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Chapter 61 - Chapter 70

195 Chapters

제61화. 응, 내가 보냈어

“응.”그 한 글자에 세령은 7년 전 자신을 달래던 손이 먼저 떠올랐다. 문태겸에게 버림받았다며 울던 그녀의 뺨을 닦아주던 손. 이제 그 손의 주인이 이별 문자를 보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제 입으로 인정했다.“문유건. 너는 내가 우는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어? 네 계획이 먹혔다고 좋았어?”유건은 탁자 위의 태블릿을 보지 않았다. 화면에는 태겸의 번호로 발신된 문자와 유건의 입력 계정, 세령이 보낸 답장을 삭제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처음엔 형한테서 널 떼어놓고 싶었어.”혜란이 숨을 들이켰고 이도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유건은 형을 보며 말을 이었다.“형은 항상 가만히 있어도 다 가졌잖아. 아버지 인정도, 사람들 기대도. 그런데 세령이까지 형만 기다리더라. 난 네가 그렇게 좋은 여자인 줄도 모르고 사진부터 봤어. 직접 만나니까 더 갖고 싶어졌어.”“내가 무슨 물건이야?”“그렇게 말하려는 게 아니잖아!”“네가 방금 갖고 싶었다며. 나한테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형한테서 떼어놓을 궁리부터 한 거야?”유건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맞아. 그때는 형한테 지기 싫었어. 네가 형 이름 부르며 울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고.”세령은 7년 전 카페 창가를 떠올렸다. 식어가는 차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참자 유건이 휴지를 밀어주었다. ‘울어도 돼. 난 안 갈 테니까.’ 그 말에 마침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세령은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상상했다. 태겸과 전시장을 돌며 웃던 날의 사진 한 장. 유건은 그 사진을 보고 이름과 일정부터 알아냈다. 세령에게는 우연한 첫 만남이었지만 유건에게는 준비된 방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날 카페에서 세령이 좋아하는 차를 정확히 주문한 것도 우연이었을까. 이제는 사소한 친절마저 의심해야 했다.“내가 네 앞에서 울 때마다, 속으로 웃었겠네.”“아니.” 유건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어. 그런데 네가 내 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62화. 사랑해서 훔쳤다는 변명

“그게 제일 끔찍해. 넌 날 사랑하면서 내 인생을 훔쳤잖아.”세령의 말에 유건이 맞은 뺨을 감싼 채 고개를 들었다. 별장 2층 객실에 남은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죽였다. 탁자 위에는 태겸의 번호로 발신된 문자 기록이, 그 옆에는 세령이 보낸 답장을 지운 유건의 계정이 떠 있었다.“훔친 게 아니야.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그 말 끝까지 해봐. 사랑해서 형 전화로 날 버리고, 사랑해서 내 답장까지 지웠다는 거지?”유건의 입술이 떨렸다.“처음엔 형한테 지기 싫었어. 그런데 네가 나한테 기대기 시작하니까 정말 좋아졌어. 네가 내 이름 부르고 웃어주는데, 그때 어떻게 사실대로 말해? 널 잃을 게 뻔한데!”“잃는 게 무서웠으면 처음부터 남의 사랑을 망가뜨리지 말았어야지.”세령은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 유건이 처음 끓여준 죽은 너무 짜서 둘 다 물을 세 컵이나 마셨다. 그는 숟가락을 빼앗으며 ‘우리 여왕님, 맛없는 건 내가 다 먹을게. 대신 당신은 나만 좋아해’라고 우겼다. 세령은 웃으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 웃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때 당신이 날 안아주면 정말 살 것 같았어. 누군가 날 버려도 이 사람은 안 버리겠구나 싶어서.”“맞아. 난 안 버렸잖아.”“네가 먼저 날 버림받게 만들었으니까!”유건이 움찔했다. 세령은 눈가를 문질렀다. 이번에는 울음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 위해서였다.“넌 내가 고를 수 있는 길을 하나씩 없애놓고, 마지막에 남은 네 손을 잡았다고 운명이라 불렀어. 그게 사랑이면 도둑질도 청혼이겠다.”세령은 한때 유건의 사랑을 의심한 자신을 탓했다. 이제는 그 고마움조차 유건이 마련한 거짓말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에 속이 뒤틀렸다. 기쁘게 웃었던 얼굴까지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기억을 인질로 잡히고 싶지도 않았다.“말을 그렇게까지 해야겠어?”“당신은 사람 인생을 그렇게까지 해놓고, 말 한마디 아픈 건 못 견뎌?”유건은 태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형은 가만있을 거야? 세령이 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63화. 이혼을 거부하는 남편

“이혼은 안 하겠다고? 문유건, 내 인생 망가뜨릴 땐 허락도 안 받더니 이제 끝내는 건 네 허락을 받아야 해?”유건은 세령의 말에 움찔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무릎을 꿇고 사랑한다고 빌던 남자가, 이혼 이야기가 나오자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의 손에는 아직 세령이 돌려준 결혼반지가 쥐어져 있었다.“외도한 건 인정해. 형 전화로 문자 보낸 것도, 네 답장을 지운 것도. 평생 사과할게. 대신 결혼까지 끝내라는 건 못 들어.”“반성문을 평생 쓰면 뭐 해. 그걸 내가 평생 읽어줘야 하는데?”“세령아, 우리 행복했잖아. 당신 웃는 얼굴만 보면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 알잖아.”유건이 반지를 들어 보였다. 신혼여행 첫날, 숙소 문을 열자마자 그녀를 번쩍 안고 ‘오늘부터 내 평생 소원은 마누라 웃기는 거야’라며 떠들던 사람이었다. 세령은 그가 간지럽힌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밤새 웃었다. 그때의 마음을 부정할 수 없어서 지금 더 숨이 막혔다.세령이 손가락에 생긴 작은 상처를 숨기면 유건은 꼭 알아채고 약을 발라줬다. 그러면서 ‘이 손은 내가 평생 귀하게 모실 손입니다’라며 우스꽝스럽게 절까지 했다. 추억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온기로 지금의 결정을 뒤집을 순 없었다.“행복했던 건 사실이야. 그런데 행복했던 여자를 속여도 된다는 증거는 아니잖아.”“그럼 뭘 해야 용서하는데? 라온이 번호도 지웠어. 당신이 원하면 회사도 그만두고, 어디든 따라갈게.”“네가 어디로 따라오든 싫어. 난 혼자 가겠다고.”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세령이 물러나자 멈추기는커녕 태블릿이 든 가방을 내려다봤다.“그 기계부터 그만 봐. 네가 상처받을수록 형만 좋아하잖아.”“아직도 형이야? 내가 널 떠나는 이유를 네가 다 말해놓고, 왜 또 형 이름이 나와?”유건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에는 후회와 함께, 무언가를 빼앗기기 직전의 초조함이 뒤엉켜 있었다. 세령이 누구에게 가는지 확인하지 못하면 자기 잘못마저 인정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세령은 문득 자기가 한 번도 남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64화. 형제의 첫 충돌

“형이 뭔데 내 아내를 데려가!”유건의 주먹이 태겸의 얼굴을 때렸다. ‘이번엔 네가 정할 일이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순간이었다. 복도 벽에 부딪힌 태겸의 어깨가 들썩였고, 세령의 여행 가방이 옆으로 넘어졌다. 벌어진 지퍼 사이로 잠옷과 칫솔이 쏟아졌다. 어제까지 남편과 같은 방을 쓰지 않겠다며 챙긴 물건들이었다. 집을 나가려는 여자의 짐까지 두 형제의 발밑에 구겨졌다.“문유건, 미쳤어?”세령이 달려가려는데 태겸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 번진 피를 엄지로 훔친 그가 유건의 멱살을 붙잡았다.“네가 세령이한테 한 짓을 알고도, 아직 아내라는 말이 나오냐?”“그래. 내 아내야! 형이 7년 전에 버리고 간 여자, 내가 결혼했다고!”“버리고 간 게 아니잖아. 네가 우리 사이를 끊었어.”“그래서? 이제 와서 되찾겠다고? 형은 평생 착한 척하면서 남의 것 뺏는 게 특기잖아!”태겸의 주먹이 유건의 뺨을 후려쳤다. 유건이 벽 쪽으로 비틀거렸다. 태겸 역시 때린 손을 내려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태겸의 얼굴에는 통쾌함보다 뒤늦은 분노가 남았다.세령은 넘어졌던 가방을 세우지도 못했다. 결혼식 날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웃던 사진이 떠올랐다. 태겸은 동생에게 축하한다고 말했고, 유건은 세령의 허리를 감싼 채 형을 향해 웃었다. 그 웃음 뒤에 어떤 승부가 숨어 있었는지 그녀만 몰랐다. 그날 태겸이 건넨 축하 인사가 얼마나 힘든 말이었는지, 유건이 반지를 끼운 손을 왜 그렇게 과시하듯 들어 보였는지 이제야 떠올랐다. 그녀는 신부 대기실에서 유건이 사다 준 초콜릿을 먹으며 웃었고, 두 형제는 그 미소를 서로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형, 결국 본색 나오네.”유건이 웃으며 다시 다가갔다. 입가에 피가 묻었는데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그렇게 갖고 싶었어? 내 마누라가? 그럼 가져가. 대신 형이 내 아내랑 뒹굴었다고 온 집안에 떠들어줄까?”“입 조심해, 유건아.”“왜? 세령이가 들으면 네가 창피해? 새벽 부엌에서 그렇게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65화. 막내의 죄

“그래, 박수 더 쳐. 내가 속아서 시집가던 날에도 그렇게 축하해줬잖아, 문이도.”세령이 돌아서자 이도의 박수 치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별장 현관에는 넘어진 여행 가방에서 주워 담은 옷가지가 삐져나와 있었고, 조금 전 주먹질한 태겸과 유건은 피 묻은 입술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세령은 이 집에서 자신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누가 이겼는지 확인하는 관중처럼 느껴졌다.“형수님, 제가 정신 나갔나 봐요. 그 박수는…….”“좀 뭐? 재밌었어? 큰형이 둘째 형 때리는 게?”“그런 뜻은 아니었어요.”“그럼 무슨 뜻인데. 내가 또 네 농담 해석해줘야 해?”이도가 입을 다물었다. 평소 같으면 ‘형수님이 그렇게 무섭게 보면 심장이 뛰잖아요’ 같은 헛소리로 넘어갔을 남자였다. 오늘은 세령의 눈을 피하지도 못했다.세령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돌아갈 집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냥 떠나면 이도는 다음번에도 형들 뒤에서 웃으며, 정작 자신이 알고 있는 일에는 입을 닫을 것 같았다.“문이도. 너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둘째 형이 사진 본 거요? 전에 말씀드렸잖아요.”“그거 말고. 문자, 연락, 태겸 씨가 나한테 못 했던 말. 어디까지 알고 있었냐고.”유건이 곧장 끼어들었다.“야, 너까지 무슨 짓을 했는데? 지금 얘가 지어내는 말 듣지 마, 세령아.”“입 닥쳐, 문유건. 네 거짓말은 이미 충분히 들었어.”태겸이 동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도는 두 형의 얼굴을 차례로 보더니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계단 한 칸을 내려왔다.“결혼식 얼마 전이었어요. 전부는 몰랐어요. 둘째 형이 큰형 전화로 무슨 문자를 보냈는지도, 형수님 답장을 지웠는지도.”“그럼 뭘 봤는데?”“큰형이 형수님 앞으로 쓴 편지가 있었어요.”세령의 손에서 가방끈이 미끄러졌다.“편지?”“네. 큰형 글씨였고, 봉투에는 형수님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그게 전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걸 봤어요.”태겸이 앞으로 움직였다.“이도야. 그 편지를 네가 봤어?”“응, 큰형. 결혼 전에.”태겸의 안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66화. 왜 말하지 않았어

“큰형이 한 번쯤 무너지는 꼴이 보고 싶었어요. 형수님 결혼식이 걸려 있다는 걸 알면서도.”이도는 맞은 뺨을 감싸지도 않았다. 세령의 손바닥에 남은 열기가 식기도 전에 나온 말이었다. 별장 현관에는 떨어진 가방끈이 바닥을 끌었고, 계단에서 내려온 가족들은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방금 뭐라고 했어?”“제가 왜 말 안 했는지 물으셨잖아요.”평소라면 웃으면서 한마디 더 붙였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뺨에 번진 붉은 자국보다 그 표정이 낯설었다.“큰형은 늘 완벽했어요. 잘난 아들, 좋은 형, 남들이 먼저 찾아오는 남자. 다들 큰형이 뭘 해도 옳다고 했거든요.”태겸이 입술의 상처를 닦다 멈췄다. 이도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그래서 궁금했어요. 그렇게 잘난 큰형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잃으면 어떻게 될까. 둘째 형은 큰형을 이기겠다고 어디까지 갈까.”세령은 눈앞의 막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의 결혼을 두고 심심풀이 구경을 했다는 말이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한동안 화도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편지를 보고도 입 다물었어?”“결혼 직전에 봤어요. 큰형 글씨로 형수님 이름이 적힌 봉투가 아직 남아 있었죠. 내용은 몰랐고, 둘째 형이 무슨 문자를 지웠는지도 그때는 몰랐어요.”“그럼 왜 안 물었어? 편지가 왜 아직 있는지, 내가 받았는지.”“물으면 일이 끝날까 봐요.”이도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어릴 때부터 형제들이 받은 성적표와 상장, 아버지의 칭찬은 늘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큰형이 맨 앞에 서고 둘째 형이 뒤쫓는 동안, 막내는 웃으며 구경하는 쪽이 편했다. 그 비겁한 버릇을 남의 결혼 앞에서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세령은 헛웃음을 흘렸다.“끝나면 안 됐어? 누구한테?”“저한테요. 두 형이 끝까지 어디까지 가는지 보고 싶었으니까.”정혁이 지팡이를 세게 내려찍었다.“문이도! 그게 입에 담을 소리냐!”“아버지, 지금 와서 꾸며 말하면 형수님한테 또 거짓말하는 거잖아요.”혜란은 세령의 손등이 벌겋게 달아오른 걸 보고 손수건을 꺼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67화. 지금 좋아한다는 남자

“문이도, 지금 그게 고백이야? 나한테 뺨 맞고도 사랑 타령이 나와?”세령의 손바닥에는 아직 이도의 뺨을 때린 열기가 남아 있었다. 현관에는 여행 가방과 옷가지가 널려 있었고, 주먹을 주고받은 두 형은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그런데 막내는 하필 이 순간, 그녀를 알아서 미치겠다고 했다.“형수님. 이번엔 농담으로 안 넘길게요.”이도가 붉어진 뺨을 만지려다 손을 내렸다.“저 형수님 좋아해요. 진짜로.”유건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야, 문이도. 너 지금 뭐라고 했냐?”“들었잖아, 둘째 형.”“내 마누라한테? 내 앞에서?”“형수님 앞에서 말했어. 형한테 허락받으려고 한 말 아니고.”세령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결혼 직전 태겸의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도 침묵했던 남자였다. 그 사실을 들킨 직후, 이제는 사랑한다며 그녀 앞을 막아서려 했다.세령은 결혼식 날 이도가 건네준 꽃다발을 떠올렸다. 베일이 비뚤어졌다며 직접 바로잡아주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형수가 됐다고 축하했던 남자였다. 그때 편지 한 장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니. 그는 그 거짓말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좋아하면 뭐가 달라져? 네가 입 다물었던 날들이 지워져?”“안 지워져요.”“그럼 네가 나한테 해줄 말은 좋아한다가 아니라 미안하다겠지.”“미안해요. 그건 백 번 해도 모자라요.”이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세령은 그가 또 웃으며 한마디를 붙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비켜서지도, 다가서지도 못한 채 그녀의 눈만 바라봤다.“처음엔 형들이 싸우는 게 재미있었어요. 큰형이 무너지는 것도 보고 싶었고, 둘째 형이 어디까지 하나 궁금했어요. 그러다 형수님이 이 집에서 웃는 얼굴 뒤로 얼마나 참고 사는지 봤어요.”“그래서 불쌍해졌어?”“아뇨. 형수님이 형들 앞에서 처음 소리쳤을 때, 그제야 내가 구경하던 게 사람 인생이라는 걸 알았어요.”“그걸 알았으면 구경을 그만해야지. 왜 이번엔 네 마음까지 나한테 얹어?”정원에서 이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68화. 너까지

“형이 시작했다고? 그럼 넌 언제부터 내 아내를 노렸는데, 문이도!”유건이 이도의 멱살을 낚아챘다. 별장 현관에 선 세령의 가방이 또다시 바닥에 부딪혔다. 조금 전까지 사랑한다며 빌던 남편의 손에는 아직 결혼반지가 있었고, 그 손으로 막내의 옷깃을 비틀고 있었다.“놔, 둘째 형. 형수님 앞에서 또 이 지랄 할 거야?”“형수님? 감히 내 마누라한테 좋아한다고 지껄여놓고 형수님 소리가 나와?”“그럼 형은 형수님 울려놓고 여보 소리가 나오냐?”유건의 주먹이 올라갔다. 이도가 피하지 않고 턱을 들자 태겸이 재빨리 막내의 어깨를 잡아 뒤로 물렸다.“이도야, 뒤로 가. 여기서 더 부추기지 마.”“큰형, 얘가 먼저 손댔어.”“알아. 그래도 넌 멈춰.”태겸은 이도를 놓지 않았다. 유건은 그 모습을 보고 비틀린 웃음을 흘렸다.“와, 아주 보기 좋은 형제애네. 형은 막내까지 감싸? 둘이 손잡고 내 아내 데려가려고?”“문유건.”세령의 부름에도 유건은 형만 노려봤다. 그 눈에 보이는 건 아내의 상처가 아니라 두 형제에게 뒤처지는 수치심뿐이었다.“내가 널 사랑해서 결혼한 건 잘못이야? 형한테서 널 떼어놓은 건 잘못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 새끼가 이제 와서 널 좋아한대!”“왜 네 잘못을 말할 때도 내가 네 거였다는 듯이 말해?”세령은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바로 세웠다. 지퍼 사이로 흘러나온 셔츠를 접어 넣는 동안 세 남자는 잠시 조용해졌다. 아까부터 누구도 그 가방을 줍기보다 서로의 멱살부터 찾았다.결혼 첫해, 유건은 여행 가방을 직접 싸주며 ‘우리 여왕님은 몸만 오세요’ 하고 웃었다. 그녀가 양말을 빠뜨렸다고 투덜거리면 ‘남편 사랑으로 발을 덥혀드릴게’라며 끌어안았다. 다정했던 기억은 여전히 진짜였다. 하지만 그 손이 지금은 떠나려는 그녀의 짐을 가로막고 있었다.“세령아, 난 네가 형한테 가는 꼴만은 못 봐.”“나 미래 집에 간다고 했지. 왜 말할 때마다 목적지가 태겸 씨로 바뀌어?”유건이 입을 열자 그녀가 손바닥을 들었다.“끝까지 들어. 당신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69화. 아무도 따라오지 마

“기사님, 뒤에서 차가 따라붙으면 목적지 바꿀게요. 경찰서로요.”세령은 택시 뒷유리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별장 진입로에 멈춰 선 세 대의 차는 더 작아졌고, 그 앞의 세 남자도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손에 쥔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여보, 어디야.][내가 잘못했어. 차 돌려.][한 번만 얼굴 보고 얘기하자.]유건이었다. 잘못했다는 말 다음에 어김없이 명령이 붙었다. 세령은 답장 대신 알림을 껐다.같은 차 안에서 귀가하던 지난 4년 동안, 유건은 그녀의 무릎을 덮어주며 ‘우리 여왕님, 오늘도 집까지 모시겠습니다’라고 장난쳤다. 세령은 그 말이 좋았다. 이제는 집이라는 단어부터 숨이 막혔다.미래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미래는 세령의 가방을 보더니 아무 질문 없이 몸을 비켰다.“들어와. 네 남편인지 재난문자인지, 오늘은 둘 다 수신 거부야.”“나 지금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웃어. 네가 웃는 것도 문씨 집안 허락 받아야 해?”세령은 결국 울음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미래는 가방을 빼앗지 않고 빈방 문만 열어주었다. 작은 침대와 물 한 컵, 접힌 수건이 놓인 방이었다. 누군가 준비해준 자리였지만 여기서는 떠나겠다고 말할 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이혼하겠다고 했어.”미래가 잠깐 멈췄다.“유건이 뭐래?”“안 한대. 내가 싫어도 자기는 남편이니까 안 끝낸대.”“와, 혼인신고서에 혼자 평생 소유권 등기라도 했나 보네.”“나도 웃긴 줄 알았어. 그런데 그 사람이 진짜 내 말을 못 알아듣더라.”미래는 따뜻한 국을 식탁에 놓았다. 세령은 몇 숟갈 뜨다가 울컥했다. 누군가 음식을 챙겨준 게 오랜만이라서가 아니었다. 먹기 싫다고 하면 그대로 두어줄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오늘은 아무 결정도 더 하지 마. 네가 이혼하겠다고 한 걸로 충분해.”“내가 나가겠다고 했는데 셋이 또 싸웠어. 유건이, 태겸 씨, 이도까지.”“남자 셋이서 연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제70화. 반지를 돌려주려는 남편

문유건은 밤새 쥐고 있던 결혼반지를 내밀면서도 세령의 손을 잡지는 못했다.“여보. 딱 한 번만 다시 시작하자. 이번엔 내가 당신한테 먼저 반할게.”세령은 반지보다 그의 손바닥을 먼저 보았다. 살갗에 둥근 자국이 깊게 패어 있었다. 얼마나 오래 움켜쥐고 있었는지 손끝은 붉었고, 구겨진 셔츠 소매에는 복도 바닥의 먼지가 묻어 있었다. 어젯밤 문밖에서 들리던 구두 소리는 그가 돌아서던 소리가 아니었다. 차가운 타일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 소리였을 것이다.아파트 복도 창문으로 아침빛이 들어왔다. 출근하는 주민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유건은 일어서지도, 몸을 숨기지도 않았다. 남의 시선 앞에서도 늘 능청스럽게 웃던 남자였으나 오늘은 세령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괜히 안쪽에 선 발을 뒤로 물렸다. 가까워지면 그의 옷깃부터 바로잡아줄 것 같아서였다.“반지 돌려주러 온 거면 문 앞에 놓고 가.”“당신 손에 억지로 끼우진 않을게. 내가 그 정도 염치는 배웠어.”“하룻밤 사이에?”유건은 대꾸하지 못했다. 결혼하고 처음 크게 다퉜을 때도 그는 이렇게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세령이 좋아하는 빵을 사 들고 와서는 배고픈 마누라 앞에 무릎 꿇은 남편을 굶길 거냐고 투덜댔다. 그 뻔뻔한 애교에 웃음이 터졌고, 화해는 언제나 그녀 쪽에서 먼저 시작됐다. 오늘은 빵도, 웃음도 없었다. 반지가 그의 손바닥 위에서 작게 흔들릴 뿐이었다.“그날 기억나? 반지 고를 때.”유건의 눈길이 손바닥으로 내려갔다. 매장의 환한 조명 아래서 세령은 장식이 지나치게 큰 반지를 거절했고, 유건은 어떤 걸 껴도 예쁘다며 직원까지 웃겼다. 그러다 세령이 마음에 드는 걸 고르자 제 손가락에 먼저 끼워보고는 ‘나도 평생 당신 거 할 테니까’ 하고 장난쳤다. 그때 세령은 그 말이 좋았다. 온전히 자신을 선택해주는 남자가 생겼다고 믿었다.“그때는 당신이 내 손 잡아줬잖아.” 유건이 말했다. “이번엔 잡아달란 말 안 해. 나 혼자라도 제대로 해볼게.”“당신 혼자 시작할 수 있는 결혼이 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PREV
1
...
56789
...
2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