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 누가 나랑 했을까? / 챕터 11 - 챕터 14

누가 나랑 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14

14 챕터

제11화: 가져다준다는 말

시현은 민우를 보았다.이서가 먼저 말했다.“민우 앞에서 못 할 얘기면 이유를 말해주세요.”“회사 자료가 섞여 있어서요.”“그럼 자료 내용 빼고, 누가 무슨 부탁을 했는지만요.”민우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휴대전화를 챙겼다. 이서에게 자신은 옆 건물에 있겠다고 했다. 혼자 남기기 불편해서 계속 앉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자리를 떴다.시현은 곧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그렇게 기다리지 말아요. 말할 겁니다.”“네. 기다릴게요.”그는 허탈하게 웃었다.“이서 씨가 가져간 자료를 확인해달라고 했어요. 회사 원본이 섞였는지.”“제 봉투를요?”“네.”이서는 가방 손잡이를 놓았다. 이제야 시현이 원본 파일을 가지고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올라온 이유가 다른 쪽으로 보였다. 제 자료를 돌려주러 온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료를 찾아오라는 부탁까지 받은 사람이었다.“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말하면 안 받으실 것 같았어요.”“제가 제 봉투를 검사받아야 하는 이유부터 몰랐겠죠.”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가 덜 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서는 손에 든 USB를 탁자 위에 놓았다.“그래서 그 안에 뭐가 있었는데요.”“이서 씨의 제안서와 비교표요. 회사 양식으로 된 출력물도 몇 장 있었고.”“마음대로 보셨어요?”“보여달라고 했고, 이서 씨가 펼쳐줬어요.”그의 설명을 따라가려 하자 어렴풋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색 봉투, 탁자에 펼친 종이, 이름이 없어졌다고 자기가 따지던 목소리. 이서는 그 장면이 지금 들은 말 때문에 생긴 것인지, 원래 남아 있던 기억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종이 가져갔어요?”“두 장을 복사했어요. 원본은 가져가지 않았고요.”“복사한 건 누구한테 줬어요?”시현은 그제야 얼굴을 돌렸다.이서는 휴대전화의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36분이었다. 도하와의 약속까지 24분. 시간 때문에 질문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시현이 말했다.“제 장치에 있어요. 임성준 씨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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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발소리

이서는 시현에게 들어온 문과 나간 문을 그려달라고 했다.시현은 조교실에서 종이를 가져와 작은 네모를 그렸다. 현관, 거실, 침실, 안쪽 문. 지도라기보다는 약도가 가까웠다. 이서는 자신이 아침에 나왔던 현관을 짚었다.“여기로 들어왔어요?”“네. 이서 씨가 열어줬어요.”“나갈 때도요?”“반대쪽 문으로요.”이서는 아침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천장 아래로 어두운 나무 모서리가 비쳐 있었다. 시현이 화면을 가까이 보았다.“서재 책장 같은데요.”“들어가봤어요?”“나가면서 지나갔어요. 책상이 있고, 소파도 있었고요.”이서는 침실의 하얀 협탁과 그 어두운 나무를 비교했다. 사진 속 방이 자기 객실의 일부라면, 자신은 두 시 오십칠 분에 침실 밖에 있었던 셈이었다. 태헌이 돌아와 빈 침대를 보았다는 말과 꼭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사진을 닫았다. 시현의 말만으로 서재라고 적지는 않았다. 호텔에서 도면을 받아보면 직접 비교할 수 있었다. 빨리 답을 찾고 싶은 마음 때문에, 또 다른 남자의 설명에 기대고 있었다.객실 안에 출입문이 두 개였다는 사실을 이서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현관과 침실만 생각했는데 안쪽에 다른 문이 있었다. 아침에 찍힌 사진의 나무 모서리가 문득 떠올랐다.“어디로 이어져요?”“서비스 복도요. 안쪽 작은 서재와 연결돼 있어요.”“그걸 어떻게 알았어요?”시현이 펜을 내려놓았다.“행사 준비 자료에 도면이 있었습니다.”그가 새로 보여준 파일은 단순한 객실 번호 목록보다 자세했다. 방의 내부 구조와 자료 반출 동선이 표시돼 있었다. 이서는 화면에서 ‘자료 회수’라는 글자를 읽었다. 자신의 숙박과 아무 상관없는 말이었다.“저를 만나러 왔는데, 나갈 길도 미리 보고 왔네요.”“그렇게 말하면…….”“다른 설명 있어요?”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서는 종이 위의 문을 보았다. 그가 다른 남자를 마주치지 않으려 나갔을 수도 있었다. 자료를 들킨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어느 쪽도 단정하지 않았다.“왜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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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메모를 쓴 사람

도하는 열어둔 문을 닫을지 물었다.이서는 잠깐 생각하고 반쯤만 닫아달라고 했다. 도하는 그대로 두었다. 복도에서 시현이 돌아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서는 그 소리를 듣다가 조금 전 시현이 한 말을 떠올렸다. 익숙한 발소리로 사람을 맞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연구실에는 수정할 논문과 반납할 책이 나란히 쌓여 있었다. 창가의 화분은 한쪽만 말라 있었다. 언제나 완벽하게 정돈돼 보이던 방인데 자세히 보니 손이 가지 않은 곳도 많았다.문 앞에서 학생이 조심스럽게 교수님을 불렀다. 방금 나간 줄 알았다며 학위 케이스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도하는 학생의 이름을 묻고 케이스를 열었다. 누군가 동명이인의 것을 가져간 모양이었다.“학과 사무실에 지금 연락해두겠다. 네가 누구 것인지 찾아다닐 필요 없어.”학생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도하가 괜찮다며 가방을 챙겨주었다. 그 학생이 돌아가고 나자 이서는 탁자 위 다른 케이스를 보았다. 도하는 잘못된 것을 정확히 돌려놓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잘못 준 사람부터 혼내실 줄 알았어요.”이서가 말했다.“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그가 답했다. 이서는 잠깐 웃었다. 원고가 틀렸을 때는 그렇게 엄격하면서, 사람을 돌려보낼 때는 뜻밖에 다정한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그를 한 가지 얼굴로 미워하기가 더 어려웠다.도하가 물을 내밀었다.“아침에 어디 아팠니?”“왜요?”“목소리가 좋지 않았다.”이서는 물컵을 받았다. 오전에는 메모부터 물었던 사람이 이제야 몸을 물었다. 늦게 온 질문이 반갑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진료받고 왔어요. 제가 알아서 확인할 일은 하고 있어요.”도하가 무언가 더 물으려다 그만뒀다. 이서는 그에게 검진 결과를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 묻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파우치에서 냅킨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교수님이 쓰신 거죠?”“그래.”“언제요?”“나오기 전에.”“몇 시였어요?”도하가 안경을 책 위에 내려놓았다. 검은 테가 양장본 표지에 부딪혀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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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아니라고 한 사람

“아니다.”도하의 대답은 작았지만 분명했다.이서는 기다렸다. 그가 다른 말을 붙일 것 같았다. 어젯밤의 자신이 착각한 것인지, 누군가와 다른 일을 한 것인지. 하지만 도하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물컵만 자기 쪽으로 당겼다.“세 분 다 아니라고 하네요.”이서가 말했다.도하의 눈이 다시 올라왔다.“모두에게 물었니?”“누구한테는 묻고 누구한테는 안 물어야 해요?”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서는 막막해졌다. 세 남자를 차례로 만나면 적어도 하나의 대답은 얻을 것 같았다. 대답을 셋이나 얻었는데 아침보다 빈칸이 더 넓어졌다.“교수님이 오셨을 때 저는 어디 있었어요?”“침실 쪽에 있었다.”“교수님은 어디에 계셨어요?”“처음에는 거실에. 네가 자료를 보여주겠다고 해서 탁자 앞에 앉았다.”“그 뒤에는요?”도하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잠들게 두고 나왔다.”이서는 질문을 고쳤다.“제 옆에 계속 계셨다는 뜻이에요?”“방 안에는 있었어.”같은 의미인 것 같다가도 조금씩 달라졌다. 교수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처럼 자꾸 재질문하게 됐다. 이서는 그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제가 어려운 질문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도하가 고개를 들었다. 이서의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울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잘못 알아들어서 이런 아침이 생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싫었다.“네가 뭘 기억하는지 모르니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제가 기억하는 데 맞춰서 대답하시면 안 되잖아요.”도하의 얼굴이 굳었다. 이서는 자신의 말이 너무 날카로웠는지 생각했다가 그대로 두었다. 답을 맞춰달라는 질문을 한 것이 아니었다.반쯤 열린 문밖으로 학생 둘이 지나갔다. 도하를 보더니 인사하려다가 이서가 있는 것을 보고 소리를 낮췄다. 도하는 문을 닫지 않았다. 이서는 그 때문에 조금 더 차분해질 수 있었다. 지금 이 방에는 질문하는 자신과 답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도하가 천천히 말했다.“2시 55분쯤 들어갔다. 네가 자리를 옮긴 뒤에도 방에 있었고,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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