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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누가 나랑 했을까?: Chapter 11 - Chapter 20

115 Chapters

제11화: 가져다준다는 말

시현은 민우를 보았다.이서가 먼저 말했다.“민우 앞에서 못 할 얘기면 이유를 말해주세요.”“회사 자료가 섞여 있어서요.”“그럼 자료 내용 빼고, 누가 무슨 부탁을 했는지만요.”민우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휴대전화를 챙겼다. 이서에게 자신은 옆 건물에 있겠다고 했다. 혼자 남기기 불편해서 계속 앉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자리를 떴다.시현은 곧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그렇게 기다리지 말아요. 말할 겁니다.”“네. 기다릴게요.”그는 허탈하게 웃었다.“이서 씨가 가져간 자료를 확인해달라고 했어요. 회사 원본이 섞였는지.”“제 봉투를요?”“네.”이서는 가방 손잡이를 놓았다. 이제야 시현이 원본 파일을 가지고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올라온 이유가 다른 쪽으로 보였다. 제 자료를 돌려주러 온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료를 찾아오라는 부탁까지 받은 사람이었다.“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말하면 안 받으실 것 같았어요.”“제가 제 봉투를 검사받아야 하는 이유부터 몰랐겠죠.”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가 덜 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서는 손에 든 USB를 탁자 위에 놓았다.“그래서 그 안에 뭐가 있었는데요.”“이서 씨의 제안서와 비교표요. 회사 양식으로 된 출력물도 몇 장 있었고.”“마음대로 보셨어요?”“보여달라고 했고, 이서 씨가 펼쳐줬어요.”그의 설명을 따라가려 하자 어렴풋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색 봉투, 탁자에 펼친 종이, 이름이 없어졌다고 자기가 따지던 목소리. 이서는 그 장면이 지금 들은 말 때문에 생긴 것인지, 원래 남아 있던 기억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종이 가져갔어요?”“두 장을 복사했어요. 원본은 가져가지 않았고요.”“복사한 건 누구한테 줬어요?”시현은 그제야 얼굴을 돌렸다.이서는 휴대전화의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36분이었다. 도하와의 약속까지 24분. 시간 때문에 질문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시현이 말했다.“제 장치에 있어요. 임성준 씨에게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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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발소리

이서는 시현에게 들어온 문과 나간 문을 그려달라고 했다.시현은 조교실에서 종이를 가져와 작은 네모를 그렸다. 현관, 거실, 침실, 안쪽 문. 지도라기보다는 약도가 가까웠다. 이서는 자신이 아침에 나왔던 현관을 짚었다.“여기로 들어왔어요?”“네. 이서 씨가 열어줬어요.”“나갈 때도요?”“반대쪽 문으로요.”이서는 아침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천장 아래로 어두운 나무 모서리가 비쳐 있었다. 시현이 화면을 가까이 보았다.“서재 책장 같은데요.”“들어가봤어요?”“나가면서 지나갔어요. 책상이 있고, 소파도 있었고요.”이서는 침실의 하얀 협탁과 그 어두운 나무를 비교했다. 사진 속 방이 자기 객실의 일부라면, 자신은 두 시 오십칠 분에 침실 밖에 있었던 셈이었다. 태헌이 돌아와 빈 침대를 보았다는 말과 꼭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사진을 닫았다. 시현의 말만으로 서재라고 적지는 않았다. 호텔에서 도면을 받아보면 직접 비교할 수 있었다. 빨리 답을 찾고 싶은 마음 때문에, 또 다른 남자의 설명에 기대고 있었다.객실 안에 출입문이 두 개였다는 사실을 이서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현관과 침실만 생각했는데 안쪽에 다른 문이 있었다. 아침에 찍힌 사진의 나무 모서리가 문득 떠올랐다.“어디로 이어져요?”“서비스 복도요. 안쪽 작은 서재와 연결돼 있어요.”“그걸 어떻게 알았어요?”시현이 펜을 내려놓았다.“행사 준비 자료에 도면이 있었습니다.”그가 새로 보여준 파일은 단순한 객실 번호 목록보다 자세했다. 방의 내부 구조와 자료 반출 동선이 표시돼 있었다. 이서는 화면에서 ‘자료 회수’라는 글자를 읽었다. 자신의 숙박과 아무 상관없는 말이었다.“저를 만나러 왔는데, 나갈 길도 미리 보고 왔네요.”“그렇게 말하면…….”“다른 설명 있어요?”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서는 종이 위의 문을 보았다. 그가 다른 남자를 마주치지 않으려 나갔을 수도 있었다. 자료를 들킨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어느 쪽도 단정하지 않았다.“왜 얼굴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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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메모를 쓴 사람

도하는 열어둔 문을 닫을지 물었다.이서는 잠깐 생각하고 반쯤만 닫아달라고 했다. 도하는 그대로 두었다. 복도에서 시현이 돌아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서는 그 소리를 듣다가 조금 전 시현이 한 말을 떠올렸다. 익숙한 발소리로 사람을 맞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연구실에는 수정할 논문과 반납할 책이 나란히 쌓여 있었다. 창가의 화분은 한쪽만 말라 있었다. 언제나 완벽하게 정돈돼 보이던 방인데 자세히 보니 손이 가지 않은 곳도 많았다.문 앞에서 학생이 조심스럽게 교수님을 불렀다. 방금 나간 줄 알았다며 학위 케이스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도하는 학생의 이름을 묻고 케이스를 열었다. 누군가 동명이인의 것을 가져간 모양이었다.“학과 사무실에 지금 연락해두겠다. 네가 누구 것인지 찾아다닐 필요 없어.”학생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도하가 괜찮다며 가방을 챙겨주었다. 그 학생이 돌아가고 나자 이서는 탁자 위 다른 케이스를 보았다. 도하는 잘못된 것을 정확히 돌려놓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잘못 준 사람부터 혼내실 줄 알았어요.”이서가 말했다.“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그가 답했다. 이서는 잠깐 웃었다. 원고가 틀렸을 때는 그렇게 엄격하면서, 사람을 돌려보낼 때는 뜻밖에 다정한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그를 한 가지 얼굴로 미워하기가 더 어려웠다.도하가 물을 내밀었다.“아침에 어디 아팠니?”“왜요?”“목소리가 좋지 않았다.”이서는 물컵을 받았다. 오전에는 메모부터 물었던 사람이 이제야 몸을 물었다. 늦게 온 질문이 반갑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진료받고 왔어요. 제가 알아서 확인할 일은 하고 있어요.”도하가 무언가 더 물으려다 그만뒀다. 이서는 그에게 검진 결과를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 묻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파우치에서 냅킨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교수님이 쓰신 거죠?”“그래.”“언제요?”“나오기 전에.”“몇 시였어요?”도하가 안경을 책 위에 내려놓았다. 검은 테가 양장본 표지에 부딪혀 작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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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아니라고 한 사람

“아니다.”도하의 대답은 작았지만 분명했다.이서는 기다렸다. 그가 다른 말을 붙일 것 같았다. 어젯밤의 자신이 착각한 것인지, 누군가와 다른 일을 한 것인지. 하지만 도하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물컵만 자기 쪽으로 당겼다.“세 분 다 아니라고 하네요.”이서가 말했다.도하의 눈이 다시 올라왔다.“모두에게 물었니?”“누구한테는 묻고 누구한테는 안 물어야 해요?”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서는 막막해졌다. 세 남자를 차례로 만나면 적어도 하나의 대답은 얻을 것 같았다. 대답을 셋이나 얻었는데 아침보다 빈칸이 더 넓어졌다.“교수님이 오셨을 때 저는 어디 있었어요?”“침실 쪽에 있었다.”“교수님은 어디에 계셨어요?”“처음에는 거실에. 네가 자료를 보여주겠다고 해서 탁자 앞에 앉았다.”“그 뒤에는요?”도하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잠들게 두고 나왔다.”이서는 질문을 고쳤다.“제 옆에 계속 계셨다는 뜻이에요?”“방 안에는 있었어.”같은 의미인 것 같다가도 조금씩 달라졌다. 교수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처럼 자꾸 재질문하게 됐다. 이서는 그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제가 어려운 질문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도하가 고개를 들었다. 이서의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울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잘못 알아들어서 이런 아침이 생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싫었다.“네가 뭘 기억하는지 모르니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제가 기억하는 데 맞춰서 대답하시면 안 되잖아요.”도하의 얼굴이 굳었다. 이서는 자신의 말이 너무 날카로웠는지 생각했다가 그대로 두었다. 답을 맞춰달라는 질문을 한 것이 아니었다.반쯤 열린 문밖으로 학생 둘이 지나갔다. 도하를 보더니 인사하려다가 이서가 있는 것을 보고 소리를 낮췄다. 도하는 문을 닫지 않았다. 이서는 그 때문에 조금 더 차분해질 수 있었다. 지금 이 방에는 질문하는 자신과 답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도하가 천천히 말했다.“2시 55분쯤 들어갔다. 네가 자리를 옮긴 뒤에도 방에 있었고, 3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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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벗어놓은 안경

연구실을 나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도하가 메시지를 보냈다.받은 문자 화면 두 장이었다. 임성준의 이름과 발신 시각이 보였다. 이서가 따로 부탁한 내용만 보냈다. 그 뒤에 짧게 적혀 있었다.[아까 한 대답은 내가 책임지겠다.]그 문장을 읽고 이서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사실을 말한 사람이 왜 대답에 책임진다는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잘못 이해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었다. 무엇이든 너무 크게 읽고 있는 자신이 지쳤다.민우는 학생회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아이스크림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벌써 녹기 시작했다. 이서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자 그가 먼저 건넸다.“어느 맛?”“안 녹은 거.”“그런 건 없어.”이서는 결국 웃었다. 둘은 계단 끝에 앉았다. 졸업 가운을 벗고 나니 하루가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머릿속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민우가 사진 파일이 모두 올라갔다고 알려주었다. 이서는 고맙다고 했다. 그에게 전부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입으로 내뱉는 일 자체가 두려웠다. 민우는 재촉하지 않았다.“어제 셋 다 온 건 맞는 것 같아.”이서가 먼저 말했다.“방에?”“응.”민우는 아이스크림 막대를 내려다봤다. 놀랐지만 농담으로 바꾸지 않았다.“네가 확인하고 싶은 게 뭔지는 알 것 같아. 대신 내가 사람을 찍어주진 않을게.”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도가 고마웠다. 누가 더 좋아 보이는지 골라주는 사람은 지금 도움이 되지 않았다.태헌은 키스하고 나갔다고 했다. 시현도 그 이상은 없었다고 했다. 도하는 아무 일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서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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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셋 다 아니라면

집에 돌아오자 빨래가 그대로 널려 있었다.창문 옆 작은 의자, 한쪽 다리가 짧은 접이식 탁자, 냉장고에 붙여둔 월세 이체 날짜. 호텔의 큰 침대와 달리 방 안의 모든 것이 이서의 손이 닿는 거리에 있었다. 이서는 가방을 놓고 바닥에 앉았다.잠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휴대전화가 울려도 보지 않았다. 호텔에서 찾아온 짐 가방에 남의 셔츠가 들어 있었다. 세탁하지 않은 채 따로 접어왔다. 프런트에서 한유정이 요청을 접수했다며 다음 연락 방법을 알려주었다. 객실 안에서 있었던 일까지 직원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들었다.이서는 그 정도만 기대하기로 했다. 누구도 자기 대신 밤 전체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샤워하고 간단히 밥을 먹은 뒤 탁자에 종이를 펼쳤다. 세 남자의 이름을 적었다. 그 아래에는 대답만 썼다.태헌. 키스. 그 뒤는 없었다. 두 시 십오 분 외출, 귀환 시각 미확인.시현. 키스. 그 뒤는 없었다. 두 시 이십 분쯤 입실, 오십오 분쯤 다른 문으로 퇴실.도하. 아니라고 함. 두 시 오십오 분부터 세 시 사십 분까지 객실에 있었다고 함.세 줄을 적고 보니 더 어지러웠다. 이서는 종이를 구기려다 멈췄다. 종이를 버려도 대답은 남을 것이다.기억 쪽에는 다른 내용을 적었다. 문을 닫아달라고 했다. 누군가 안경을 벗었다. 자신이 먼저 가까이 가겠다고 했던 것 같았다. 그 말의 상대는 떠오르지 않는다.‘같았다’에 밑줄을 그었다. 확실하지 않은 마음을 확실한 기억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민우에게서 저녁을 먹었느냐는 메시지가 왔다. 먹었다고 답하자 사진을 보내보라고 했다. 이서는 빈 그릇을 찍어 보냈다. 민우는 증거가 부실하다며 농담을 했다. 이서는 웃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쉬고 싶었다. 실제로 내일은 누구도 만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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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네 사람이 앉는 방법

일요일 저녁, 이서는 뒤풀이 장소에 10분 늦게 도착했다.늦잠을 잔 것은 아니었다. 옷을 세 번 갈아입느라 그랬다. 너무 평범하면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는 것 같았고, 너무 신경 쓰면 셋 중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나온 사람 같았다. 결국 처음 꺼냈던 검은 원피스를 입었다.입구에서 민우가 손을 흔들었다.“얼굴 좀 폈네.”“잤으니까.”“사람은 역시 잠을 자야 돼.”라운지는 생각보다 밝았다. 학과 뒤풀이라고 해서 음악 소리에 묻힐 줄 알았는데, 학생들이 모인 홀과 안쪽의 조용한 방이 나뉘어 있었다. 민우는 아무 데나 앉으라며 의자를 당겼다. 이서는 그 옆자리에 가방을 놓았다.태헌이 바로 다가왔다.“안쪽에 자리 있어.”“여기도 있어요.”“얘기하기 시끄럽잖아.”“뒤풀이하러 왔으니까요.”태헌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서는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좋은 자리를 마련했는데 왜 싫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그 이해까지 대신해주고 싶지 않았다.시현이 건너편에 앉았다.“그럼 제가 여기 앉아도 돼요?”태헌이 빈 의자를 먼저 잡았다.“내가 앉으려고 했어.”“아까는 안쪽에 자리 있다면서요.”이서는 웃음을 참느라 물을 마셨다. 민우가 옆에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웃으면 안 될 것 같지만 웃긴 표정이었다. 태헌이 그를 보더니 의자를 내려놓았다.도하는 조금 늦게 왔다. 평소보다 편한 재킷을 입고 있었다. 문 앞에서 학생들과 한동안 인사를 나누더니 이서 쪽으로 다가왔다. 태헌과 시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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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같은 번호, 다른 초대

태헌은 시현이 받은 안내를 읽었다.“성준이가 이걸 보냈다고?”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하도 자기 휴대전화를 열어 임성준이 보낸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자료 문제로 흥분해 있다는 표현이 화면에 떴다. 이서는 그 말을 다시 읽어도 기분이 나빴다.“제가 누구한테 소리라도 질렀나요?”태헌이 답했다.“나한테.”“그건 선배가 제 말을 안 들어서 그랬죠.”“응.”뜻밖에 곧바로 인정해서 시현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태헌은 웃지 말라며 그를 쏘아봤다. 이서는 손에 든 펜으로 탁자를 한번 두드렸다.“제 방으로 사람 보내도 된다는 뜻은 아니잖아요.”태헌은 더 이상 농담하지 않았다. 그는 임성준에게 자기가 그런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서는 그 말도 따로 적었다. 회사 안에서 태헌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일이 이루어지는지 아직 몰랐다.도하가 자신의 문자 화면을 옮겼다.“이서는 나에게 먼저 연락했다. 그 뒤에 임성준의 연락을 받았다.”태헌이 그를 봤다.“무슨 얘기 하려고요?”도하는 답하지 않았다. 이서가 먼저 말했다.“그건 제가 교수님께 드린 말이에요. 오늘 확인하는 건 누가 언제 들어왔는지잖아요.”태헌이 등을 의자에 기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야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시현이 말했다.“저는 파일을 전달하려고 갔어요. 자료에 회사 원본이 섞였는지 봐달라는 부탁도 받았고요.”“그걸 왜 네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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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없는 봉투를 돌려달라니

태헌이 먼저 휴대전화를 꺼냈다.“내가 전화할게.”이서는 고개를 저었다.“제게 온 연락이니까 제가 할게요.”임성준은 금방 받았다. 배경에서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는 쉬는 날 연락해서 미안하다며, 월요일 자료 정리 때문에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이서는 스피커로 전환하기 전에 지금 세 남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임성준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그래도 친절함은 그대로였다.—개인 제안서는 가지고 계셔도 됩니다. 행사장에서 회람된 회사 자료만 돌려주시면 돼요.“제가 가져온 게 뭔지는 보셨어요?”—남색 봉투에 담아 가신 것으로 전달받았습니다.“누구한테요?”임성준은 잠깐 말을 멈췄다. 이서는 재촉하지 않았다. 상대가 식사 중이라는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무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려달라는 물건의 주인을 확인하는 중이었다.—행사 담당자들에게 들었습니다.“그 봉투 제가 방에 가져간 뒤 없어졌어요.”—분실하셨다는 말씀이실까요?“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에요. 제가 누구한테 넘겼는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고요.”태헌이 입을 열려다 이서의 눈을 보고 멈췄다. 시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도하는 탁자에 놓인 그림만 보고 있었다.임성준은 회사 자료의 원본을 분실하면 곤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서는 그 말의 뒷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제 봉투 안에 어떤 회사 원본이 들어 있었는지 목록을 보내주세요.”—확인해보겠습니다.“그리고 제 객실을 자료 대기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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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월요일에는 내 이름으로

뒤풀이가 끝난 뒤 태헌은 주차장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이서는 오늘도 버스를 타겠다고 답했다. 시현이 지금 시간에는 배차 간격이 길다고 말하자, 알고 있다고 했다. 도하는 더 보태지 않았다. 그 침묵이 고마운지 답답한지 판단하기 전에 태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본부장이라고 한 거, 내가 말한 거야.”이서는 그를 보았다.“왜요?”“네가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니까. 사람들 함부로 못 하게 하려고.”“함부로 못 하게 하려고 남들보다 높은 사람으로 소개했어요?”태헌이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먼저 큰 이름을 붙여주면 그 이름만큼 대우받을 테니까.이서는 자신의 계약서를 떠올렸다. 분석 업무, 결과 보고, 6개월. 적혀 있지 않은 권한이 오히려 많았다. 그 자리에 가서 사람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실수하면 고치고 모르면 물어야 하는 첫 회사였다.“그렇게 소개하면 제가 뭘 모를 때마다 더 이상해지잖아요.”태헌이 이서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이 준 호의가 상대를 곤란하게 했다는 설명은 늘 그에게 늦게 도착했다.“내일 내가 정정할게.”“저도 말할 거예요. 제 직함은 제가 알아야죠.”“알았어.”그 대답이 아까보다 덜 거칠었다. 시현은 길 건너 버스 정류장을 보고 있었고, 도하는 우산을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비가 올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서는 가방 안의 우산 손잡이를 보여주었다.“어제 돌려주셨잖아요.”도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한 일도 잊을 만큼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표정이었다.태헌이 작은 봉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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