. 세령은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그래서 열일곱 통?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그냥 안 받고 싶은 거야.”“알아요. 근데 한 번만 얼굴 보면 안 돼요?”“싫어. 나 오늘 쉬어.”세령이 전화를 끊자 미래가 토스트를 접시에 올렸다.“참 대단한 집안이다. 네가 숨 쉬는 것도 셋이 돌아가며 확인하려고 하네.”“그러니까. 나는 잠깐 나로 살고 싶은데.”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미래가 현관 화면을 확인하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모자를 눌러쓴 이도가 봉투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세령은 문을 열자마자 물었다.“너 여긴 어떻게 알았어?”“전에 형수님 작업실에 짐 가져다드릴 때, 미래 씨 집으로 보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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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큰형의 사과

“그럼 너부터 나가. 나 울린 놈들 중에 너도 있으니까.”이도는 현관에서 잠시 굳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저도 빠져야죠.”늘 마지막 농담을 남기던 남자가 이번에는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세령은 발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문을 닫았다.“세령아, 이번엔 큰형이야. 너 울린 남자들이 교대로 오는 거냐?”미래가 현관 화면을 가리켰다. 조금 전 이도가 떠난 자리에 검은 코트 차림의 태겸이 서 있었다. 그는 초인종도 누르지 않은 채 휴대전화를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어떻게 여기까지 왔대?”“내가 물어보니 네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더라. 나와달라고 한 적은 없어.”미래가 화면을 확대했다.“야, 얼굴은 정말 죄가 없다. 그런데 저 집 남자들은 잘생긴 얼굴로 사람 속 썩이는 학원이라도 다녔냐?”세령은 웃지 못했다. 태겸은 7년 전에도 저렇게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전시장이 문을 닫는 날이면 출입문 밖에서 손을 흔들었고, 세령이 늦게 나와도 재촉하지 않았다.‘왜 또 기다려요?’‘너 나오는 순간이 제일 좋거든. 조금 늦으면 더 오래 설렐 수 있잖아.’‘맨날 그렇게 입만 잘 놀리면 뭐 해요?’‘너한테만 그러잖아. 다른 사람한테 이러면 네가 질투할까 봐.’그때 세령은 웃으며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겨 입을 맞췄다. 그런 남자가 정작 가장 중요한 약속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만 떠올리면 그리웠던 마음이 다시 분노로 뒤집혔다.휴대전화가 울렸다. 문태겸.세령은 받지 않았다. 미래가 슬쩍 물었다.“내가 나가서 보내?”“아니. 그냥 내버려 둬. 기다릴지 돌아갈지는 저 사람이 결정하겠지.”“이번엔 네가 문 열지 말지 결정하면 되고.”미래는 더 묻지 않고 담요를 세령 무릎에 얹어줬다. 얼마 뒤 둘은 식탁에 앉아 식은 토스트를 나눠 먹었다. 미래는 일부러 직장 이야기를 했다. 새로 들어온 후배가 전시 작품을 거꾸로 배치했다는 얘기에 세령이 웃을 때도 태겸은 화면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왜 저렇게까지 하지?”“모르지. 그런데 중요한 건 넌 안 나가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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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약혼 전날

“문태겸, 내 약혼 발표 전날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날짜까지 적어놓은 거야?”세령은 편지 뒷면의 날짜를 손톱으로 짚었다. 7년 전, 유건과 약혼을 발표하기 바로 전날. 그 아래에는 아무 설명도 없었다. 어젯밤 미래의 집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 돌아간 태겸이 왜 하필 그 날짜를 적었는지 알 수 없었다.세령은 한참 전화를 걸지 못했다. 그때의 자신은 약혼식 꽃을 고르며 어쩐지 자꾸 휴대전화를 들여다봤었다. 이제는 오지 않을 사람인 줄 알면서도.유건은 그날 세령의 손가락에 반지를 대보며 웃었다.‘우리 여왕님, 손까지 예쁘면 반지는 어쩌라고.’세령이 놀리지 말라고 그의 어깨를 때리자 유건은 손등에 입을 맞췄다.‘내가 매일 웃겨줄게. 울게 하는 놈들은 내가 다 혼내줄게.’그 약속을 믿고 반지를 골랐다. 바로 전날 태겸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자신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야, 왜 그래? 그 편지에 청혼서라도 들어 있어?”미래가 머그잔을 내려놓았다.“이 날짜, 내 약혼 발표 전날이야.”“그런 날짜를 왜 적어?”“나도 그걸 물어보려고.”세령은 태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째 신호가 울리기 전에 그가 받았다.“세령아.”“어제 편지 뒷면, 무슨 뜻이에요?”잠깐 정적이 흘렀다.“그날 돌아가려고 했어.”“어디로요?”“한국. 너 있는 곳으로.”세령은 창틀을 붙잡았다.“그럼 그때 국내에 있었어요? 아니면 비행기표만 끊어놓고 못 온 거예요?”“들어왔어. 그런데 집안에 일이 생겨서 다시 출국해야 했어.”“무슨 일인데요?”태겸이 대답하지 않았다. 세령은 전화를 귀에 더 바짝 붙였다.“설마 또 말 못 하는 사정이에요? 7년 전에는 연락이 끊겨서, 지금은 집안일이라서?”“변명으로 들릴 거 알아.”“그럼 변명 말고 사실을 말해요. 그날 왜 나한테 오지 않았는지.”“네 약혼 소식을 들었어. 내가 나타나면 네가 더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누가 그렇게 생각하래! 내가 당신 불행하라고 약혼한 줄 알아?”세령의 고함에 미래가 주방 쪽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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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공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문유건, 형이 공항까지 왔는데 네가 데리러 갔다고? 그럼 날 못 만나게 한 것도 너야?”세령의 질문에 유건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받침과 부딪힌 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계단 아래의 이도는 팔짱을 낀 채 형을 바라봤고, 태겸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세령아, 그런 뜻 아니야. 그날 형을 공항에서 본 건 맞아.”“봤어? 데리러 갔다며. 마중 나온 사람이 우연히 봤다고?”“어머니가 형 귀국한다고 하셔서 간 거야. 짐도 있었고, 집까지 데려다주려고.”이도가 작게 웃었다.“형, 그날 큰형 짐은 기내용 가방 하나였어. 운전기사가 없어도 될 만큼.”“넌 빠져. 그때 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그럼 아는 사람이 설명해. 형수님 지금 듣고 있잖아.”유건은 세령 앞으로 다가왔다. 며칠 전까지는 미안하다며 손등에 입을 맞추던 남자가, 오늘은 손을 잡기 전에 태겸의 눈치부터 살폈다.“여보. 공항에서 형 만난 거 숨긴 건 미안해. 하지만 당신 얘기는 안 했어. 괜히 옛날 일 꺼낼 필요 없었으니까.”“내 얘기 안 했다고?”“응. 형이랑 집안 사정만 얘기했어.”세령은 태겸을 돌아봤다. 그가 대답하기 전에 일부러 한 박자 기다렸다. 남편의 말과 형의 말을 각자 듣고 싶었다.“태겸 씨. 그날 유건이가 정말 내 얘기 안 했어요?”“했어.”태겸의 대답은 짧았다. 유건의 입가가 굳었다.“형, 기억 잘못하는 거 아냐?”“네가 말했잖아. 세령이 곧 결혼한다고.”방 안이 조용해졌다. 세령은 의자를 붙잡았다. 약혼 발표 하루 전이었다.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남자가 기다려준다고 믿었고, 그 남자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같은 날 그 남자는 첫사랑을 공항에서 만나 결혼 소식을 먼저 전했다.“내가 곧 결혼한다고?”유건이 빠르게 끼어들었다.“그때 형도 다 알고 있었어. 이미 우리 약혼 얘기가 집안에 돌았으니까.”“방금은 내 얘기 한 적 없다며.”“말이 좀 꼬였어. 취지가 그렇다는 거야!”“취지? 거짓말에도 취지가 있어?”이도가 소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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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대신 전해진 말

“문유건, 네가 내 입까지 빌려서 형한테 이별 통보했어? 언제부터 내 목소리가 네 거였는데?”세령의 고함에 식탁 끝의 찻잔이 흔들렸다. 태겸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유건만 얼른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잠깐만. 형이 잘못 기억하는 거야. 7년 전 일인데 말을 섞어 들었겠지.”“방금은 내 얘기 한 적 없다며.”“그러니까! 약혼 소식은 전했어도 그런 식으로 말한 기억은 없다고!”태겸이 공항까지 왔다는 것도 몰랐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의 마음이 정반대로 전달됐다고 한다.“난 당신한테 그 사람 연락 받기 싫다고 한 적 없어. 도리어 왜 연락이 안 되냐고 몇 번을 물었잖아.”“그때 넌 형 얘기만 나오면 울었어. 이제 잊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잊고 싶은 거랑 연락하지 말라는 게 같아?”유건은 답하지 못했다. 세령이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서자 그제야 다정한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자기야, 속상한 거 알아. 내가 말 옮기다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우리 결혼까지 의심하진 말자.”“그 입으로 자기라고 부르지 마.”“세령아.”“당신이 그 사람한테 내 마음을 대신 전해놓고, 나한텐 그 사람이 떠났다고 했네.”태겸에게 보낸 메시지가 읽히지 않던 밤, 유건은 뜨거운 차를 사 들고 찾아왔다. 울다가 지친 그녀의 손을 자기 두 손으로 감싸며 이렇게 웃었다.‘그 사람이 안 오면 내가 오면 되지. 난 네가 부르면 무조건 올 거야.’그때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고백이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대 울다 지쳐 잠들었고, 깨어나서는 미안하다며 웃었다. 유건은 그런 세령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평생 기다려도 괜찮다고 했다. 지금은 그 문장 속 '그 사람'까지 계산된 말처럼 들렸다.“그날 나 울고 있을 때 당신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기다리는 사람 바보 만드는 놈은 사랑할 자격 없다고 했어.”유건의 입술이 굳었다.“내가 널 위로한 게 잘못이야?”“위로가 아니라 사실을 숨긴 게 문제야. 나한테 선택할 기회를 줬어야지.”유건이 태겸을 돌아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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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남편은 알고 접근했다

“네. 둘째 형은 형수님한테 첫눈에 반한 게 아니에요. 큰형이 사랑한 여자라서 찾아간 거예요.”이도의 대답이 끝나자 문가 저택 식당이 얼어붙었다. 유건은 의자를 걷어찰 듯 일어났고, 태겸은 테이블 끝에 놓인 손을 천천히 거뒀다. 세령만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물었던 질문에 대답이 돌아왔는데, 정작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문이도. 네가 지금 무슨 짓 하는지 알아?”“알아, 둘째 형. 형이 7년 동안 안 한 얘기 대신 하는 중.”“증거는? 네 말 증명할 수 있어?”“내가 들었잖아.”이도는 더는 웃지 않았다. 유건이 식탁을 돌아 다가오자 그도 똑바로 일어섰다.“큰형 사진 보고 형수님 얼굴 알았고, 전시장 철수하는 날짜도 나한테 물었어. 그날 갈 거라고 직접 말했잖아.”“웃기지 마! 나도 전시 보러 간 거야!”“전시 끝난 다음에? 사람들 작품 포장하는 시간 골라서?”유건이 입을 닫았다. 세령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자신이 혼자 울던 카페의 창가 자리, 식은 차를 대신 치워주던 손, '웃으면 더 예쁜데' 하고 능글맞게 미소 짓던 얼굴이 순서대로 떠올랐다.그날 세령은 낯선 남자에게 이름을 알려주기도 전에 오래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유건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휴지를 건넸다. 사랑이 아니어도 위로만은 진심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누구 때문에 우는지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이도야. 네가 직접 들은 말만 해. 추측 섞지 말고.”세령의 부탁에 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둘째 형이 형 사진 속 여자 누구냐고 물었어요. 큰형이 만나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이름도 물었고요. 나중에는 전시 일정까지. 제가 이상하다고 하니까, 직접 만나보면 안 되냐고 했어요.”“그날 내가 왜 그 사람 만나러 갔는지, 무슨 말까지 했는지는 나도 몰라요.”이도는 세령을 바라보며 덧붙였다.“그래서 형수님한테 없는 증거 있다고는 안 할 거예요. 근데 형이 미리 알고 찾아갈 생각이었다는 말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순 없잖아요.”“그게 일부러 접근했다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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