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누가 나랑 했을까? / Chapter 91 - Chapter 100

All Chapters of 누가 나랑 했을까?: Chapter 91 - Chapter 100

115 Chapters

제91화. 오늘은 같이

태헌과 시현이 돌아왔을 때 이서는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TV는 꺼져 있었고, 손에는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 들려 있었다. 태헌이 책을 빼주려 하자 그녀가 눈을 떴다.“왔어요?”“응. 자지 왜 기다렸어.”“얼굴 보고 자려고.”시현이 신발을 벗다 멈췄다. 짧고 솔직한 말이었다. 이서는 그들의 반응이 민망해 책을 덮었다. 도하가 주방에서 데운 물을 가져왔다.식탁에 둘러앉아 면담에서 확인된 범위를 나눴다. 임성준이 자택 봉투와 파일 전달을 인정했다는 것, 차진혁 측 지시의 원본 대조가 진행된다는 것. 태헌은 자기 면담에서 같은 비서실 계정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미 만난 사람을 다시 찾아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시현은 이서에게 공개된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필요한 파일은 담당자에게 전달했고, 자신의 확인 내용도 기록에 남겼다고 했다. 도하는 빌라 회수 지시서에 자신의 서명이 사용된 경위를 별도로 설명하기로 했다.한 차례 이야기를 끝내자 모두 지친 얼굴이었다. 이서가 물컵을 내려놓았다.“우리 오늘은 일 얘기 그만해요.”태헌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확인할 항목이 하나 더 있는 듯했지만 메모만 남겼다. 도하는 서류를 자기 가방에 넣었다.“배는 고프죠?”이서가 묻자 태헌이 바로 그렇다고 했다. 시현은 빵을 꺼냈다. 저녁 대신 먹을 생각으로 샀는데 네 사람이 먹기에는 적었다. 도하가 냉장고를 열어 남은 재료를 확인했다.이서는 달걀 네 개를 꺼냈다. 태헌은 자신이 하겠다고 했고, 그녀는 팬을 하나 더 꺼내주었다. 둘이 서로 다른 불 앞에 섰다. 시현은 샐러드 봉지를 뜯다가 또 너무 크게 찢었다. 도하가 접시를 받쳐주었다.“저번에는 과자였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제92화. 아침에 남는 대답

눈을 떴을 때 시현은 이미 방에 없었다. 연구소에 먼저 가야 한다고 어젯밤 말한 것이 떠올랐다. 이서는 빈자리를 잠깐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침대 한쪽에는 구겨진 담요와 반쯤 접힌 베개가 남아 있었다. 협탁 위 물컵은 비어 있었고, 어젯밤 보던 책에는 시현의 안경닦이가 책갈피처럼 끼워져 있었다. 두고 간 모양이었다.태헌은 여전히 자고 있었고, 도하는 주방으로 내려갔다. 침실을 지키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서는 담요를 두르고 창가에 서서 아침 하늘을 보았다.휴대전화에는 시현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깨우지 않고 갑니다. 점심시간에 연락할게요.]어디에 있는지 일일이 보고받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남긴 말은 감시 기록이 아니라 잠든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였다. 이서는 잘 다녀오라고 답했다.도하가 쟁반을 들고 올라왔다. 차와 식빵 두 조각, 작은 잼 병이 놓여 있었다. 태헌이 냄새를 맡고 눈을 떴다.“내 건?”“아래 있다.”“차별하네.”도하가 대답하지 않자 이서가 웃었다. 그녀는 식빵을 반으로 잘라 태헌에게 건넸다. 세 사람의 손이 접시 위에서 잠깐 겹쳤다.“오늘은 몇 시에 나가요?”태헌이 물었다. 이서는 오후에 상담 일정이 있다고 답했다. 회사 자료와 별개로 자신이 계속 정리해 오던 일이었다. 그날 호텔과 이후 관계를 어떤 범위로 기록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지 선택하는 과정은 다른 사람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과 달랐다.태헌은 데려다줄지 물었다. 이서는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워하는 얼굴까지 숨기지는 않았다.아침을 먹은 뒤 이서는 작은 수첩을 펼쳤다. 수경에게 넘길 업무 확인과 사적인 상담에서 말할 내용이 다른 쪽에 나뉘어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제93화. 내일 꺼내지 않을 이야기

최종 대조를 앞둔 일요일, 이서는 작은 파우치를 꺼냈다. 커프스링크와 립밤, 접힌 메모가 안에 있었다. 더 이상 상대가 거짓말할 때마다 눈앞에 던져놓을 물건은 아니었다.태헌과 시현, 도하는 식탁 반대편에 앉았다. 이서는 새 화면을 켜지 않았다. 그날의 시간은 이미 맞춰두었다. 오늘은 회사에 제출하지 않을 이야기만 남아 있었다.“내일 회사에서는 제 채용과 프로젝트, 사진을 전달한 경위를 다룰 거예요. 그날 방 안의 일을 공개 심문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헌은 팔짱을 풀고 앉았고, 시현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그래서 오늘 우리끼리 하나만 더 말하고 싶어요.”이서는 메모를 펼쳤다. ‘변명은 듣지 않겠다’는 문장이 여전히 선명했다. 그때는 그 문장 앞에서 도하의 대답을 기다리는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 문장이 자신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하고 싶었다.“이걸 읽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보다, 제가 잘못한 걸 들키면 안 된다고 먼저 생각했어요.”도하의 얼굴이 굳었다.“그렇게 쓰지 말았어야 했다.”“네. 그 말을 듣고 싶었어요. 제가 먼저 뭘 했는지 설명하기 전에.”그는 고개를 숙였다. 이서는 종이를 다시 접지 않고 내려놓았다.태헌에게는 커프스링크를 밀었다.“선배는 돌아왔던 걸 빼고 말했어요. 그날 저를 챙겨준 일만 먼저 들으니까, 제가 괜히 의심하는 것 같았어요.”태헌은 손을 모았다.“네가 아니라 내가 민망했던 거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서 화났고, 그걸 들키기 싫었어.”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는다고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제94화. 삭제되지 않은 첨부

월요일 오전 10시, 이서는 34층의 같은 회의실에 다시 들어갔다. 처음 왔을 때보다 참석자가 적었다.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자료는 두꺼워졌다.수경이 자리와 확인 범위를 안내했다. 이서의 채용 평가, 이번 프로젝트가 대조한 여섯 계약, 회수 지시서와 개인 정보 전달, 호텔 영상의 추출과 재가공 경로. 서로 연결된 부분은 대조하되, 하나의 의혹으로 다른 사실을 대신 결론내지 않기로 했다.차진혁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외부 라운지에서 만났을 때와 같은 넥타이였다. 이서는 그를 이길 말을 찾는 대신 준비한 표의 첫 장을 펼쳤다.먼저 계약 두 건이 검토됐다. 한 건은 원래 계약에 공통 자료 재사용 조항이 있었고, 그 범위 안에서 일부 파일을 다시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서는 요약표에서 그 항목을 문제 의심 건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처음 주장과 달라졌군요.”차진혁이 말했다.“원본을 더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바뀐 이유도 적었습니다.”이서는 다른 계약을 가리켰다. 이쪽은 재사용이 허용된 자료 외에 6월 지원 이후의 별도 현장 분석이 필요했다. 그런데 4월 기초 자료의 파일 이름을 바꿔 새 결과로 넣었고, 기존 자료라고 설명한 부록도 빠져 있었다. 검토 완료라는 보고와 달리 실제 작성 담당자는 새 최종본을 보낸 적이 없다고 답했다.나머지 계약에는 관리번호가 바뀌거나 측정 기준이 달라 비슷하게 보였던 자료도 있었다. 이서는 현장에서 확인한 내용을 함께 적었다. 처음의 의심이 전부 맞았던 것처럼 표를 만들지 않았다. 실제 누락이 확인된 항목과 설명을 더 받아야 하는 항목을 구분했다.“이 항목은 추가 지급을 멈추고 납품 여부부터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계약까지 같은 결론을 낼 수는 없습니다.”말을 마친 이서는 물을 마셨다. 고개를 드니 태헌이 멀리 앉아 있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Read more

제95화. 작게 올라온 정정문

정정 안내는 사진이 처음 퍼졌을 때보다 조용히 올라왔다.회사 게시판의 작은 공지였다. 채용 평가가 호텔 투숙 이전에 진행되었다는 사실, 실제 계약 기간과 분석 업무 범위, 사적인 자료를 허가 없이 전달한 경위에 대해 조치를 진행한다는 설명이 들어 있었다.이서의 얼굴을 다시 싣지는 않았다. 클릭을 불러올 만한 제목도 없었다. 이서는 공지를 두 번 읽었다. 기다렸던 문장이 분명 있었는데, 속이 후련해지지는 않았다.수경은 따로 결과를 전달했다. 문제로 확인된 정산 항목은 지급을 멈추고 납품 검토를 다시 하기로 했다. 비서실에서 재전달된 승인 자료와 사생활 자료는 원본을 보존한 채 각각 담당 창구에 넘겼다. 차진혁은 관련 지시 권한에서 빠졌고, 이후 직책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밝혔다.그가 이서에게 직접 사과하러 오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낸 의견서에서도 일부 지시는 실무상 오해였다고 주장했다. 이서는 그 문장을 읽고 화가 났지만, 그가 납득하는 모습까지 받아내야 자기 일을 끝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성준의 자택 방문과 정보 전달에 관한 인정은 기록에 남았다. 회사 내부 조치로 끝낼지, 외부에 맡긴 사안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이서가 상담을 통해 계속 정하기로 했다. 이미 의뢰한 자료 확인은 별도로 이어졌다. 누구도 그것을 관계 유지의 조건으로 바꾸지 않았다.그 사이에도 복사된 사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게시판의 짧은 댓글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그 여자’라고 불렀다. 이서는 화면을 닫았다가 다시 켰다. 자신을 괴롭히는 말을 읽어야 대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어 정유나가 책상 앞에 섰다.“오늘도 여기서 먹을 거예요?”“조금만 더 확인하고요.”유나는 모니터를 보지 않고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제96화. 청중 세 명을 빌렸습니다

11월 첫째 주 금요일, 이서는 발표실에서 말을 세 번 멈췄다.슬라이드는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표의 원본도 확인했고, 바뀐 부분은 유나와 교차 점검했다. 그런데 단상 앞에 서자 처음 복도 사진에 붙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여기 설 자격이 있는지 누군가 묻고 있는 것 같았다.“다시 할게요.”그녀가 말하자 팀장이 시계를 보았다.“처음부터 말고 멈춘 부분부터 하세요.”이서는 첫 페이지로 돌아가려던 손을 멈췄다. 실수하면 전부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습관이었다. 유나가 오른쪽 아래 표를 가리켰다.“여기까지는 들었어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요.”이서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여섯 계약을 대조하며 무엇을 잘못 의심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재사용 조항을 어떻게 분리했는지, 담당자가 바뀌어도 검토가 이어지려면 어떤 항목이 필요한지 설명했다.완벽한 답은 아니었다. 팀장은 실제 인력이 감당할 수 없는 확인 절차는 줄이라고 지적했다. 유나는 자료가 늦게 도착할 때 예외 경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서는 처음에는 모든 단계가 중요하다고 반박했지만, 듣다 보니 실제로 일이 멈출 수 있겠다는 걸 알았다.“그럼 위험도가 낮은 항목은 표본으로 확인하고, 변경된 부분은 별도 표시하겠습니다.”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그녀를 천재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신 이번 버전이 전보다 쓸 만하다고 말했다. 이서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유나가 발표실 뒤쪽으로 가서 화면을 봐달라고 했다. 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맨 뒤에 앉았다. 단상에서는 또렷해 보이던 표의 글씨가 여기서는 잘 읽히지 않았다.“내용이 틀린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거네요.”“네. 그래서 질문도 못 할 수 있어요.&rd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제97화. 이름을 먼저 말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발표실에는 열여덟 명이 앉아 있었다.재계의 거물도, 방송사 카메라도 없었다. 실제로 계약서를 받아 검토하는 직원, 현장 자료를 보내는 담당자, 다음 분기에 같은 업무를 맡을 사람들이었다. 이서는 그들의 이름이 적힌 참석표를 보며 조금 긴장했다. 이 사람들은 멋진 말보다 내일 일을 줄여줄 방법을 원할 것이다.세 남자는 맨 앞에 앉지 않았다. 태헌은 이해관계가 있는 승인 건 당사자라 평가에서 빠졌고, 시현과 도하는 회사의 내부 결과 발표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서가 혼자 해보겠다고 말했을 때 셋은 각자 다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정유나가 빔프로젝터를 확인하고 이서에게 리모컨을 건넸다.“마이크는 켜졌어요.”그 작은 말이 도움이 됐다. 이서는 준비된 물컵을 한 모금 마시고 단상 앞으로 갔다.“네메시스 산출물 대조 결과와 개선안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분석 담당 윤이서입니다.”자기 이름을 말하자 목이 조금 풀렸다. 그 이름으로 고친 자료가 화면에 떠 있었다.첫 장에는 성과 숫자 대신 최초 가설이 적혀 있었다. 같은 파일이 발견되면 중복 납품일 수 있다는 의심. 이서는 그 가설이 맞지 않았던 계약부터 설명했다. 재사용이 허용된 항목을 분리하는 데 어떤 조항이 필요했는지 보여주었다.뒤쪽 직원이 손을 들었다.“그럼 중복 파일만으로 경고를 띄우면 실무에서 너무 많이 걸리지 않습니까?”“맞습니다. 그래서 파일 일치와 대가의 중복을 같은 항목으로 묶지 않았습니다.”이서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계약상 의무와 제출 자료, 실제 확인자가 나란히 놓인 표였다. 어느 단계에서 누락이 생겼는지, 누가 추가 확인을 해야 하는지가 보였다.한 직원이 자신의 사례를 들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이전 기록을 찾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제98화. 불을 끄기 전에

저녁 식사는 예상보다 시끄러웠다. 태헌이 결국 꽃을 사왔고, 시현은 이서가 좋아하던 디저트를 골랐다. 도하는 꽃병을 찾다가 너무 큰 주전자를 가져왔다가 핀잔을 들었다.이서는 세 사람이 사온 물건을 하나씩 식탁에 놓았다. 누구 것이 더 마음에 드는지 묻는 눈빛들이 보여 일부러 한 박자 늦게 웃었다.“다 좋아요. 오늘은 순위 안 매겨요.”“오늘만?”태헌이 되물었다. 시현이 웃었고 도하가 물컵을 내려놓았다. 이서는 세 얼굴을 번갈아 봤다. 그들의 불편한 마음을 때로는 재미있어하는 자신도 있었다. 다만 그걸 이용해 상대를 시험하는 대신 말로 받아칠 수 있게 된 것이 달랐다.시현에게 발표 때 받은 질문을 이야기했고, 도하에게는 준비한 결론을 줄였다고 말했다. 태헌은 자신은 중요한 회의에서도 늘 말을 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며 투덜거렸다. 저마다 다른 하루를 가져와 식탁에 놓았다.***식사가 끝난 뒤 이서는 설거지 앞치마를 벗었다. 꽃은 거실 창가에, 보고서는 서재에 두었다. 일의 결과를 침실 안까지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앞치마를 주방 문 옆에 걸고 계단으로 향하자, 태헌이 거실 소파 끝을 두드렸다.“이거 안 보고 가?”그의 손에는 졸업식 때 찍힌 자신의 사진이 있었다. 이서가 보내준 원본 중에서 자기 얼굴이 제일 멀쩡한 것을 골랐다며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시현이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저었다.“그건 상무님 눈 감으신 것 같은데요.”“안 감았어. 햇빛 때문에 그래.”“그게 감은 거죠.”이서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 화면 속 태헌은 눈을 거의 감고 있었고, 꽃다발에 가려진 손만 또렷했다. 이서의 가운 끝을 밟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

제99화. 미뤄둔 선물 세 개

발표가 끝난 주말, 이서는 맡겨둔 자료의 보관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호텔과 사진 유포에 관한 확인 자료는 정해진 창구에 남아 있었다. 자기 손에 있던 물품 가운데 더 보관할 필요가 없는 것부터 정리해도 된다는 설명을 받은 뒤, 작은 상자를 꺼냈다.제일 먼저 커프스링크를 올렸다. 처음 쥐었을 때는 차갑고 무거웠다. 태헌이 숨기고 싶은 시간을 증명하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짝을 잃은 장신구 한 개였다.그가 거실로 내려오자 이서가 손바닥을 펼쳤다.“이거 돌려줄게요.”태헌은 바로 가져가지 않았다.“네가 가지고 있어도 되는데.”“제가 안 가지고 있어도 선배가 한 말은 안 없어져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신구를 받아들고 한동안 살피더니 주머니에 넣었다.“짝은 아직 집에 있다. 둘 다 안 버렸어.”“다시 쓸 거예요?”“언젠가는. 무슨 의미인지 모른 척은 안 하고.”이서는 그 대답을 듣고 더 묻지 않았다. 물건을 돌려주는 방식까지 자신이 지휘할 필요는 없었다.립밤은 오래되어 사용할 수 없었다. 시현이 그것을 보며 조금 난처하게 웃었다. 이서는 확인할 기록이 남아 있는지 다시 대조한 뒤 빈 튜브를 별도로 정리했다.“같은 향은 계속 쓸 거예요?”그녀가 물었다.“이서 씨가 싫으면 바꿀게요.”“그 대답 말고요. 시현 씨는 좋아해요?”“네. 오래 썼어요.”“그럼 쓰세요. 제가 싫을 때는 말할게요.”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향 하나로 사람을 알아보던 때가 있었다. 앞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Read more

제100화. 내가 돌아갈 방

2월 마지막 금요일, 이서는 여섯 달 동안 쓰던 책상을 비웠다.시범 적용 결과가 반영된 마지막 보고서를 넘기고, 새 담당자와 미확인 항목을 확인했다. 서랍에 남아 있던 포스트잇과 충전기를 가방에 넣었다. 정유나는 반쯤 남은 스티커를 보며 처음 자리를 안내하던 날을 떠올렸다.“이건 또 다음 사람한테 남겨요?”“떼다가 더 더러워졌어요.”이서가 웃었다. 유나도 웃다가 그녀를 가볍게 안았다.“이번에는 선배가 먼저 와서 직함 발표해주는 거 아니죠?”“네. 신입 사원이라고 제 입으로 말할 거예요.”이서는 외부 분석 회사의 최종 제안을 받아들였다. 보수만 비교하면 남는 쪽이 나았지만, 여러 기업의 자료를 다루며 다시 배우고 싶었다. 직급은 높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는 남의 회사 규칙과 익숙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배워야 했다.부회장 비서실에서 시작된 자료 조작과 유포 경위는 그동안 회사 조치와 외부 확인을 거쳐 정리되어 갔다. 차진혁은 관련 직책에서 물러났고, 허위로 연결된 채용 이야기는 확인된 날짜와 평가 자료로 바로잡혔다. 모든 복사본을 없앨 수는 없었지만, 같은 주장이 다시 돌아오면 누구에게 어떤 자료로 대응할지 알고 있었다.호텔의 밤과 개인적인 일은 이서가 따로 선택한 창구에서 기록했다. 그 기록을 세 남자의 비밀을 쥐는 무기로 들고 다니지 않았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없애지도 않았다. 상처를 말할 때마다 상대에게 허락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알았다.태헌은 이전의 승인 권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직접 확인해야 할 현장 업무를 맡으며 자기 이름의 결재를 가볍게 하지 않으려 했다. 여전히 화가 빨리 났지만, 화가 난다는 이유로 남에게 손을 뻗지는 않았다.시현은 관리 권한이 제한된 뒤 연구 개발에 집중했다. 자신이 지켜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Read more
PREV
1
...
78910111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