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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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사랑의 시작이 경쟁이었다

“그래, 형이 사랑하던 여자라서 일부러 찾아갔어. 그런데 씨발, 내가 널 진짜 사랑한 것도 죄야?”유건의 입에서 마침내 대답이 나왔다. 세령은 식탁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조금 전까지 '우연이었다'고 우기던 남편이 이제는 자신을 찾아간 이유를 인정하고 있었다.“다시 말해봐. 내가 잘못 들었나 보니까.”“형 사진을 봤어. 네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했지. 그런데 카페에서 널 만나고 나서부터는 달라졌어.”“뭐가 달라졌는데?”“진짜 좋아졌다고. 네가 웃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밤마다 전화 기다렸어. 그건 거짓말 아니야.”세령은 웃었다. 웃음이 나지 않는데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7년 전 전시장 뒤 카페에서 유건이 건넸던 따뜻한 차가 떠올랐다. 그날 그녀는 태겸이 보냈다고 믿었던 이별 문자 때문에 울고 있었다.“그럼 내 얼굴 보러 갔다가 마음에 들면 연애하고, 아니면 구경만 하고 돌아오려고 했어?”“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당신이 한 짓을 예쁘게 포장해줄까? 형의 옛 여자 관찰하기? 아니면 형이 놓친 여자 시식해보기?”“한세령!”유건의 고함에 이도가 헛웃음을 삼켰다. 태겸은 말없이 서 있었지만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졌다.“소리 지르지 마. 지금 기분 나쁜 건 당신이 아니라 나야.”그가 화를 낼 자격이라도 있다는 듯 내민 턱이 낯설었다. 언제나 세령이 눈물 흘리면 먼저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던 남자였다. 지금은 그때의 다정함으로 자기 잘못까지 용서받으려 하고 있었다. 세령은 유건이 놓친 것이 사랑 하나가 아니라, 자신에게 진실을 들을 권리였다는 걸 깨달았다.“나도 속상해. 당신이 우리 4년을 전부 가짜 취급하니까.”“누가 가짜랬어? 진짜라서 더 끔찍하다고!”세령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결혼 첫해, 아파서 누워 있는 자신에게 유건이 서툰 죽을 끓여준 일이 떠올랐다. 그릇을 내밀며 '맛없어도 남편 사랑은 듬뿍 넣었다'고 뻔뻔하게 웃던 남자였다. 그녀는 죽을 다 먹고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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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대답하지 못한 남편

“아니라고 해봐. 형이 날 사랑하지 않았어도 찾아왔을 거라고, 그 잘난 입으로 말해보라고!”세령의 외침에 유건이 고개를 들었다. 태겸이 던진 질문은 아직 식당 한가운데 매달려 있었다.‘내가 세령을 안 좋아했으면, 너도 세령을 만났을까?’유건은 대답 대신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줄줄 외우던 남자가, 고작 한마디를 뱉지 못했다.“왜들 이래? 내가 처음에 무슨 생각을 했든, 결혼한 건 우리 둘이잖아.”“그럼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세령아.”“내 이름으로 시간 벌지 마.”태겸이 한 걸음 다가섰다.“유건아. 묻는 말에 대답해.”“형은 참 좋겠다. 한마디 던지고 구경하면 되니까. 형은 가만있어도 세령이가 형만 보잖아!”유건은 식탁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찻잔이 흔들리고, 맞은편 이도가 고개를 들었다.“둘째 형. 또 그 소리야? 형수님이 형한테 물은 건 질투심이 아니라 사실이잖아.”“너는 입 닥쳐. 네가 뭐가 그렇게 떳떳한데!”“안 떳떳해. 그래서 입 닫고 있으면 또 누가 형수님한테 거짓말할까 봐 그러지.”세령은 이도에게 손짓했다.“너도 이제 그만해. 대신 화내줄 사람 필요 없어.”이도가 입술을 다문 사이 유건은 세령에게 다가왔다.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자기야. 우리 첫 신혼집 기억나? 당신이 커튼 고를 때 내가 온 동네를 돌았잖아. 아프면 밤새 죽 끓이고, 잠 안 오면 새벽까지 통화해줬어. 그것도 전부 계산해서 했겠어?”그 장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유건은 커튼 길이를 잘못 재 세령에게 혼났고, 사과한다며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에서 춤까지 췄다.‘우리 여왕님 웃었으니까 벌은 입맞춤으로 받겠습니다.’그때 세령은 정말 행복했다. 웃던 자신이 바보였다고 생각하기 싫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그때 사랑했을 수도 있겠지.”유건이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그래, 내가 그 말 하는 거야.”“그런데 시작이 장난이었으면 적어도 나한테 고백했어야 해. 형을 이겨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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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떨어져 있는 남자

“씨발, 내가 가라고 했는데 왜 또 버림받은 기분이지?”태겸은 약속대로 돌아섰다. 세령은 그가 뒤돌아볼 줄 알았다. 한 번쯤 붙잡아도 되느냐고 묻거나, 예전처럼 능청스럽게 웃으며 제 마음을 흔들 줄 알았다.그러나 그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참 잘도 듣네. 7년 전엔 그렇게 찾아오라 해도 안 오더니.”닫힌 현관문을 향해 중얼거린 말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세령은 괜히 눈가가 뜨거워져 가방끈을 고쳐 쥐었다.다음 날부터 태겸은 정말 사라졌다. 세령이 작업 자료를 찾으러 문가 저택에 들렀을 때도, 태겸의 차는 없었다. 집사가 전한 말은 짧았다.“장남 도련님께서 필요한 물건은 미리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마주치면 불편하실까 봐요.”세령은 상자 뚜껑을 열었다. 구겨질까 봐 도면마다 얇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태겸은 여전히 그녀가 싫어하는 접힌 모서리까지 기억하는 모양이었다.“참, 사람 열받게 다정하네.”그러나 연락은 없었다. ‘밥은 먹었어?’라는 짧은 문자도 오지 않았다. 세령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화면을 켰다가, 스스로가 우스워 휴대전화를 뒤집었다.그날 작업실에서는 전시 배치도에 치수를 잘못 적었다. 세령은 지우개로 숫자를 문지르다가 한숨을 쉬었다. 남편과 첫사랑 때문에 10년 가까이 쌓아온 자기 일까지 망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무너지더라도 한세령이라는 이름까지 무너지게 둘 수는 없었다.그동안 유건의 연락은 정반대였다.[자기야, 오늘도 사랑해.][당신 좋아하는 꽃 사왔어.][형이랑은 이제 연락 안 하는 거지?]마지막 문장을 본 세령이 어이없어 웃었다. 꽃보다 먼저 확인하고 싶은 건 형의 행방인가.저녁 무렵 작업실 앞에 유건이 나타났다. 그가 손에 든 종이봉투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났다.“우리 여왕님, 끼니 거르면 안 되지. 예전에 이거 먹으면 기분 풀린다고 했잖아.”“그땐 당신이 내 기분 망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세령아, 형은 이제 연락 안 하지? 나도 들었어. 당분간 네 앞에 안 나타난다며.”그의 얼굴에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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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7년 전의 캡처

“문이도, 그 문자 한 장으로 내가 누구한테 버림받았는지 뒤집힐 수도 있다는 거야?”세령이 젓가락을 내려놓자 이도가 웃음을 거뒀다. 식당에는 점심 손님들이 떠들고 있었으나 두 사람 사이만 이상하게 조용했다.“뒤집힌다고 장담은 못 해요. 다만 캡처가 있으면 발신 번호부터 볼 수 있잖아요.”“번호를 보면 뭐가 달라져?”“형수님은 큰형한테 받았다고 했죠. 큰형도 보낸 적 없다고 했고요. 그럼 누가 보낸 건지는 몰라도, 어느 번호에서 왔는지는 확인해야죠.”세령은 물잔을 쥐었다. 그날의 문장이 또렷하게 떠올랐다.‘더는 기다리지 마. 우린 여기까지야.’전화는 받지 않았고, 답장도 돌아오지 않았다. 세령은 그 글자를 수십 번 읽다 끝내 휴대전화를 바꿨다. 지웠다고 믿었던 건 문자만이 아니었다.그날 이후 유건은 울음을 참는 세령에게 매일 전화를 걸었다. ‘나한테는 억지로 웃지 마. 울고 싶으면 울어.’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새벽마다 통화했다. 통화가 끝나면 유건은 늘 ‘내일도 전화해도 되지?’ 하고 물었다. 세령은 그 조심스러움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날의 기록을 찾아야 했다.“옛날 휴대전화엔 없어.”“사진 백업은요? 형수님, 예전에 작업 기록까지 클라우드에 올리셨잖아요.”“내가 그걸 너한테 말한 적 있어?”“전시 사진 찾으시면서 얘기하셨죠. 기억력 좋다는 소리는 오늘도 안 해주시네.”이도가 능청스럽게 웃었으나 세령은 웃지 못했다. 누군가의 비밀을 쥐고 농담하는 버릇이 싫었다.“찾으면 내가 직접 확인할 거야. 넌 거기까지만.”“네. 형수님 일인데, 내가 대신 결론 내리면 또 욕먹어야죠.”작업실로 돌아온 세령은 책상 위에 도면을 펼쳤다가 바로 접었다. 손가락이 자꾸 화면으로 향했다. 오래된 계정의 비밀번호를 두 번 틀리고, 복구 메일을 찾아 겨우 접속했다.수천 장의 사진이 연도별로 쏟아졌다. 현장에서 페인트 묻은 손으로 찍은 벽면, 해외 전시장 천장, 미래와 장난치며 찍은 얼굴. 그리고 태겸의 뒷모습.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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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남편이 쥐고 있던 전화

“내가 당신한테 버림받았다고 믿던 날, 당신 휴대전화가 내 남편 손에 있었다고요?”세령은 통화 중인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작업실 책상에는 7년 전 캡처가 떠 있었다.‘더는 기다리지 마. 우린 여기까지야.’그 두 줄을 믿고 다른 남자의 손을 잡았다.태겸이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해외에 있는 동안 국내 휴대전화를 유건이한테 맡겼어. 그 번호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그럼 그 문자를 유건이가 보냈다는 거예요?”“그건 몰라. 내가 맡긴 건 사실이지만, 그날 누가 썼는지는 확인해야 해.”세령은 속이 뒤집혔다.“7년 동안 내가 당신을 원망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른다는 말만 들으니까 미치겠어요.”“미안해. 확인할 수 있는 건 같이 확인하자.”“아뇨. 약속대로 떨어져 있어요. 이건 내가 물을게요.”태겸은 붙잡지 않았다. 그 조용한 승낙마저 가슴을 건드려 세령은 전화를 끊고 한참 캡처를 바라봤다.세령은 종이에 사실만 적었다. 태겸의 국내 번호, 유건이 맡았다는 휴대전화, 자신에게 도착한 이별 문자. 세 줄을 나란히 쓰고도 마지막에 누가 문자를 보냈는지는 적을 수 없었다. 화가 난다고 물음표 자리에 남편 이름을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그녀는 옛 통신사 고객센터에 문의했다. 가입자 본인 확인을 거쳐 문의했지만, 7년 전 문자 수신 내역이나 내용은 지금 제공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해지한 회선의 오래된 기록도 마찬가지였다.“다른 방법은 정말 없나요?”상담원은 안내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거듭 설명했다. 세령은 통화를 끝내고 화면을 껐다. 사라진 것은 기록인데, 이상하게 자기 기억까지 의심받는 기분이었다.미래에게 전화를 걸자 친구는 당장 유건을 찾아가 멱살을 잡겠다며 씩씩거렸다. 하지만 세령이 “혹시 내가 틀렸으면?”이라고 묻자 미래도 잠시 잠잠해졌다.“틀렸으면 확인하면 되지. 네가 질문했다고 죄인이 되는 건 아니잖아.”세령은 질문하는 것조차 두려웠다.그날 저녁 세령은 유건을 작업실 근처 카페로 불렀다. 그가 좋아하는 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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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막내의 조건

“증거가 있을 수도 있다고? 문이도, 이번에도 사람 미치게 해놓고 농담이었다고 하면 너부터 가만 안 둬.”세령이 작업실 문 앞에서 이도의 멱살을 붙잡았다. 조금 전 유건은 7년 전 기록이 없으면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돌아온 참이었다.이도는 잡힌 옷깃을 내려다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형수님 손에 잡혀 죽는 거면 제법 낭만적인데.”“한 번만 더 웃어.”“알았어요. 이번엔 진짜 중요한 얘기예요.”이도가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장난기는 거뒀지만, 세령의 얼굴을 확인하는 시선만큼은 끈질겼다.“예전에 우리 집에서 같이 쓰던 태블릿이 있었어요. 사진도 옮기고, 메시지도 동기화해놓던 거.”“그래서?”“큰형이 해외 나갔을 때 국내 휴대전화랑 연결한 적이 있어요. 그 설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그때 메시지 흔적도 있을 수 있죠.”세령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러나 당장 믿지는 않았다.“그걸 직접 봤어?”“아니요.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초기화됐으면 아무것도 안 나올 수도 있고.”“그 태블릿이 켜지기라도 해? 7년이면 배터리부터 죽었을 텐데.”“충전해봐야죠. 어쩌면 아무것도 못 건질 수 있어요. 그래도 기록을 찾을 수 있는 물건 자체가 남았을지 모르잖아요.”세령은 이도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자신이 형제들 사이에서 상처 입는 걸 지켜본 남자였다. 그가 던진 가능성 하나에 매달렸다가 또 넘어지고 싶지는 않았다.“그럼 왜 증거라고 했어?”“형수님한테 또 헛된 희망 주려고 온 건 아니에요. 찾을 방법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어디 있는데?”“별장 창고요. 오래된 전자기기 상자에 들어간 것까진 기억해요. 정확히 어느 선반인지는 몰라요.”세령은 이도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아는 게 더 있는데 일부러 뜸을 들이는 건지, 정말 여기까지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네 조건은 뭔데? 날 데려가고 싶으면 대신 밥이라도 사달라고?”“그렇게 싼 남자로 보세요?”“네가 어제부터 하는 짓 보면 비싸 보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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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한 별장, 네 사람

“아내 하나 태우겠다고 형제끼리 발정 난 수탉처럼 굴 거면, 내가 걸어갈까?”세령의 말에 이도가 웃음을 터뜨렸고, 유건은 그대로 얼굴이 굳었다. 태겸은 자신이 열었던 차 문에서 손을 뗐다.“형수님, 걸어가시면 제가 옆에서 물이나 따라드릴게요. 큰형은 부채질 담당하고.”“넌 입부터 닫아. 두 사람 다 문 닫고.”세령은 세워둔 자기 차로 향했다. 유건이 황급히 가방을 받아 들려 하자 그녀가 손잡이를 당겨 되찾았다.“나 별장에 가는 거지, 당신한테 돌아가는 거 아니야.”“알아, 여보. 그래도 같은 곳에 가잖아.”“같은 하늘 아래 산다고 다 부부처럼 사는 건 아니지.”뒤에서 이도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태겸은 아무 말 없이 한발 물러났다. 자신이 멀리 있으라는 말을 지키는 걸 보며 세령은 안도하면서도 괜히 심술이 났다.별장에 도착하자 현관 앞까지 나온 윤혜란이 세령의 팔을 끌어안았다. 손길은 반가웠지만, 귀에 닿은 말은 딴판이었다.“세령아, 요즘 유건이하고 시끄럽다며? 집안일은 집안에서 끝내야지. 오늘은 다 같이 웃는 얼굴 좀 보자.”“어머님, 웃을 일이 있으면 웃겠습니다.”“우리 며느리, 말도 참 예쁘게 하네.”혜란의 미소가 잠깐 굳었다. 거실에 있던 문정혁은 신문을 접으며 가족들이 들어오는 걸 지켜봤다.“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는데 밥상머리에서 언성 높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그건 잘못한 사람이 조심하면 되겠네요, 아버님.”세령의 대답에 유건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혜란은 못 들은 척 그녀의 옷깃을 매만졌다.“주말만큼은 사이좋은 부부로 지내렴. 밖에서 보는 사람도 있는데.”“누가 보면 사이좋은 줄 알아야 한다는 거군요.”“말꼬리 잡지 마. 식구들 마음 편하자는 얘기잖니.”세령은 혜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자기가 편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혜란은 곧장 가족사진을 찍자며 세령을 유건 옆에 세웠다. 유건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세령이 그 손을 내려놓자 혜란의 웃는 얼굴이 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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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기억하고 있는 것

“그 차 한 잔이면 내가 7년 전으로 돌아가서, 당신을 다시 사랑할 줄 알았어요?”세령이 쏘아붙이자 태겸의 손이 멈췄다. 서쪽 객실 문 앞, 그의 손에는 사과 향이 올라오는 홍차가 들려 있었다. 유건인 줄 알고 문을 열었던 세령은 뜨거운 잔보다 더 뜨거운 기억을 마주한 기분이었다.“그럴 생각으로 가져온 건 아니야.”“아니면 형수님 챙기는 자상한 아주버님 역할? 아까 식탁에서 내가 남편이랑 방 안 쓰겠다고 했더니, 이번엔 큰형이 차 배달까지 하네. 문가 남자들은 돌아가면서 나 돌보는 척하는 게 취미예요?”태겸은 비아냥을 피하지 않았다. 아래층에선 식기를 정리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복도 벽등 아래 선 그의 그림자가 문턱에 걸렸다. 세령은 그 그림자조차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게 싫으면서, 이상하게 먼저 문을 닫을 수 없었다.“그럼 왜요? 차 한 잔 내밀면 내가 얌전히 마시고 잘 줄 알았어요?”“저녁에도 거의 안 먹었잖아. 속 비었을 때 이 차 마시면 좀 편하다고 했던 게 생각났어.”태겸은 잔을 문가 작은 탁자에 올려두었다. 방 안으로 발을 들일 생각도 없는지 곧바로 몸을 돌렸다.“마시기 싫으면 버려. 쉬어, 세령아.”“잠깐만요.”세령이 그의 옷소매를 잡았다. 손끝에 닿은 옷감이 낯익어 당황했지만 놓지는 않았다.“내가 이 차를 어떻게 마셨는지도 기억해요?”태겸은 소매를 내려다보지 않고 그녀의 눈을 봤다.“계피는 빼고. 너무 뜨거우면 안 마시면서 식을 때까지 손으로 컵만 감싸고 있었지. 졸릴 땐 한 모금 마시고 꼭 인상부터 썼고.”“그런 것까지 왜 기억해요?”“네가 차를 마실 때마다 내가 옆에 있었으니까.”“그럼 내가 설탕 세 숟갈 넣은 차를 한 번 마시고 화낸 것도?”“기억하지. 네가 사람 먹는 차에 시럽 장사를 차렸냐고 혼냈잖아.”“당신이 그때 뭐라고 했는지는?”“네가 그렇게 달게 웃는데, 나까지 정신을 못 차렸다고.”“참 말은 잘했어요. 아주 뻔뻔했지.”“그땐 네가 웃으면 뭘 해도 좋았으니까.”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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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아직도

“좋아하면 뭐 해. 그 남자는 내가 입술을 내밀어도 먼저 도망칠 텐데.”세령은 이도가 보낸 문자를 읽고 휴대전화를 엎었다.[큰형 아직도 형수님 좋아해요.]답장을 썼다가 지웠다. 장난으로 사람 속을 긁어놓는 막내에게 오늘은 아무 말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문을 닫아도 태겸이 놓고 간 사과 향이 방 안을 떠나지 않았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찻잔은 이미 식었고,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목이 말랐다.세령은 이불을 걷어찼다. 유건의 외도 때문에 이혼을 요구한 여자가, 시아주버니가 아직 자기를 좋아한다는 말에 잠을 설치고 있었다. 이 꼴을 유건이 본다면 또 형이 아내를 빼앗으려 한다고 날뛸 게 뻔했다.‘나는 누구한테 빼앗기는 사람이 아닌데.’그렇게 되뇌어도 기억은 멋대로 7년 전을 향했다. 서랍 속에는 태겸의 번호로 도착한 이별 문자 캡처가 있었다. 유건이 그 휴대전화를 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잠들기 직전에 그 두 줄이 더 또렷이 떠올랐다. 누구의 손가락이 그 문장을 썼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인생의 방향을 바꿔버린 셈이었다.태겸이 밤샘 작업을 끝낸 세령의 손에 찻잔을 쥐여주며 웃던 날이었다.‘이 정도면 나랑 결혼해도 되겠는데?’‘차 끓이는 실력으로 청혼하는 남자는 처음 봐요.’‘그럼 내일은 반지도 끓여올까?’그녀는 웃다가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태겸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무뚝뚝하다가도 그녀만 보면 우스운 소리를 찾아냈다. 손이 닿을 때마다 먼저 허락을 구하던 태도까지 사랑스러웠다. 그때는 내일이 당연히 올 줄 알았다.새벽 2시가 넘자 세령은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별장 복도에는 정원 쪽에서 스며든 달빛만 길게 놓여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각이라 부엌의 작은 조명 하나도 유난히 환했다.그 안에 태겸이 있었다.소매를 걷어 올린 채 물을 따르던 그는 세령을 보고 멈췄다. 먼저 온 사람이 오히려 미안한 얼굴이었다.“깼어?”“아뇨. 잠들지도 못했어요.”“내가 불편하게 했구나.”“세상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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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절대 안 건드린다는 말

“이혼 도장만 찍으면 내 아내를 안아도 된다는 거야, 형?”부엌 문이 벌컥 열렸다. 유건은 맨발에 잠옷 차림이었다. 방금까지 문밖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보다, 태겸의 마지막 말만 기다렸다는 듯 일그러진 얼굴이 세령을 소름 끼치게 했다.“문유건.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그게 중요해? 새벽 2시에 내 형이랑 붙어 서서 무슨 짓을 하려던 건데!”유건은 세령을 지나 태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이 올라가는 순간 세령이 팔목을 움켜잡았다.“때려봐. 한 번만 휘둘러봐! 네 바람 때문에 시작된 일이 이제 형 때리면 끝나는 건지 보자!”“놔, 세령아! 저 새끼가 내 앞에서 당신 이혼 기다린다고 하잖아!”“기다린다는 말은 네가 붙였어. 내가 들은 건 선을 지키겠다는 말이야.”태겸이 손을 뻗어 유건을 떼어내려 했지만 세령은 그마저 막았다.“아주버님도 손대지 마요. 두 분 싸움에 나 끼워 넣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태겸은 즉시 물러났다. 유건은 세령이 놓아준 팔을 문지르며 비웃었다.“봤지? 형 말에는 참 잘도 다정해. 나한테는 손도 못 대게 하면서.”“당신 손을 잡은 건 주먹질 못 하게 하려고였어. 그것도 애정이라고 우기게?”“내가 안 미치게 생겼어? 마누라는 집을 나갔지, 이혼하자고 하지, 그런데 형이랑 단둘이 밤을 새우고 있어!”“밤새운 적 없어. 목말라서 내려왔고, 우연히 만났어. 내가 어디서 물을 마시든 누구랑 얘기하든 네 허락은 필요 없어.”“내가 남편이잖아!”“그 남편이라는 사람이 호텔 1708호에 있을 땐 나한테 허락받았어?”유건이 입을 다물었다. 냉장고의 작동 소리만 좁은 부엌을 채웠다. 세령은 남편이 즐겨 입던 잠옷을 알아봤다. 결혼 첫해 생일에 선물한 것이었다. 그때 유건은 소매가 조금 길다며 그녀의 손을 잡아 안으로 넣고 웃었다.‘이거 입으면 당신이 매일 안아줘야 해. 추우니까.’그 다정한 기억이 오히려 세령의 속을 뒤집었다.“미안해. 라온이랑 있었던 건 내가 백번 잘못했어.”유건은 고개를 떨궜다가 다시 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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