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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누가 나랑 했을까?: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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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조용히 끝내자는 제안

화요일, 차진혁은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서는 회사 면담실을 요청했고, 약속 장소는 결국 외부 업무 라운지로 바뀌었다.***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때였다. 유리 너머로 사람들이 서류 가방을 들고 오갔다. 이서는 자신이 상담을 맡긴 사람에게 장소와 시간을 남겨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 남자는 부르지 않았다.차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권했다. 빌라로 사람을 보낸 경위와 사생활 자료의 전달 경로를 묻는 자리라고 사전에 말했는데, 테이블에는 채용 제안서가 놓여 있었다.“윤이서 씨 같은 인재가 이런 일로 시작부터 상처받는 건 안타깝습니다.”그가 제안서를 밀었다. 관계사 신사업팀의 별도 계약직 자리였다. 지금보다 높은 보수와 새 출발을 강조하는 문장. 이서는 마지막 장까지 넘겼다. 업무 내용은 두 줄뿐이었다.“제가 할 일은 뭔가요?”“그건 실무진이 협의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는 거죠.”“갈등이라고 하신 게 어떤 부분이에요?”“사진과 사생활로 회사가 시끄럽습니다. 본인에게도 좋을 게 없어요.”이서는 제안서를 덮지 않았다. 제시된 금액으로 월세를 몇 달이나 낼 수 있을지 먼저 계산한 자신이 싫었다. 돈이 필요하지 않은 척하면 상대를 더 쉽게 쏘아볼 수 있겠지만, 사실은 필요했다.며칠 전 태헌이 다른 자리를 마련했을 때도 거절했다. 그때는 화부터 났다. 지금은 이 돈이 있으면 자기 방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를 먼저 계산했다. 태헌이 싫어서 거절한 게 아니라면, 같은 질문을 이 사람에게도 해야 했다.“계약서 전체를 먼저 받을 수 있나요? 업무 범위와 종료 조건까지요.”차진혁은 채용 의사만 먼저 밝히면 실무진이 만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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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아무것도 이기지 않은 주말

토요일 오전, 태헌은 이서가 보낸 주소 앞에서 차를 세웠다. 지난 토요일 이서는 민우 집의 책상을 조립하러 갔고, 오늘은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다. 태헌은 그 두 약속 사이에서 괜히 한 주를 더 기다린 기분이었다.커다란 쇼핑몰도 호텔도 아니었다. 오래된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복싱장이었다. 유리창에 붙은 운영 시간이 햇빛에 바래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이서가 운동화 끈을 묶고 있었다.“이런 데 다녀?”“아뇨. 체험 수업 신청했어요. 선배는 해봤죠?”“어릴 때 좀.”태헌은 그 말이 오늘의 데이트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몸집만 떠올렸다는 뜻일까 봐 잠깐 입을 다물었다. 이서가 먼저 웃었다.“싸우는 법 배우러 온 건 아니에요. 요즘 계속 앉아서 남이 보낸 것만 읽으니까 몸이 굳어서요.”코치가 글러브를 건넸다. 태헌은 익숙한 척 손을 넣었다가 끈이 잘못 들어갔다는 지적부터 들었다. 코치는 오래 쉬었으면 처음부터 강하게 치지 말라고 했다. 태헌이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 이서가 그를 봤다.“선배, 오늘은 제가 배우러 온 거예요.”그는 입을 닫았다. 결국 태헌은 가볍게 동작만 맞췄고, 이서가 미트를 쳤다. 박자가 자꾸 늦었다. 이서가 한 번 발을 꼬이자 태헌이 손을 뻗었다.“잡지 말고 미트만 제대로 들어요.”“넘어질까 봐.”“넘어지기 전에 잡으면 제가 균형을 못 배우잖아요.”코치가 웃으며 두 사람의 위치를 바꿔주었다. 태헌은 오늘도 자신이 지켜주는 쪽이라고 생각하고 왔다가, 잘못된 높이로 미트를 들고 있다는 지적부터 받았다.한 시간 뒤 두 사람은 편의점 앞에 나란히 앉았다. 이서의 얼굴은 운동 때문에 붉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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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지우지 않은 접속 기록

월요일 오전, 학교에서 회신한 조회 기록이 도착했다.시현이 앞서 제출한 목록에는 빠진 줄이 하나 있었다. 학교가 보관한 기록과 맞춰보자 그 빈칸이 드러났다. 이번 보완 목록에서는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학과 행사 자료를 정리하던 계정으로 이서의 연락처와 일정 파일을 연 날짜. 프로젝트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 정보를 확인한 시각. 그때마다 그는 필요한 연락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연락을 하지 않은 날에도 파일을 열었다.키보드 위에 놓인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새 파일로 옮기면 한 줄을 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보완 목록을 자신이 정리한다는 점도 그를 유혹했다. 그러나 원기록은 이미 별도 창구에도 전달돼 있었다. 감출 수 없다는 사실보다 감추고 싶었다는 생각이 더 불편했다.문밖에서 이서가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들어가도 돼요?”시현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잠시 뒤 문을 열었다. 이서는 화면을 보려 하지 않고 컵만 건넸다.“위에서 만든 차예요. 커피는 그만 마셔요. 손 떨리잖아요.”그는 컵을 받았다. 손이 떨리는 이유를 그녀가 커피 탓으로 생각하게 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서가 돌아서는 순간 그가 불렀다.“학교 회신하고 맞춰보니 제가 앞서 낸 내역에 누락이 있어요. 보완해서 낼 겁니다.”이서가 멈췄다. 화면에는 파일 이름과 시각만 있었다. 내용 자체는 별도 확인을 받기 전까지 열지 않았다.“다른 사람 기록 찾다가 나온 거예요?”“아니요. 제 설명부터 대조했어요.”그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 전 한 줄을 빼고 싶었다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서는 화면 앞에 앉지 않은 채 목록의 제목만 보았다.“회사에 내는 것과 제게 알려줘야 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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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교수실의 다른 의자

화요일, 약속한 면담 시간이 됐다.강도하는 자기 연구실에서 손님 의자에 앉았다.맞은편에는 학과 동료와 검토 담당자가 있었다. 익숙한 책상은 오늘 그의 자리가 아니었다. 자문료와 평가 업무가 겹친 경위, 학생과의 관계에서 지도 권한이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를 확인하는 첫 면담이었다.창가에는 아직 지난 학기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도하는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그 종이에 이서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편했다. 그녀에게 했던 심야 호출은 공식 시간표 밖에 있었다.“논문 수정 요청을 밤늦게 한 이유가 있습니까?”도하는 준비한 설명을 넘겼다. 다른 일정 때문에 그랬다는 문장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한 문장으로 밤에 와야 한다고 여긴 태도까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제 일정에 맞추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고 알렸습니까?”“명확히 알리지 않았습니다.”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학생에게 모호하게 쓰지 말라고 지적하던 자신이,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는 모호한 말을 쓰고 있었다.호텔의 사적인 일은 이서가 정한 범위와 별도 창구에서 다루기로 했다. 그는 그녀를 대신해 기억을 단정하지 않았고, 나중의 관계로 당시 행동을 설명하지 않았다. 자신의 진술에서 확실한 부분과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나누었다.도하가 제출한 서류에는 담당 평가와 회사 자문 업무에서 우선 빠지겠다는 요청도 들어 있었다. 모든 연구를 그만두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다. 필요한 자료를 남기고, 맡던 일을 인계하고, 다른 사람이 검토할 수 있는 상태로 두는 일이 먼저였다.면담이 끝난 뒤 동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학생이 요구한 겁니까?”&ldquo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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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모르는 취향 하나

약속은 하루 미뤄졌다. 시현이 화요일 연구회의가 길어진다고 연락했고, 이서는 수요일 오후에 보자고 했다. 괜찮다고 답할 때는 정말 괜찮았다. 도서관 앞 카페에서 혼자 10분을 기다릴 때는 조금 심술이 났다.그는 뛰어 들어왔다. 안경이 비뚤어져 있었고 가방 지퍼도 열려 있었다.“늦어서 미안해요.”이서는 시현의 컵을 자기 쪽에서 밀어주었다. 먼저 주문한 민트 음료였다. 그가 빨대를 들었다가 아주 잠깐 멈췄다.“그거 안 좋아해요?”“제가 이런 건 잘 못 마셔요.”“민트향 좋아하시잖아요.”“립밤하고 음료는 다르죠.”이서는 컵을 봤다. 그렇게 오래 관찰당했다고 화내던 자신도, 그의 취향을 아는 것처럼 주문하고 있었다. 시현이 마시겠다고 하자 그녀가 컵을 가져왔다.“제가 먹을게요. 원하시는 거 시켜요.”그가 평범한 라테를 주문했다. 돌아와 앉았을 때 이서가 물었다.“제 전화 안 기다렸어요?”시현은 가방을 닫다 그녀를 보았다.“기다렸죠. 그런데 회의도 해야 했어요.”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 이서는 손가락으로 컵 표면의 물을 닦았다. 늘 자신이 연락하면 곧바로 답하던 사람이라 그 시간이 당연했던 모양이었다.“제가 기다리느라 좀 심술 났네요. 미안해요.”“늦은 건 제가 잘못했어요.”“그거랑 별개로요.”시현이 웃었다. 이서는 왜 웃느냐고 물었다. 그가 늦으면 그녀가 기다려준다는 사실이 아직 낯설다고 했다. 이서는 더 심술을 낼 수 없어 음료를 마셨다. 너무 달았다. 아는 척한 값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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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도하 씨라고 부를 때

금요일, 가을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도하는 한남동 집에 들러 학교에서 가져온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기 집으로 옮길 상자 하나와 이서에게 빌려줄 책을 잠깐 서재에 놓은 참이었다. 연구실 물건을 전부 빼는 것은 아니었다. 당분간 집에서 검토할 자료와 넘겨줄 자료를 나누는 중이었다.이서는 문턱에 기대어 책등을 보았다. 학생 때는 도하의 서가에 꽂힌 책들이 전부 그를 거대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오늘은 같은 책을 상자에 넣다가 허리를 펴는 한 남자가 보였다.“무거워요?”“생각보다.”그가 답했다. 이서는 상자를 들지 않고 옆으로 밀어 공간을 만들었다. 혼자 옮기려다 책 두 권을 떨어뜨린 도하가 입술을 다물었다. 그녀는 주워주며 웃었다.“아는 척만 잘하시는 줄 알았는데, 힘센 척도 하시네요.”“오늘은 둘 다 들켰구나.”조용한 농담에 이서가 잠깐 그를 봤다. 도하는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고 다시 책을 넣었다. 자신이 괜찮아 보이면 그녀가 편해질 거라고 생각하던 습관도 쉽게 없어지지는 않았다.***정리를 마친 뒤 서재 창을 닫았다. 빗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이서는 소파에 앉아 자기 논문 표지를 만졌다. 학교에서 서류를 받아온 뒤부터 틈만 나면 꺼내 보는 책이었다.“제 글을 읽을 때 교수님 목소리가 들려요.”“좋은 뜻은 아닐 것 같구나.”“좋을 때도 있고, 화날 때도 있어요.”도하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이서는 표지를 덮었다.“그걸 전부 다른 기억으로 바꾸려고 하진 않을 거예요. 대신 새로운 기억은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그가 그녀 쪽으로 돌아섰다.“내가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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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두 번 전달된 지시

회수 업체 담당자는 작은 종이 가방을 들고 왔다. 이름을 소개한 뒤에도 좀처럼 앉지 못했다. 이서는 수경이 권한 자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태헌과 시현, 도하는 참석하지 않았다.제주 숙소 앞에서 만났던 박 대리였다. 명함을 건네며 동료를 기다리던 얼굴이 이제는 자꾸 종이 가방 쪽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쓰던 업무용 휴대전화는 별도 확인을 위해 제출했고, 오늘 가져온 것은 당시 받은 메일 출력본과 자기 업무 수첩이라고 했다.“빌라에서 동료가 문을 밀 때 제가 제대로 말리지 못했습니다. 가방을 잡은 일도 그 자리에서 멈추게 했어야 했고요.”그가 먼저 말했다.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괜찮다고 답하지 않았다. 박 대리는 잠깐 입술을 적신 뒤 말을 이었다.“장비 반출이 지연되면 제가 책임지는 줄 알았습니다. 현장에 가기 전 받은 지시서에는 회수 대상이 확정돼 있다고 돼 있었고요.”수경이 출력본을 펼쳤다. 최초 전달 메일에는 ‘현장 확인 후 협의’라고 적혀 있었다. 재전달본에서는 ‘확인 후 협의’가 사라져 있었다. 처음 첨부에 있던 자산 번호 칸도 재전달본에서는 빠져 있었다. 박 대리는 다른 장비로 바뀐 줄 알고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이서는 손에 든 펜을 내려놓았다. 누군가의 사정을 듣다 보면 자신이 무서웠던 일이 사소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말을 막아서는 안 됐다.“그 차이가 있는데도 왜 두 번째 지시만 따르셨어요?”“재전달 메일이 더 높은 부서에서 와서요.”박 대리가 발신 주소를 가리켰다. 차진혁의 비서실에서 쓰는 업무 계정이었다. 메일 한 통으로 모든 지시를 부회장이 직접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명단과 지시서가 어느 부서에서 다시 나왔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수경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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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기다리라는 말 대신

그날 밤 이서는 루프탑의 작은 난간 옆에 서 있었다. 바람이 차가워 카디건 소매를 손등까지 내렸다. 집 안의 불빛은 밝았다. 태헌과 시현은 각각 자기 일을 하고 있었고, 도하는 저녁에 잠깐 들렀다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수경에게 받은 내용을 모두 공유한 뒤였다. 누구도 당장 비서실로 뛰어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건의 실마리가 잡힌 날, 이서는 오히려 다른 일이 두려워졌다. 이 일이 끝나면 네 사람은 왜 같은 집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태헌이 가장 먼저 올라왔다. 손에는 담요가 있었다.“춥잖아.”“조금요.”그가 어깨에 담요를 둘러주었다. 이서는 끝을 쥐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시현과 도하도 뒤이어 올라왔다. 모두 따로 연락해서 부른 사람들이었다.“일 얘기는 끝난 거 아니었어?”태헌이 물었다.“네. 그래서 다른 이야기 하려고요.”이서는 난간에서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세 남자도 각각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가운데 선 자신에게 셋이 매달리는 모양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제주에서 세 분한테 마음이 있다고 말했죠. 지금은 좀 더 분명해졌어요. 저는 세 사람을 다 좋아해요.”누군가가 숨을 들이켰다. 이서는 그 반응에 말이 멈출 것 같아 서둘러 덧붙였다.“그때는 제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했는데, 지금은 각자 만나면서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요. 셋 중 마지막 한 명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뜻은 아니에요. 똑같이 좋아한다는 뜻도 아니고요.”태헌의 턱이 굳었다. 시현은 안경을 벗었고, 도하는 이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그 말을 지금 하는 이유는?”도하가 물었다.“일이 끝나면 우리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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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다시 찍는 출입증

10월, 이서의 출입 권한이 일부 복구됐다. 이름표는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자료를 검토하는 담당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이었다.33층 분석팀 사무 공간 끝에 자리가 다시 마련돼 있었다. 유나 옆에 있던 책상은 다른 직원이 쓰고 있었고, 이서의 서류받침은 창가 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정유나가 빈 서랍을 열어 보여주었다. 앞사람이 쓰던 스티커가 반쯤 남아 있었다.“떼다가 자국 남을까 봐 놔뒀어요.”“괜찮아요. 제가 정리할게요.”이서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예전 자리에는 다른 사람의 컵과 서류가 놓여 있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사무실은 계속 움직였다. 이서는 잠깐 목이 뻣뻣해졌지만, 새 자리에 두고 갈 물건부터 꺼냈다.수경이 업무 복구 확인서를 가져왔다. 재검토가 끝난 제안서 평가와 계약 범위를 기준으로, 남은 기간에는 산출물 대조와 개선안 작성에 참여하도록 했다. 승인과 인사 권한은 없었고, 결과 보고는 기존 팀장과 공동으로 맡았다.“직무는 기존대로 분석 담당입니다. 작성 책임자와 검토자를 구분하는 항목이 추가됐고요. 계약 보수는 기존 범위를 확인해서 유지합니다.”이서는 문서를 읽었다. 인터넷에서 잘못 불린 이름 대신 자신이 실제로 할 일이 구체적으로 남았다.“제가 작성한 보고서에 제 이름은 들어가나요?”“네. 실제 작성자와 검토자는 구분해서 기재할 겁니다.”그 대답을 듣고 이서는 서명했다. 잠깐 주저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명한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책상 서랍에는 담당자가 이전 책상에서 옮겨둔 포스트잇 두 장이 남아 있었다. 이서는 자기 글씨를 알아보고 잠깐 손을 멈췄다. 첫 출근 때 외우려고 적었던 폴더 경로였다. 이제는 자기가 만든 표를 다른 직원이 찾고 있었다.유나가 점심을 같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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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발신함에 남은 이름

목요일 오후, 비서실의 임성준이 면담실에 들어왔다.이서는 그의 얼굴을 알아봤다. 졸업식장에서 자료를 돌려달라던 사람이었다. 차진혁에게 전달할 서류를 받아가던 모습도 기억났다. 자신을 겁주던 사람이 낯익은 얼굴로 들어오자, 봉투를 발견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성준은 의자에 앉자마자 물을 마셨다. 수경이 제출 자료를 확인했다. 업무 메일 발신함 일부와 메신저 내보내기 파일, 새벽의 이동 내역이 있었다.“자택에 봉투를 놓은 사람은 저입니다.”그가 말했다. 이서는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크게 놀랄 것 같았는데 목 안쪽만 뻣뻣해졌다.“왜 새벽에 오셨죠?”“회사 일 끝나고 늦게 전달했습니다. 직접 만나지 말고 문에 넣어두라고 해서…….”“지시를 받았다는 말로 끝내지 마세요. 제가 그걸 보고 뭘 느낄지 생각은 했나요?”성준이 고개를 숙였다.“신경 쓰일 거라는 건 알았습니다.”이서는 그 대답을 기다렸다. 몰랐다고만 하면 자신이 밤새 느낀 두려움까지 혼자 만든 일이 될 것 같았다.성준이 제출한 메신저에는 이서가 회사 연락처를 바로잡도록 압박하라는 말이 있었다. 자택 주소를 이미 안다는 사실을 알리면 업무 복귀에 신중해질 거라는 취지였다. 발신자는 차진혁의 업무 계정이었다. 전후 문맥과 실제 발신 기기는 따로 확인해야 했지만, 성준은 해당 지시를 받았다고 인정했다.수경이 그보다 앞선 전달 내역을 펼쳤다. 졸업 전야 연회장의 ‘자료 대기실’ 안내를 보낸 계정도 성준의 것이었다. 이서는 민우의 사진과 행사 데스크의 메시지 시각을 나란히 놓았다. 안내 문자가 먼저였고, 객실 번호 표지는 그 뒤였다.“제 방을 자료실이라고 누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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