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너머로 전해지는 음성일 뿐인데도, 바로 곁에서 속삭이는 듯 생생한 질감에 경신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아가들아, 도와줘. 엄마가 사고 쳐놓고 말 한마디 못 하고 있어. 세상에 이런 바보짓이 또 있을까···.’심장 근처에 머무는 아가들의 기운 덕분일까. 수 초간의 고요 끝에 간신히 엉켰던 호흡이 정돈되었다. 경신은 떨리는 입술을 떼어 겨우 첫 마디를 뱉었다.“고··· 고마워서요.”- 키스가?“읏! 키스 아, 아, 아니요! 샤, 샤인머스캣이요!”- 훗.낮게 깔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며 타고 내려왔다. 심장은 이미 제 속도를 잊은 채 널뛰고 있었다. 태하라는 남자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듯한 이 농밀한 장난기는 기분 탓일까.- Coma mucho(많이 먹어).다정한 명령은 늘 위험했다. 사람을 자꾸만 착각하게 만들고, 임산부의 심장에 해로울 만큼 설레게 하니까. 경신은 다시 한번 심호흡하며 화제를 돌렸다.“아, 고맙습니다. 저기··· 과외는 그럼 언제부터 갈까요?”- 당장.“저기요, 자꾸 농담하지 마시고 진지하게 응답해 주세요.”수화기 너머로 태하가 설핏 웃는 소리가 들리자, 경신의 온몸은 봄눈 녹듯 부드럽게 풀렸다. 그가 즐거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묘하게 고조되었다.- viernes(금요일)에 데리러 갈게.“아, 네. 그럼 그때 봐요. 그리고 또···.”- 또 뭐, 키스?“아, 아니! 키스는 오늘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나지막한 웃음의 여운이었다. 그 소리가 왜 이리도 듣기 좋은지, 경신의 입가에도 어느덧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한껏 차오른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든 순간, 경신은 얼
Last Updated : 2026-10-0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