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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누가 나랑 했을까?: Chapter 21 - Chapter 30

115 Chapters

제21화. 사원증에 적힌 이름

월요일 아침, 이서는 차성타워 회전문에 가방을 한 번 끼웠다.앞사람의 걸음을 따라 들어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문이 생각보다 빨랐다. 뒤에서 누가 가방 끈을 빼주었다. 출입증을 목에 건 여자가 말했다.“여기 문이 성격이 좀 급해요.”“제가 느린 건 아니고요?”“첫날엔 문 탓 하세요. 정유나예요.”이서는 악수를 하려다가 두 손에 든 서류를 떨어뜨릴 뻔했다. 유나가 웃으며 한쪽을 받아주었다. 이름을 듣고 마중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커피 사러 내려왔다고 했다. 마중은 인사팀 일이었다.그 대답이 오히려 편했다. 누구의 부탁으로 자신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층에서 일할 사람이었다.임시 출입증에는 윤이서, 프로젝트 분석담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유나는 명함 대신 사내 연락망을 보여주었다.“저는 자료 취합하고 일정 맞춰요. 원본 달라는 연락을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이기도 하고요.”“저도 원본 때문에 왔어요.”“벌써 잘 맞네요. 없는 걸 있다고 우기지만 않으면 오래갑니다.”이서는 잠깐 웃었다. 웃다가 사원증 사진이 지나치게 진지하다는 걸 발견했다. 사진 속 자신은 오늘 당장 회사를 인수하러 온 것 같았다. 실제로는 엘리베이터 버튼도 유나가 눌러주고 있었다.33층 회의실에는 김수경이 먼저 와 있었다. 수경은 앉기 전부터 계약서를 펼치지 않았다. 물을 권하고 출입 절차가 불편했는지 물었다. 이서가 회전문 얘기를 꺼내자 유나가 기계 점검을 요청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문이 열렸다. 태헌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이서 앞에 놓으려다 이미 물컵과 커피가 있는 걸 보고 멈췄다.“내가 늦었네.”“커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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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돌려준 적 없는 봉투

“누가 받았다는 거예요?”이서가 모니터를 돌리자 유나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웃음기가 사라졌다. 인수 목록은 행사 종료 뒤 정리한 표였다. 물건의 이름은 자세했지만 누가 확인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이런 건 완료가 아니라 확인 대기죠.”유나는 임성준에게 바로 전화를 걸려다 이서를 보았다.“제가 물어봐도 돼요? 일단 업무 자료인 건 맞으니까요.”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앞에서 무엇을 할지 미리 묻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스피커 너머로 임성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목록의 체크는 봉투 자체가 아니라 자료 접수 여부를 뜻한다고 했다. 출력물은 여러 경로로 들어오니 구분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제 봉투는 아직 못 찾았어요. 그럼 완료 표시 지워주세요.”“윤이서 씨, 그 부분은 수정하겠습니다.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유나가 이서보다 먼저 말했다.“예민한 게 아니라 받은 사람이 없어서요. 수정본 보내주세요.”통화가 끝났다. 이서는 유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유나는 원래 자기가 이런 말을 매일 한다며 어깨를 으쓱했다.“받았다는 표시 하나 때문에 나중에 제가 찾아야 하거든요.”두 사람은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내려갔다. 유나는 회사 얘기를 하다가 이서가 대답할 틈을 주었다. 행사 때부터 세 임원·자문 인력이 새 담당자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는 소문이 있다는 말도 숨기지 않았다.이서는 국에 뜬 파를 건졌다.“제가 뭐라고 설명해야 제일 덜 이상할까요?”“설명해야 하는 게 있어요?”&ld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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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가운데 자리가 좋은 이유

이서의 책상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태헌은 창가가 좋다고 했다. 콘센트도 많고 통화하기 편하다는 이유였다. 시현은 서버 연결이 가까운 안쪽이 낫다고 했다. 도하는 눈부심이 심하면 창가가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했다.이서는 세 사람의 말을 듣다가 유나를 보았다.“차장님은 어디 계세요?”“회의실 옆이요. 저는 여기.”“그럼 여기 앉을게요. 모르는 거 물어보기 좋게.”유나 옆의 빈 책상을 가리키자 태헌의 입술이 조금 나왔다. 시현은 잠깐 안경을 고쳤고, 도하는 그것도 괜찮겠다고 했다. 이서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유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인기 많은 자리 되겠는데요.”“제가요?”“제 자리요. 이제 다들 저한테 말 걸겠죠.”이서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태헌이 뭐가 웃기냐고 묻자 두 여자는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 반응이 더 수상했는지 태헌은 한참 서 있다가 자기 회의로 돌아갔다.도하는 참고 문헌을 놓고 갔다. 시현은 접속 권한을 확인하고 나갔다. 세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이서는 그제야 노트북 충전기를 꺼냈다. 오늘은 일하는 곳부터 자기 손에 맞추고 싶었다.모니터 높이를 조정하다가 유나가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단추와 커프스링크가 각각 든 파우치였다. 이서는 당황해서 가방 지퍼를 닫았다.유나는 묻지 않았다. 대신 서랍이 잠기는 책상이라며 열쇠를 찾아주었다. 그 배려가 지나치게 능숙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자기 물건을 맡길 수 있는 서랍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집중이 나아졌다.업무가 끝나갈 무렵 호텔의 한유정에게 연락이 왔다. 객실 배치도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의 방문 기록은 각자의 확인 절차가 필요하니 조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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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틀린 숫자와 맞는 말

“왜 그 방에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됐어요?”이서가 묻자 태헌은 의자 팔걸이에 올린 손을 내렸다. 사무실 안의 공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네가 기다릴 줄 알았으니까.”“기다리라고 했어요?”“금방 온다고 했지.”“그럼 선배님은 제가 다른 데 가면 화가 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태헌은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도면의 침실 쪽에 손가락을 짚고 있었다. 종이 모서리가 조금 구겨졌다.“알아. 지금은.”이서는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모든 것을 갑자기 잘 아는 남자가 된 척하는 말보다,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는 인정이 나았다.태헌은 새벽 2시 44분에 기사에게 기다려달라는 답장을 보낸 이유도 설명했다. 그때 통화하고 있던 상대는 숙부 차진혁이었다. 행사 발표가 끝난 뒤 자료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챙기라는 통화였다고 했다.“제 봉투 얘기도 했어요?”“이름은 안 나왔어. 참가자들이 나눠 가진 자료 중에 내부용이 있으니까 확인하라고.”“그래서 제 방으로 돌아온 거예요?”“옷 주러. 그건 맞아.”태헌의 대답이 빨랐다. 이서는 그가 들고 갔다는 종이봉투를 생각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옷과 약은 방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뒤 마음이 바뀌었는지는 영수증으로 알 수 없었다.그날 자신을 따라온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자료 이야기를 들었을까.수경이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태헌이 일어서려 하자 잠깐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내일 오전에 확인할 항목을 알려주러 왔다. 장비 자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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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의자 위에 두고 간 옷

화요일 점심, 호텔에서 작은 상자가 왔다.한유정이 보낸 분실물이었다. 이서는 퇴실하면서 종이봉투를 빠뜨렸다. 그 안에는 회색 티셔츠와 편한 바지, 마개를 열지 않은 숙취 음료가 들어 있었다. 정신없이 세 물건만 챙기고 정작 갈아입을 옷은 두고 온 셈이었다.수령 확인서에는 토요일 오전 청소 때 거실 의자에서 발견했다고 적혀 있었다. 태헌이 말한 위치와 맞았다.유나가 물건을 놓을 수 있게 책상 한쪽을 비워주었다. 이서는 택배 테이프를 뜯다가 갑자기 토요일 아침이 떠올라 손을 멈췄다. 유나는 가위를 대신 내밀 뿐 상자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병원 예약이나 개인 일정 있으면 공유표에 시간만 써요. 이유는 안 적어도 돼요.”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에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던 진료실을 떠올렸다. 그 자리에서도 몸에 남은 느낌만으로 상대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이후 필요한 확인은 자신이 계속 챙기면 될 일이었다. 세 남자가 대신 설명할 일은 아니었다.“오늘은 괜찮아요. 일정 생기면 말씀드릴게요.”이서는 봉투 바닥까지 살폈다. 남색 서류 봉투는 없었다. 대신 얇은 끈 하나가 손끝에 걸렸다. 끈을 들어보니 단추를 넣은 조그만 비닐 포장이었다. 태헌이 돌려준 것과 같은 색이었지만 모양은 달랐다. 셔츠의 여분 단추였다.함께 떨어진 종이 상표에는 토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입고 있던 흰 셔츠와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졸업식에 입고 간 자기 셔츠가 아니라, 호텔에서 따로 챙겨 보내준 옷이었다. 새 옷 세 벌 중 그 셔츠만 쇼핑백에서 꺼내 입었던 모양이었다.누군가 쇼핑백 안쪽에 붙어 있던 비닐을 뜯어 넣어두었다.이서는 사진을 찍어 태헌에게 보냈다. 답장이 금방 왔다.[나 그런 건 안 챙겼어.]시현에게도 같은 사진을 보냈다. 그는 방을 나올 때 그 종이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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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멈춰 선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가 덜컥 멈췄을 때 이서는 태헌의 팔을 붙잡았다.생각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발밑이 내려앉는 기분에 손부터 나갔다. 태헌도 벽을 짚었다. 층수 표시가 27과 28 사이에서 멈췄고, 조명이 잠깐 깜빡였다.“괜찮아?”“아직 모르겠어요.”태헌은 이서가 놓기 전까지 팔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손으로 비상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된 직원에게 인원과 상황을 말한 뒤 기다리라는 안내를 들었다.문을 열려고 하거나 버튼을 마구 누르지는 않았다. 이서는 그가 뭐든 힘으로 해결하려 들 거라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태헌이 시선을 느끼고 돌아봤다.“왜.”“문 뜯을 줄 알았어요.”“내가 무슨.”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었다. 이서도 따라 웃다가 손을 놓았다. 손목에 남은 체온이 이상하게 오래갔다.두 사람은 지하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이서는 호텔 택배 상자를 들고 있었고, 태헌은 차에 실어주겠다고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까지만 가겠다는 조건으로 얻은 동행이었다.“이렇게 되면 제가 늦는 이유가 선배님은 아니네요.”“그걸 꼭 확인해야겠어?”“평소에 자꾸 붙잡으시니까요.”잠깐 조명이 어두워지자 이서가 천장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태헌이 괜찮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멈췄다. 아직 밖으로 나온 것도 아닌데 괜찮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대신 직원이 곧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는 말만 전했다.“이런 데 갇히는 거 싫어해요?”이서가 묻자 태헌은 싫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느냐고 되물었다.“선배님은 겁 없는 줄 알았어요.&rdq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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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웃었다는 기억

“확실히 제 목소리였어요?”주차장 앞 긴 의자에 앉자마자 이서가 물었다. 태헌은 차 키를 돌리다가 멈췄다. 엘리베이터 점검 직원들이 문을 닫고 돌아갔다. 두 사람의 목소리만 조금 또렷해졌다.“네 목소리인 줄 알았어.”“웃고 있었다고요?”“응. 안쪽에서.”태헌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번 문질렀다. 처음에는 빈 침대였고,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을 만났을까 봐 두려웠다는 말이었고, 이제는 웃음이었다. 이서가 줄곧 아무것도 몰랐던 탓에 그가 말을 하나씩 골라낼 수 있었다.이서는 화가 났다. 그가 마지막 말을 꺼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전의 빠진 말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처음 물었을 때 말해주셨어야죠.”“맞아.”태헌은 변명하지 않았다. 이서가 숨을 고르는 동안 기다렸다.“남자 목소리도 들었어요?”“말소리 같은 건 있었어. 문이 닫혀 있었고, 짧아서 뭐라고 하는지는 몰랐어.”“교수님이었어요?”“그건 몰라.”태헌이 그녀를 보았다.“시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 그 자식이 내 앞에서 네 얘기를 자꾸 해서.”“봤기 때문이 아니라 질투해서요?”“그래.”태헌은 주머니에서 통화 목록을 보여주었다. 현관 쪽을 나서며 이서에게 걸려다 취소한 흔적이었다. 정확한 연결 시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서는 화면을 길게 보고도 새 사실이 생겼다고 표시하지 않았다.“이걸 제가 못 받은 걸로 말하면 안 돼요.”&ld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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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대답을 미루는 사람

도하의 답장은 다음 날 오전 7시에 왔다.[네가 조용한 곳에 있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옮겼다. 오늘 직접 이야기하자.]이서는 그 문장을 출근길 내내 읽었다. 같이 있었다는 대답은 했지만, 처음 물었던 밤의 핵심은 다시 비어 있었다. 그렇다고 메시지 한 줄마다 거짓말을 숨겼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그를 믿고 싶다는 마음이 방해인지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회사에 도착하니 시현이 일찍 와 있었다. 커피 기계 앞에서 컵을 고르고 있었다. 이서는 잠깐 주저하다 말을 걸었다.“호텔에서 나갈 때 교수님 목소리 들었어요?”“아니요. 발소리만요.”“목소리를 들었다고 한 적도 없죠?”시현은 컵을 내려놓았다.“네. 제가 얼굴까지 본 것처럼 말한 걸 먼저 바로잡았어야 했어요. 목소리는 못 들었습니다.”대답이 전보다 짧았다.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한 사람에게 다시 같은 질문을 하는 일이 지겨웠지만, 답을 정해놓고 물어서도 안 됐다.시현이 커피를 건넸다.“설탕 안 넣었어요. 우유도요.”“제가 그렇게 마시는 건 또 어떻게 아세요?”“어제 여기서 직접 말씀하셨어요.”이서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시현이 작게 웃었다.“이건 훔쳐본 정보 아니에요.”“알아요. 제가 예민했네요.”“이번에는 그렇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제가 먼저 만들어놓은 일이라.”이서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시현이 모든 반응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달래는 건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그가 자꾸 자신이 나쁜 사람 아니라는 설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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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울었다는 사람에게

“무슨 말 하면서 울었어요?”도하는 한동안 이서를 바라보았다. 질문이 그쪽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이서는 자신의 밤을 남에게 요약받는 일을 조금씩 견디기 어려워지고 있었다.“네가 만든 자료인데 아무도 묻지 않았다고 했다. 이름을 빼도 되는지, 숫자를 바꿔도 되는지.”“교수님은 뭐라고 하셨고요?”“확인하겠다고.”“그런데 메모에는 제 변명은 안 듣겠다고 쓰셨어요.”도하의 입술이 움직였다가 멎었다. 그 말은 그날의 이서를 달래주던 사람과 맞지 않았다. 이서는 냅킨 사진을 띄우지 않았다. 그는 자기 글씨를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도하는 팔걸이에서 손을 거두었다.“그 말은 내가 잘못 썼다. 네가 어떤 행동을 했든 그렇게 적어두고 갈 일은 아니었다.”이서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 더 미안하다고 듣고 싶기도 했고, 그 말로 나머지를 덮지 말라고 하고 싶기도 했다. 도하에게는 사과가 먼저 끝내는 방법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제가 어떤 행동을 했는데요?”그가 대답을 늦췄다. 이서는 그의 눈을 보았다. 교수의 눈을 정면으로 보고 재촉하는 일은 전에도 어려웠다. 대학에서 답을 잘못 말했을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잘못 말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이서야.”“이름 부르고 질문 없애지 마세요.”도하는 입을 다물었다. 이서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화가 나면 눈물부터 나는 게 싫었다. 손수건을 꺼내려다 그대로 두었다.“제가 교수님 좋아하는 티라도 냈어요? 그래서 후회하고 찾아온 줄 아세요?”도하의 얼굴에 처음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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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커피가 식기 전에

야근을 자처한 건 아니었다. 이서는 자기 오류를 고치고 나서도 표를 한 번 더 확인하느라 늦었다.유나는 먼저 나가면서 남은 빵을 놓고 갔다. 정리된 파일의 링크를 보내달라는 말도 함께였다. 이서는 빵을 먹으러 탕비실에 갔다. 거기서 시현을 만났다.그는 커피 기계의 고장 안내를 읽고 있었다.“이건 제가 고칠 수가 없네요.”“컴퓨터 아니라서요?”“제게 손대면 안 되는 기계이기도 하고요.”시현이 종이컵 두 개를 꺼냈다. 이서는 믹스커피라도 괜찮다고 했다. 그는 설탕 없는 것만 찾다가 결국 손에 든 봉지를 내려놓았다.“그냥 달게 마실게요. 오늘은.”이서가 말하자 시현이 봉지를 뜯었다. 어제의 취향이 오늘까지 명령인 것은 아니라는 걸 그도 조금씩 배우는 듯했다. 이서는 테이블 끝에 앉아 빵을 나눴다.시현은 크림이 많은 쪽을 그녀에게 주었다. 이서는 반대로 바꿨다.“크림 적은 게 좋아요.”“또 틀렸네요.”“저를 너무 어려운 문제처럼 보지 마세요. 틀리면 그냥 바꾸면 돼요.”시현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는 안경을 벗고 눈가를 눌렀다. 이서는 그 얼굴을 보다가 호텔에서 기억했던 안경의 감촉을 떠올렸다. 예전 같으면 지금 그의 안경테를 만져보고 싶었을 것이다.그러나 손을 뻗지 않았다. 비슷한 물건을 만진다고 그 밤의 빈 부분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왜요?”시현이 시선을 알아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 안경 보고 있었어요.”“마음에 안 드세요?”“사람을 잘 보는 것 같아서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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