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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71 - チャプター 80

195 チャプター

제71화. 외도 상대의 증언

세령은 음성메시지가 끝났는데도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지 못했다.임라온의 말 뒤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 짧은 침묵이 오히려 이상했다. 라온은 유건이 형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이 달라졌다고 했다. 세령은 방금 문밖에서 결혼반지를 내밀던 남편을 떠올렸다. 눈물로 젖은 얼굴, 다시 시작하자던 입술, 끝까지 손바닥에 남겨둔 반지. 그 모든 것 사이에 문태겸의 이름이 끼어 있었다는 뜻일까.미래가 식탁에 따뜻한 물을 놓았다. 세령은 마시지 못했다. 화면에 남은 라온의 번호를 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두 번 울리고 상대가 받았다.“메시지 들으셨군요.”“어디까지 알고 있어요?”라온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고,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세령은 그 여자가 일부러 조용한 곳을 찾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난번 호텔 방에서 마주쳤을 때도 라온은 황급히 몸을 숨기지 않았다. 유건의 셔츠를 입고 서 있던 그 담담함이 그때는 더 모욕적이었다.“전화로는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하게 될 것 같아요. 잠깐 만나주실래요?”세령은 거절하려다가 멈췄다. 유건에게는 더 들을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와 가장 추한 시간을 함께 보낸 여자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한 시간 뒤, 두 사람은 미래의 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찻집에서 마주 앉았다. 오전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고, 유리창에는 오래된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라온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먼저 와 있었다. 찻잔을 앞에 두고도 손을 대지 않은 채 세령이 의자를 당기는 모습을 지켜봤다.“미안하다는 말부터 하면 듣기 싫으시겠죠.”“그 말을 듣자고 온 건 아니에요.”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톱 끝으로 잔받침을 밀다가 멈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세령은 이상하게 그 떨림이 불쾌했다. 남편을 잃을까 두려운 아내 앞에서 그와 관계를 맺었던 여자가 긴장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둘 다 피해자인 얼굴을 하고 앉을 수는 없었다.“유건 씨가 결혼한 사람인 거 알았어요. 알면서 만났고요. 외로워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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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형에게 지는 것

세령은 찻집 의자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라온이 남긴 말은 찻집 문을 나선 뒤에도 세령의 귓속에 붙어 있었다. 유리문이 닫히며 울린 종소리와 지나가는 버스의 바람, 횡단보도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그 한 문장에 가로막혔다. 세령은 신호가 바뀌고도 한동안 건너지 못했다. 손가방 안에서 휴대전화가 모서리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꺼내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유건은 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남편이라고 떠들었다. 식탁에 앉자마자 세령의 접시에서 달걀말이를 집어 먹고는 ‘우리 여왕님이 먹여주는 게 제일 맛있다’며 입을 벌렸고, 세령이 젓가락으로 손등을 치면 괜히 아픈 척했다. 결혼기념일에는 평소 그녀가 지나가며 눈여겨본 꽃집을 기억해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꽃송이 사이에 감춰둔 작은 쪽지에는 매번 다른 농담이 적혀 있었다. ‘이번 생도 내 아내 해줘서 고마워. 다음 생은 선착순 예약할게.’세령은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결혼한 뒤 유건이 선물한 코트였다. 소매 끝이 낡자 새것을 사주겠다던 남편에게 세령은 오래 입고 싶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 말을 듣고 유건은 그녀의 목도리를 매만지며 백 년은 입으라고 웃었다. 세령이 지켜온 일상이었다. 이제 그 물건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남편의 손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당장 벗어 던질 수도 없었다. 길을 걷는 동안 차가운 바람이 그 코트 안으로 계속 스며들었다.그 장난들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이제는 자신이 없었다. 태겸에게서 빼앗았다는 기쁨을 확인하려고 더 다정했던 걸까. 세령이 웃는 얼굴을 보며 남편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의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함께 보낸 4년의 장면들이 낯설어졌다.미래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밤새 바닥에 앉아 있던 유건이 사라진 자리에는 먼지 자국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세령은 그곳을 오래 내려다보다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따뜻한 국물 냄새가 났다. 미래는 식탁에 서류를 펼쳐놓고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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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다가오지 않는 사람

문태겸은 약속을 지켰다. 세령은 그 사실이 이렇게까지 거슬릴 줄 몰랐다.[필요한 일 있으면 말해. 그 외엔 안 갈게.]전날 밤 도착한 문자는 그 한 통이 전부였다. 세령은 새벽에 두 번이나 화면을 켰다. 자정이 지나도, 아침 해가 커튼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도 태겸의 이름 아래에는 새로운 알림이 붙지 않았다. 그가 정말로 그녀를 기다리게 두자, 세령은 괜히 이불 끝을 잡아당겼다.7년 전에도 태겸은 사라졌다. 이유를 묻지 못한 채 연락을 기다리던 날마다 세령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헤아렸다. 이제는 서로 보낸 적 없는 이별 문자가 있었다는 걸 안다. 어젯밤 침묵에도 이유가 있다. 자신이 따라오지 말라고 했고, 그는 그대로 따랐다. 머리로는 구분하면서도 몸은 오래된 버릇처럼 휴대전화 쪽으로 기울었다.“누구 기다려?”아침 식탁에서 미래가 물었다. 세령은 커피잔의 손잡이를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미래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전시 공간에서 들어온 자료를 세령 쪽으로 밀어놓았다. 오래 중단했던 현장 일을 잠깐이라도 다시 해보라는 뜻이었다. 도면 모서리에 표시된 치수를 읽는 동안만큼은 문가 저택의 긴 식탁도, 그곳에서 자신을 차지하려던 세 형제도 머릿속에서 멀어졌다. 종이 위에는 이동식 벽체의 간격과 조명 방향을 표시할 빈칸이 있었다. 세령은 연필로 동선을 다시 그었다. 누군가의 아내로 앉아 손님을 맞이하던 시간이 길었지만, 공간의 빈자리를 찾아내는 감각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미래는 말없이 여분의 자를 건네주었고, 세령은 오랜만에 자신이 하던 일을 설명하면서 목소리가 조금 편해지는 걸 느꼈다.초인종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문밖에는 꽃다발을 든 배달원이 서 있었다. 연분홍색 장미 사이에 끼워진 카드에는 익숙한 필체가 있었다.[형수님, 꽃은 죄 없잖아요. 제가 미운 건 알지만 꽃까지 미워하진 마요. — 이도]세령은 카드를 다시 읽지 않고 배달원에게 돌려주었다. 친절하게 설명할 여유도 없었으나 배달원의 잘못은 아니었다. 수취 거절을 요청하자 배달원은 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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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먼저 붙잡은 사람

“잠깐만.”세령의 부름에 태겸이 돌아섰다. 출근길 인파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고, 방금 바뀐 신호등 앞에서 차들이 물기 어린 도로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세령은 도면이 든 가방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 채 그를 바라봤다. 막상 세워놓고 보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젯밤 내내 확인했던 문자 한 통이 떠올랐다. 필요하면 부르라는 말. 그 밖에는 오지 않겠다는 약속.“급한 일 있어?”태겸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세령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멈춰 섰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틈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그 조심스러움이 세령의 속을 긁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남자가 가까이 오면 심장이 먼저 뛰었다. 이제는 거리를 지키는 모습에도 심장이 요란했다. 자신이 부탁한 일을 정확히 해내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싶다는 게 우스웠다. 7년 전에는 이유도 모른 채 멀어진 남자가, 이제는 이유를 알고도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는 그녀가 그러라고 했다.“나 피하는 거야?”“네가 시간을 달라고 했잖아.”“말은 참 잘 듣네. 예전에도 그렇게 한 번만 내 말 좀 들어주지.”태겸의 얼굴에서 희미한 기색이 사라졌다. 세령은 말을 던지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날카롭게 굴고 있는지 알았다. 그렇다고 주워 담고 싶지는 않았다. 수년 동안 혼자 삼킨 말들이었다.가까운 건물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기자 빗물이 홈통을 따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태겸은 그녀의 구두 끝에 물이 튀지 않도록 반걸음 옆으로 비켰다. 세령은 그런 사소한 배려마저 기억하고 있었다. 해외 전시장 뒤편에서 처음 함께 비를 피하던 날에도 그는 자기 어깨를 적시면서 그녀 쪽으로 우산을 기울였었다. 그 무렵의 세령은 그런 사람이라면 약속을 어길 리 없다고 믿었다. 식사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태겸은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반으로 나눠 내밀었다. 세령이 싫다고 해도 자신은 이미 먹었다며 뻔한 거짓말을 했다. 그를 좋아하게 된 건 그런 날들이 쌓인 뒤였다.“나 그날 거기서 세 시간 기다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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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이혼하면 그다음

“그때 네가 나 싫다고 하면 끝.”태겸의 대답은 횡단보도 신호가 두 번 바뀌는 동안에도 세령의 귓가에 남았다. 그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고, 자신을 기다려달라는 약속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빗물이 처마 끝에서 떨어질 때마다 구두 앞코가 젖었다. 세령은 태겸의 손이 주머니 속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 한때는 거리낌 없이 그녀의 손을 감싸던 사람이었다.“참 쉽다, 당신은.”“쉽지 않아. 그래도 네가 싫다면 멈춰야지.”세령은 웃을 수 없었다. 그에게서 돌아서면서도 끝이라는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떠나겠다고 하면 놓겠다는 사람. 7년 전에는 붙잡아주길 바랐고, 지금은 놓아준다는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그러나 아직 유건의 아내인 이상 태겸에게 무슨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세령은 도면이 든 가방을 고쳐 메고 전시장 쪽으로 걸었다.걸어가는 동안 세령은 태겸이 마지막으로 서 있던 곳을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는 순간 그가 아직 자신을 보고 있기를 바라게 될 것 같았다. 혼자 남겨진 시간을 견뎌온 사람답게 무심히 걷고 싶었는데, 발을 옮길 때마다 속도가 달라졌다. 그의 대답은 달콤한 약속으로 들리다가도 너무 늦게 도착한 사과처럼 아팠다.전시장은 설치를 앞두고 어수선했다. 바닥에는 구획을 표시한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벽체 사이로 작업자들이 사다리를 옮겼다. 세령은 접어온 도면을 펴고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관람객의 동선을 확인했다. 높이가 맞지 않는 가벽을 표시하다가 펜 끝을 멈췄다. 누군가 대신 정해놓은 자리에서 벗어나니 익숙한 계산이 돌아왔다. 벽 하나를 옮기면 좁던 통로가 트였다. 설계한 대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건 이 공간 안에서뿐이었다.작업대 위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힌 명찰이 놓여 있었다. 세령은 먼지를 털어내고 빈 종이 위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결혼 후에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기회가 줄었다. 그때마다 유건이 먼저 '제 아내 한세령입니다'라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자랑받는 기분이 좋아 웃었지만, 그 소개 뒤에 늘 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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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서류만 남은 부부

“서류만.”세령이 그 말을 남기고 문을 닫자, 유건의 그림자가 현관 바닥에서 잘려 나갔다. 잠금장치가 맞물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문 앞에서 무슨 말이 더 들려오기를 기다렸지만 복도는 조용했다. 며칠 전에는 반지를 쥐고 울던 남자가 어제는 제 형을 만난 이유부터 캐물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되풀이된 질문이 오히려 세령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다음 날 오전, 세령은 미래가 알려준 법률사무소를 찾아갔다. 기다리는 동안 무릎 위에 올린 서류봉투의 모서리가 손바닥에 눌렸다. 혼인관계를 증명하는 종이, 따로 정리한 별거 날짜와 연락 내역, 오래된 메시지 복원 기록까지. 지난 4년의 생활을 종이 몇 장에 끼워 넣자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상담실 책상 위에는 두꺼운 서류철과 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세령은 유건이 외도한 날짜를 설명하다 멈췄다. 그가 태겸과의 연락을 가로막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목이 잠겼다. 상담자는 그녀의 말을 재촉하지 않고 필요한 사항을 확인했다. 이혼을 원한다는 의사, 현재 머무는 곳, 남편과 직접 연락하는 일이 부담스러운지에 관해 차례로 물었다.“다시 같이 살 생각은 없습니다. 별거한다는 뜻을 분명히 남기고 싶어요.”그 말만큼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세령은 이후의 연락을 어떻게 처리할지 상담하고, 유건에게 별거 의사와 개인적인 방문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문자로 남겼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금세 읽음 표시가 떴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세령은 기다리지 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그 시각 유건은 문가 저택의 침실에 혼자 있었다. 세령이 떠날 때까지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들이 화장대와 서랍에 남아 있었다. 세령이 즐겨 쓰던 빗, 반쯤 비어 있는 손크림, 책갈피가 꽂힌 책. 침대 한쪽 베개에는 아직도 그녀가 눌러놓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유건은 침구를 정리하라는 말을 했다가 곧바로 취소했다.그는 화장대 앞에 앉아 손크림 뚜껑을 열었다. 익숙한 향이 올라오자 저녁마다 세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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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어머니는 언제부터 알았나

“어머니는 언제부터 아셨어요?”세령의 물음에 혜란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조금 전까지 유건의 잘못을 수습하겠다던 입술이 단단하게 다물렸다. 창가로 기울어든 햇빛이 잔받침의 물기를 비추고 있었고, 혜란의 손끝은 그 위를 천천히 문질렀다. 세령은 시어머니가 대답을 고르는 동안 한 번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식은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 속이 쓰렸지만 잔을 들지 않았다.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혜란이 다시 태연한 얼굴을 되찾을 것 같았다.“뭘 말이니?”“저하고 태겸 씨요. 우리가 예전에 만났다는 거, 언제부터 알고 계셨냐고요.”혜란은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로 우산 하나가 접혔다 펴졌다. 마치 그 움직임을 확인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처럼 혜란은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세령은 방금 전 들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태겸이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텐데. 남편의 외도를 따지는 자리에서 왜 태겸을 먼저 원망했을까. 세령은 오래전 유건과의 약혼 소식을 전하던 날을 생각했다. 혜란은 놀라지도 않았고, 마치 준비한 대답을 꺼내듯 축하한다고 했다. 그때는 호들갑 떨지 않는 품위가 좋았는데, 이제 그 평온함이 낯설었다.“유건이랑 약혼하기 직전에 알았어. 그때 태겸이가 네 옛 연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답은 매끈했다. 혜란이 가족식사에서 난처한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어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내놓은 말이었다. 다만 세령을 향하던 눈은 여전히 창문에 머물러 있었다.“누구한테 들으셨어요?”“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억할 나이는 아니잖니.”“제 인생이 달라진 일이에요. 어머니한테는 사소한 얘기였을지 몰라도요.”혜란이 천천히 찻잔을 잡았다. 마시지는 않았다. 세령은 4년 동안 저 손을 숱하게 보았다. 식탁에 앉힐 손님을 정하고, 며느리의 옷차림을 살피고,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찻잔을 들며 대화를 끝내던 손이었다. 세령이 일을 줄이겠다고 했을 때 혜란은 잘 생각했다며 손등을 두드려주었다. 전시장에 가야 하는 날에도 집안 행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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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도착하지 않은 편지

윤혜란은 봉투에 적힌 이름을 한참 내려다봤다.‘한세령.’오래된 잉크가 종이결을 따라 번져 있었다. 서재의 묵은 냄새 사이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혜란은 봉투를 뒤집었다. 접힌 모서리와 누렇게 변한 봉합선은 그대로였다. 책상 서랍을 닫으려다 말고, 그녀는 봉투를 다시 서류철 밑으로 밀어 넣었다. 복도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서랍이 닫혔다. 혜란은 자물쇠를 잠그고도 열쇠를 빼지 못했다. 서랍 하나 사이에 두고 지난 세월이 얇은 문짝처럼 흔들리는 것 같았다. 세령이 오늘 찻집에서 묻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아셨냐는 질문 앞에 자신은 날짜 하나를 내놓았을 뿐이었다.그 시간 세령은 미래의 집에서 오래된 메일함을 열어놓고 있었다. 혜란이 찻집에서 내뱉은 말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태겸이만 아니었으면. 그 말에는 아들이 저지른 일을 꾸짖는 어머니의 분노보다, 이미 알고 있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의 불쾌함이 묻어 있었다.세령은 약혼 무렵의 메일을 날짜순으로 훑었다. 전시장 계약서, 초대장, 유건이 보낸 다정한 안부가 뒤엉켜 있었다. ‘밥 먹었어? 우리 예쁜 사람 굶기면 내가 속상한데.’ 한때 마음을 풀어놓게 했던 그 장난스러운 말이 이제는 낯선 사람의 문장 같았다. 유건에게 답장할 때마다 세령은 태겸을 잊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했다. 그 무렵 도착하지 않은 연락이 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끝이 서늘해졌다. 세령은 받은 편지함과 보낸 편지함을 번갈아 눌렀다. 삭제된 편지까지 되살릴 수는 없었다. 화면에 빈 검색 결과만 뜰 때마다,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 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고개를 들었다. 유건이 건넨 위로를 의심하지 않은 자신까지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미래가 식탁 맞은편에 앉아 종이컵을 건넸다. 세령은 컵을 받으면서도 화면을 끄지 않았다.“뭐 찾는데?”“7년 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끊긴 연락이 문자뿐이었는지.”“누가 지웠는지부터 확인하려고?”“그보다, 태겸 씨가 나한테 뭘 보냈는지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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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편지를 맡은 사람

“어머니가 그 편지를 맡았다고요?”세령은 자신이 되묻는 소리를 듣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휴대전화 너머로 태겸의 숨소리가 들렸고, 식탁 위에는 오래된 메일함을 뒤지다 식어버린 물이 남아 있었다. 몇 시간 전 혜란이 찻집에서 흘린 말이 뒤늦게 또렷해졌다. 태겸이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텐데. 약혼 직전에야 둘의 관계를 알았다는 사람치고는 너무 익숙하게 나온 원망이었다.“왜 직접 보내지 않았어요?”“그때 집에 들렀다가 어머니께 맡겼어. 보내주시겠다고 해서.”태겸은 말을 마치고 잠시 침묵했다. 세령에게 편지를 썼다고 털어놓을 때와는 다른 정적이었다. 자신이 믿어온 순서를 머릿속에서 다시 맞춰보는 기색이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세령은 찻집에서 혜란의 엄지가 잔 손잡이에서 미끄러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유건이 연락을 조작한 사실을 묻자 시어머니는 놀라기보다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늘 그랬다. 무슨 일이 생기든 며느리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집안은 평온해진다는 얼굴이었다.“그 편지, 어머니가 보내셨는지 확인한 적 있어요?”“없어. 당연히 보내신 줄 알았지.”“그런데 난 받은 적이 없잖아요.”서로 말을 멈추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편지가 길에서 분실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주소가 잘못 적혔거나, 받는 사람이 없는 때 배달됐을 수도 있다. 세령은 그런 가능성을 하나씩 떠올리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혜란은 약혼 전에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다고 말했다. 그 사실 하나로 편지를 숨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었다.“어머니한테 물어봐야겠어요.”“세령아, 어머니까지 의심하진 마.”말이 끝나자마자 세령은 숨을 삼켰다. 얼마 전까지도 자신이 문가의 며느리로서 참아야 한다고 믿었던 수많은 순간이 스쳐 갔다. 가족식사 때마다 혜란은 다정하게 음식을 덜어주면서도 일정을 비워두라고 했고, 세령이 전시장에 나가야 한다면 웃으며 다음으로 미루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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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서재의 봉투

“그걸 왜 이제 말해?”이도의 말이 끝나자 세령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어 화면을 확인했다. 문이도. 이름 아래 통화 시간이 초 단위로 늘어났다. 불과 조금 전 태겸에게 들었던 말이 겹쳤다. 어머니가 직접 보내주겠다고 했어. 따로 떨어져 있던 두 문장이 맞물렸지만, 맞물리는 모양만으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언제 봤는데?”“서재에서요. 어머니가 서류 찾으라고 하셨을 때. 큰형 글씨는 알아봐요. 어릴 때부터 잔소리 쪽지 받아본 세월이 얼만데.”평소 같으면 형을 흉보며 웃었을 이도가 웃지 않았다. 세령은 창가로 돌아섰다. 빗물 마른 유리에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봉투 안에 뭐가 있었어?”“열어보진 않았어요. 원하면 제가 가서—”“가지 마.”이도가 숨을 멈췄다.“형수님, 이번엔 제가 도와드리겠다는데도요?”“남의 서랍 뒤져서 진실 알아내는 일, 이제 안 해. 네가 전에 편지를 보고 입 다물었던 것도 아직 안 끝났어.”수화기 너머로 작은 한숨이 흘렀다. 이도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는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세령은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사실까지 메모했다. 이미 한 번 자신이 본 것을 숨겼던 사람이다. 이번에 제일 먼저 알려줬다는 이유로 믿을 수는 없었다.전화를 끊은 세령은 미래의 집 식탁에 앉아 노트를 폈다. 태겸이 보낸 편지 한 통. 혜란에게 맡김. 세령에게 도착하지 않음. 이도가 서재에서 태겸의 글씨가 쓰인 봉투를 목격했다고 주장함. 문장 끝마다 마침표를 찍다가 멈췄다. 이 집안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위한다며 한 가지씩 숨겼다. 남은 사실마저 누군가가 몰래 훔쳐와 건네주면, 또 다른 비밀에 자신의 선택을 맡기는 셈이었다.세령은 혜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게 울리던 연결음이 끊기자 익숙하게 부드러운 인사가 들렸다.“세령아, 마음 좀 가라앉았니?”“어머니, 지금 뵙고 싶어요. 편지 때문에요.”잠깐의 침묵 뒤에 혜란이 시간을 정했다. 세령은 약속 장소로 문가 저택을 택했다. 피하고 싶었던 현관이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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