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누가 나랑 했을까? / Chapter 61 - Chapter 70

All Chapters of 누가 나랑 했을까?: Chapter 61 - Chapter 70

115 Chapters

제61화. 호텔에 가기 전의 나

일요일 아침, 거실에는 커피 대신 따뜻한 차가 놓였다. 이서는 숙박 바우처 사본을 봉투에서 꺼내 식탁 중앙에 놓았다. 태헌이 먼저 알아보았다.“지배인이 말한 게 이거였네.”그는 처음 듣는다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결제한 것이 추가 비용뿐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현도 어젯밤 확인한 도면 옆에 예약 내역을 놓았다. 예약자가 누구인지보다, 이서가 언제부터 무엇을 준비했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월요일 회의에 사생활을 해명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제출한 일의 순서를 바로잡으러 간다는 것을 먼저 정하고 싶었다.바우처 위에는 사업분석 공모전의 이름과 수상자 윤이서가 적혀 있었다. 석 달 전 시상식에서 받은 부상 중 하나였다. 이서는 그때의 안내 메일도 함께 보여주었다. 사용 기한은 여름의 끝까지였다.“그냥 팔 생각도 했어요. 양도 안 된다고 해서 못 했지만.”태헌이 그녀를 봤다. 이서는 조금 웃었다.“숙박권보다 현금이 좋았거든요.”그때는 숙박권으로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는지부터 고민했다. 월세와 다음 달 생활비를 계산하며 호텔 한밤의 가격을 보고 기가 막혔었다. 그래도 졸업식 전날 하루는 제대로 자고 일어나고 싶었다. 그 정도 사치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수상 안내 메일 아래에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는지 묻는 답장이 남아 있었다. 이서는 그날 오후 아르바이트 대타를 구하느라 늦게 회신했다. 화면의 짧은 사과를 보자 그때의 조급함이 떠올랐다. 태헌이 메일을 읽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행사장에서 축하해주었던 몇 분 앞뒤로, 그녀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하루가 더 길게 있었을 것이다.예약일은 3개월 전이었고 체크인은 8월 28일 오후 6시였다. 그녀는 실투숙객 이름이 자기라는 것을 확인했다. 당일 행사 객실 목록에 연동되면서 태헌의 카드로 승인된 추가 비용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Read more

제62화. 부른 이유

“자료 얘기만 하려고 부른 건 아니었어요.”이서는 컵을 양손으로 잡았다. 세 남자의 시선이 한꺼번에 와서, 바로 다음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컵 안에는 마실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그건 알고 있어.”태헌이 먼저 말했다. 시현이 그를 봤다.“본인한테 온 말만 알고 계시겠죠.”“너한테는 무슨 말이 왔는데.”이서가 컵을 내려놓았다. 작은 소리에 두 사람의 입이 닫혔다.“제가 얘기할게요. 또 두 분끼리 맞혀보지 말고요.”태헌은 미안하다고 했다. 이서는 그 짧은 말을 받고 숨을 골랐다. 그날 저녁 태헌에게는 채용 이야기를 사적인 자리에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었으면 로비에서 만나도 됐다. 함께 축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선배가 졸업식에 온다고 했을 때 좋았어요. 바빠서 못 올 줄 알았거든요.”태헌의 얼굴이 바뀌었다. 금방 기뻐하려다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참는 표정이었다. 이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시현 씨한테도 할 말이 있었어요. 학교 밖에서도 연락할 건지 물어보고 싶었고요.”시현이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조금 우스운 동작이었다. 늘 자기가 먼저 상대의 마음을 읽어낸 것처럼 굴던 사람이 이번에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졸업하면 제가 연락 안 할 줄 알았어요?”“모르죠. 조교실에 볼일 없으면 무슨 핑계로 연락해야 하나 싶었으니까.”“핑계 없어도 됩니다.”“그 말은 이제 알겠고요.”이서는 조금 웃었다. 그 말 뒤에 숨어서 다른 질문을 피하던 시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Read more

제63화. 돌려줄 것과 맡길 것

정오가 가까워지자 이서는 식탁 위의 자료를 두 묶음으로 나눴다. 호텔의 개인 기록과 회사의 실사 자료였다. 냅킨과 립밤, 커프스링크는 다시 파우치에 넣었다. 시현이 보관했던 개인 일정의 내역은 업무 목록과 떨어뜨려놓았다.태헌이 가방에서 얇은 문서철을 꺼냈다. 프로젝트가 중단돼도 다른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옮겨갈 팀의 이름과 예상 보수까지 적혀 있었다. 이서에게 의사를 묻기 전에 벌써 사람을 만난 모양이었다.“이런 건 필요 없어요.”이서가 돌려주자 태헌의 얼굴이 굳었다.“말로만 하면 못 믿을 거잖아.”“그래서 다른 자리로 가면 해결돼요? 제가 도망간 것처럼 보일 텐데요.”“그 뜻 아니야.”“알아요. 그런데 저는 그 종이 받고 싶지 않아요.”태헌은 서류를 다시 넣지 못했다. 이서는 지금 그에게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는 모욕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을 꺼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마련한 자리를 받는 것으로 지금 맡은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태헌은 오래 기다린 뒤 문서철을 닫았다.시현은 저장 장치 목록을 내놓았다. 이서는 실제로 확인한 것과 아직 확인이 필요한 것을 표시했다. 자신의 사생활이 담긴 자료를 보관해야 할 이유와 삭제할 시점은 독립적으로 상담한 뒤 정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시현이 마음대로 열어보거나 복사하지 않도록 물건의 보관부터 분리했다. 필요한 확인은 자신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하기로 했다.“저를 못 믿으시는 건 당연해요.”시현이 말했다. 이서는 고개를 들었다.“당연하다고만 하지 말고, 앞으로 믿을 수 있게 행동하세요. 죄송하다고 미리 말해두고 또 같은 일 하지 말고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Read more

제64화.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

오후 2시 30분,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서는 잠깐 졸았다. 고개가 창에 부딪히려 하자 태헌이 접은 재킷을 사이에 끼웠다. 이서는 눈을 뜨고 괜찮다고 했다. 태헌은 다시 가져가려다가 그녀가 고개를 기대자 그대로 두었다.시현은 시설 담당자에게 자료 인수 확인을 마쳤다고 보냈다. 도하는 월요일 오전 일정의 시간을 확인했다. 귀환을 축하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야 할 설명이 조금 더 생긴 출장이었다.비행기에 오르기 전 이서는 개인 가방을 직접 들었다. 태헌에게는 캐리어를 맡겼다. 시현은 업무용 장비 목록을 다시 확인했고, 도하는 찢어진 서류 봉투를 새것으로 바꿨다. 누구도 그녀의 모든 짐을 대신 들겠다고 하지 않았다.이륙 뒤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져도 네 사람은 처음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서는 창가에 앉아 바다를 보았다. 출발할 때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너무 많이 상상했었다. 실제로 가져가는 기억은 다퉜던 소리와 종이의 모서리, 새벽에 나눠 먹은 크래커 같은 것들이었다.“서울 가서 어디로 갈 거야.”태헌이 물었다.“집에 가야죠. 짐도 풀고.”“한남동 집은 비어 있어. 방 네 개고. 이번 일 정리할 동안만 있어도 돼.”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현이 보안이 잘된 곳이라고 덧붙이려는 것을 도하가 눈짓으로 막았다. 이서는 둘의 시선을 보고 물었다.“셋 다 거기 있어요?”“필요하면.”태헌의 대답은 짧았다. 이서는 자신의 작은 방을 떠올렸다.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는 아니었다. 회사에 주소를 냈고, 택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잘 아는 방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른 사람의 넓은 집에 머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제 집 계약은 그대로 둘 거예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Read more

제65화. 낯선 집의 저녁 메뉴

한남동의 더 헤리티지는 차창 밖으로 볼 때보다 안이 더 넓었다. 이서는 현관에서 한동안 신발을 벗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온 뒤 살았던 방들을 모두 합쳐도 거실보다 작을 것 같았다.태헌이 가방을 내려놓았다.“원래 가족 손님들 쓰던 집이야. 비어 있었어.”“비어 있는 집이 이만해요?”“큰 게 불편하면 다른 데 알아볼게.”이서는 고개를 저었다. 불편한 것은 넓이보다 그것을 너무 쉽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작은 집을 다시 찾아달라고 요구하면 그 쉬움에 또 기대는 셈이었다. 우선 방부터 보고 싶다고 했다.2층 창가 방에서 한강이 보였다. 욕실과 작은 책상이 딸려 있었다. 이서는 문을 닫아보았다. 안에서 잠글 수 있었고, 태헌이 건넨 키는 두 개였다. 비상 관리키를 어떻게 보관하는지도 확인했다. 관리실 확인 없이 누가 개인적으로 열지 못하게 해달라고 말하자 태헌이 담당자와 통화했다. 이서는통화가 끝난 뒤 받은 안내문을 직접 읽었다. 손잡이 옆의 잠금장치도 몇 번 돌려봤다. 넓고 좋은 집이라는 말보다 그 동작이 더 마음을 놓이게 했다.시현은 집의 설비 목록을 펼쳤다. 현관과 외곽을 비추는 카메라가 있었고, 실내에는 설치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서는 설명서보다 실제 위치를 보고 싶다고 했다. 시현은 집 안을 같이 돌았다. 자신이 모든 보안을 책임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작업할 장비는 어디 둬요?”“지하에 빈 방이 있어요. 업무 자료 확인할 때만 쓰면 됩니다.”“제 방 기기는 만지지 마세요. 고장 나면 제가 부탁할게요.”시현은 알겠다고 했다. 명확하게 불편한 표정이었다. 이서는 그 표정까지 없애줄 의무는 없다고 생각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Read more

제66화. 세 명의 면접관

침대는 편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이서는 휴대전화에 써둔 첫 문장을 네 번째로 지웠다. 억울하다고 시작하면 변명처럼 보였다. 오해라고 시작하면 누가 뭘 오해했는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한 줄을 고칠 때마다 다음 줄이 더 길어졌다.결국 서류를 들고 내려갔다. 태헌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현은 식탁에서 충전선을 정리하고 있었다.“안 자요?”이서가 묻자 태헌이 자기 옆자리를 두드렸다. 그녀는 식탁에 앉았다. 태헌은 머쓱하게 손을 내리고 따라왔다.“내일 질문하는 사람 역할 좀 해주세요. 해명하는 연습 말고, 제 일 설명하는 연습이요.”“못되게 물어봐도 돼?”“원래 잘하시잖아요.”시현이 웃었다. 태헌이 그를 흘겨봤지만 오늘은 받아치지 않았다. 이서는 노트북을 열고 자기 소개부터 시작했다. 공모전 분석이 여섯 개 계약의 자료 검토로 이어진 경위를 말하는데 태헌이 손을 들었다.“그 여섯 개를 네가 고른 거야?”“아뇨. 제가 계약을 고른 건 아니고요.”“그럼 왜 여섯 개인데.”이서는 입을 다물었다. 누가 준 목록인지 알고 있었지만 왜 그 여섯 개만 들어갔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시현이 원본 목록의 작성자를 찾아 옆에 표시했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나 발견했다.“이거 모르고 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나 괜찮지.”태헌이 말하자 이서가 웃었다.“질문하는 쪽은 아주 괜찮네요.”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현이 중간에서 멈췄다. 화면의 두 표가 같은 자료라고 판단한 근거가 제목인지 내용인지 물었다. 이서는 표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Read more

제67화. 34층에서 받은 질문

회의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긴 테이블 양쪽에 담당자들이 앉아 있었고, 이서의 자리는 문과 가까웠다. 상석에 이름표가 놓일 것이라고 기대한 적은 없었지만, 자료를 내려놓는 손이 조금 굳었다.김수경이 들어오며 참석자를 확인했다. 이번 회의는 실사 자료의 인수 경위와 회수 요청, 프로젝트 운영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 외의 사적인 문제는 불필요하게 확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서는 노트북을 열었다.차진혁은 조금 늦게 들어왔다. 그는 태헌에게만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이서에게는 수고했다는 말을 했다. 마치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온 신입에게 건네는 인사 같았다.“다들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더군요. 장비가 밖에 오래 있으니 회수하자는 실무 연락이었을 뿐인데.”이서는 받은 회수 목록을 화면에 띄웠다. 자산 번호가 없는 부분과 실제 노트북 모델명이 다른 부분을 짚었다. 도하의 서명이 있는 칸은 도하가 직접 설명했다. 부속 양식의 서명을 이번 회수 요청에 붙인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서명 그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목적에 승인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이 용도의 요청에 승인한 적 없습니다.”차진혁은 담당 직원의 착오일 수 있다고 했다. 김수경이 원본 생성 경위를 확인하겠다고 하자 곧장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그 전에 프로젝트 책임자 선정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력 없는 졸업생에게 본부장이라는 호칭을 준 것도 이례적이었죠.”이서는 숨을 고르고 계약서를 펼쳤다. 호칭과 실제 권한, 계약 기간을 설명했다. 인사와 구매를 결정할 권한은 없었으며 맡은 일은 자료 분석이었다. 첫 출근 때 잘못된 호칭은 이미 정정했다고 말했다. 태헌이 자신이 행사장에서 잘못 소개했다고 확인했다. 인사 담당자는 계약서의 분석 담당이라는 항목에 표시했다.태헌이 옆에서 말을 보태려 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Read more

제68화. 잠시 멈춘 출입카드

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태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게 말이 돼? 회수 지시 확인하러 왔는데 왜 네 일을 빼.”이서는 대답하지 않고 벽 쪽으로 걸었다. 다리가 조금 풀려 있었다. 김수경이 뒤따라 나와 작은 면담실을 가리켰다. 이서는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다. 세 남자의 표정이 동시에 바뀌었지만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면담실의 의자는 낮았다. 이서는 가방을 무릎에 놓고 앉았다. 김수경은 아직 최종 결정이 아닌 항목과 바로 적용되는 항목을 구분해 설명했다. 외부 장비와 일부 사업 폴더의 접근은 잠시 제한하고, 이서의 분석 자료와 계약 상태는 별도로 검토할 예정이었다. 이미 한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그런데 결과는 제가 기다려야 하네요.”이서가 말했다. 목소리에 날이 섰다. 김수경은 그것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그렇죠. 불편한 기간이 생깁니다. 그래서 기한과 담당자를 남겨드리려고 해요.”그녀는 이서가 받은 6개월 계약서에 검토 일정과 문의할 사람을 적어주었다. 이서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막연히 기다리라는 말보다 나았지만, 그 종이를 들고 나가는 자신이 작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제 자료는 계속 쓰면서 저는 빠지는 건가요.”“작성자와 기여는 남습니다. 사용 범위도 확인할 거고요. 원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의견을 주세요.”김수경은 대답하지 못한 항목에는 확인 후 회신하겠다고 적었다. 이서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그녀가 자신의 편이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을 경계했다. 업무를 하는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유리하지 않은 질문도 할 수 있었다.면담실 문을 열기 전 이서는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접근 제한 기간에 제출할 업무가 없다면 대기만 해야 하는지, 공개 자료를 정리해도 되는지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Read more

제69화. 내 편이라는 말의 값

그날 저녁 태헌에게 전화가 왔다. 이서는 공용 거실에서 자기 계약서를 읽고 있었다. 태헌은 통화를 짧게 끝내려고 했지만, 상대의 한마디에 얼굴이 굳었다.“그냥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이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일 때문에 잡은 숙소도 아니고.”전화기 밖으로 들린 목소리였다. 태헌은 이서가 들었음을 알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지는 않았다.“네가 함부로 설명할 일 아니야.”그가 통화를 끝내고 돌아왔다. 그의 개인적인 지인이 사내 소문이 커지기 전에 관계를 정리해 말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는 설명이었다. 회사에서 정한 대응은 아니었다. 이서는 종이를 내려놓았다.“무슨 관계라고요.”“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면 지원받은 것도 이상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고…….”말끝이 흐려졌다. 태헌 자신도 끝까지 말하고 나서야 이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이서는 한참 그를 봤다.“저를 선배 애인으로 만들면 제 제안서가 갑자기 더 맞아져요?”“그 뜻은 아니지.”“그럼 왜 제 일이 아니라 관계로 답해요.”태헌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평소라면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화를 냈을 얼굴이었다. 이서는 그가 어떤 말을 고르는지 기다렸다. 시현은 지하 작업실에 있었고 도하는 자료를 정리하러 들렀다가 조금 전에 돌아갔다. 그들을 불러 셋이서 태헌을 몰아세우고 싶지는 않았다.“솔직히, 나한테는 편한 설명이야.”태헌이 말했다.“네가 내 사람이라고 말하면 저 두 사람도 뒤로 물러나야 할 테니까. 네가 욕 안 먹는다는 핑계로 내가 편해지는 거지.”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Read more

제70화. 기다린 사람의 저녁

수요일 오후, 이서는 자기 집에 들렀다. 전날 혼자 상담하고 받아온 종이를 서랍 안쪽에 넣었다. 지금 결정한 것과 더 생각할 것을 구분해두었지만, 종이를 접는다고 마음까지 정리되지는 않았다.빨래를 걷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태헌의 집에서는 잘 모르겠던 세제 냄새가 났다. 자기가 쓰는 작은 책상 앞에 앉으니 해야 할 일이 훨씬 작고 구체적으로 보였다. 다 쓴 세제를 채우고, 우편함에 쌓인 고지서를 가져왔다. 깜빡거리는 전구도 갈아야 했다. 나중에 같은 것을 살 수 있도록, 스위치를 끄고 전구에 적힌 규격을 확인해두었다.수경에게서 회신이 왔다. 지정된 사본과 공개 자료를 이용한 방법 정리는 계속할 수 있었다. 추가 접근이 제한된 파일은 담당자에게 요청해야 했다. 이서는 답장을 하고 허용된 범위만 따로 표시했다. 기다리는 동안 무엇도 못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휴대전화가 다시 울렸을 때는 태헌이었다.“끝났어?”“뭐가요?”그가 잠깐 조용해졌다.“네 볼일.”“집에 왔어요. 빨래 개고 있어요.”“아.”이서가 웃었다. 그가 상담 내용을 묻고 싶은 건지, 저녁 약속을 잡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선배는 끝났어요?”“응. 아직 회산데.”“그럼 저녁 먹을래요? 밖에서요.”태헌의 대답이 너무 빨랐다.“먹자.”***그가 정한 식당의 주소를 보고 이서는 다른 곳을 보냈다. 골목 안의 작은 덮밥집이었다. 따로 예약할 방도 없고, 들어가면 자리를 안내해주는 직원도 없었다. 먼저 온 사람이 계산대에서 주문하는 곳이었다.태헌은 이미 줄에 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Read more
PREV
1
...
56789
...
1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