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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누가 나랑 했을까?: Chapter 41 - Chapter 50

115 Chapters

제41화. 아침에 다시 만난 얼굴

금요일 오전 7시, 공항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이서는 탑승권을 확인하고 가방을 끌었다. 셋을 만나기 전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한 번 더 얼굴을 봤다. 눈이 조금 부어 있었다. 잠을 못 잔 티를 감추느라 화장을 두껍게 하면 오히려 더 피곤해 보일 것 같았다.그냥 나왔다.태헌은 약속 장소에 먼저 와 있었다. 셔츠 위에 얇은 재킷을 걸쳤고, 넥타이는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시현은 짐 옆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도하는 종이컵 하나를 들고 창밖을 향해 서 있었다.그 셋이 따로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어젯밤의 긴장이 다시 생각났다.이서는 먼저 인사했다.“잘 주무셨어요?”셋 다 대답이 시원하지 않았다. 태헌이 이서의 가방을 받으려다 멈췄다. 그녀가 손잡이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제가 끌게요. 가벼워요.”“알았어.”그 짧은 대답 뒤로 어색한 침묵이 남았다. 이서는 예약 확인서를 꺼냈다. 자기 기분 때문에 출장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농담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시현이 먼저 말했다.“어제 배포본 비교 결과 보냈어요. 같은 종이를 찍은 건 맞아 보이지만 원본 사진은 달랐습니다. 우산과 테이블이 빠진 대신 종이 끝이 더 넓게 보였어요.”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아침에 확인했다. 그의 사진을 그대로 전달한 것으로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게 자기 편을 잃는 일은 아니었다.태헌이 시현에게 사과했다.“사진부터 봤어야 했어. 팔 잡은 것도 내가 잘못했고.”시현은 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다음에 같은 상황 생겨도 손부터 쓰지 마세요.&rdq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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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같이 가는 이유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서는 현장 질문지를 다시 펼쳤다.첫 장은 장비 사용 기록, 두 번째는 지원 계약의 기준 기간, 세 번째는 자료를 누구에게서 받아 정리했는지였다. 호텔에서 보았던 표 때문에 시작했지만, 그 표만 맞는지 틀리는지 보러 가는 일은 아니었다.자신이 기대한 결론이 틀릴 수도 있었다.도하가 질문지 옆에 앉았다. 이서는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네 번째 항목을 가리켰다. 현장 직원이 보고서 전체를 모를 수 있으니 자신이 작성한 부분부터 묻는 게 낫겠다고 했다.이서는 잠깐 그를 보았다. 맞는 말이었다. 그가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업무상 의견까지 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서는 문장을 고쳤다.“그렇게 물어볼게요.”도하는 더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이서는 펜을 놓고 말했다.“지금 고개 끄덕인 건 이 질문에 대해서예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구분하마.”어색한 말이었지만 필요한 말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종이를 보고도 서로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태헌이 시설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원 사업의 설명회가 열렸던 센터였다. 이서는 사진에서 장비 앞에 선 직원을 보았다. 회사 자료에서는 시설 전체가 최신형처럼 소개돼 있었지만, 현장 사진에는 오래된 기계도 섞여 있었다.“옛 장비도 같이 썼네요.”“새로 산 건 일부야. 그거만 찍으면 더 그럴듯하니까.”태헌이 말했다.“선배님도 그렇게 찍으라고 하셨어요?”“그때는 홍보 자료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지.”그의 말에 이서는 사진을 저장했다. 홍보에서 강조하는 것과 검증 보고서에서 설명해야 할 것은 달랐다. 좋은 사진이 틀린 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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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세 가지 약속

탑승 줄이 천천히 움직였다.태헌은 이서의 짐을 위에 올려주겠다며 손잡이를 가리켰다. 이서는 무거운 가방만 건넸다. 사적인 기록이 든 작은 가방은 자신이 메고 있었다.“토요일 오전에 시간 있어?”태헌이 물었다.“현장 일정이 끝나면요.”“근처에 산책길 있대. 30분만 걷자.”이서는 그를 보았다. 그에게서 30분이라는 작은 약속이 나온 게 의외였다. 빌라나 요트나 통째로 빌리겠다는 말은 없었다. 태헌은 이서의 표정을 보고 덧붙였다.“길면 네가 싫다고 할 것 같아서.”“짧다고 무조건 좋다고 하진 않아요.”“그러니까 지금 묻잖아.”이서는 잠깐 생각했다. 오늘 밤 무슨 대답을 듣느냐에 따라 내일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미리 고정해두고 싶지는 않았다.“내일 아침에 다시 물어봐요.”태헌은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방적인 초대를 거절당한 사람처럼 화내지는 않았다. 이서는 그 태도가 조금 좋아서 다시 말했다.“아침에 너무 일찍은 말고요.”태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정도의 여지를 알아듣는 데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시현의 부탁은 달랐다. 그는 이서에게 저녁 먹고 잠깐 밖에 나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숙소 근처 작은 가게에서 물과 간식을 사오자는 제안이었다.“장 보는 데도 약속이 필요해요?”이서가 묻자 시현이 안경을 고쳤다.“업무 말고 같이 있을 핑계가 그 정도밖에 안 떠올라서요.”이서는 웃었다. 그가 더 멋진 말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멋진 말을 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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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창가 아닌 자리

비행기가 뜨자 이서는 팔걸이를 꽉 잡았다.태헌이 손을 내밀었다가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는지 웃었다. 이서는 그 표정을 보고 손을 더 세게 쥐었다.“이번에도 벽 잡을 거야?”“벽이 멀잖아요.”태헌이 팔걸이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서는 잠깐 보고 나서 그 손을 잡았다. 그가 손가락을 끼우지 않은 게 오히려 더 의식됐다. 힘을 빼면 바로 놓을 수 있는 손이었다.기체가 안정되자 이서는 손을 뗐다. 태헌은 창밖을 보았다. 창에 비친 그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이서는 모른 척 물을 마셨다.도하의 앞주머니에서 책갈피가 떨어졌다. 이서는 통로 아래로 굴러온 것을 주워 건넸다. 그가 고맙다고 하며 책을 덮었다. 제목은 업무와 상관없는 짧은 소설이었다.“비행기에서 그런 것도 읽으세요?”“논문만 읽고 살지는 않는다.”이서는 웃었다. 도하도 아주 잠깐 웃었다. 그가 교수라는 이름으로만 보이지 않는 순간은 전에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대답을 더 피하고 싶지 않았다.통로 건너편에서 시현이 자료를 읽고 있었다. 이서는 그에게도 이륙이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무섭지만 티를 내는 속도가 늦다고 했다. 태헌이 그래서 지금 긴장한 척하는 거냐고 놀렸다.시현은 상무님 손 빌릴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이서는 웃음이 나와 컵을 내려놓았다.잠깐 다른 여행 같았다. 졸업 뒤 친구들과 떠나는 짧은 휴가였다면 이 사람들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자신이 아침부터 파일을 펼치지 않았다면 태헌은 창밖을 보여주고, 시현은 사진을 찍어줬을지도 몰랐다. 도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책방을 찾아줄 것 같았다.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묻고 있다는 게 서글펐다.도하가 뒤를 돌아보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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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생각보다 작은 현장

제주 센터는 보고서의 사진보다 작았다.주차장에는 직원 차 몇 대와 배송 차량 한 대가 있었고, 입구 화분 두 개 중 하나는 말라 있었다. 이서는 안내 사진 속 반짝이는 건물과 실제로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이 얼마나 다른지 새삼 느꼈다.현장 책임자는 윤이서라는 이름을 보고 발표 자료 만든 분이냐고 물었다. 이서가 그렇다고 하자 그가 조금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그 표 기준을 물어보고 싶었어요. 저희가 보낸 자료랑 계산한 기간이 달라서요.”이서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자신만 차이를 발견한 게 아니었다. 현장에서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회의실에는 종이 일지가 쌓여 있었다. 모서리가 닳고 날짜 옆에 정비 담당자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시현은 기계의 작동 기록을, 도하는 지원 조건을, 태헌은 비용 변경 경위를 보기로 했다. 이서는 현장 직원 옆에 앉아 종이부터 넘겼다.첫 번째 차이는 금방 설명됐다. 정비를 한 날짜가 달라진 게 아니라 정비 요청을 접수한 날짜와 완료일을 다르게 적은 것이었다. 이서는 자기 표시 하나를 지웠다.두 번째 차이는 남았다. 회사 요약본에서는 4월의 기록이 6월 지원 성과로 붙어 있었다. 현장 직원은 그 파일을 만든 적이 없다고 했다. 그가 제출한 메일에는 다른 표지가 있었다.이서는 제출함에서 내려받은 자신의 파일을 열었다. 숫자와 각주가 이어졌다. 그런데 회사 요약본에서는 각주가 빠져 있었다.“이 두 페이지가 원래 붙어 있었죠?”현장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뒤에 기준 설명이 있어요. 앞장만 보면 다르게 읽힐 텐데요.”직원이 꺼낸 일지에는 지워진 숫자도 남아 있었다. 이서는 처음에 날짜를 다시 쓴 줄 알았다. 물어보니 장비를 다른 팀에 빌려준 시간이었다. 한 팀의 기록만 합치면 이용 시간이 작게 나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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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물가에서는 솔직하게

이서는 태헌 옆에 앉았다.수영장은 생각보다 얕아 보였다. 물 위로 건물 불빛이 길게 흔들렸다. 이서는 발끝으로 물을 건드렸다가 차가워서 금방 뺐다. 태헌이 웃자 그에게 물방울을 조금 튀겼다.“웃으실 일은 아니죠.”“아까 현장에서는 안 떨더니.”“모르는 건 물어보면 되니까요.”“그럼 지금도 물어봐.”이서는 그를 보았다. 태헌은 웃음을 거두고 기다렸다. 그녀는 오늘 밤의 질문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이미 많이 들었다. 지금 묻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제가 교수님 얘기를 들으면, 선배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태헌은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좋은 표정은 못 할 것 같아.”“그건 알아요.”“그래도 네가 대답 듣는 걸 막지는 않을게.”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헌의 말을 미리 믿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하는지 보겠다는 뜻이었다.“선배님이 아니면 제가 선배님을 좋아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씀하셨어요. 처음에요.”태헌이 눈을 들었다.“내가?”“제가 방에서 나갔다고 화내고, 다른 남자랑 있었을까 봐 못 물었다고 하고. 선배님이 그날의 사람이면 저한테 더 큰 자리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서요.”그가 한참 물을 보았다. 이서는 발을 가지런히 모았다. 조용한 곳에서는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그랬나 봐.”태헌이 말했다.“내가 아니라고 하면 네가 나를 그냥 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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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찍지 않은 사진

저녁 식사는 조용하지 않았다.태헌은 생선 가시를 잘 못 발랐다. 시현은 그걸 보면서 방법을 설명했고, 도하는 설명을 듣느니 자기가 발라먹는 게 낫겠다는 얼굴이었다. 이서는 세 사람을 보다가 웃었다.이런 평범한 모습이 자꾸 좋아졌다. 그래서 이들이 자기에게 하지 않은 말들이 더 못마땅했다.식사를 마친 뒤 이서는 시현과 가까운 가게에 다녀오기로 했다. 태헌은 같이 가겠다고 했다가 물을 사러 네 명이 갈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듣고 물러났다. 도하는 거실에 남았다.길은 숙소에서 걸어서 5분도 되지 않았다. 시현은 이서에게 어느 쪽으로 걸으면 편하냐고 묻지 않고 자신이 차도 쪽으로 옮겼다. 이서는 그런 배려까지 매번 허락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다른 것을 말했을 때 바꿔주는지였다.가게에서 시현은 과자 하나를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이서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녀가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시현 씨가 좋아하는 거 사요.”“그럼 조금 이상한 거 고를 수도 있는데요.”그가 고른 건 짭짤한 김 과자였다. 이서는 웃으며 자기 몫으로 달콤한 비스킷을 담았다. 계산대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바구니를 보았다. 취향이 전부 같을 필요는 없었다.돌아오는 길에 시현이 물었다.“태헌 상무랑 아까 무슨 얘기 했어요?”이서는 그를 보았다. 시현은 곧 고개를 저었다.“아니, 알려주셔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질투나요?”“네.”뜻밖에 빠른 대답이었다. 이서는 발걸음을 조금 늦췄다.“그래도 오늘 같이 걸으니까 좋네요.”시현이 말했다. 그 말은 상대를 깎아내리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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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닫히지 않은 문

9시가 되자 이서는 테이블에 세 물건을 놓았다.태헌은 커프스링크를 보고도 손을 뻗지 않았다. 시현의 립밤은 뚜껑이 닫혀 있었고, 도하의 냅킨은 여러 번 접혀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처음에는 이 물건들만 보여주면 누군가 답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오늘은 서로 대신 대답하지 마세요.”이서가 말했다.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종이 한 장을 더 놓았다. 그동안 확인한 시간들이었다. 호텔에서 받은 자료와 각자의 기록을 구분해 적었다.“누가 누구한테 거짓말한 것 같은지 말고요. 본인이 처음에 안 한 말부터 해주세요.”태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돌아온 일을 바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 빈 침실을 보고 이서가 나갔다고 단정했다는 것, 웃음 같은 소리를 듣고도 문을 열거나 전화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했다.그는 자신이 들은 소리가 이서의 상태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서는 그 대답을 받아 적지 않았다. 이미 쓴 말이었다. 오늘은 그가 다른 두 사람 앞에서도 똑같이 말하는지 들었다.시현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부터 말했다. 발소리와 정문이 열리는 기척을 도하라고 생각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료 두 장을 찍은 이유가 자신의 검토 흔적을 남기려는 데서 시작됐다는 것도 인정했다.“그 다음에 이서 씨가 요청한 내용을 봤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이서 씨를 위해서만 있었다고 말하면 틀립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곧바로 대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그녀를 보지 않았다. 자기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다렸다.이서는 자기 몫의 종이도 펼쳤다. 금요일 밤 세 사람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누구에게는 자료를 봐달라고 했고, 누구에게는 잠깐 얘기하자고 했다. 같은 장소로 불렀다고 같은 기대를 가진 것은 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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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아니라고 했잖아요

“나였다.”도하가 말했다.“그날 밤 너와 잔 사람은 나야.”이서는 도하의 얼굴을 보았다. 예상한 대답인데도 듣는 순간 귀가 멍해졌다. 테이블 옆 작은 시계가 움직였다. 누군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은 숨을 들이마셨는지 내쉬었는지조차 몰랐다.“아니라고 하셨잖아요.”그 말이 먼저 나왔다. 누구였는지 알아낸 기쁨 같은 것은 없었다. 답을 들으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가 처음 대답하던 얼굴이 더 또렷해졌다.“거짓말했다.”도하는 이유를 먼저 붙이지 않았다. 이서는 그를 바라보다 냅킨을 집었다. 오전 중 연구실로 오라는 글씨가 눈앞에서 조금 흔들렸다.“그럼 그날 연구실에서도 알고 계셨네요. 제가 모르고 물어본다는 걸.”“그래.”“제가 다른 사람들 찾아다닐 때도요?”도하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알고 있었다.”이서는 냅킨을 내려놓았다. 며칠 동안 태헌에게 묻고 시현에게 묻고, 물건을 뒤집어보았다. 누군가의 말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자기 기억부터 의심했다. 도하는 그 시간을 알고 있었다.태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이서는 고개를 돌렸다.“선배님.”그가 멈췄다. 이서는 앉으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자기 대답을 빼앗지 말라는 눈으로 봤다. 태헌은 한동안 서 있다가 다시 앉았다. 시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도하를 보고 있었다.이서는 두 사람에게 잠깐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지금부터 묻는 말은 그들의 질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태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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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대답 다음의 밤

휴대전화가 울렸지만 이서는 받지 않았다.도하의 전화는 아니었다. 토요일 밤에 연락하기로 했던 민우가 하루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이서는 벨이 멎은 뒤에야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은 말이 잘 안 나올 것 같다고. 기다리게 할까 봐, 숙소에는 잘 도착했다는 말도 덧붙였다.민우의 답장은 짧았다.[그럼 내가 떠들까. 너는 안 말해도 돼.]이서는 전화를 걸었다. 민우는 이삿짐 상자 한 개가 아직 안 왔다는 얘기부터 했다. 그 안에 냄비가 들어 있어 저녁을 편의점에서 해결했다고 했다. 이서는 듣다가 조금 웃었다.웃음이 나오자 눈물이 더 났다.“나 대답 들었어.”민우가 조용해졌다.“그래.”“교수님이었어. 그런데 처음에 아니라고 했잖아.”말이 끝나지 않았다. 이서는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민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도 이서가 혼자 잘못 기억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고 했다.그 말을 듣자 이서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몸이 불편하고 기억이 흐리던 그날, 차례로 찾아간 세 남자는 모두 아니라고 했다. 자기만 이상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같아 질문할 때마다 더 단단한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을 유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민우가 물었다.“집에 오고 싶어?”“아직 모르겠어. 내일 현장 자료도 봐야 하고.”“일 때문에 못 온다고는 하지 마. 오고 싶으면 방법부터 알아보자.”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너머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야 그렇다고 말했다. 돌아갈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 필요했다. 그 선택을 지금 하지 않더라도.방문을 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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